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jalhyuntak
‘감수성’이라는 말이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의 깊이에서 ‘인권’ 뒤에 붙여 연대나 공감을 뜻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김현탁(24)은 영남에서 호남으로 산맥 하나를 건너 온 교류학생이자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하는 ‘포도알 인연맺기 학교’의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다. 한 번 집중해서 읽은 소설이나 영화 주인공의 감정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때도 있을 만큼 감수성이 풍부한 그. 눈물도 많고 화도 많은 삶을 살아온 그는 인터뷰 내내 ‘감동받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전라도의 무엇이 영남사람을 감동시킨 것일까?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이점 (이하 ‘이’): 쉴 땐 뭐해?
김현탁 (이하 ‘탁’) : 아무 것도 안해.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가… 혼자 이런 저런 생각 하다가 잠이 와. 그럼 자고. 눈 떠지면 또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물 한모금 하고. 잠이 오면 다시 자고. 그래서 쉬는 날엔 내 방에서 지내는데, 내 방 안에 화장실도 있거든. 그래서 방 밖으로 잘 안나와. 물도 다 미리 떠놓고. 수행은 아닌데, 움직이기 귀찮아하고 그래서.

이: 이런저런 생각 하면 무슨 생각 해?
(본 인터뷰는 탄핵이 이뤄지기 전에 진행되었습니다)
탁: 박근혜 퇴진… 같은 큰 생각은 자주 안하고, 내가 요새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도 하고. 활동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는 것 같아. 거의.

내가 운동하는 거 좋아하긴 하는데 운동할만한 사람들을 못 찾아서… 외지잖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런 건 좀 아쉽다라. 원래는 축구를 한 게임 뛰고 쉬었는데. 그런 취미할만한 사람이 없으니까. 특히나 내가 겨울에 추운 걸 싫어해서 겨울 같은 경우엔 진짜 안나가. 여름에는 그나마 쉴 때 자전거도 타고 그랬는데 겨울에는 나가기가 너무 싫더라.

이: 축구 보는 것도 좋아하겠네?
탁: 응. 누워서 유투브로 축구도 자주 봐.

이: 전북 현대는 어떻게 생각해?
탁: 전북현대는 강등 되어야지!!!!!!!!!심판을 매수 했잖아!!!!!!!!! 뭐, 최강희 감독이 책임지네 마네 하겠다가 그냥 승점 몇 점 까이고 끝났어. 저건 아닌데, 정말 안타까운 대처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이: 최애 팀이 있어?
탁: 나 K리그를 잘 안봐서. 농구도 MBA 보고, 축구도 해외축구, 주로 유럽축구 위주로 봐. 흔히들 언론에서 국내 농구나 축구도 잘 보면 재밌다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런 말을 전혀 믿지 않아. 질 자체가 달라. 그러믄요.

‘봉사’와 ‘복지’

이: 요새는 어떻게 지내?
탁: 평화캠프라는 장애 어린이와 비장애 어린이가 함께 하는 인연 맺기 학교 활동 준비들을 하지. 전주에서는 장애 어린이와 함께 하는 인연 맺기 학교만 있고, 다른 지역은 장애 어린이, 비 장애 어린이가 함께 해. 보통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을 활동 참여자라고 부르는데, 활동 참여자가 거의 장애 어린이이고 장애 어린이와 비 장애 어린이 그리고 자원 활동가가 함께 하고 있어. 그런 식으로 가는 이유는 평화캠프라는 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는 이유 자체가 장애인이 잘 사는 세상, 장애인 스스로가 잘 사는 세상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장애인과 비 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이런 자원활동을 한다고 이야기해.

OLYMPUS DIGITAL CAMERA

이: 이런 복지에 관심이 많았어?
탁: 복지에는 진짜 1도 관심이 없었어. 열 아홉 살, 스무 살 때 수능을 마치고 봉사활동을 되게 많이 했어. ‘시설’에 가서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수 밖에 없는, 누워 있을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들, 그런 사람들에게 봉사활동을 했지. 평화 캠프에서는 봉사활동이라는 말을 잘 안 써. 자원 활동이라는 말만 써. 봉사활동이라는 말은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서 어려운 삶을 살고 있고-이건 현실적으로 맞는 말이야- 봉사라는 두 음절에 들어있는 말자체가 내가 선택받은 사람이고 시혜적인 입장에서 이 사람들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평화 캠프에서의 자원활동은 이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닌, 내가 이 사람과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활동을 하는 거다, 라는 의미에서 자원 활동이라는 말을 써. 뭐 자원활동이 표현적으로 부족한 점이 없는 건 아냐. 하지만 평화캠프에서도 자원 활동보다 뛰어난 단어를 찾지 못해서 자원 활동이라는 말을 쓰고 있고.

