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연희관 015B에도 실린 글입니다.

(편집자주 : <난장이, 히치하이커,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 – 모두가 행복한 도시를 찾아서 – (1) >편에 이어집니다.)

런던과 파리 – ‘다른도시는 가능하다

 

서구의 대도시들은 한국보다 먼저 도시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경험했고, 그 해결책으로서 사회적 경제가 대두하였다. 그중 하나가 런던의 해크니 개발협동조합처럼 주민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이다. 파리의 경우는 공공, 민간의 협력으로 세워진 기관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시장경제와는 다른 새로운 경제가 ‘더 나은 도시’를 가능케 함을 알 수 있다.

영국 런던의 해크니 개발협동조합(HCD)

과거 영국 런던 북부의 해크니는 저소득층과 이민자의 주거지로 낙후된 곳이었다. ‘런던 내 강도 발생률 1위’, ‘영국에서 가장 살기 나쁜 곳 1위’ 등 불명예를 얻었을 정도다. 이후 이곳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 덕분에 점차 환경이 개선되었지만, 이번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후 주민들이 설립한 해크니개발협동조합(HCD)은 지역이 하나가 되어 젠트리피케이션을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 우선 광장 옆에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컬처하우스를 짓고 그들이 중심이 되어 주민 모두를 위한 축제를 기획하게 했다. 협동조합의 자금으로 임대료 문제를 겪는 재즈클럽이나 예술가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신, 그들의 재능을 공공을 위해 쓰게 한 것이다. 실험은 성공했고, 광장은 임대료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는 활기찬 축제의 공간이 되어 지역의 단합에 기여하고 있다.1)조선일보, 2016.01.26. 「[더 나은 미래] 런던 대표 슬럼가였던 ‘해크니’…10년간 가장 낮은 범죄율 유지한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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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더 나은 미래] 런던 대표 슬럼가였던 ‘해크니’… 10년간 가장 낮은 범죄율 유지한 비결은?

모두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질레트 광장.

모두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질레트 광장. 출처 : 오마이뉴스, 통후추 한 알 주고 건물 100년 임대…정말?

또 HCD는 지역경제를 위해 임대 사업을 하고 있다. 지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만한 사업자와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계약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민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기획자, 지적장애인 전문 변호사 등이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 HCD가 임대업을 위한 건물을 마련했던 방법이 자산화 전략이다. 자금을 모아 토지나 건물을 매입하거나 장기임대로 사실상 소유와 다름없게 운영하는 것이다. 소유권을 갖고 있으면 젠트리피케이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전쟁 때 폭격을 맞은 후 방치된 건물을 구청으로부터 100년 동안 무상으로 임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예산 투입 없이 지역을 개발할 수 있기에 구청 입장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임대사업과 자산화 전략이 HCD가 1979년부터 30년 이상 유지될 수 있었던 기반이다.2)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프랑스 파리의 비탈 카르티에(Vital’ Quartier)

비탈 카르티에의 지역주민을 위한 식료품 상점, 출처 : 조선비즈, [高임대료의 역습]③ 佛 보호상권 지정하고, 英정부는 직접 개입…국내 지자체도 잰걸음

파리는 서울보다 먼저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했다. 1970년대까지 도시 발전을 위해 대규모 상가의 입주를 장려했지만, 그 결과로 소규모 상점들이 사라지면서 골목상권이 위기를 맞았다. 이에 골목상인들이 앞장서 상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것이 비탈 카르티에(Vital’ Quartier; 생기 있는 거리)’.

시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고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영국과 유사했다. 민관이 함께 출자해서 세운 회사인 ‘세마에스트(semaest)’는 시 정부로부터 총 11개의 사업지구에 있는 건물 1층 상점과 토지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았다. 이 토지와 건물은 세마에스트의 심사를 통과한 영세 상인들에게 임대된다. 심사의 기준은 합리적이다. 가진 자본금의 양에 상관없이, 경험과 능력, 그리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는 지만으로 판단된다.3)MNB, 2016.07.18. 「[2016 도시난민] 파리·몬트리올에서 배운다」

이후 세마에스트는 2004년 이후 160여 개의 점포를 구입하여 지금까지 145곳의 지역 밀착형 가게로 이루어진 골목상권을 형성했다. 2004년 첫 번째 비탈 카르티에 사업에 5,750만 유로의 예산을 투여한 파리 시는 사업이 성공하자 2008년에 5개 구역을 추가로 선정하고 3,000만 유로의 예산을 투입했다.4)오마이뉴스, 2011.05.22. 「권리금 한 푼 없이 개업,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행복한 도시를 향한 서울의 실험

마을 경제의 시행착오

한국에서도 사회적 경제 열풍이 불면서 다양한 조직들이 생겨났지만, 현재는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마주한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새로운 경제학의 현실 적용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마을공동체는 마을주민을 위해, 마을주민에 의해 지탱되는 공동체다. 마을 내 관계망을 통해 만들어지며, 수익성보다 마을 공동의 필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업과 다르다. 그런데 최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마을공동체의 존립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역설적인 것은,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될수록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험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가게에 자주 갈수록 임대료도 오르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함께 키워가는 상생과 협동의 가치가 부동산 가치도 덩달아 올려주는 것이다. 마을기업이 일반 기업과 목적이 다르다고는 하나, 임대료를 내는 세입자라는 처지는 같다. 그래서 임대료의 상승은 마을공동체를 만든 주역들을 위기에 빠뜨린다. 성공한 마을공동체의 대표 격으로 불리는 성미산마을도 예외가 아니다. 거주민으로 이루어진 협동조합, 마을기업, 대안 교육, 공동육아, 주민커뮤니티 등 다양한 활동들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20년 넘게 공동체를 꾸려오면서 성미산마을의 공동자산은 100억 원이 넘지만, 세입자들로 구성된 마을공동체는 마을 공간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지 않다. 이미 여러 가게가 임대료를 못 이겨 문을 닫은 상황이다.5)경향신문 기획취재팀, 시대의 창, 2016, 『이 도시에 살고 싶다』

