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연세대학교 자치도서관에서 발행하는 연희관 015B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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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담회 당시 포스터

‘연희관 015B’는 45대 미국 대통령 당선 직후(2016년 11월 24일) 지구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편집위원들과 참석자들은 트럼프 당선의 배경과 그것이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글은 당시 발제문과 토론 내용을 편집한 것입니다. 지금 트럼프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행보와 2016년의 우려들을 비교해보게 되는데, 그 작업은 흥미로웠습니다.

1부. 발제

트럼프, 혐오에서 답을 찾다

여러분은 트럼프를 뽑은 미국인들이 이해가 되시나요? 저는 그렇지 않았는데요. 그러던 중 허핑턴포스트의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트위터를 살펴보면 그 이유는 이렇다고 합니다. ‘평생 사기 치는 정치인들만 봐왔기 때문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니까‘ ’내 가족과 내 나라를 위해서.’1)허핑턴포스트, 2016.11.09. 「미국인들이 말하는 ‘내가 트럼프를 찍은 이유’는 이렇다(트윗 모음)」 그런데 왜 트럼프일까요?

‘트럼프 현상’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왔습니다. 경제불황으로 불평등은 심화되고, 노동계층의 일자리와 소득은 위협받았습니다. 이때 트럼프가 나타나서 그들의 대변자를 자처했습니다. 미국인은 잘못한 게 없고, ‘다른 놈들’이 선량한 미국인을 등쳐먹는 것이다.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무역협상으로 사기를 치는 옆 나라 때문이고, 우리의 일자리를 뺏으러 온 이주노동자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말로만 ‘우리’를 위하는 정치인들 대신에 ‘우리’를 위한 국가를 만들겠다. 그런데 ‘강한 미국’, 그리고 ‘우리’는 미국인 모두를 포함하지 않습니다. 인종차별을 부추겨 미국인 안에서도 ‘적’을 만들어 냅니다. “라티노는 성폭행범”, “무슬림은 테러리스트” 등등의 과격한 언사를 통해 말이죠. 백인, 그중에서도 더욱 억눌리고 분노가 쌓여왔던 백인 중하층 남성은 이런 ‘혐오 코드’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일종의 분출구를 제공했다고 할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 선거는 공약과 정책의 대결이 아닌 ‘인종 대결’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인종에 따라 투표했습니다. 유색인종은 힐러리를, 백인은 트럼프를 더 많이 지지했으니까요. 함정은, 백인이 미국 유권자의 69%를 차지한다는 겁니다. 백인이 상대적으로 다수인 것이죠. 힐러리를 뽑을 것이라 믿었던 (백인) 청년, 여성도 마찬가지로 인종에 따라 투표했습니다. 트럼프의 그 여성혐오 발언들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승리. 그는 백인을 위한 후보였고, 역설적이게도, 모두를 대표하지 않았기에 당선된 것입니다.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 교활했던 걸까요? 아니면 미국인들이 이성적 사고를 멈추고, 과거로 회귀해 인종차별주의의 노예가 되고 만 걸까요?

트럼프, 브렉시트, 일베

트럼프가 자신을 ‘브렉시트(Brexit)’와 비교하며 “우리의 승리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릴 것이고 브렉시트 이상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한 걸 아시나요? 브렉시트는 트럼프 현상과 두 가지 면에서 닮아있습니다. 첫 번째 공통점은, 트럼프 지지자와 브렉시트 지지자의 공통점은 저학력·저소득층이라는 점입니다. 자유무역과 세계화로 불만을 갖게 된 노동자 계층이었죠. 두 번째 공통점은,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브렉시트 찬성파가 그 분노를 난민, 이주민 등 소수자를 향한 분노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이미 트럼프 현상을 통해 정치와 혐오가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으니,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이 두 가지 공통점만 짚고 넘어가려 합니다.

묘하게 닮은 꼴.