처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되게 충격이었어. 내가 무슨 말을 들었냐면, ‘사지가 있고 정신적 장애가 없이 태어났으면 장애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 아까도 말했지만 내가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환멸을 느꼈던 게 ‘내가 이 사람들을 도와줘야만 살 수 있는 걸까?’, ‘함께 살 수는 없는 걸까?’하는 고민이 많았어. 항상 뭔가 부족하지 않나? 내가 이걸 해서, 왜, 뭘 할 건데? 이런 의문이 들었었지. 그런데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을 줬던 게 평화캠프 자원 활동이었던 것 같아. 이런 사람들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못사는 게 아니라 지금 현 사회가 못받쳐주는 거지. 장애인도 우리와 같이 일주일에 한 번씩 영화도 볼 수 있고, 그 어떤 곳이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도 청주건 서울이건 대구, 경북이건 마음 먹은 대로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지금 24시간도 안되서 미국도 가고 일본도 가잖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비행기를 탈 엄두도 못내고 심지어 호남에서 영남으로 넘어갈 생각도 못한다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게 정말 맞는가? ‘시설’의 장애인을 만나서 도와주는 것만 했을 때는 도와주고 끝이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평화캠프는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이런 사람들을 보지만 이걸로 인해서 이런 사람들의 삶 자체가 바뀌는 구나. 이런 사람들의 삶이 바뀌는 걸 보면서 내 삶도 바뀌었어.

이: 봉사활동을 왜 그렇게 많이 했어? 시간이 남아서?
탁: 시간도 남았고. 대학생이 되면서 그런 의문과 의무감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아. 비장애인, 그리고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살아오면서. 우리 집 자체도 솔직히 평균적으로 잘 사는 편이거든. 이런 걸 바꿔야하지 않나? 라고 생각해서 봉사활동을 많이 했지.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었고. 단지 내가 이 사람을 도와준다라는 것만 아니라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꿈꾸고 그런거에서 함께 일조하고 있다는 활동에 있어서 응원도 받았고 힘도 얻었고. 내가 이런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동기부여를 주변에서 많이 줬어.

이: 전주에 와서 평화캠프 일을 하게 된거야, 아니면 원래 대구에 있을 때부터 한거야?
탁: 대구에 있을 때부터 평화캠프 활동을 했어. 그런데 전주에서 이런 평화캠프 활동을 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고 니즈들이 있어서 보답해줄 사람이 없다, 네가 해보지 않겠느냐 라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되게 기뻤다? 의지도 있어서 기뻤고. 내가 대구에서 평화캠프를 만날 수 있어서 되게 감사 했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어떤 봉사활동만 하면서 부족했던 생각들을 어느 누구도 채워주지 못한 걸 평화캠프가 채워줬으니까. 내가 채워지고 나서 너무 감사하고 기뻤지. 내가 어쩌다 이런 단체와 사람들을 만나서 이런 이론과 사상들을 만나게 되었구나. 이런 걸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들이 더 알 수 있을까 라는 걸 고민하던 찰나에 그런 기회가 온거지. 듣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었어. 이런 기회를 내가 주최해서 다른 청년들을 만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평화캠프의 의지를 밝히는 역할을 내가 제안받았다는게 너무 감사했지. 당연히 내가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고.

OLYMPUS DIGITAL CAMERA

이: 그럼 전주에 오게 된 게 평화캠프 때문이라는 거네?
탁: 그렇지. 그리고 그런 것들이 어떤 새로운 능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것들이 아니었고, 내 직업적으로 그런 역할들을 열심히 해내면 다른 활동도 따라오는 사항들이었던 거라 거리낌이라던가 그런 게 없었어.

