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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에서 한석율은 이렇게 외친다. “장그래, 내 사랑도 나인 투 식스였으면 좋겠어.” 그런데 말야. 나인 투 식스 이거 당연한건가?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왜 1교시 수업은 아홉 시에 시작해야 할까? 왜 새벽 4시인데 나는 남들처럼 잠들지 못하는걸까? 왜 병원도 은행도 일을 하다보면 못 가게 되는거지? 그건 누가 정했을까, 무얼 위해서?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해보기도 하고 원망해보기도 하고 고민한, 밤에 사는 당신과 닮은 누군가를 소개한다.

을 더하기 을은 슈퍼을

요정(이하 ‘요’): 회사 그만두고 처음 보네. 그동안 뭐 하고 지냈어?

민희(이하 ‘희’):  너도 알다시피 고등학교 졸업한 후로 3년 정도 IT업계의 SI분야에서 일을 했어. 완전 을 오브 을이지. 솔직히 SI라고 하면 사람들 다 안다. 얼마나 그지같은 분야인지. 대기업에서 수주 받아서 일하는 곳이었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받는 스트레스도 많고 고졸 취업자로써 생기는 불만이 커서 그만뒀어.

요: SI? 뭐의 준말이야?

희: System Integration(시스템 구축). 내가 개발하는 프로그래머였거든. 쉽게 말하면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 거기에 맞춰서 시스템 제작을 해주는거지. 재미는 있는데 많이 힘든 일이야. 이쪽 일은 무형이잖아! 눈에 딱 보이는게 아니거든. 레이어가 몇 겹이 쌓여있어서 소스가 몇개나 되지만, 눈에 보기에는 그냥 딸깍딸깍 하는거니까. 윗 분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거 같은가봐. 노동의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는 느낌이지.

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뒀구나.

희: 응. 3년 동안 이렇게 야근하고 개고생했는데, 뭔가를 배우는 것도 없었고, 보람도 없었지. 재미는 있지만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사무실에 정직원들 보면서 일을 하고 그러니까.

요: 아. 정직원들이 같이 있었어?

희: 우리는 상주하는 시스템이었어.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거기 뽑힌 이유가, 나라에서 회사랑 연계해주는 무슨, 산학연계?그런걸로 들어간 거였거든. 우리는 본사 밑에서 귀찮은 시다바리 잡일 하는, 항상 있는 애들로, 그렇게 있는거야. 그들이랑 같이 지내면 좋긴 하지만 우리의 상사는 아니면서 이들의 마음에 들어야 하는 애매한 위치에 있었지. 지치더라고.

요: 너희 집에서 회사까지 엄청 멀었잖아. 안그래도 힘든데 더 힘들었겠다.

희: 맞아. 일적인 불만도 큰데 출퇴근시간도 길고, 근무시간도 길기까지 해서 그냥 그만뒀어. 난 아침에 일하는 게 힘들거든. 불면증이 심해서. 회사 다닐 때 새벽 4, 5시까지 안 자고 출근하니까 힘들어서 회사에선 능률이 떨어지고. 나 말고도 다들 집이랑 회사가 멀었어. 그런 비효율적인걸 참을 수가 없는거야. 그렇게 불만만 쌓이는거야. 하나둘 다 싫어지기 시작하고, 다 싫어지는 그런거 있잖아.

요: 게다가 고졸이라 돈도 조금 주고.

희: 돈, 적지, 당연히! 고졸짜리 여자애가 회사 들어와서 얼마나 벌겠어. 그러니까 독립을 하겠다는 생각은 꿈도 못꾸고.

요: 회사 다니면서 어린 여자라고 무슨 얘기 들은건 없고?

