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기계공학과 김모 교수의 연구실에서 사제폭탄이 터졌다. 문고리에 걸려 있던 봉투 안에 들어있던 것이었다. 언론은 경찰특공대가 출동했다는 소식과 함께 불특정 인물을 노린 테러가 아닐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었다.

해당 사건이 일어났던 건물, 취재진이 몰려와 있다 (사진: 시민 제공)

해당 사건이 일어났던 건물, 취재진이 몰려와 있다 (사진: 시민 제공)

반면, 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오히려 덤덤했다.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였다. “대학원생이 그랬겠지. 교수한테 불만 있을 일이 한 둘인가.” 연세대학교 익명 커뮤니티 ‘세연넷’에서는 대학원생들의 ‘대학원에서는 교수가 절대갑’이라는 폭로가 줄을 잇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많은 학생들이 예상했던 대로 김 교수의 제자인 대학원생이 범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을 저지른 대학원생 김모 씨는 “평소 연구 지도 과정에서 의견 충돌 등이 있을 때 심하게 질책하던 교수에게 반감을 가졌고, 5월 말 논문 작성과 관련해 크게 꾸중을 들은 후 범행을 준비했다”고 동기를 밝혔다. 경찰이 여기에 “야단을 맞은 것일 뿐, 욕설이나 흔히 생각하는 갑질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1)경찰 “연대 폭발물 대학원생, 지도교수 꾸중·논문이견에 범행”(종합),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15/0200000000AKR20170615073451004.HTML고 덧붙였다. 이 사건은 ‘철 없는’ 대학원생이 저지른 일에 불과한 것일까. 물론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교수에게 폭탄을 보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 사건에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존재한다. 사건을 접한 학생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학원생이 그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는 점이다. 대학원생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당연시되고 있는 셈이다.

'에브리타임' 익명 게시판에 사건 관련해 올라온 글과 댓글

‘에브리타임’ 익명 게시판에 사건 관련해 올라온 글과 댓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대학원생들의 처우가 재조명받고 있지만, 개선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다. 워낙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학생인 줄 알아?

고려대 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슬픈 대학원생의 초상’이라는 만화를 연재했다. 이 만화는 실제 대학원생들의 제보와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충격적인 부분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자면, 연구지도를 핑계로 성폭력을 당했다거나, 교수 개인적인 일을 대신 해줘야 했다거나,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디?’ 등의 폭언을 견뎌야 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흔하게 보인다.

“우리가 학생인줄 알아? 착각하지마. 우린 노예야. 인기도 없고, 연구비도 적게 받는, 노예 중에서도 가장 만만한 노예.”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중)

만화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한 장면

만화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한 장면

 김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는 한 대학원생은 “연구비가 원래 학생 개개인에게 나오는데 그걸 김 교수가 관리했다”면서 “개인적으로 공부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2)‘[단독] ‘텀블러 폭탄’ 대학원생, 교수 갑질 원망’,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news/4799553#csidxe0df111bbd98cdf894d5522e605ac4a 이처럼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나오는 연구비를 횡령하거나, 혹은 마음대로 쓰지 못하도록 간섭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지난 4월에는 경희대 의대 교수가 10년 간 석박사 대학원생들에게 지급되는 인건비를 횡령한 혐의로, 같은 학교 치대 교수는 대학원생 명의로 발급된 통장을 자기가 관리하는 방법으로 연구비를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3)‘정부 연구비 횡령, 유용…경희대, 한양대 교수들 수사’,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520917 인천대 교수 6명도 제자들의 연구비를 자신이 관리해 준다며 가로채 검찰에 송치되었다.4)‘제자 몫 연구비 4억 ‘꿀꺽’…인천대 교수 6명 적발,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9895.html 하나하나 열거하는 게 힘들 정도로 구글에 ‘교수 연구비 횡령’이라고 치면 어마어마한 결과가 쏟아져 나온다. 이 사건이 일어난 연세대 역시도 2011년에 교수들의 연구비 횡령이 적발되었다.5)‘연대 교수들, 제자 연구비 횡령·착복’,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86536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 대학들에는 연구비 관리지침이 존재하지만, 교수들이 연구비를 빼돌리는 일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자신들의 몫인 연구비가 교수들 마음대로 사용되는 상황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다. 대학원 생활 내내 함께 해야 할 지도 교수가 “네 연구비를 내가 잘 사용해 주겠다”고 말하는데 쉽게 거부할 수 있는 대학원생은 드물 것이다.