정확히는 평화캠프 전주지부의 포도알 인연맺기 학교의 ‘상근자’가 없었던 거야. 사실 그래서 문제점들도 없지 않아 있었어. 문제점이라고 하면 동아리화됐다는 거? 아까 말했다 시피 평화캠프는 장애 비장애 상관 없이, 살 수 있는 삶을 꿈 꾸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가 슬로건이야. 그런거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지. 사실 우리 세상에 부합되지 못하는 존재들이 장애인 말고도 많잖아. 성소수자라든가, 되게 많은데. 그런 감수성에 대한 이해가 없는 포도알 인연맺기 학교가 계속되어 오다가 그러면서 지부가 생기고, 나같은 상근자-내 직책이 코디네이터인데-가 생기면,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언도 해주고 그런 감수성을 넓혀나가고 바꿔나가는 사람이 생기는 거지.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 온 거고. 사실 장애인 감수성 하나로 보면 포도알 인연맺기 학교의 선생님들이 굉장히 뛰어나. 잘 하고. 면대면으로 대할 떄 굉장히 뛰어나지만, 다른 면에서 평화캠프의 거시적인 목표로 보자면 부족한 면들이 없지 않아 있었던거지. 그런 점들을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채워줄 필요가 있었고, 그런 역할들을 할 사람들을 필요했기 때문에 내가 흔쾌히 전주로 와서 활동하겠다! 한거야.

다른 공간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 같은 공간에서 나와 다른 사람

이: 전주에 온지 얼마나 됐더라?
탁: 이제 일년 조금 덜 됐어. 10개월?

이: 평소에 ‘사람은 역시 전라도에서 살아야한다’라는 말을 자주 하잖아, 왜 그렇게 말해?
탁: 일단 밥이 맛있엌ㅋㅋㅋㅋㅋㅋㅋㅋ 일단 밥이 굉장히 맛있잖아. 경상도에 살 때는 가리는 음식이 없어서 맛있는 건지, 맛 없는 것도 이정도면 뭐 괜찮네 그러면서 잘 먹었어. 그런데 전주에 와서 그냥 아무 음식점에 갔는데 너무 맛있는 거야. 그러고 전주에서 한 두 달 살다가 대구나 안동에 가서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는데 평소에 대구에 살 때는 되게 별 생각 없이 이정도면 괜찮네 하고 먹었던 음식점들이 다 불만들이 생기는거지. 아 왜 이렇게 맛이 없지? 반찬이 왜이렇게 적지? 그런 생각들이 들어서. 일단 밥이 정말 좋아.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들, 어쨌든 전라도와 경상도는 정치색이라는 것들이 많이 다르잖아. 분위기가. 나한테는 전라도쪽이 나은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전주와서 활동해보니까 어때?
탁: 일단 기뻐. 기쁘다라는 건, 내가 고향이 경북이고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보수 꼴통’이야. 일베에서 ‘빨갱이들’을 찾고 광주가 ‘빨갱이’인 줄 아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오다가 전주에 와서 청년들을 만나니까 너무 기쁜거야! (경상도에서는) 나랑 비슷한 사람이 적거든.

이: 안동1)김현탁의 고향은 안동이다이라 적은 거 아냐?
탁: 비교적 적지. 절대적으로도 적지만… 비교하자면 더욱 그렇다는 거야.

이: 너무 전라도 찬양 같은 데 ㅋㅋㅋㅋㅋ
탁: 내가 느낀거야. 그래서 되게 좋았어. 기쁘고. 나의 어떤 사상과 생각을 이야기 했을 때 대구-경북에서는 흔히 ‘야, 너 이새끼 빨갱이 된 거 아니냐’, ‘너 요새 데모도 하러 다니더니 그런 사람들 만나가지고 그런 거다’, 이따위 이야기 듣다가 여기 와서는 최소한 좋은 일 한다, 당연하지, 그런 일 해야지, 그런 이야기 들으니까 되게 감동 받았어. 사실 난 그럴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고. 대구에서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듣다가, 여기와서 좋은 일 한다 한마디만 들어도 가슴이 막 콩닥콩닥 뛰어. ‘그래, 내가 정말 여기 와서 인정 받는구나’, ‘좋은 일 한다’. 스스로 부모님한테도 좋은 일 한다, 좋은 일 한다 이야기만 했지, 여기서는 정말 좋은 일이라는 게 드러나니까.

