공부를 하기 위해 ‘좋은 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일련의 조건들을 늘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다지 좋은 조건에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경제적인 조건은 물론이거니와, 학문적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고려해본다면 말이죠. 부모님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19살에 서울에 올라와 공장이 가까운 구로동에 자리 잡아 절 낳으셨고, 지금은 구로동은 아니지만 그 근처에 살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은 서울이지만, 주변에는 부모님과 동향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사돈에 팔촌까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진짜로요.) 외지에서 온 친구가 이 동네의 시장에서 홍어를 파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죠. 개인적인 조건으로도 한국의 입시제도에서 성공하였다 할 만한 대학을 가지도 않았고, 저희 친척들 중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은커녕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소수입니다. 예,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대학 졸업하면 뭐하지?’에 대학원을 간다는 이외의 선택지는 한 번도 고려해 본적이 없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에도 대부분의 친구들이 당연한 수순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저 혼자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음에도 말예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 대학 진학이 당연시 되었겠지만, 저는 취업과 진학 두 가지 선택지가 모두 있는 곳에 가서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릴때부터 부모님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소리가 그거였어요.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말라고요. 저는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기 위해, 내가 하는 결정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기 위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싶었어요. 20년 넘게 살아온 동네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학교를 다녀보고 싶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는 돈이 인간에게 주는 자립성에 대해 뼈져리게 느껴왔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한 번도 돈 문제에 대해서 일언반구 하지 않았지만, 저는 제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제가 그나마 형제가 없어서, 부모님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여 생긴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생활이 생각보다 재미가 없었거든요. 하루 종일 회계 과목 듣고, 컴퓨터 공부하고.. 일반적인 경영학과 학부생이 듣는 과목을 고등학교 과정에서 들었었는데 이쪽은 정말 나랑 안 맞다, 재미 없다라고 생각했지요. 실제로도 고등학교 동창 중에 경영학과에 진학한 친구들은 소수랍니다. 결과적으로는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의도치 않은 방황으로 취업도 진학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저는 제가 취업을 하든 진학을 하든 언젠가 공부를 할 거라는 은연중의 믿음은 있었던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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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네이버 웹툰 ‘대학일기’ by 자까

 하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저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사실 돈에 대해 집착하는 티를 내지 않지만, 전 누구보다 가장 속물적이고 돈에 대해 밝히는 사람이예요. 하지만 그런 태도가 오히려 공부를 할 때에는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 장학금을 받지 못하자 일부러 고생길이 훤한 걸 알면서도 연구 장학프로그램에 들어가기도 했었고, 학부 때는 오히려 학부 2학년에 기업에서 전액 장학생을 많이 뽑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새내기 시절에 미친 듯이 공부했지요. 시험기간에는 시험 시간을 착각해서 시험을 못 보는 꿈도 많이 꾸고, 성적 발표 직전에는 교수님과 한 엘리베이터에 갇혀서 혼나는 꿈도 꾸기도 했어요.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어느 누구도, 어쩌면 제 남자친구까지도 이런 저의 생각에 대해서 알지 못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은연중에 비추어지는 이미지가 ‘취업시장에서 낙오했거나, 혹은 도피성으로 대학원에 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알고, 저 조차도 그러한 프레임에 자유롭지 않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전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누구보다 돈의 힘에 대해 여실히 느껴온 사람이었어요. 학부 동안 여러 대외 활동을 다니면서 주말 알바를 하고, 아침 7시 학원 수업을 듣고 9시에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가기도 했었고요. 교환학생을 갔을 때에도 재택알바를 하느라 스카이프로 회의를 해야했기 때문에 시차가 많이 나는 국가엔 가지 못했고, 그나마 물가가 저렴한 동남아시아로 갔습니다. 애석하게도 알바를 하는 족족 생활비나 여러 소비를 하느라 모아둔 돈은 제로에 수렴하지만, 전 대학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포기하지 못했어요. 방학 때는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바쁜 연구소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하면서도 저에게 대학원은 무리해서라도 가고 싶은 유일한 미래의 선택지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고생길을 걸을 필요는 없어요. 제가 이렇게 스스로 고생을 자처했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요. 다만 대학원을 진학하기로 결심하였고, 본인의 조건이 한정적이라면 현실적인 조건은 가장 우선순위로 고려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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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만화 도라에몽

제가 대학원을 진학하게 된 가장 유일한 계기는 제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데 있었어요. 물론 학부과정 초반에는 내가 완전히 마음에 드는 과목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나마 고학년이 되면서 선택의 여지가 생겼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부 과목을 들으면서, 그리고 페이퍼를 써나가면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희열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으로는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도 그 힘든 과정에서 묘하게 느껴지는 재미가 저에게는 엄청난 자극이 되었어요. 대학원에 와서 학부와 완전히 다른 수업을 듣지는 않지만, 하나의 페이퍼를 완성해나가면서 내 생각을 조절하고 조금 더 예쁜 하나의 ‘조각’을 만드는 조각가의 마음으로 이 삶을 이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학부 때는 시험공부 하느라, 과제 내느라 고생하면서도 밤은 새어본 적 없지만, 대학원에 와서는 동이 틀 때 잠들고, 수업 시간에 한 마디도 못하고 끝나는 수업이 허다했습니다. 배울수록 멍청해지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얕은 지식마저 모두가 까발려지는 기간이 석사 1학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는 제 결정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만큼 저에게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다는 건 축복의 순간이었습니다.

Photo by Redd Angelo on Unsplash

Photo by Redd Angelo on Unsplash

여전히 대학원에 다니면서도 공부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연구 조교 활동을 해야하고, 외부 조교 활동도 해야 합니다. 원하지 않은 술자리에서 재미 없는 화제에 대해 재미있는 척 리액션을 해야하고, 정말 같이 술 마시고 싶은 친구와는 술자리를 한 지도 오래되었지요. 시력은 점점 나빠지고 성격도 점점 괴팍해지기도 해요. 가끔은 관악산 정상에 올라서 외치고 싶기도 해요, “꺼져 시발 비꼬고 지랄이야 좆까!”라고.. 하지만 10할 중 9할의 좆같은 순간에서 1할의 즐거움을 찾아 저는 오늘도 도서관에 나섭니다. 나와 같은 분야를 공부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머릿속에 새로운 뉴런이 활성화되는 느낌이 들 때, 뭔가 신박한 아이디어를 찾았을 때 미친 듯이 메모하는 그 순간이 저는 행복합니다.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