폐업 위기에 놓인 성미산마을의 한 카페, 출처 : 한국조경, [포토뉴스] 마을만들기 성장판 닫는 ‘젠트리피케이션’

정원오 현 성동구청장은 마을만들기 사업이 오히려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왔다고 비판한다. “리모델링한 주택이 풍기는 미묘하고도 따뜻한 매력, 낙후했던 거리가 산뜻하게 변하면서 느껴지는 신선함 때문에 많은 외부인이 재생된 구도심과 마을로 몰려왔고, 그 결과 원주민들이 살기 버거울 정도로 지역의 집값, 건물값,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도시 재생, 마을 만들기 사업의 의도하지 않은 역설이었다.”6)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성동구의 실험

분명 마을 경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시험대 앞에서 흔들리고 있지만, 그 실험이 실패했다고 단정 짓기에는 이르다. 마을 경제의 역사가 아직은 짧은 탓에 급격한 상업화와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시작된 협동조합에게 HCD나 세마에스트의 사례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 프랑스보다 우리가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답으로서 성동구청을 주목해볼 만하다. 성동구는 지역 상권 보호를 위해 구청이 직접 나선다. HCD와 세마에스트 역시 시 정부의 지원 위에 가능했다는 점에서, 공공 부문의 노력은 긍정적인 신호다.

성동구청이 추진하는 안심 상가 사업은 구청이 용지를 확보한 뒤 지역의 소상공인들에게 소유권을 이전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HCD와 같은 전략이나, 차이점은 공공이 직접 재정을 투입하는 ‘공공 자산화 전략’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재정 등의 문제로 민간 조직이 HCD처럼 부동산을 매입/임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15년 하반기에만 약 120평을 확보한 상황이고, 매년 5백 평 확보를 목표로 한다. 장기적으로는 프랑스의 세마에스트와 같은 민관 합자회사의 설립을 검토하는 상황이다.7)정원오, 같은 책

안심 상가의 용지 확보는 기업 사회공헌을 유도하는 동시에 기업에도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2015년 말 성동구에 들어온 관광호텔에 법 규정에 따라 추가 용적률8)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전체면적의 비율로, 용적률의 증가는 건물 규모를 더 크게 지을 수 있다는 허가를 말한다. (출처 : 매경시사용어사전) 을 제공하는 대신 그중 절반을 성동구청에 기부하게끔 한 것이다.9)서울시에 용적률 105% 증가를 요청했고, <관광 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서울시가 이를 승인했다. 이후 증가한 용적률 105% 중 41.5%를 구청이 기부받는 형식으로 부지를 확보했다. 결과적으로 구청은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성동구는 이를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기초자치단체가 따를 수 있는 선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후 성동구의 정책을 모범사례로 삼아 마포구, 해방촌 등 여러 지역이 임차인의 보호를 강화하는 개입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책들은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구청장의 정책 의지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는 물론, 확보한 공간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 앞으로 지속적인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중요해 보인다.

출처 : 한국조경, [포토뉴스] 마을만들기 성장판 닫는 ‘젠트리피케이션’

출처 : 전국매일신문, 성동구, 젠트리피케이션을 넘어 상생도시로 박차

나가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는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10)프레시안, 2008.12.05. 「조세희 “행복한가? 당신은 ‘도둑’ 아니면 ‘바보’요”」 도둑을 도둑으로, 바보를 바보로 만드는 사회에서, 학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현실의 모순에 침묵하는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지금 시도되고 있는 실험들에 주목해야 한다. 남들이 할 수 없다고 했던 일을 밀고 나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런던과 파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굴뚝 위에 올라가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던 아버지 난장이처럼 말이다. 난쏘공이 더는 읽히지 않으면 좋겠다던 작가의 바람과 달리, 지난 2007년에 소설은 기념비적인 100만 부 발간을 달성했다. 그리 머지 않은 미래, 난쏘공이 더는 읽히지 않는 사회를 상상해본다.

편집/ 싱두

글/ transver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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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2016.01.26. 「[더 나은 미래] 런던 대표 슬럼가였던 ‘해크니’…10년간 가장 낮은 범죄율 유지한 비결은?」
2, 6. 정원오, 후마니타스, 2016, 『도시의 역설, 젠트리피케이션』
3. MNB, 2016.07.18. 「[2016 도시난민] 파리·몬트리올에서 배운다」
4. 오마이뉴스, 2011.05.22. 「권리금 한 푼 없이 개업, 비법을 알려드립니다」
5. 경향신문 기획취재팀, 시대의 창, 2016, 『이 도시에 살고 싶다』
7. 정원오, 같은 책
8. 용적률은 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의 전체면적의 비율로, 용적률의 증가는 건물 규모를 더 크게 지을 수 있다는 허가를 말한다. (출처 : 매경시사용어사전)
9. 서울시에 용적률 105% 증가를 요청했고, <관광 숙박 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서울시가 이를 승인했다. 이후 증가한 용적률 105% 중 41.5%를 구청이 기부받는 형식으로 부지를 확보했다.
10. 프레시안, 2008.12.05. 「조세희 “행복한가? 당신은 ‘도둑’ 아니면 ‘바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