이: 평소에 전라도나 전주에 대해 가졌던 생각이 좀 있었어?
탁: 사실 이런 이야기 경상도 사람한테 물어보면 ‘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어머니께서 전라도 욕을 그렇게 하셨고, 전라도 사람들 믿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 라고 이야기할 것처럼 보이지만 다행히 그런 말씀을 별로 안하셨어. 다만 그런 이야기들을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더 느꼈지. 내가 지금 전주에 와서 활동을 하잖아. 내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친구들은 ‘야 니 왜 대구에서 안하나, 대구에서 안하고. 하필 전라도에 가서 활동을 하나’, 이런 말을 해. ‘야 걔네들 빨갱이다’, ‘가서 김정은 개새끼 시켜봐라’, 이런 말도.

이: 나 열 번도 더 외칠 수 있어. (웃음)
탁: 나도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지. 치졸하기도 하고, 내가 뭔데 네 말 들어가면서 내 운동의 정당성을 너한테 얻기 싫다, 이런 거지. 내가 하면 정당성이 부여되는 거지 너한테 인정받으려고 내가 운동 하는 거 아니니까.

OLYMPUS DIGITAL CAMERA

이: 전주에 실제로 와보니까 어때? 와보니 첫 느낌!
탁: 사실 별 느낌 없었어. 도시가 다 똑같지 뭐… 한국 해봐야 땅덩어리 크지도 않는데, 그런 느낌이었어.

이: 지금은 전주 어떤데?
탁: 지금은 아주 좋아. 아주 만족스럽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 활동하기 위해서 전주에 온 건데, 활동하는 것에 대한 반응들이 내가 살던 경상도와 여기 전주하고는 많이 다르더라고.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 도시 자체도 맘에 들어. 서울같이 되게 큰 도시를 안좋아하거든. 사람이 너무 많고 정신 없어해서 또 아주 안동만큼 작은 것도 아니고. 적당하지. 대구, 전주… 이런 곳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해.

이: 전주에서 제일 불편한거 없어?
탁: 없는 건 아니지. 내 가족들은 대부분 안동이나 대구, 그러니까 경북에 살거든. 가족행사, 명절 이럴 때 고향에 가려고 하면 너무 먼 거야. 친구들도 다 그 쪽에 있으니까 좋은 일 있어서 모인다, 힘든 일 있어서 모인다고 할 때 가지 못하거나 하는 일이 아쉬울 때도 있지, 솔직히. 그런 점들이 불편해.

대구만 해도 교통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아. 그런데 고향인 안동으로 가야할 때 전주엔 직행이 없어. 그렇게 크지 않은 시니까 이해는 해. 그래서 대구까지 가서 환승을 해서 다시 버스를 타고 안동에 가는데 그렇게 하면 다섯시간정도 걸리더라고. 그런데 지리적인 위치는 굉장히 좋은 것 같아. 여기서 부산을 가도 세시간, 서울을 가도 세시간. 강원도를 제외하고. 그 어느 곳이든 적당히 중간에 있어서 그건 참 좋은 것같아.

전주 오고 나서 보니까 지방 사람들은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하잖아. 그런데 나는 이 정도면 평생 살만 한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 그럼 넌 앞으로도 여기 있을거야?
탁: 그럼. 여기에서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계속 있을 생각이 있어.

공감에서 나오는 것들

이: 촛불집회 가봤어?
탁: 응.

이: 촛불집회, 아니면 집회 언제가 처음이야?
탁: 직접 나간 건 내가 군대 다녀와서였나, 한진 중공업에서 고공농성 하셨던 김진숙씨라는 분이 계셔. 그분이 대구에 오셔서 집회였나 그런 걸 하셨는데 거기 가서 이야기 듣고 집회 했던 게 처음이였던 것 같아. 그때는 큰 집회는 잘 안갔어. 내가 저길 가서 뭘 하겠어. 하는 생각을 했지.

이: 그럼 큰 집회는 언제가 처음인데?
탁: 내가 군 복무를 하고 13년 말에 전역을 하고 14년에 복학을 하고 평화캠프, 알바노조, 노동당, 이런 활동을 하는 분들을 만났는데 그분들 만나서 집회도 가고. 그렇게 시작했던 것같아.