희: 있지. 그런 거 있잖아. 내 위치가 되게 이중적이었어. 갓 스무살 초반 되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취급 받으면서, 어른들이 무슨 얘기 하면서 ‘이거 내가 너 잘 되라고 하는 얘긴데…’이러면서, 무슨 일을 정작 할 때는 민희씨도 이제 학생이 아니잖아. 제대로 해야할 것 아냐, 맨날 늦고 이러면 안될거아냐, 이러는데. 내가 늦고 싶어서 그랬냐고. 아프잖아. 그럼 퇴근을 일찍 시켜주든가.

요: 말하자면 이중잣대네.

희: 그렇지. 그런거에 스트레스 받고 그러니까, 달리 할 수 있는게 퇴사 말고는 없잖아! 그래서 어디가서 경력으로 쓰려고 딱 3년 채웠어. 3년 채우고 그만 뒀지. 그만두고 퇴직금 나와서 퇴직금, 시벌 3년을 그렇게 뼈빠지게 일했는데 500 나오더라. 500. 처음에 받았을 땐 ‘와아 오백이다!’ 하고 좋았지. 지금 생각하면 500도 사실 그렇게 큰 돈은 아닌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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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비 for Misfits)

요: 그렇게 쉬고 뭐했어?

희: 나한테 맞는 일? 그런 일을 좀 찾는 기간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이 돈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알바같은걸 찾아봤었어. 그래서 밤에 일하는 쪽으로 알아보게 됐고.

요: 니 생활패턴에도 그게 더 맞아서 그런거야?

희: 맞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페이가 쎄니까. 지금은 밤에 일하는걸로 굳어졌고, 그게 더 잘 맞는 것도 같아.

살기만 하는 것도 바쁜데 언제 밥을 해먹어

요: 네가 생각하는 요즘 우리 또래들의 가장 큰 문제는 뭐야?

희: 식습관. 주거문제도 문젠데, 이거 미스핏츠에서 책도 낼정도로 중요하게 많이들 다룬 문제지? 그래서 난 식습관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내 주변에 보면 20대 초반 이런 애들이 아니야. 30대, 어느정도 사회생활을 한 애들이 혼자 사는데 냉장고가 없거나, 렌지가 없거나, 전자렌지 하나 두고 사는 애들이 되게 많고. 불을 이용해서 조리해서 뭘 해서 먹을 수 있는 애들이 굉장히 없어. 냉장고도 굉장히 쬐끄만 거 쓰니까. 그게 기능을 거의 안해. 그게 하는건 맥주 시원하게 하는거밖에 없어. 맥주밖에 없어 그 안에.

냉장고가 없는 애들이 있고, 스토브? 가스레인지 이런것도 안쓰고, 알지 전기로 하는거, 인덕션? 인덕션도 없는 사람도 있고. 밥 자체를 밖에서 해결을 하더라고. 아님 회사 다니니까 회사에서 대충 끼니 해결하거나. 점심 밖에서 사먹고. 저녁 야근하니까 회사에서 저녁 먹고, 아침 거르고. 그러니까 집에서 뭐 먹을 일이 거의 없는거야. 먹는다고 해도 거의 간식이고, 술이고.

근데 어떻게 보면 소비가 되게, 그,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그런거 자체를 거의 안한다는게. 생각보다 사람이 물건에 대한 시세도 모르게 되고 좋은 식재료를 알아보는 눈도 없게 만들어. 이걸 안하면 사람이 전반적으로 쇼핑 자체에 대한 능력이 떨어지잖아. 이것도 어찌보면 ‘능력’을 개발하는 문제라고 봐. 그러니까 ‘생활력’이 떨어지더라고. 그래. 애들이 혼자 사는데 생활력이 떨어져.

그런 애들이 청소는 하겠냐고. 청소가 안돼. 그러면 주변이 더러워지고, 멘탈에도 영향을 받게 되지. 집에 오면 쉬어야 하는데 더러우니까 편하게 쉬어지지가 않잖아. 아무리 의사들이야 ‘주변을 깨끗하고 청결하게 하는게 멘탈에 중요합니다’ 하고 말하면 뭐해. 병원 근처에도 안 가는(또는 못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겠어. ‘뭔 소리야, 지금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집에서 누워서 쉬는게 쉬는거지?’ 하고 생각하잖아. ‘청소 그거 날잡아서 치우지 뭐.’ 이러면서. 지금 당장 내가 몸이 피곤한데 방 치우는게 무슨 의미가 있냐구.