꾸중과 폭언 사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대학원생 10명 중 1명은 지도교수에게 폭언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김 교수와 관련해 한 대학원생은 “김 교수가 의욕이 강해 자기 것만 챙긴다는 말이 돌았다” “교수가 원하는 만큼 성과가 없을 경우 학생들을 압박하다 보니, 연구를 그만두는 학생들도 종종 있었다”고 전했다.6)‘[단독] ‘텀블러 폭탄’ 대학원생, 교수 갑질 원망’,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news/4799553#csidxe0df111bbd98cdf894d5522e605ac4a 여러 기사에서는 김 씨가 교수에게 들은 말들을 ‘꾸중’, ‘질책’등의 단어로 표현하고 있지만, 대학원생에게 지도교수가 주는 압박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여러 언론사에서 내건 기사 제목들, '꾸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여러 언론사에서 내건 기사 제목들, ‘꾸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2016년에는 고려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가 폭언과 성희롱, 비리 등을 이유로 교수의 파면을 요구했는데, 발표를 한 대학원생에게 “초등학생도 이것보다 잘 하겠다”는 폭언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이 발언은 문제가 되었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교수에게 별다른 제재는 가해지지 않았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낸 'A교수 파면요구서'의 일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가 낸 ‘A교수 파면요구서’의 일부

앞서 언급한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1화에는 지도교수의 폭언에 항의했다가 이가 깨질 정도로 폭행당한 대학원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듯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에게 폭언을 듣는 건 흔한 일이며, 이에 항의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다 수면 밖으로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더라도 별 일 아니라거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묻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아서 하는 공부라고 이렇게 참아야 하나요

 연세대학교에서는 학내 고위 관계자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를 꾸려 대학원생의 연구 환경 문제를 개선하고 사건을 수습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이 개선될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대학원 특유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구조 탓도 있겠지만, 대학원생이 사회적 관심을 잘 받지 못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다. 학부생이 폭언과 갑질 등의 피해를 입는다면 사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것이고, 해결될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자기가 좋아서 공부 더 하러 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어떠한 문제나 괴로움을 겪더라도 쉽게 주목 받지 못한다. 교수가 폭언을 하고, 돈을 빼돌리고, 심지어 폭행하더라도 ‘네가 그런 거 다 알면서 좋아서 간 거잖아’라는 시선을 받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 대학원생들의 폭로가 이어졌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그래도 학위 따려면 참아야지’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체념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쉽지 않다.

결국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하는 걸까...........

결국 이런 마음가짐을 가져야만 하는 걸까………..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와 전국 13개 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가 2014년에 전국 2,345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5.5%가 부당 처우를 경험했고, 부당 처우를 경험한 대학원의 65.3%가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급여, 논문 심사, 지도까지 모두 지도 교수가 담당하기 때문에 대학원생은 쉽게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이러한 상황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위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여러 대학에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제정한 상태지만, 대학원 교수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권리장전을 이행하는 것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들이 그나마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인권센터는 대학 중 10곳도 되지 않는다. 인권센터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서울대 인권센터는 대학원생 4명에게 1년 동안 8만 쪽이 넘는 문서를 스캔시킨 교수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다.7)서울대 인권센터 ‘스캔 노예’ 사건에 “징계 사항 아니다”,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20/0200000000AKR20170620183000004.HTML 모두가 대학원생이 겪는 문제의 실태와 원인을 이해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노력이 부재하기에 상황은 더욱 암울해 보인다. 트위터에서는 한 사용자가 ‘교수님이 갑자기 우리(대학원생들) 커피를 다 내려 주시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어제 연대 폭탄 사건 보고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대’라고 올린 트윗이 2만 리트윗을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대학원생의 처우가 개선되려면 교수가 ‘마음을 고쳐 먹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한 대학원생은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2만 리트윗을 기록한 트윗

2만 리트윗을 기록한 트윗

글 및 편집 /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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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찰 “연대 폭발물 대학원생, 지도교수 꾸중·논문이견에 범행”(종합),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15/0200000000AKR20170615073451004.HTML
2. ‘[단독] ‘텀블러 폭탄’ 대학원생, 교수 갑질 원망’,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news/4799553#csidxe0df111bbd98cdf894d5522e605ac4a
3. ‘정부 연구비 횡령, 유용…경희대, 한양대 교수들 수사’,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520917
4. ‘제자 몫 연구비 4억 ‘꿀꺽’…인천대 교수 6명 적발, 한겨레,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89895.html
5. ‘연대 교수들, 제자 연구비 횡령·착복’, 한국대학신문,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86536
6. ‘[단독] ‘텀블러 폭탄’ 대학원생, 교수 갑질 원망’, 노컷뉴스, http://www.nocutnews.co.kr/news/4799553#csidxe0df111bbd98cdf894d5522e605ac4a
7. 서울대 인권센터 ‘스캔 노예’ 사건에 “징계 사항 아니다”, 연합뉴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20/0200000000AKR201706201830000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