묘하게 닮은 꼴. (출처- 왼쪽: Business Insider, 2015.05.12. 「Donald Trump trademarked a Ronald Reagan slogan and would like to stop other Republicans from using it」오른쪽: The Sun, 2014.12.08. 「Inside Britain’s most vile right-wing group」)

브렉시트는 영국만이 아닌 유럽 전체에 퍼진 난민 혐오, 이주민 혐오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도 그런 혐오로부터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 대표 격이 ‘일베’입니다. 군대에 갔을 때 20, 30대 또래들 사이에서 일베가 정말 많이 퍼져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훈련소 한 분대(10명 가량) 중 2명이 일베를 하고, 3명 정도는 그런 극우적인 의견에 동조하더군요. 외견상 공격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일베의 논리가 어떻게 이렇게 확산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베가 보기에, 여성·진보·호남이 공유하는 특징은 ‘권리와 의무의 불일치’다. 의무는 다하지 않고 권리는 과도하게 요구한다. 여성은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고 남자를 등쳐먹고, 진보는 제 능력으로 성공하는 대신 국가에 떼를 쓰고, 호남은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뒤통수를 친다. 결이 다르기는 하지만, 북한도 남한의 지원은 받아먹고 남한에 대한 의무는 다하지 않는 존재다. 이들은 모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성공해온 역사에 기여한 바가 별로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베의 눈에 이들은 2등 시민이다.

( … )

사회의 보호를 받는 약자는 손쉽게 무임승차자로 간주되곤 한다. 이때 보수는 “기여한 만큼 받아야 한다”라며 무임승차 징계 의지를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진보는 약자에 감정이입하면서 무임승차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둘 다 인간 본연의 도덕 감정이다. 일베에서 출발한 논의가 무임승차 혐오 코드를 거쳐서, 도덕·정의·공평이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던 키워드에 도착했다. 일베가 진정 위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기여한 만큼 받아야 한다” “무임승차를 징계해야 사회가 유지된다”라는 보수적이지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감정을 정확히 건드릴 때다.2)시사인, 2014.09.29.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일베가 논리 따위는 없이 그저 마음에 안 드는 대상을 표적 삼아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논리는 실제로 잘 먹혀듭니다. 1976년 미국 공화당 경선에 나온 로널드 레이건은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기 위한 하나의 환상을 만들어 냅니다. ‘복지 여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가짜 신원 수십 개를 만들어, 복지 혜택을 싹쓸이해 캐딜락을 타고 다닌다는 흑인 여성입니다.

‘흑인’ ‘여성’을 ‘복지 여왕’으로 만들어, ‘소수자에 무임승차까지 하는 파렴치함’의 낙인을 찍는 정말 일베다운 기술입니다. 그리고 4년 뒤 레이건은 대통령이 됩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점은, ‘복지 여왕’은 레이건이 만들어낸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침 레이건의 대선 슬로건은 트럼프와 똑같습니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ing America Great Again).” 기가 막힌 우연입니다.

트럼프 일베설.gif

트럼프 일베설.gif

혐오와 정치의 만남은 역사가 제법 깁니다. 마녀사냥으로 체제를 유지하던 중세시대부터, 히틀러가 유대인을 사회악으로 몰아 집권했던 나치 독일까지…. 어쩌면 ‘혐오의 정치’는 언제나 존재했던 것 아닐까요? 우리는 흑인 대통령을 보며 마음 놓고 있다가 너무 쉽게 당한 것일지 모릅니다. 때로는 ‘위대한 미국’, 때로는 ‘브리튼 퍼스트’, 간혹 평범한 20대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혐오.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혐오의 대안은 힐러리?

트럼프는 싫다면, 대안은 힐러리인가요? 트럼프가 혐오 정치를 대표했다면, 힐러리는 기성 정치권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그렇다면 힐러리가 트럼프보다 나은 점이 있을까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논평을 읽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토론을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트럼프의 아웃사이더 자처가 완전히 허위 선전인 것은 아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자신의 군사력과 각종 동맹 관계를 기초로 전 세계적으로 자유무역 경제를 구축하고 주도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해 왔다. 그런데 트럼프는 바로 이 자유[시장] 제국을 문제 삼으면서 빈곤층 일부에게서 지지를 얻었다. (중략)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이 [자유시장] 제국의 충실한 대행자이다. 이 때문에 클린턴이 기득권층을 대표하는 후보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공화당 주류 인사들이 트럼프 지지를 밝히지 않거나 힐러리를 지지하고 나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가 역겨운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성차별주의자라는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트럼프는 기회주의자이기도 해서, 일단 당선하면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맞춰 움직일 것이 분명하다. 그가 허풍스레 내놓은 공약들도 미국 사회의 문제를 풀 해결책이 전혀 되지 못한다.

누가 당선하든, 평범한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쓰라림과 환멸이 계속 자라날 것이다. 클린턴이든 트럼프든 둘 다, 갈수록 대다수 미국인을 거스르는 권력 기구를 대변하는 인사들이다. 클린턴은 트럼프에 대한 “차악”이 아니다. 클린턴과 트럼프 모두 상대방의 악함을 근거로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할 뿐이다.3)알렉스 캘리니코스, 「미국 대선: 힐러리 클린턴은 ‘차악’이 아니다」, 『노동자 연대 178호』

2부. 토론

일시 : 2016년 11월 24일

장소 : 연희관 015B 자치도서관

참석 : 진, 훈, 인, 화, 선, 태, 민, 은, 가, 지, 경, 영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1.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간단한 소감은?

