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교대 출신 (예비)대학원생의 1인칭 시점으로 쓰인 글입니다)

대학원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우선, 학부생 시절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음.. 선생님은 꽤나 오랜 시간동안 대학교에 가지 못했어요. 번번이 가고 싶은 대학에 원서를 냈지만 떨어졌기 때문이에요. 마지막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선생님은 동네 돼지 농장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고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답니다. 아버지에게 대학 포기하고 군대 간다고 폭탄선언 해버린 뒤였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서울교대에 원서 넣어놨으니 면접을 보러가라고 했어요. 예전부터 뭔가 ‘남자는 야망이 있어야 해.’라는 성관념에 사로잡혀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대학이었어요. 2년 동안 정시, 수시 포함해서 단 한 번도 원서 접수하지 않은 대학이기도 했고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또는 이제 좀 쉬면서 살고 싶다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겹쳐서 바로 면접을 보러 갔고, 운이 좋게도 합격하게 돼서 다니게 되었답니다. 선생님처럼 늦게 오는 친구들이 많다고 들었었는데, 입학해보니 1년 선배들 포함해서도 나이가 제일 많았고, 3학년 대부분도 또래 친구들이더군요. 이렇게 교대 생활은 시작되었답니다.

그러나 입학하고 단 3주 만에, 자퇴원을 쓰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부분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항상 하는 말이 ‘공부하지 말고 놀아. 공부는 4학년 때 하면 되는거야. 놀아 놀아. 안 놀면 후회한다.’였어요. 항상 놀라고만 했고, 학교 내의 동아리들도 공연 동아리, 운동 동아리가 전부였죠. 교수님을 찾아가서 상담을 했을 때, 다른 학교에 가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지원해 줄 테니 한 번 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여기서부터 제 진정한 교대생활은 시작합니다. 우선, 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었어요. 교육학을 제외한 책도 좀 읽어보고 싶었고, 사회적인 이슈들도 지성인으로서 생각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하고 스스로 할 수 있었던 내용이 참 많은데 왜 할 수 없다고 판단했었는지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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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욕구를 한 번에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았는데, ‘학술 동아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하는 동아리가 학교에 없으니 공부라도 하면서 이런 생각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학교생활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무슨 공부를 해야 할 지도 몰라서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는 친구들의 학회를 청강하는 것만 1달가량 걸렸던 것 같아요. 중동학회, 북한인권학회, 독서모임 등 여러 대학의 여러 모임들을 다녀보았고, 고민하다가 ‘통일교육학회’를 만들어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운이 좋게도 학교에 탈북 대학생을 초청해서 세미나를 하나 열게 되었고, 100여명의 친구들이 찾아오게 되었어요. 온 몸에 전율이 일더군요. 나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게 되었어요. 그 결과 학회도 잘 만들어서 운영하고 1학년들의 그 작은 몸부림은 꽤나 유명세를 타게 되었죠.

그러나 자연스럽게 경험이 없고, 열정만으로 시작했던 학회 활동은 좋은 마무리를 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게 됩니다. ‘학회’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가끔 책 읽는 친구들끼리의 모임으로 변모했죠. 큰 희열을 느꼈던 것만큼 절망도 컸어요. 이상한 소문들은 작은 교대 내에서 더욱 더 이상해지고, ‘일 벌이기 좋아하지만 마무리는 잘 하지 못하는 3수생 오빠’라는 딱지만 붙게 되었죠. 학교생활 그냥 재미가 없었어요. 특히 2학년에 올라가면서 예체능 교과를 중점적으로 배우다 보니까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피아노, 그림 이런 거 정말 잘 못하거든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피아노, 리코더, 신체표현, 체육, 미술 등등 혼돈의 교대 수업...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피아노, 리코더, 신체표현, 체육, 미술 등등 혼돈의 교대 수업…

