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새벽, 조그마한 도시에서 의무소방으로 군복무 중이었던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 많은 야간 구급출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복통, 비뇨계 이상, 주취자…. 출동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산 너머로 햇빛이 스며들었다. 햇빛 사이로 잠은 쏟아지는데 그 날의 일곱 번째 출동은 잔뜩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계시다가 우리가 단잠을 깨우자 짜증을 부리는 할아버지를 상대하는 일이었다. 나는 잠과 짜증이 뒤섞인 채 빨리 들어갈 수 있기만을 바랐고, 그래서 우리 대신 전남으로 지원출동을 나간다는 다른 센터의 구급 무전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그 구급차는 한동안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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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신 지원출동을 나갔던 구급차의 목적지는 팽목항이었다. 3년 전 4월 16일, 배 한 채가 통째로 침몰하는데 국가가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안의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두는 광경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격해야했던 초유의 재난이 벌어진 날, 나는 5분 차이로 그 날의 그 현장에 가지 않았다. 우리가 5분만 더 빨리 움직였다면 그 술 취한 할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다드리자마자 팽목항으로 떠났을 것이다. 그래서 4월 16일은 나의 삶에 깊숙이 박혀있는 가시다. 그들을 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아픔을 바로 옆에서 공유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뉴스만을 바라봐야했던 나의 가시.

그런데 내가 그 날 그곳으로 떠났다고 해서 세월호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었을까. 정상적으로 구조 활동이 이루어졌다면 나는 구조된 사람들의 응급처치를 도왔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4년 4월 16일, 구조의 주체가 되어야 할 해경과 소방은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구조에 임하지 않았다. 세월호 내 승객들은 탈출 방송을 듣지 못한 채 천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야 했다. 그리고 진실을 위한 3년간의 싸움 끝에야 우리는 그 이유를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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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는 의전이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식”을 가리키는 말로 기재되어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의전은 ‘손님이나 고위직을 대우하는 예법’처럼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대에서부터 사기업까지, 한국사회에서 의전은 ‘나보다 윗사람’을 대하는 일종의 원칙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윗사람(혹은 나보다 높여야 할 손님)을 모시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든 간에 의전은 철저히 따라야 할 규범이 된다.

소방 또한 예외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출동하던 소방헬기에는 전남 도지사와 고위공무원들이 타야하니 전남도청으로 돌아가라는 무전이 떨어졌고, 전남도지사 전속 사진촬영 공무원을 포함한 이들을 태운 헬기는 구조 활동에 참여하지 못한 채 팽목항 상공을 빙빙 돌았다.1)연합뉴스. 2014-04-30. “<세월호참사> 사고당일 ‘인명구조’ 소방헬기에 전남지사 탑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886721
2)광주매일신문. 2014-05-01. “朴지사, 재난지원위해 헬기 탔다더니…사진촬영 공무원도 동승 ‘긴급 홍보용?’”.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398943417318752005
3)경향신문. 2014-05-13. “라면 논란 제공 박준영 전남지사 탄 헬기, 해경 헬기와 충돌할 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131604301&code=940100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진선미 의원은 소방119상황실이 중앙부처 고위 관계자들의 의전을 챙기느라 해경 수색 활동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4)뉴시스. 2014-05-14. “[종합]국회, 첫 세월호 현안보고…부실대응·답변에 “사표내라””.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14_0012917251&cID=10201&pID=10200
현장에 도착한 119소방헬기가 의전 때문에 자리를 비운 해경담당자 때문에 대기 상태에 머무르기도 했다.5)민중의소리. 2014-07-02. “구조대원 탑승한 119 헬기 마냥 대기…해경담당자 ‘의전’ 때문에 자리비워”.
http://www.vop.co.kr/A000007692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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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군복무를 했던 자그마한 소방서에서도 의전의 구덩이는 깊었다. 외부의 ‘높은 분’이 올 때만 의전을 챙기는 건 아니다. 의전은 일상적이다. 최근 전주MBC뉴스에서 남원경찰서를 취재하는 중에 서장의 ‘1호차’를 챙기는 의전 때문에 촬영을 중단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내용을 보도한 바 있다.6)전주MBC뉴스 페이스북. 2017-06-21. “취재 현장에서 일어난 황당한 일.avi”.
www.facebook.com/jmbcnews/videos/807459576070923/
그런데 이러한 서장에 대한 의전은 소방서도 마찬가지로 챙긴다. 소방서나 경찰서장은 자차 이외에 관서에서 지급되는 공무용 차량이 있다. 이걸 1호차라고 부른다. 그리고 1호차에는 서장과 관련된 온갖 의전이 달라붙어 있다.
대표적인 의전은 위의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서장 외출 시 차를 입구에 대놓는 것이다. 우리 서에서는 서장이 비서실에 외출 의사를 밝히면 비서실에선 관내 모든 부서에 전화를 돌려 외출 사실을 알렸다. 그러면 다른 부서에선 인사를 하고 1호차를 관리하는 부서(보통 출동대기인력들이 있는 119안전센터)는 차를 입구에 대기시켜둔 채 기다린다. 센터장은 마중 나와 서장을 인사와 함께 보낸다.

