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공부 지겹게 했는데, 또 공부한다고?

대한민국의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이른바 지옥 같다는 대학 입시를 거친다. 지겹도록 EB* 영어 지문을 달달 외우고, 매일 같이 수학 공식을 머릿속에 욱여넣으며 기출 문제를 풀고, 문학과 비문학을 넘나드는 언어적 능력을 키우면서 2개에서 4개에 이르는 선택 과목을 공부하는, 써놓고 보니 정말 지옥같은 생활을 한다. 이 짓을 3년(혹은 그 이상) 동안 한다! 이 순간에도 E*S 더미에 파묻혀 대학 이외의 자신의 미래에 대한 작은 고민도 할 틈 없이 입시에 몰두할 이 나라의 수험생들에게 잠시 경의를 표하자. 얼마나 성실하게 입시를 준비하든지 간에, 수험생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시간들을 견디고 대학에 왔지만, 다시 돌아가서 공부하라고 한다면 누군가 억만금을 준다 하더라도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70%가 넘는 대학진학률이 잘 보여주듯이 한국에서 입시 준비란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엿한 인재(人材)가 되기 위해서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공부 = 입시공부’라는 등식은 숨을 쉬듯이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지 않을까.

입시지옥을 보낼, 그리고 보낸 분들에게 경의를...

입시지옥을 보낼, 그리고 보낸 분들에게 경의를…

자, 이제 대학에 입학했다! 어른들이 약속하듯이 대학에 가면 그동안 못 했던 연애도 하고, 취미 생활도 하고, 친구도 많이 만나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고, 뭐가 되었던 고등학생 때 꿈꾸던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대학생이 되면 적어도 수험생 때와 같은 공부라는 것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인문사회과학계열의 대학생들이 전공 수업에서 하는 일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1 교수님 말씀 모조리 받아쓰기 1-2 그것을 모두 외워 시험 종이에 그대로 적어내는 것

혹은

2-1 교수님이 읽어오라는 책, 논문 등 읽기 2-2 짧게는 1장, 길게는 10장이 넘는 글을 쓰는 것

5개의 보기에서 정답을 찍고, 주어진 내용을 외우는 능력으로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당황하는 대학 수업은 당연히 2번이다. 물론 1번이라고 당황스럽지 않은 건 아니다. 2번의 방식과 관련해서 읽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되는데, 2-2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교수님이 내주신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써오라는데 ‘내 생각’은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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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을 성실히 해도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혼란이 생긴다. 고등학생 때는 ‘노오력’하는 대로 성적이 나오고, 성실한 사람이 보답을 받으며, 하라는 것만 열심히 하면 결과는 따라온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러니 얌전히 앉아서 시키는 공부라도 제대로 하라는 거다. 내용과 방법을 떠나 한국 학생들에게 공부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튀지 않고 자리에 앉아 주어진 어떤 것을 머릿속에 이해를 하든지 외우든 집어넣는 것이다. 12년의 교육 과정이 어디 가겠는가.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면 ‘공부가 무엇인가’하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다른 건 몰라도 대학 입학 전까지 해 오던 것이 공부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와 닿는다.

네, 우리는 ‘공부’가 하고 싶어요.

인문사회과학계열 대학생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사람과 상황맥락에 따라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나는 이 말 속에서 왠지 일종의 상실감과 해탈이 느껴진다. 내 삶이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 상실감, 조금만 실수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벼랑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한국 청년들의 의식, 무의식 속에 자리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혹은 이미 승자 없는 치열한 경쟁과 눈치싸움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상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하위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생리적 욕구, 즉 생존의 욕구조차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위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 다섯 단계 중에서, 한국 청년들은 가장 아래의 ‘생존의 욕구’‘안전의 욕구’조차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다섯 개의 욕구는 계층적으로 구성되어있고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상위 욕구를 채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사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을 느끼는 것(안정의 욕구), 다른 구성원에게 존중 받는 것(존경의 욕구), 자아를 실현하는 것(자아실현의 욕구)은 생존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한국 청년들이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하는 것은 생존과 안전도 보장받지 못한 사회에서 사치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그토록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면서 안정적이라고 생각되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걸지도.

이런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전공 공부 따위는 빨리 제쳐두고 동아리, 공모전, 자격증, 인턴 경험 쌓아서 취직하는 게 효도하는 걸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또 공부를 한다고?”라는 질문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이때까지 해왔던 입시 공부가 주는 지겨움, 답답함, 스트레스의 기억은 공부를 한다는 별종(?)들이 왜 그런 짓(?)을 굳이 나서서 하려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할 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은 공부를 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 자체를 가진 자들의 여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취직이 안 되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공부밖에 해보지 않은 범생이들의 용기 없는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ㄱ..공부가..제일 쉬웠.....

ㄱ..공부가..제일 쉬웠…..

앞으로 연재될 10개의 이야기는 투박하고 제각각이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공부인걸 찾아낸 열 명이 기록한 자기고백 같은 글이다. 대학원 진학 과정, 학문/전공 그 자체, 진학을 결심하기까지의 고민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았다. 글의 어조나 내용, 하고 싶은 말에 일관성이 없을 수도 있고 노잼일 수도, 청승을 떨 수도, 잘난 체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특별히 희망이 샘솟고 꿈을 키워주는 아름다운 글이 아닐 수도 있다. 팍팍하고 살기 힘든 나라에서 인문사회과학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썼으니 글의 분위기가 다소 우울할 수도 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 확신이 들지 않는 마음, 보이지 않는 안개 같은 미래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비슷한 고민을 했던, 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우리의 글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부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