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막을 내린 ‘프로듀스101 시즌2’의 투표 열기는 대단했다. 특히 문자 투표의 경우, 생방송 중 던지는 한 표는 7표로 인정이 된다는 사실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투표를 독려했다. 결과적으로 프로듀스101 시즌2 마지막 3주간의 누적 투표수는 2,400만표를 훌쩍 넘겼다. 마지막 방송 다음 날, 각종 커뮤니티는 ‘내가 좋아하던 아이돌이 데뷔한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프로그램의 특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민 프로듀서가 아이돌을 데뷔시킨다’는 컨셉은 시청자에게 ‘내가 참여하면 이 프로그램의 방향이 바뀐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데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특히 ‘국민 프로듀서’라는 명칭은 이 프로그램의 결정권자가 시청자 자신이라는 생각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출처: Mnet '프로듀스101 시즌2' 방송 캡처

출처: Mnet ‘프로듀스101 시즌2′ 방송 캡처

만약 정치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면 어떨까? 지금도 시민은 선거를 통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다. 하지만 프로듀스101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먼저, 선거는 그렇게 자주 치러지지 않는다. 보궐선거라고 해도 2~3년, 보통은 최소 4년은 기다려야 다음 선거가 돌아온다. 또한, 프로듀스101의 국민 프로듀서들은 아이돌이 데뷔했다고 해서 잊히지 않는다. 아이돌은 팬들의 인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표를 준 시민들은 쉽게 간과된다. 일단 당선된 후에는 정치인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지방선거의 경우 주민소환 제도 등이 있기는 한다) 정치인이 시민의 의사에 어긋나는 정책을 추진하고, 공약을 별로 지키지 않는다고 해도 시민은 몇 년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났을 때도, 박근혜에게 실질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이 탄핵 외에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선거가 끝나고 나면 시민은 갑자기 정치에서 분리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사회계약론으로 유명한 정치 철학자 장 자크 루소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은 몇 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선거 때만 자유롭고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간다’고 말한 것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선거철만 되면 흔히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

선거철만 되면 흔히 보이는 정치인들의 모습.

결국 현재의 민주주의 제도가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시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더 다양해져야 한다. 실제로 최근 들어 직접적으로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안이 늘어나고 있다.

먼저, 시민들 스스로 목소리를 모으고, 이를 정치인들에게 전달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시민단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는 지속적으로 정치인들이 공약을 실천하고 있는지 감시하고, 시민들의 의사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는지 검증한다. 지난 5월 말에는 전국 시도지사 공약이행검증평가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시민에게 더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에게 투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 셈이다. 2015년 8월에는 ‘시민 모두가 정치의 주체가 되어 세상을 바꾸는 사회를 꿈꾼다’며 정치 스타트업 ‘와글’이 출범하기도 했다. 와글은 2016년에 시민 정치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을 내놓았다. 이 플랫폼은 시민 누구나 입법제안을 할 수 있고 그 제안 지지자가 1천명이 넘으면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들에게 입법제안을 전달해서 국회의원들의 응답(참여/거부/무응답)을 공개한다. 그 후 제안을 수용한 국회의원과 시민그룹이 입법활동을 함께 해나가도록 실행팀을 구성한다. 실제로 ‘국회톡톡’에서 18,000여명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던 몰카 판매 금지 법안은 진선미, 남인순 의원들과 함께 입법활동을 시작했고, 1,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데이트 폭력법 입법활동은 신보라 의원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몰카 판매와 데이트 폭력 모두 처벌 강화의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던 문제라는 점에서, 시민들의 요구가 정치에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와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화면

‘와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화면

 

정부 차원에서도 시민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정치에 반영하는 방안들을 실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청와대와 함께 지난 5월 27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민 3천명이 모여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대책을 토론하는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토론회에서도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다양한 대책이 나왔고, ‘봄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일시적 가동 중단’, ‘미세먼지 고농도 발령시 차량 2부제 실시’, ‘도심 4대문 안 공해차량 운행 제한’ 등의 주요 의제에 대한 투표가 진행되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토론회에서 시민들이 많은 지지를 보내준 의제에 대해 향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이와 비슷하게, 5월 11일부터 25일까지 시민들이 ‘데모크라시서울(democracyseoul.org)’를 통해 접수해준 제안 중 최종 5건을 선정해 6월 30일까지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의제는 ‘아기가 태어난 가정에 산모와 아기에게 필요한 생활용품 지원 키트를 지원할까요?’, ‘반려동물을 위한 공영 장례 시설이 필요할까요?’, ‘보행 중 흡연 금지와 금연 거리 확대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나 정기적으로 마음 건강을 진단할 수 있는 지원 제도가 필요할까요?’, ‘차량을 소유하지 않은 가구에 교통비 지원 제도가 필요할까요?’다. 간단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 투표 결과가 바로 정책에 반영된다.

서울시 정책 시민투표 홍보 포스터

서울시 정책 시민투표 홍보 포스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을 때, ‘토요일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이 이루어낸 성과’라고 평하던 목소리들이 있었다. 이는 사실이지만, 정치에 내 목소리를 반영하고 싶을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들어야 하거나, 몇 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선거일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 주권자인 국민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다. 프로듀스101이 그랬듯이, 국민이 스스로가 주권자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정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긍정적으로 여기는 정책에 투표하고, 그러한 정책들이 바로 실현된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국가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 기사는 서울시의 온라인 뉴스 ‘내 손안에 서울(http://mediahub.seoul.go.kr)’에도 함께 실립니다.

‘내 손안에 서울’은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공유하는 소통 공간으로, 시민 누구나 서울시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글, 편집/ 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