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은 지방이 서울의 식민지라고 말했다. 이촌향도라고 불리는 사회의 변화 뒤에, 서울이 지방을 착취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김영삼이 대통령이던 1995년에 지방자치제가 시작됐지만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정한 지방 자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방엔 사람이 없고, 사람이 없으니 재정이 부족하고, 재정이 부족하니 지방의 자치가 불가하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가는 지역이지만, 지방은 변하기엔 너무 느리고 낡았다. 가족과 여성, 정치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낡았다.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청년과, 변화하기 힘든 지방 사이에 수많은 갈등이 있다. 여기,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젠 너무나 낡고 늙은 도시를 떠나려는 워킹홀리데이 노동자 워너비 권화담(여, 23세)가 있다.

한국이 싫어서

구현모 (이하 구) : 전주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전주에선 뭐하고 지냈어?

권화담 (이하 권) : 이번 주가 유난히 바빴어. 금요일까지 워킹홀리데이 서류 제출할 게 있어서 그거 처리하느라 바빴어. 서류 준비도 복잡했는데 호스텔에서 일하면서 하니까 바쁘더라. 호스텔 일하는 거 빼면 평소엔 그냥 게임하고, 학교 택견 동아리 대회 준비하는 거 도와주고 그래.

 

구 :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한다고? 호스텔에서 일하는데 왜 또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해?

권 : 솔직히 말해서 외국 나가보고 싶었거든. 휴학 중이라 학교에서 보내주는 프로그램은 신청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여행으로 가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워킹홀리데이는 외국 경험은 경험대로 하고, 돈도 돈대로 벌 수 있으니까 신청했어. 거기서 벌면 되니까 돈을 많이 들고 갈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구 : 외국은 왜 가려고 그러는 거야?

권 : 순수하게 외국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가족 때문인 것도 있어. 부모님이랑 나랑 감정의 골이 깊어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 겠다 싶었거든. 집 나와서 호스텔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야. 워킹홀리데이도 그 연장선이지. 워킹홀리데이 떨어지면 복학해야 하는데, 그래도 집에는 안 들어갈 거야. 호스텔 일하면서 번 돈으로 자취할 거야.

 

구 : 보통 워킹홀리데이가면 호주나 캐나다 가지 않나? 왜 일본이랑 아일랜드 골랐어?

권 : 한국 사람 많이 가는 곳은 싫었어. 가서 분명히 또 한국 사람이랑 놀 거 같았거든. 새로운 문화를 접하고 싶어서 가는 거니까 굳이 한국 사람이 많은 곳은 갈 필요를 못 느꼈어. 그리고 이모가 외국에 사는데, 한인 교회나 한인 사회가 전혀 도움 안 된다고, 절대 가지 말라고 조언한 영향도 컸어. 아일랜드는 한국 사람이 거의 없어서, 일본은 내가 입만 다물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 구분 못하니까 골랐어.

hdimage1

구 : 어쩌다가 호스텔에서 일하게 된 거야?

권 : 집에서 나와 살고 싶기도 하고, 해외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면 필연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해야 하잖아. 좋든 싫든 사람을 만나고, 몸 쓰는 일도 해야 하는데 아무런 경험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구 : 지금 일은 어때?

권 : 아, 힘들지. 호스텔 일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육체노동을 해야 하거든. 호스텔 침대 시트 갈거나 방 청소하는 일이라서 힘들 수밖에 없어. 성격상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게 나은데 그래도 힘든 건 어쩔 수 없지.

 

새로운 것을 하기엔 조금 느린 도시, 전주

구 : 계속 전주에 살았어?

권 : 아주 어릴 때는 완주에 살았는데, 대부분 전주에 살았지. 대학도 전주로 가기는 싫었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기엔 점수가 좀 애매했고, 결과적으로 합격한 게 동국대 경주 캠퍼스랑 전북대라 전북대 갔지.

 

구 : 앞으로도 계속 전주에 살 거야?