요: 일하고 와서, 칼퇴하는 것도 아니고 늦게 들어와서 힘드니까. 잠깐 쉬고 뭐 밥은 대충 회사에서 먹고 오니까 빨리 와도 아홉시, 열시 이러려나?

희: 시간이야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집이 있다고 해도 일단 넓지가 않잖아. 잠만 자니까 공간은 좁으면서 거기서 푹 쉰다는 개념이 아닌거야. 그렇다고 밖에 나가면 돈이야. 하다못해 여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돈이야. 집에서 쉴 수가 없어. 그럼 밥은 밖에서 때워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고, 그러면 스트레스가 쌓이잖아.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냐면 물건을 사거나 술을 먹어서 풀지. 근데 물건을 사는것도 비싼 물건 못 사잖아. 그러니까 작고  조그만 물건을 자꾸 사서 자잘한 물건들로 잡동사니가 쌓여. 그럼 집이 차.

청소도 하고 살면서 물건을 계속 써야, “아, 내가 이렇게 취미생활도 있고 좋아하는 물건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쌓여서 사네” 싶을거 아냐. 근데 청소를 안하고 쌓아만 두니까 이게 없어. 그러니까 또사고, 또사고, 또사고… 화장품도 있는거 계속 쓰면 되는건데, 이걸 처박아놓고 안쓰면 어머 이 코랄색 너무 예뻐 나 이거 사야겠어 하면서 코랄색 백만개 되잖아. 그걸 계속 써야되는건데 안 쓰고 또 사는거지. 사는 순간의 즐거움, 그걸 위해서. 그러니까 애들이 돈이 없다는 자체보다는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낮아지면서 애들이 생활력이 떨어지니까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고 생각해. 같은 돈을 쓰면서 뭘 만족스럽게 쓰는걸 잘 모르는 느낌이기도 하고.

요: 요즘 자주 말 나오는 ‘가성비’도 그런건가?

희: 그렇지. 근데 그 ‘가성비’가 제대로 따져야 가성빈데 지금 한국에서 쓰이는 가성비란 말은 애들이 단순히 ‘양’ 이랑 ‘가격’만 따져서 가성비라고 얘기하는 것 같아. 가성비는 원래 사람마다 다른건데, 무조건 한가지 기준으로 퉁치려는게 말이 안돼. 그러니까 페북이나 이런데에서 이런게 좋다더라 저런게 좋다더라 하고 추천 계정/리뷰계정  올라오는게 인기가 많고 점점 늘어나는 현상도 다들 뭘 고르기가 귀찮아서 그런가로 봐. 내 생활에 필요한 뭔가를 결정할 에너지조차들 없는거야.

요: 그러네. 내 생활에 필요한 것조차 비교하고 뭐가 더 좋을지 판단할 여유조차 없어지고. 귀찮고, 남이 좋다고 하면 그냥 사고.

희: 내가 차라리 뭘 좋아하는지라도 아는 애들은 그나마 다행인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애들 있잖아.

요: 그건 아예 기회를 박탈당한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그냥 여유가 없어서?

희: 자아성찰을 해볼 기회가 없어서일지도.

요: 난 이게 니가 말한대로 전반적인 트렌드인거같은데. 특정한 일을 하고 와서 지치는것뿐만 아니라, 그냥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런 성향을 가진 애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 아니, 대부분인 것 같아.

희:글쎄, 난 대학생활을 잘 모르니까.