이: 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
탁: 내가 저기 나가서 뭐하냐, 내가 무슨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 청도에 삼평리라는 곳이 있는데 청도랑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서면서 그거에 반대 투쟁을 하는데 내가 우연찮게 갔었어. 그런데 정말 다들 좋아해주시고 날 보면서 나한테 ‘힘이 된다, 고맙네’ 말씀하시는데 별거 아닌거 같아도 이런 자리에 한명이라도 단 한명이라도 더 오는데 투쟁하고 계신 분들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는 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는 집회 이런 건 꼭 참여하려고 해.

OLYMPUS DIGITAL CAMERA

이: 대통령에 따라서 삶이 바뀔 수 있을까?
탁: 삶이 바뀔 수도 있긴 하겠지만 대통령이 정말 많이 바뀌어야겠지. 대통령에 따라서 삶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 흔히 대통령이라고, 대통령이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새누리당2)인터뷰 당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교체 이전이나 민주당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둘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다른 삶을 이야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오면 좋겠지.

이: 언제부터 정치적 성향을 생각하게 되었어?
탁: 지금까지 확고한 정치적인 성격 말한거야? 그럼 한 이 삼 년정도 된 거 같아.

이: 생각보다 얼마 안됐네.
탁: 응. 그 전까지는 흔한 경상도인, 아니다, 흔한 전라도 사람 정도 였던 것 같아(웃음) 경상도의 정치색깔보고 이해를 못했거든. 저게 말이 돼?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

이: 어디에서 네가 달라졌단걸 알게 됐어?
탁: 내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잘 이입이 되는 거 같긴 해. 이를테면 아까 말했던 김진숙 씨가 고공농성하는 걸 언론에서 접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그런 것들이 내 또래 사람들이랑 달랐어. 난 그걸 보면서 진짜 개빡치지 않냐, 이게 말이 되냐, 고등학교 때부터 그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었는데 친구들은 그렇게 반응하지 않더라구. 예를 들어 대공장에서 노동자들을 대거해고를 했어. 그러면 나는 이게 말이 돼? 이 사람들 거리에 나앉으라는 거야? 이렇게 화를 내, 그러면 내 친구들은 아니 회사도 먹고 살아야하는데, 그런 말을 했어. 그런 게 잘 이해가 안갔어. 이게 공감이 안된단 말이야? 당장 직장을 잃고 벌이가 없어져서 거리로 나앉았는데 이런 사태에 공감을 못한단 말야? 이런 생각들도 되게 많이 하다가 지금 민주당이라는 사람들이 이런걸 많이 개입하고 도와주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줄 알았는데 실상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그런 걸 깨닫고 이런 사람들을 도와주는 다른 정치 세력이 있나? 고 생각했을 때가 찾은 게 지금 내 소속이고. 물론 우리만 그런 활동을 하는 게 아니지만 처음 만났고 그 뒤로도 다른 정당들도 많이 알게 됐지만 내 소속이 가장 좋았고 내 가치관과 맞았던 것 같아.

OLYMPUS DIGITAL CAMERA

이: 지금 한국의 큰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해? 지금 바꾸고 싶은게 있어?
탁: 한 두 개가 아니잖아(웃음) 아까도 이야기 한 건데 사람들이 좀 공감 같은 걸 못하구나 라고 느낄 때 슬픈 것 같아. 그게 많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이: 개인의 감정이 잖아. 그게 어떻게 바뀌어야되는데?
탁: 그게 좀 여유가 없는 삶에서 나오는 것 같아. 그런 것이 바뀌는 게 장치가 있어서 순식간에 바뀌는 게 아니잖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는 건 오랜 기간을 두고 해야하는 거니까. 방법은 구체적으로 모르겠는데 그런 게 너무 슬프고 힘들었어.

이: 실현 가능성이 없더라도 가장 원하는 정책이 있어?
탁: 그냥 가장 원하는 정책으로는 요즘 기본소득에 관심이 많아. 그런 고민이랑 활동도 많이 하기도 해서 가장 먼저 생각이 났어.