권 : 애매해. 전주에 좋은 기억도 있고, 나쁜 기억도 있으니까 살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지. 전주는 애증이야. 문화시설 없고, 한 다리 건너면 전부 아는 도시라 불편한 것도 많아서 싫지. 그래도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익숙하기도 하고, 경제적 부담도 덜하니까 좋은 것도 있어. 서울에서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가 50만 원 하는 집이 전주에선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이거든. 지금은 좀 다른 곳을 경험하기 위해서라도 전주를 떠나고 싶어. 늙고 낡은 생각도 많고, 새로운 걸 하기엔 좀 느린 도시거든.

 

구 : 서울에 자주 오잖아. 서울이랑 비교해서 전주는 어때? 문화시설이 그렇게 없어?

권 : 응. 진짜 아무것도 없어. 뭘 하고 싶어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없고, 전부 서울에 올라가니까 같이 할 사람도 없어. 심지어 회의할 카페나, 스터디룸이나 공유 사무실이나 그런 공간도 없어. 최근에 <절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서울과 지방은 단순히 서울과 변두리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하더라. 솔직히 맞는 말이야. 종로에서 1시간 동안 지나다니는 자동차 수가, 전주에서 하루 온종일 지나가는 자동차 수보다 많을걸?

hdimage2

 

정치하는 시민의 탄생

구 : 노동당 가입은 어쩌다 하게 된 거야? 원래 생각이 있었어?

권 : 가입하는 과정 자체는 별거 없었어. 친구들이랑 같이 술 먹다가 꼬심 당해서 가입했거든. 원래 정당에 가입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 정치적 경험이 필요했거든. 정치적 행위를 하는 경험이 필요했는데 혼자 하는 거는 너무 힘들 거 같아서 가입했지. 그래도 아직은 평당원이라 특별하게 하는 건 없어.

 

구 : 당에서 하고 싶은 건 있어?

권 : 아직은 좀 지켜봐야 할 거 같아. 노동당이 이번 대선에 후보를 냈으면 뭐라도 했을 텐데 후보를 내지 않았으니까 할 게 없지. 지방선거에 후보를 냈으면 좋겠어. 주도적으로 선거를 이끌진 못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은 많아. 뭐, 뭘 하든 힘든 일이겠지만 말이야.

 

구 : 일하는 호스텔 사장님은 어떻게 니가 가입한 걸 알게 됐어?

권 :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장난도 많이 치고, 스스럼없이 지내는 편이야. 서로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정당에 가입했다고 말했지. 근데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어.

뭐, 어떤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나한테 우스갯소리로 “나 너 이름 노동당으로 저장했어!”고 말했는데, 갑자기 기분이 나쁘더라고. 노동당 당직자도 아니고, 그저 평당원인데 나를 노동당으로 저장했다는 게 좀 불쾌한 거야. 내가 속해있는 곳이랑, 나는 엄연히 다른데 나를 그렇게 정의하려고 하는 게 기분 나빴어.

 

구 : 노동당에 가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 사실 태반이 노동당이 존재하는지도 모를텐데 말이야.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았어? 뭐에 영향 받은 거야?

권 : 지역이 지역이라 그런가, 학교에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선생님들이 많았어. 특히 중학교 땐 2명인가 빼고 전부 전교조 선생님이었어. 교무실에 전교조 게시판이 따로 있고, 전교조가 만든 회보도 붙어있고, 전교조 일정도 붙어있었어. 실제로 학교에 전교조에서 되게 유명한 선생님도 있었어. 신문에도 나오고 감옥도 갔다 올 정도로 유명했던 그런 분이었어.

선생님들의 언행에 영향을 많이 받았지. 뭐, 정치적 선동에 영향 받은 게 아니야. 그분들은 체벌도 안하려고 하고, 학생들이랑 열린 자세로 토론도 많이 해주셨거든. 한미 FTA, 광우병, 국정교과서, 소수자 등등 온갖 사회적 사안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어. 지역에 대한 차별, 지역 불균형 등 우리랑 관련된 이야기로 토론도 많이 했어. 그런 선생님들 덕분에 정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그러다 보니까 행동하는 거에 큰 거리낌이 없던 것 같아. 촛불집회 참석이라든지, 노동당 가입이라든지 말이야.

hdimage3

 

정권 교체는 사회 변화의 시작이지, 목적지가 아니야

구 : 전주에 촛불집회 있었어? 가봤어?