요: 네 주변은 다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럴 것 같은데, 내 주변에 대학다니는 친구들은 자취하는 친구들이 거의 그런 성향이었어. 밥도 대충 할 수 있으면 밖에서 학식같은걸로 때우고, 그냥 집에 오면 인터넷쇼핑 구경하다 자고, 그런 식으로. 택배 기다리고. 산거 또 사고.

희: 걔들은 일단 돈이 없잖아. 내가 말하는 주변사람들은 나이대가 대체로 삼십대 아니면 스무살 후반부터야. 지금 30대인 애인 통해서 만나기도 하고, 내 성향 자체가 언니들이나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이랑 잘 맞는 편이거든. 그리고 난 밤에 일을 하니까. 이렇게 말을 하면 좀 그런데, 딱 ‘모범적인 생활’하는 애들. 고등학교때 별 일 없이 공부만 해서 대학 들어갔고 대학 들어가서 사는 애들이면 나를 만날 일이 없지ㅋㅋㅋ

요:그렇게 나이든 언니들 만나고 하면. 정치 얘기 그런것도 해?

희: 애초에 정치에 관련된 이야기를 잘 안하지. 나이가 많을수록, 윗사람일수록 내가 무슨 성향을 가지고 있고 뭐라고 얘기해도 누가 뭐라고 안 하지만, 내가 나이가 어릴수록 소위 ‘고나리’가 많이 들어와. “민희씨, OOO 지지한다며?” 이러면서.

탄핵은 정치 문제가 아니야

희: 근데, 박근혜 사태는 사실 나는 정치문제보다는 여성혐오라는 느낌이 더 강했어. 정치도 정치지만.

요: 어떤 면에서?

희: 뭐가 좋다 나쁘다 평가를 하는게 아니라, ‘야 얘 이게 비선실세네 아주 썩을년이야’ 놀리면서 이슈 자체를 소비하는 분위기라고 느껴져. 공식 샌드백이라도 된 것처럼.

요: 여자라서?

희: 그럴지도? 뭐랄까,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준 ‘나쁜 역할’. 최순실이나 박근혜나 다 정치에 관련된 인물인데, 고영태같은 다른 남자 주요 인물들보다 더 쉽게 끌려나오는 것 같아. 그 남자 행위자들은 주로 행동으로 비판을 받는다면 박근혜 최순실은 그냥 ‘에~ 너 박근혜,  에에 너 최순실’ 하고 놀리는 느낌이야. 존재 자체로 지적을 받는 것 같아보여. 이런 소리 하는 아저씨들이 되게 유치하더라!

요: 요새 젊은 여자애들이 뭐 좀 맘에 안드는 것 같으면 니가 무슨 정유라야? 그런 소리도 많이 한다며.

희: 어. 그런것도 많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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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비 for Misfits)

요: 집에서 정치 얘기 자주 해?

희: 우리 부모님 다 경상도 분이셔. 근데 나는 사실 지역색이 딱히 없는게, 경상도 사람이긴 한데 두분 다 정치에 관심 가지기엔 집이 너무 가난하고 ㅋㅋㅋㅋ힘들어서 ㅋㅋㅋㅋㅋ 정치 얘기같은거 거의 안해. 그래서 중학교 때 처음 광우병 시위 나간다고 했을 땐 엄마가 괜히 그런거 나가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했었지.

요:근데 난 널 되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잖아. 집에서 정치얘기를 전혀 안한 것 치고는 내가 보기에 너는 사회문제에 굉장히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고, 공부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야. 평소에 따로 뭔가를 많이 읽어보고, 고민을 했다는게 느껴져. 그게 그냥 니가 타고난거야, 아니면 언제부터 그런 이슈에 대한 생각을 가지게 된거야?

희: 정치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고 나는 스캔들에 관심이 있는거야. 난 원래 사람 얘기를 재밌어하거든.

요: 그럼 정치적 성향도 딱히 없고?

희: 처음엔 내가 진보도 보수도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냐 나는 진보가 맞는 것 같아. 난 진보.

요: 어떤 면에서?