훈 : 트럼프 지지자는 없나요? (웃음)

인 : 저는 지지자는 아닌데, 왜 언론은 선거기간 내내 힐러리 편을 들었는지 모르겠다. 여론조사만 봤을때는 비슷했는데, 당연히 힐러리가 될 것처럼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를 봤을 때 트럼프는 쭉 인기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다.

지 : 언론이 기성 정치의 편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은연중에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트럼프가 되면 우리는 끝난다는 위기의식일지도 모른다.

화 :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이 무너졌다.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미국은 한국에 비해 소수자 감수성이 훨씬 많은 것 같아서 감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트럼프가 당선되니까 배신당한 기분이다. 꼭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다.

선 : 학교에서 근로를 하면서 보고 있었다. 개표가 진행될수록 리포터들의 표정이 안 좋아지고 트럼프 진영은 들썩들썩하는게 희극적이었다. 지금 우리나라 시국도 그런 느낌인데, 어느 정도가 넘어가니까 화나는 게 아니고 웃겼다. 옛날에 비해서 사람들이 너무 적응이 돼서 분노에 대한 역치가 너무 높아지지 않았나.

인 : 세상이 망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 내가 미국인, 예를 들어 히스패닉이었다면 트럼프가 나를 쫓아내지 않고 일자리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거나, 가치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부분에서 사람들이 슬퍼하는 것에 공감이 되지 않았다.

화 : 경제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인 : 일단 힐러리가 되면 바뀌는 게 없다. 나랑 다른 고소득층의 사람이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

선 :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갔을때 캠핑을 갔는데, 같이 갔던 친구 빼고 다 미국 백인이었다. 그들 말로는 트럼프가 도가 지나치긴 하지만, 처음 나왔을 때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말할 수 없었던, 숨겨진 생각들을 시원하게 긁어 준 느낌이었다고.

훈 : 트럼프가 생각보다 보편적으로 호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잘된 거다’ 라는 반응들이 많더라. 그동안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미국인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감정을 트럼프가 건드린 거다.

2. 혐오는 어떻게 ‘설득력’을 얻는가?

태 : 일베식 논리대로라면 ‘여자가 무임승차한다’는 결론이 어떻게 형성되나?

인 : 예시는 많다. 여자들이 무거운 건 안 들려고 하면서 왜 남녀평등 주장하냐. 이중성 보소… 미디어에 나온 된장녀, 김치녀 등등. 사실 남자, 여자 모두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에서 여자들의 것만 선별적으로 포착해서 보여준다.

민 : 일베하는 사람들을 인터뷰 해보면 신기하게도 ‘좋은’ 여자랑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인 소박한 사람들이 많다.

인 :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이다. 희한하게 페미니즘적 요소도 있다. 남자가 가장 노릇 하기 힘들다 등 자기들이 겪는 맨박스(man box)의 문제를 지적할 때.

훈 : 그동안은 일베를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하고 심리적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일베하는 사람들 분석해봤을때 생각이 바뀌었다. 그들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버지, 능력주의, ‘정상적인’ 가정과 가족 같은 것들이다. 거기에 걸맞지 않는 집단 혹은 개인에 대한 분노는 ‘논리적인 혐오’다. 그 혐오가 굉장히 상식적이겠구나.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 무논리가 아니라 오히려 정합성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정치’와 ‘혐오’의 만남

선 : 한국에 트럼프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유명한 재벌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조선족 다 쓸어버리자. 성노동자들은 다 창녀다. 이러면 우리나라에서도 과연 그 사람이 비상식적이라고 말할까?

훈 : 트럼프가 ‘변화’라는 말을 많이 썼다. 지금까지 (미국) 민주당 정권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와중에 이민자 추방은 뭔가 ‘변화’를 주는 것이다.

가 : 우리나라도 비슷했다. 이명박은 ‘경제대통령’ 슬로건으로 당선됐고, 실제로 효과가 없었음에도 박정희의 후광을 입은 박근혜가 당선되었다.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그런 것들이 더 중요해지는 거다.