권 : 당연히 있고, 당연히 갔지. 내 생애 첫 집회이기도 했거든. 시국회의라고 해서 시민단체들끼리 모여서 촛불집회를 기획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에도 갔어. 탄핵 직전까지는 매주 있었고, 요즘엔 뜸해. 처음에는 조그마한 자유발언 수준이었는데, 박근혜 게이트가 커지면서 점점 사람들이 많이 모였지. 30~40명 모여서 노래 부르고 노래 듣는 수준에서 전주 시내가 꽉 찰 정도로 많아지고, 시내 행진도 했어.

 

구 : 이제 대통령이 새로 뽑혔잖아. 우리 일상도 달라질까?

권 : 안 바뀌어. 뭐, 대통령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건 맞지만, 내 일상이 통째로 바뀔 것 같지는 않아. 막말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대로 있더라도 내 삶이 바뀐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

 

구 : 근데 그러면 촛불집회 왜 나갔어? 대통령이 바뀐다고 바뀌는 게 없으면, 바꿀 이유도 없는 거잖아

권 : 음,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여론, 그리고 사회의 분위기가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해. 예를 들어, 트럼프 이후의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트럼프 개인의 미국 사회의 반동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내 말은,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고 내 삶이 바뀌진 않지만, 대통령이 바뀌는 순간부터 어떤 거대한 변화가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 변화를 이끌어가고 그러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사회의 몫인 거야. 사실, 대통령보다 국회를 통째로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일 거로 생각해.

 

구 : 음, 너는 그러면 우리 사회의 한 가지를 바꿀 수 있으면 무엇을 바꾸고 싶어?

권 : 가족과 가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지금 한국 사회의 가정은 자기파괴적이야. 엄마는 자기의 경력을 포기하고, 아빠는 돈 버는 기계가 되고. 자식들은 부모의 기대에 맞는 하나의 인형으로 사는 거지. 전부 희생만 하는 셈인데 그 보상을 또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바래. 자식은 부모한테 바라고, 부모는 자식한테 바라지. 서로서로 착취하고, 원망해.

 

구 : 그게 쉽게 바뀌려나?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데?

권 : 자식이기 전에, 부모이기 전에 개인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가족 구성원의 주체성을 인정하고, 개인으로 사는 삶을 존중했으면 좋겠어. 가정이라는 게 사람이 살면서 처음으로 만나는 사회인데, 거기서부터 개인의 주체성과 개인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안 되잖아. 집단주의, 눈치보는 사회의 원인이기도 해.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바뀌어야 하는 건 맞아.

 

구 : 대통령이 바뀌었는데, 넌 누구 뽑았어?

권 : 문재인을 뽑지는 않았어. 전라도에 살아온 사람으로서 민주당이 못 미덥거든. 그렇게 밀어줬는데 전라도는 계속 가난해졌어. 막말로 전라도는 민주당에 호구 잡혔고, 보험인 셈이니까 잘해줄 이유가 없는 거였지. 그래서 안 뽑았어.

 

구 : 5월 9일 장미 대선 이후 어떤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

권 : 걱정이 없는 삶. 너무 모호한가? 사람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 내가 지금 집을 나와서 살잖아. 집을 나오면 걱정이 많이 생겨. 식비부터 주거비까지 모든 게 걱정이야. “지금 사는 집에서 쫓겨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기본이야. 생존이 힘들고, 걱정이 많으니까 걱정 없는 삶을 살고 싶어.
앞으로 걱정할 일도 없는 삶이면 좋겠어.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내일 그리고 앞으로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

 

hdimage4

글/구현모

사진/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