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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봄볕이 우릴 감싸 안고, 장미가 필 정도로 따뜻한 계절이지만 청년 고용은 여전히 겨울이다. 2016년 3월 11.8%이던 청년실업률은 1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11.3%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체 취업자 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률이 그대로라는 사실이 더욱 가슴 아프다.

노동시장에 들어가지 못한 청년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 들어간 청년들도 겨울이다. 특히, 대학입학률이 80%에 육박하는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은, 고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고졸 취업자들에겐 여전히 겨울이다.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기업에 취업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 청년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생존을 꿈꾸기 마련이다.

중소기업과 디자인 회사를 모두 경험해본 고졸 출신 디자이너 이세윤 (남, 27) 도 그런 청년 중 하나다.

일하는 평범한 20대의 여가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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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모 (이하 구) : 요즘에 진짜 일만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럼 일 안 하고 쉴 때는 뭐해?

박리세윤 (이하 박) : 일은 많이 해도 요즘은 야근을 거의 안 하니까 보통 퇴근하고 집에 가면 게임하거나 유튜브 돌아다니고, 기사 읽고, 영화 보고 그래. 거의 컴퓨터만 주구장창한다고 보면 돼. 아무래도 내가 영상디자이너이니까 모션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많이 찾아보거나, 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영상을 봐. 여자친구도 일이 있고, 집이 좀 멀어서 데이트는 주말에만 해. 여자친구랑 같이 좋은 카페를 찾아가거나, 그냥 동네 걷거나 노트북으로 같이 영화나 드라마 보거나 그래.

구 : 자주 가는 데가 있어?

박 : 인천 부평 공원 근처에 조그마한 까페 하나 있는데, 거기를 자주 가. 카페 디자인이 되게 아기자기하고 전반적으로 편안한 분위기라서 좋아해.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의 식당이나 카페 하나가 있으면 좋겠어. 근데 그런 느낌 나는,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나 카페는 보통 프랜차이즈보다 비싸. 근데 내 소득 수준이 그리 높지 않으니까 그런 곳을 가기는 힘들더라.

살아남는 게 꿈인 시대

구 : 되게 재미없어 보이네. 잔잔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고. 어릴 때부터 디자이너가 하고 싶었어?

박 : 꿈은 없었어. 그냥 중학교 때부터 주구장창 낙서만 했어. 낙서를 너무 많이 해서 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로 부르실 정도였어. 그냥 난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몰라서 안 했고, 낙서는 재밌어서 좋았거든. 그렇게 낙서만 끄적이다가 이렇게 디자이너까지 된 거 같아. 굳이 당시의 꿈을 말하자면, 돈 많이 벌어서 사회공헌도 하고 유명해지는 게 꿈이었어.

구 : 지금의 꿈은?

박 : 지금은 그냥 먹고사는 게 꿈이야. 생존이 최고야. 현실적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바라기보다는, 그냥 생존이 우선이야. 하고 싶은 일로 먹고살면 감지덕지야. 단순하지?

내가 바라는 어떤 이상적 삶의 모습보단 당장 생존이 중요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어떤 업적을 이루기보다는 그냥 생존하는 게 꿈이야. 생존이 꿈이 됐어.

어쨌거나 좋아하는 디자인 기술로 먹고살고 있으니까 나는 양반이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고, 밥을 먹고 살까? 한 해에 10명도 안 뽑는 언론사의 시험에 천 명이 몰려드는 판국이잖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꿈은 생존과 자립이겠지. 근데, 가끔은 그게 이룰 수 없는 이상향 같은 느낌도 있어.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에 감사하는 세상

구 : 씁쓸하네. 요즘에 그렇게 먹고 살기 어려워?

박 : 월급을 받으니까 살 수 있지. 그런데, 내가 사는 곳의 월세나 전세가 올라가는 속도가 내 월급 올라가는 속도보다 빨라. 지금이야 괜찮은데 나중에는 월세 내면 거의 남는 게 없을 거 같아. 그런 거 생각하면 너무 갑갑해. 어떻게 탈출할 방안이 떠오르지 않아.

아, 하나 더 있다. 주변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살아. 지인이 세신사야. 근데 목욕탕이 월급에서 수수료 명목으로 30%를 떼고, 보증금도 가져가. 온종일 물에서 일하니까 물독이라는 게 오를 정도로 피부가 나빠지고, 격일제로 근무하는데 4대 보험이나 복지 따위는 꿈도 못 꾸는 상황이야. 이런 거 생각하면 또 갑갑해.