이: 기본 소득이 되면 어떻게 바뀔 거 같아?
탁: 사람 사는 데에 여유가 있고 자존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게 다들 없는 상태잖아. 혼자 살던 50대인가 60대 남성이 월세를 못내서 미안하다고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잖아. 그런 거를 봤을 때 되게 너무 슬펐어. 사람이 왜 살까 싶을 정도로. 흔히 그런 이야기 많이 하잖아. 인간답게 살아야한다, 행복 추구권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실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는 삶은 그런 삶이 아니거든. 내가 처음으로 돈의 부족함을 느꼈던게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 뭘 사러 편의점에 갔는데 2000원이었나, 어쨌든 돈이 없어서 못샀단 말야? 그래서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다음날? 정도부터 알바를 세 개 씩 뛰었어. 그 중에 하나가 편의점이었는데 내 기억으로 아마 4880원? 최저임금이었어. 알바를 하는데 밥을 직접 해결해야하잖아. 식대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그래서 손님이 없을 때 카운터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고 입가심을 하려고 음료수를 고르는데, 내가 토마토주스를 좋아하거든? 편의점에 가면 1.5리터짜리 말고 갈아만든 것 같은 브랜드 음료가 있어, 그걸 집었는데 4천원이 넘는거야. 이 쪼끄만 걸 내가 사려면 한시간 일해야하는 거지. 그걸 깨달으니까 이렇게 알바를 해서 살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 하나 사먹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나한테 돈이 없어서, 그 몇 천원 짜리 음료를 못 사먹는 게 심정이 처참할 때가 있잖아. 이런 것들이 바뀌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기본 소득에 대해서 알았고 그게 좀 도움이 될 것 같아.

옳은 걸 옳다고, 삶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

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있어?
탁: 대선 출마를 말하는 후보들 중에 딱히 없는 것 같아. 정책적으로 유승민도 최저임금 1만원 이야기도 하고 편의점 야간 근무 없앤다 뭐 이런 말도 하잖아. 정치의 신뢰성 이야기 했잖아, 별로 신뢰가 안들어. 기본소득 이야기는 이재명이 좀 하고 있지만 금액이 너무 적잖아!

이: 얼만데?
탁: 연 120(만원). (이: 내 월급이 130인데…) 나도 처음에 말만 듣고 월 120(만원)? 이건 너무 무리 아닌가? 이건 어떤 근거로 월에 120(만원)을 주는거야? 하고 잊고 있다가 다시 들어보니까 ‘1년’에 120만원이더라고. 어디서 약을 파는거야 대체 ㅋㅋㅋㅋㅋㅋ! 물론 그것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성에 안차지. 처음에 시도한다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정책적으로는 지지하기도 하고.

이: 범위를 넓혔을 때 괜찮은 대선후보 이상형이 있어? 이런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는 거 있잖아.
탁: 실체가 없더라도?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기본소득이나 내가 일하는 평화캠프에서 이야기하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여러가지것들을 대통령 임기 시작하자마자 힘있게 바꿔줄 수 있는, 그리고 바꾸겠다고 정말 이야기하는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어. 그런 세상이 정말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어. 지금은 다 왔다갔다 하잖아. 페미니스트 했다가, 성소수자 지지 안했다가, 군복 입고 총 잡고 있다가, 교회도 갔다가… 표 되는거 다 하잖아.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들 말고 직접 삶으로 정책적으로 생각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왔으면 하지. 자신 있게, 눈치 안 보고. 옳은 걸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어.

이: 어떤 세상을 원해?
탁: 한 마디로, 유토피아 같은 세상. 그런 말들 많이 하잖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한다. 내가 여성이라서 밤에 마음대로 못나가고 입고 싶은 옷 못입고, 장애인이라서 가고 싶은 곳 못가고, 성소수자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말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데 숨어서 지내야하고 감춰야 하고 뭘 포기해야하고 이런 세상이잖아. 그런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랍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 꿔. 그런 세상이 얼른 왔으면 좋겠어.

이: 너무 이타적인 거 아냐? (웃음)
탁: 거기엔 당연히 나도 포함되니까.

OLYMPUS DIGITAL CAMERA

글/ 이점

사진/ 이점

   [ + ]

1. 김현탁의 고향은 안동이다
2. 인터뷰 당시 자유한국당으로 당명 교체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