이건 차량이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다. 보통 서장 1호차와 개인차 차량번호를 외운 의무소방이 근무 자리에 앉아 서장이 외출을 나갈 때부터 들어올 때까지 눈 빠져라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식사시간에 서장이 외출했으면 의무소방들이 교대로 밥을 먹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창밖을 보고 있던 사람은 서장 차가 보이면 바로 “서장님 1호차 들어오십니다!”를 외치고 모든 부서에 전화로 서장 귀서를 알려야한다. 그리고 센터장은 바로 입구로 달려 나가 서장이 내리기 전에 차 문을 열어준다. 이러한 ‘외출 의전’에 비 올 때는 우산이, 눈 올 때는 가끔 카펫이 추가된다. 평상시엔 출동인력들이 1호차를 세차하고 관리한다. 먼지는 용납할 수 없다. 차량 관리까지가 서장을 위한 의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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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의 시계 의전

서장에게도 이러한 의전이 붙으니 ‘더 높으신 분들’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의전이 일상적으로 붙을 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황교안 총리 시계의전 논란’이나 ‘김무성 의원 노룩패스’ 같은 일들은 개인 인성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의전은 일상에서 체계화되는 과정을 거쳐 견고한 시스템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윗사람은 상전으로 대우받는 달콤함에 젖어, 아랫사람은 승진과 안정된 일자리를 위해 부당함과 비효율성에 눈감는다.

너무도 깔끔한 그의 노룩패스

너무도 깔끔한 그의 노룩패스

의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특히 외교관계에 있어서는 의전이 필수적이다. 사람은 대접받으면 기분이 좋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의전이 긍정적 영향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전이 불필요한 형식이 되어 비효율성을 야기하는 순간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이들이 의전 때문에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세월호 때도 그랬다. 그 순간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바다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어야 할 몇몇은 높은 분들을 위한 의전에 힘을 쏟고 있었다. 혹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힘을 쏟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그들에게 중요한 건 국민의 안전이 아니었으니까.

나의 가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평생 품고 가야할 기억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게도 세월호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숙제다. 대형사고는 세월호 이후에도 반복되었고 문제에 책임이 있는 모두가 처벌받지도 않았으며 사건의 내막이 완벽히 밝혀지지도 않았다. 고통은 여전히 유족들, 감정을 공유하는 국민들, 그리고 나와 함께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걸어가고 있다. 힘겨워도 걸어야 한다고 서로를 다독이며 다시 일어나 걷는다. 의전 문제의 해결은 그 중 하나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다시는 세월호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우리의 문제다.

글/ 용뭉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연합뉴스. 2014-04-30. “<세월호참사> 사고당일 ‘인명구조’ 소방헬기에 전남지사 탑승”.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886721
2. 광주매일신문. 2014-05-01. “朴지사, 재난지원위해 헬기 탔다더니…사진촬영 공무원도 동승 ‘긴급 홍보용?’”.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398943417318752005
3. 경향신문. 2014-05-13. “라면 논란 제공 박준영 전남지사 탄 헬기, 해경 헬기와 충돌할 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131604301&code=940100
4. 뉴시스. 2014-05-14. “[종합]국회, 첫 세월호 현안보고…부실대응·답변에 “사표내라””.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514_0012917251&cID=10201&pID=10200
5. 민중의소리. 2014-07-02. “구조대원 탑승한 119 헬기 마냥 대기…해경담당자 ‘의전’ 때문에 자리비워”.
http://www.vop.co.kr/A00000769258.html
6. 전주MBC뉴스 페이스북. 2017-06-21. “취재 현장에서 일어난 황당한 일.avi”.
www.facebook.com/jmbcnews/videos/80745957607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