법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노동법이랑 관련된 책 한두 권만 읽어도 세상에 불합리한 게 수두룩하다는 걸 알게 되더라. 근데 더 큰 문제는 내 가족, 친구, 지인들 모두 그런 환경에서 일한다는 거야. 법의 사각지대에서 일하는 셈인 거고, 노동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지. 불법적으로 일을 시켜도 노동법은 다 피해가고, 밤샘근무나 야근에 대한 보상은 적거나 없고, 그걸 지켜보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도 없어. 무력해.

구 : 그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치가 있는 거잖아.

박 : 정부나 정치권이 해결할 거란 믿음은 없어. 아, 물론 힘이 있으니까 마음을 먹으면 할 수야 있겠지.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할 마음이 있을까? 그리고 이미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더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체계인데 어떻게 바뀔까 싶어. 세상은 기득권에 있는 누군가가 크게 소리쳐야 겨우 바뀔까 말까 하잖아. 그런데 기득권 바깥에 있는 사람이 소리친다고 세상이 바뀔까? 아니 올 시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문제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어. 또, 그런 문제에 처해있는 사람들도 거기에 적응하니까 막상 어떻게 바꿀 의지도 없어져. 이런 문제를 고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제 기능을 못한다고 생각해. 왜냐고? 돈이 안 되잖아. 사람들이 뉴스를 보는 세상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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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 아까부터 생존에 대해 처절하게 이야기하는데, 당장 살아가는 데에 있어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야?

박 : 일단 집 문제가 제일 커. 인간이라는 게 현상유지를 위해 사는 건 아니잖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데 주거가 가장 큰 장애물이야. 지금은 부모님이랑 반전세로 살고 있는데, 나중에 독립할 때 지금 사는 집에서, 나아가 서울에서 쫓겨날 거 같아. 아니,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생각해.

근데 지금도 출퇴근에 1시간이나 걸리는데, 경기도로 가면 출퇴근에 2시간 넘게 걸리겠지. 그러면 내 일상이 너무 파괴되는 거 같아. 서울의 집값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가니까 어쩔 수 없이 서울 바깥에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게 사는 게 어쩔 수 없는 건데, 지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미래를 생각해서 아끼고 저축하는데, 근데도 불구하고 주거를 생각하면 진짜 숨이 턱턱 막혀.

구 : 그럼 이거 관련해서 바라는 정책은 없어?

박 : 내가 주거 문제가 답답하다고 말했지만, 주거 정책을 바라지는 않아. 주거 문제는 너무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니까 쉽게 바뀔 거 같지 않아. 난 기본적으로 노동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어. 지금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불릴 정도로 최악인 노동환경인데, 여기서 더 나빠지면 너랑 나 같은 청년들은, 을들은 아예 숨도 못 쉴 거야. 삶의 터전인 일자리가 그렇게 기울어지면 힘없는 을이 견딜 수 없는 세상이 되는 거야.

부당해고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보여줘. 기업들이 부당해고하는 건 부당해고 때문에 벌금을 내도 손해가 아니니까 하는 거잖아. 대기업은 그냥 부당해고 막 한 다음에 법정으로 끌고 가서 버티면 되는 거고, 작은 기업에서 부당해고가 일어나면 애초에 신고할 수도 없는 환경이야. 그냥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는 환경이란 거야.

생각해봐. 지금도 얼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이기에 야근하는 사람들이 야근수당 못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는 걸 좋은 환경이라 그러겠냐. 여기서 더 망가지면 안 돼.

2명이 할 일을 2명이 하는, 저녁이 있는 삶

구 : 박근혜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으면 세상이 좋게 바뀌었을까?

박 :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야. 정권 하나 바뀌었다고 노동법이 지켜질까?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행동해야 바뀌는 거잖아. 민주 정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민주정부가 끝나자마자 화장실 앞에서 벽보고 일하는 노동자가 생겼어. 크게 달라졌을 거로 생각하지 않아.

물론 대통령이 바뀌었으면 몇몇 사람에게 조금은 나아졌을 거로 생각해. 박근혜 정부는 너무 비인간적이야. 장애인 활동보조인에게 주는 수당을 중복이라면서 그냥 없애버렸어. 바닥을 치는 약자들을 땅을 파서 묻어버린 거잖아. 서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는 사람이었으면 지금보다 나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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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 어떤 정책을 가진 후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할 거 같아?