그렇게 2,3학년 동안 혼돈의 시기를 거치면서 ‘내가 졸업하고 나면, 어차피 전부 사라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후임을 양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를 많이 따르던 후배와 함께 이것 저것을 해보려 했지만, 학교 내의 분위기 때문인지, 제가 후배를 잘 이끌지 못해서인지 결국 그 또한 잘 안되더라구요. 지금에서야 이야기지만 그 때 당시에 4개의 동아리 및 단체(고전 읽기 모임, 통일교육연구학회, 홍보대사, 국사연구회)의 회장을 맡아서 잘 운영을 해보려 했지만 결국 후임을 찾지 못하거나 학교에서 존속하기가 힘들어 하나의 동아리만 남아있게 되었네요. 그러한 고민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하고 싶은 것도 잘 모르겠어서 휴학을 결심했죠. ‘교사는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휴학하고 나서도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할 용기도, 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회사에서 일도 해보고, 친구들도 만나보고, 여러 공청회나 유명한 수업 청강을 하거나 하고, 무엇보다도 게임만 엄청나게 하다가(1000시간 정도?) 첫 번째 학기 휴학을 무기력하게 보냈어요. 이 세상 너무 험난한데, 그래도 애들이 좋으니까 교사를 할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두 번째 휴학에는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연구소에서 인턴을 했어요.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고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유는 내 환경 때문이다.’라는 생각과 꿈을 생각하면서 연구소에 갔어요. 원래 꿈은 무조건 연구직이었거든요. 6개월 동안 대학원을 꿈꾸는 친구들을 비롯해 석, 박사 선생님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해 보았어요. 사회학, 지리학 같은 과목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리로 대학원을 갈까도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지요.

특히 철거민 마을에 주기적으로 찾아가고, 시위 현장, 청소년 운동 등 다양한 현장을 찾아갔을 때의 희열은 잊어지지가 않네요. 서울 생활 6년 동안 18번의 이사를 다니고, 대략 10여개의 아르바이트를 해보아서 충분히 세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을 했던 저 자신이 한심하더군요. 여러 계층의 사회 운동가, 빈민, 노인, 청소년 계층 등 일반적으로 만나보지 못했던 분들과 대화를 하고나서 두려움이 더 커졌어요. 내가 술 마시면서 세상을 낭비하고 있을 때, 생존을 위해, 혹은 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보니 한없이 작아지더군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러한 충격이 더 많아질까? 이러한 충격을 내가 이겨낼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고 있던 친구들, 지도해주시던 석, 박사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한없이 작아졌죠. 석, 박사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내 나이 또래의, 아니 더 어린 친구들이 최소한 자신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어떻게 자신을 성장시키고 싶은지’에 대해서 생각을 가지고 그 길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공부랑 전혀 상관없는 리코더 불고 체조하면서 희희낙락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자신의 전공이 무엇인지, 그 전공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배워나갈 것인지 계획이 있다는 부분이 참 부러웠어요. 저는 미래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라는 것이 없었거든요.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면 어떻게든 길이 보인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기만 했었죠. 요즘 말로 자기 효능감이 바닥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더욱 더 불안했어요. 걱정도 되고, 무섭기도 하고,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고. 미쳐버리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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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힘들었던 점은 연구소 동기들, 선생님들 모두 저를 보고 부럽다고 하는 거였어요. 내 이런 삶이 부럽대요. 보장된 진로, 졸업만 하면 최소한 교편은 잡을 수 있다는 안정성, 더 나아가 정년보장. 특히 선생님들은 제가 연구직과 교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으면 무조건 교직으로 가야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곤 했죠. 그런데 학교 동기들과 이야기하면 또 달라요. 그 쪽에서도 제가 부럽다고 하네요. 4년 동안 다른 경험 못해보고 졸업한 자신이 답답하다나요? 저는 그렇게 매끈한 길을 걸은 동기들이 더 부러웠는데 말이죠. 그래서 하나도 모르겠었어요. 정말 몰라요. 아무것도. 참 답답한 선생님이죠? 선생님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이러한 고민 아래, “우선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전에 최소한의 안정성은 잡고, 범위가 넓은 교육학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석사 시절’이라도 차분히 찾아가보면서 느리게 시작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교육학을 기본으로 해서 사회학을 하든, 지리학을 하든, 현재는 고민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우선 무엇이든지 공부해 보려고요. 그냥, 재미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불안해서 다른 결단을 할 수가 없어요. 먹고사니즘에서 완벽하게 해방이 된다면 또 모르겠지만 아직 노예거든요. 대학원에 가도 교수가 될지, 다시 교사가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흐름에 몸을 맡기고 그냥 살아가는 거예요. 결국, 달라진 건 없죠. 네. 그게 저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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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꿈 이야기. 듣고 보면 허무해요. 한심하기도 하고요. 꿈이 없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소소하게 좋아하는 공부하면서 그것으로 최소한 밥벌이는 하고 살 수 있는 삶. 그 삶을 위해서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이러한 사람이 되고 싶을 수도, 끔찍이 싫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개복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