희: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이상적이잖아. 이론적으로만 하면 나는 보수 할 이유가 없지. 내 입장에선 당연히 진보가 도움이 되고, 말도 얼마나 좋아. 되게 힘든 사람들한테 힘을 주고 얼마나 좋아 그 자체가.

요: 옛날에 광우병시위 나갔으면 촛불시위도 가봤겠네?

희: 안갔어. 피곤해서.

요: 일할 시간이라 그런가?

희: 아니. 나 주말은 쉬어.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고 난, 거의 반 미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자신이 없었어. 그렇지 않니? 무섭지 않았니?

요: 응, 좀 그랬지. 화장실 갈 것도 걱정되고. 거기에 동조하는건 동조를 하더라도, 거기 가서 젊은 사람들 성추행당하고 그런 얘기 들으면 가기 싫어지더라.

희: 근데 사실 안나갔다고 하면 어쨌든 민망하긴 하지. 어떤 이유로든. 국민적인 분위기였으니까. 말하기에 조심스러운 상황이긴 하지만, 난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피하고 싶은거지. 뭔가를 지지하고 뜻은 같을 수 있지만, 함께 행동하고 뭔가 같이 하자!고 하는건 부담스러워. 내 돈을 제대로 쓸지도 모르고.

요: 어쨌든 시위의 주 목적은 달성이 됐잖아.

희: 그렇지. 탄핵이 됐지.

요: 넌 그때 중계 봤어?

희: 나? 집에 있었지 ㅋ 밤에 일하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 직장 사람들이랑 얘기하긴 했어. 뭐,  탄핵 됐네요~ 하고. 이게 무슨 보수의 패배 진보의 승리 이런거라기보단 사실 박근혜 자체에 대한 처벌이잖아. 이건 정치색이 빠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요: 아까 정치보단 여혐이라고 한 것과 비슷하네.

희: 정치가 굉장히 중심이 된 문제긴 한데, 정작 정치 문제를 해결한건 아니라는 거지.

요: 어대문, 투대문 하더니 정말로 문재인이 됐잖아. 근데 뭐 정권 바껴도 별로 기대가 안 되겠네.

희: 뭐, 딱히 없어. 이 사람이 대통령 되어야한다 이런건 없는데 남자친구가 평소에 말한대로 다음 정권은 야당이 된다고 했었지. 남친이 ‘야당이 주거문제에 많이 지원을 하니까 그쪽으로 제도를 활용야겠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

요: 보수시라더니.. 어쨌든 수혜를 받을 생각은 하시네?

희: 어. 그런 식으로 이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제도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 사실 그런 싸움이 나이를 먹을수록 의미가 없는 것 같고. 트럼프 당선 때문에 그게 더 무력하게 느껴지는건지도 모르지. 한때는 어쨌든 다수결의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을 했었어. 사람들이 투표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큼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없고, 정치로 내 인생이 많이 바뀔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그러니까 투표로 뭘 열심히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그냥 투표 안했어? 무개념이네 이런 이미지 때문에 젊은 애들이나 많이 하지, 나이든 사람들은 아닐걸.

요: 그런데도 젊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네, 하는 얘기는 언제나 꾸준히 나왔잖아. 이번에서야 특별히 관심을 좀 갖는 것 같아보이는 느낌?

희: 후드려패기 좋으니까. 이 ‘청년’이란 표현이 말야. 어쨌든 대한민국에선 나이가 깡패잖아? 결국 이들은 나이가 어리고 돈이 없는 약자야. 모두가 집이 가난하단 소리가 아니고, 집이 있어도 부모님이 살아있는 상태에선 그게 내 돈이 아니란 말야.

애들이 돈이 없어. 무슨 유학을 갔다오고 대학을 다녀오고 집이 있고 해도 자기가 쓸 수 있는, 돌릴 수 있는 돈이 아니란 말이야. 결국 부모님한테 받을 돈이 있는애들은 부모님한테 잡혀서 질질 끌리면서 살잖아. 부모님한테 받을 게 있는 애들은 거기에 계속 잡혀있단 말이야. 돈이 없는, ‘내 돈’이 없는 그런 집단이라고 봐.