화 : 성별 싸움을 하느라 에너지를 다른 데에 낭비하고 있다. 남자 개인에 대해서 비난할 수는 없다. 남자가 스스로 관심을 갖고 여자 편에서 생각해보지 않으면, 그 입장을 전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 경쟁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기득권층이 굳이 소수자, 약자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태 : 중도4)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편집자 주 앞에 ‘남톡방’ 대자보가 붙어있다. 새벽에 가보니까 찢어져 있어서 다시 붙였는데, 이미 연세대 내에서도 혐오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 : 카톡방을 보면서 과를 추측하더라. 대부분 남초 과들이었다. 여자를 무슨 상상 속의 동물처럼 생각하고 여자들도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인 :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이라는 책에서 나폴레옹의 사촌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다시 정권을 잡는다. 농민들은 사촌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그래서 황제로 추대되었지만 망했다. 트럼프도 비슷하다. 경제위기, 대중의 불만을 잘 짚었지만 해결할 방법은 없다. 트럼프는 혐오를 소비하면서 대중을 기만한 것에 불과하다.

선 : 박근혜 당선 이후 “우리 아들은 문 후보를 지지하는데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서 투표 했다.”는 짤을 본 적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도 트럼프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지만, 힐러리나 다른 정치인에 대한 반발심으로 투표한 것은 아닐까? 또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심도 있지 않을까.

인 : PC에 대한 반동. 세계화에 소외된 자들의 반란이다. 텍사스 주가 인상깊었던 게, 도시는 힐러리를, 시골은 트럼프를 찍었다. ‘우리’ 안에서 시골과 도시가 서로 다른 것이다. 왜 대학생들은 유독 트럼프를 싫어하고 힐러리를 지지할까. 대학생이야말로 세계화의 수혜자가 아닌가. 우리는 어쨌든 영어를 할 수 있고, 취직을 할 수 있고 사회로 가는 문이 있다. 우리나라의 농민은 어떤가. 세계화의 피해자다. 그런데 어려워도, 쌀농사 그만두라고 해도 계속 쌀을 키운다. 우리는 비교하고 선택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경제와 삶이 일치된다. 그래서 다른 작물로 갈아타지도 못하는 것이다. 세계화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대학생은 상대적으로 기득권 아닌가.

영 : 시골 농민들처럼,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트럼프를 찍었다. 그런데 백인 남성보다 이주민, 여성이 더 약자인데도 그들은 스스로를 약자라고 생각했다. 미국사회가 그만큼 경제적 약자들을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닐지. 트럼프가 문제인 것은 백인 남성의 문제를 대변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분노를 더 약자(여성, 히스패닉 등)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당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극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런 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 PC함만을 강조하는 것이 현명한 걸까? 트럼프를 찍는 것도 문제지만, 트럼프 현상을 만든 구조가 근본적인 문제다.

선 : 그리고 그 구조 안에서 누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일베에게 사회적 약자들이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약자라고 말해야 하듯이. 같은 사회구조, 똑같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여성보다 남성이, 이주민보다 자국인이 덜 피해를 입는다. 단순히 “구조가 문제”라고만 말하면 누가 혜택을 입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세계화건 가부장제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의 말-

트럼프의 당선은 ‘혐오의 정치’가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전 세계가 겪게 될 충격과 공포는 이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도 이슬람 7개국의 미국 입국과 비자 발급을 금지한 ‘반이민 행정명령’ 때문에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수상소감이 등장한 것은 멋지고도 슬픈 일입니다. 집담회에서 이야기한 ‘혐오 정치’, 혹은 ‘정치 없는 혐오’는 계속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까요. 뉴스 댓글을 보니, 많은 사람들은 한국도 조선족과 외국인노동자 등 ‘위험 집단’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론 도중 누군가 ‘만약 한국에 트럼프가 나온다면 당선될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아직 그런 대선주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아직 대표되지 않은 ‘샤이 트럼프’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트럼프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혐오에 동조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정치가 그 혐오를 이용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학기의 토론회를 반추해보면서 혐오감정으로 표출되는 대중의 불만이 무엇이고, 실제로 혐오가 겨냥하는 대상은 누구인지,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표출될 수는 없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편집 및 교정 / 린

글 / transver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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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핑턴포스트, 2016.11.09. 「미국인들이 말하는 ‘내가 트럼프를 찍은 이유’는 이렇다(트윗 모음)」
2. 시사인, 2014.09.29. 「이제 국가 앞에 당당히 선 ‘일베의 청년들’」
3. 알렉스 캘리니코스, 「미국 대선: 힐러리 클린턴은 ‘차악’이 아니다」, 『노동자 연대 178호』
4.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