박 : 노동법을 지키게 만드는 정책을 가져오는 사람이면 뽑는다. 기울어진 노동환경을 바로 세우려는 후보면 바로 뽑을 거야. 불가능해 보여도 야근방지법, 야근수당 제대로 주기, 임금체납 없애기 이렇게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후보면 바로 뽑을 거야.

일자리 만드는 대통령? 너무 위선 같아. 거의 뭐 무상복지 같은 느낌이야. 앞서 대통령들이 일자리 만들겠다고 한 게 결국 4대강이랑 창조경제잖아. 모두가 원하는 일자리를 가질 수는 없고, 만들 수도 없어. 차라리 누군가가 실패했을 때 가게 되는, 사회의 마지노선에 있는 일자리의 수준이 높아졌으면 좋겠어. 지금은 너무 비인간적이거든. 미친 듯이 꿈을 위해 노력했을 때 실패할 수도 있잖아. 그렇게 되어서 가는 사회의 마지노선 같은 일자리의 수준이 인간적인 일자리였으면 좋겠어.

그럼 의문이 있어. 왜 저숙련 노동자는 안 좋은 곳에 가야 하고, 고강도 노동을 해야 할까? 어쨌거나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하고, 사회에서 필요한 일자리인데 왜 그 사람들은 행복하면 안 되고, 항상 나쁜 노동환경에 있어야 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면 안 돼? 저숙련 일자리는 왜 항상 나빠야 할까?

모든 문제는 3명이 할 일을 2명이 해서 생기는 거 같아. 일자리를 강제로 만드는 것보다 2명이 할 일을 2명이 했으면 좋겠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야. 6시, 7시 이후가 있는 삶을 위해선 그래야 해. 생각해보자. 경기도에서 출퇴근할 때, 야근을 하면 8시고, 집에 가면 10시가 넘어. 그럼 당연히 삶의 질이 바닥일 거야. 그런 사람들한테 월 3백, 4백을 주자는 게 아니야. 그냥 최소한 인간적으로 살 수 있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끔 하자는 거야. 이런 방향이랑 조금이라도 맞는 대통령을 뽑을 거야.

애플이 부당해고를 막진 못해도, 정치는 막을 수 있다

구 : 결국, 노동이 정상화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거네?

박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득이 낮고, 저숙련 고강도 일을 하고 있으면서 통근 시간도 2~3시간 걸리고 야근도 엄청 해서 저녁이 없는 사람들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세상.

왜냐고? 내 가족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고, 나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저게 내 삶일 거 같으니까, 내 삶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바라는 거야.

구 : 저게 가능하려나?

박 : 일단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봐. 이런 문제점을 알고 해결하려는 활동가나 전문가들이 정치인이 될 수가 없어. 정치하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는데, 어떻게 하겠어. 지역구는 조직이고, 조직은 곧 돈이니까 힘들고 비례대표는 정당에서 나눠 먹기 같아.

결국, 뜻이 있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진입하기 너무 어려워.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고, 조직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데 과연 그런 사람들이 나와 같은 삶을 알까? 사장이 갑자기 갑질하고, 회사를 좌지우지하고 야근수당 떼먹고 퇴근 직전에 모든 프로젝트를 갈아엎고 자정까지 해놓으라는 소리를 듣는 삶을 알까?

기성정치권은 삶을 개선하는 게 아니라 집권이 목표가 됐어. 그런 사람들 말고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그런 시스템이 아니야. 혹자는 청년비례 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어. 근데 생각해봐. 30대 중반이랑 40대가 청년비례라고 하는 게 말이 돼?

구 : 정치가 노동을 정상화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거네?

박 : 역으로 물어볼게. 정치 말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있나? 아이폰은 생활을 바꾼 거지, 세상을 바꾼 건 아니야. 기술은 삶을 편하게 하지만, 사회의 불합리함과 불평등함을 바꾸진 못해. 아이폰이 부당해고된 사람을 살릴 순 없잖아.

국회 청소노동자들 직접 고용됐잖아. 사회의 불합리한 행태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밖에 없는 거 같아. 정치인들이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결국 답은 정치야.

글/구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