낮에만 투표하라는 것도 권력 아니야?

희: 난 이것 저것 점수를 내고 총점을 내서 판단을 해서 투표를 했지만. 사실 나는 내가 그 시간에 일어날 수 있을까 싶었어. 이번엔 저녁 여덟시까지였지만, 보통 여섯시까지 투표잖아.

요: 아아, 정말로 그 자고 일어나는 거 말하는거지.

희: 어. 그때 일어나서 출근준비하느라 부랴부랴 바쁘면 못할 수도 있고. 투표를 할 수 있으면 좋은데 나 사실 저번 투표(총선)도 여섯시 다 되어서 이거 되나요? 하면서 갔었거든.

요: 생활 패턴이 일반적으로 주간에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거라 너무 배려를 안해주는건가?

희: 그렇지.

요: 난 굳이 그렇게 평소 업무시간에 맞춰서 이루어져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

희: 맞아. 내가 회사를 그만 둔 이유도, 너무 짜증이 나는게 병원이고 은행이고 그런건 병원 중간에 일 중간에 반차를 내서 가야하고 꼭 이렇잖아. 그게 너무 싫은거야. 낮에 뭔가를 하고. 회사 처음에 그만뒀을 때 그게 제일 좋았거든. 낮에 뭔가 공공기관에 가서 뭘 할 수 있는 거. 투표도 비슷하게 느껴져. 네시 쯤 비척비척 일어나가지고 사람이 좀 못움직이고 그럴수도 있지, 요즘 인터넷 얼마나 좋아졌는데 인터넷으로 투표하면 안되나 하고.

요: 그러니까 낮에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제도라는 거네.

희: 나는 이 투표 시간 자체가, 시스템 자체가 어떤 권력 아닌가? 하는 그런 느낌이 드는데.

요: 그러네, 밤에 활동하는 사람은 아예 배제할 수가 있잖아.

희: 그치, 그 사람들은 완전 배제가 되는거지. 아예 밖에 나올 수 없는 사람도 있을거고. 장애인이라든가. 그런 사람들은 정말 나오는데 힘이 든다고. 아니, 집앞 가까운 초등학교 가서 투표도 못하니?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존나 내가 일어나서 휠체어 끌고 나가야한다고 생각하면, 아니 시발 내가 이거 한다고 대통령이라고 나온 새끼들 장애인 정책에 크게 관심도 없는데 아이고 내 인생 이러면서, 하겠냐고 이걸. 나같아도 안 나가.

그, 동물 해방 그런 논의 있잖아. 종차별론, 거기서 보면 가장 먼저 동물을 소수자성으로  잡는 이유가 자기 말로 부당함을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잖아.

요: 사실상 그런거랑 다름이 없단거지?

희: 그렇지. 투표 안한 세대니 뭐니 하지만, 그게 당연히 아침에 일어나서 마누라가 챙겨주는 밥 먹고 옷 입고 오늘 조금 일찍 일어나서 보람차게 투표하고 출근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야 아니 뭐 이걸 왜 못하지? 왜 못 해? 이럴 수 있겠지. 아유 요즘 이십대들 게을러 빠져서 안된다니까, 투표 안하는 사람들은 안돼 이러면서. 시야차이일 수 있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여.

요: 내 주변엔 널 포함해서 밤낮이 바뀐 사람들이 많은 편이거든. 대학에 온 이후에도 그런 친구들을 굉장히 많이 만났어. 지인 중 한명은 아예 미국에서 멜라토닌 구해서 먹고 있고. 수면장애 문제겪는 사람 많고. 사람마다 생활패턴이 아예 다를 수 있다는걸 고려해야할 것 같은데? 네 말대로 뭐든지 여섯시에 딱 끝나야한다는게 좀 이상하게 느껴지긴 한다.

희: 사실 수면패턴이란 얘기보다는 요즘은 장애를 어디부터 어디까지 규정할것인가, 그런 말이 많잖아. 체력이 힘든 사람, 우울증 겪는 사람이 많고. 이걸 그냥 니가 체력이 너무 작은거야, 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고. ‘인정되기 힘든 장애’에 대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 난 그런것도 장애의 일종이라고 봐. 그런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정책들인것도 나는 좀 아니라고 봐. 눈에 보이지 않고, 말을 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들을 ‘네가 불성실한거야, 네가 게으른거야’ 하고 말하고 있잖아.

요: 신경을 쓰고 있지 않은 것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존감 공격까지 해버리잖아.

희: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도덕관이라는게 있잖아. 사람은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도 누군가 그렇게 해야한다고 정한걸텐데. 얄팍한 정의(저지먼트)야. 니가 뭘 알아?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 다른 문제때문에 그렇게 판단을 할 수 있고, 오해가 있을 수 있고 그런건데. 사람들이 너무 판단하는걸 좋아해. 나도 딱히 다르진 않지만.

모두가 상냥한 세상에서 살고 싶어

요: 망상에 가까워도 되니까 바라는 정책이 있어?

희: ‘법적인 상냥함’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 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상냥한가? 왜냐면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상냥하기 때문에. 이런거. 요즘 사람들 너무 팍팍하다는 게 에너지가 없고 힘들다는 걸 이해하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는데, 누군가의 그런 팍팍함을 감내하고 내 에너지를 소비하는게 너무 많아. 어려운거 아니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한테, 외국 사람들이 스몰토크 하듯이.

사실 난 그 ‘일상적 다정함’의 중요성을 경험해봤거든. 너무 죽고싶고 우울하던 날에 어떤 중년 여성분이 되게 상냥하고 존댓말을 쓰면서 품위있는 모습으로 나를 대해주는데 그게 너무나 위안이 되는거야. 그런 걸 보면서, 아 나의 상냥함이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그러니까 이런 법을 만들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궁금해!

 

그리고 난 효율적이고 여유로운 사회를 원해. 사람들이 자신을 케어할 시간이 워낙 없다보니까 사람들이 미래가 없이 되는대로 살고 있고, 그런 부작용이 장기적으로 쌓이는 문제가 있다고 봐. 그런걸 해소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사회가 한순간에 만들어지진 않을거야. 그래, 흔히들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들 하는데. 저녁이 있는 삶이라고 하면 나는! 난 저녁에 살잖아. 난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딱히 해본적이 없는 게, 난 우리 나라가 너무 좋아.밤에 먹고싶은 거 할 거 많잖아. 난 ‘남들’과 달리 일이 끝나면 새벽이야. 새벽에 뭣 좀 먹고싶고 그런데 새벽에 나오면 아무것도 안 열려 있어. 너무 열받는거야ㅋㅋㅋㅋㅋㅅㅂ 야간노동자 무시하는거 아닌가? 하고.

요: 근데 어떤 사람들은 새벽에 일하는게 비인간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

희: 그거 지가 낮에 사니까!
가게 운영비가 그렇게 많이 들지 않으면, 니 말대로 밤낮으로 다 일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실험을 많이 할텐데. 가게를 운영하고, 투자하고 이러는게 너무 많이 들잖아. 성공하지 않으면 뒤져! 이런 느낌이지. 술장사도 요즘은 진상때문에 거의 망한다고.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니까 이런 서비스업같은데 가서 지랄지랄 하고 있잖아. 그게 사람들이 아, 돈을 물론 벌긴 벌지만 이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이럴 필요까지 있나 하는 생각을 한대. 그리고 실제로도 그래보여. 여유가 있으면 다들 해결이 될거고 그럴텐데. 그러니까, 누구나 여유롭고 다정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사진/은비

글/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