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벽장이었다

‘벽장’이라는 말이 있다.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주변에 (거의) 커밍아웃하지 않고, 그와 관련된 커뮤니티 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 상태, 혹은 그러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거의)라는 말이 붙었듯, ‘벽장’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정말 스스로 인지와 정체화만 거쳤을 뿐, 세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상태를 벽장이라 부르기도 하고, 누군가는 커뮤니티나 활동을 하지 않는 상황만을 벽장이라 말하기도 한다. 누구의 기준을 쓰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벽장이었다.

나에게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공통점으로 삼는 친구는 몇 없었다. 그나마도 친구가 알고 보니 성소수자였던 경우가 전부였다. 벽장 안에서만 있을 때야 그것이 불편하다는 인식도 없었다. 내가 나고 자란 전북에서 활성화된 성소수자 단체를 알지 못했고, 단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 모든 게 휴학 중 놀기 위해 올라갔던 서울에서 바뀌었다. 한 1년을 성소수자만 만나고 살았다. 만나는 사람 중 누구도, 내 옷차림, 연애 상대의 성별, 정체성을 가지고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건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 결심했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휴학이 있으면 복학이 있었다. 나는 전주에 있는 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그곳에서 내가 아는 성소수자는 다섯 손가락을 넘기지 못했다. 서울에서 살며 알게 된 사람들은 80% 이상이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정체화하고, 나에게 말해 준 사람이었다. 너무나도 균형이 맞지 않았다. 밸붕. 나는 복학을 두려워하며 마지막 휴학 기간을 잠으로 보냈고, 그러다 일어나서 결심했다. 아, 그래! 성소수자 동아리를 만들면 되지! 그것이 시작이었다.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 파는 거지 뭐 음화하하하

원래 목마른 자가 우물 파는 거지 뭐 음화하하하

보통 동아리라는 건 사람의 모임이고, 사람이 모인 뒤에 동아리가 생기지, 동아리부터 만든 뒤에 사람을 모으지는 않는다. 회원모집을 한다 해도, 몇 명의 사람은 모인 후에 모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마련이다. 나는 이 당연한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을 모으는 것보다 먼저, 이름을 지었다. 열린문이라는 동아리의 이름을 짓는데 하루를 소비하고 나서, 구글 계정을 만들었다. 또한,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 프로필 사진으로 저작권이 자유로운 편인 사진을 달고, 트위터 바이오를 수정하고, 일단 눈에 보이는 모든 성소수자 동아리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했다. 그리고 회원을 모집한다는 내용에 이메일 주소가 첨부된 트윗을 올리고, 그것을 본계1)편집자 주: 트위터에서 주로 사용하는 계정을 일컫는 말으로 알티 했다. 내 본계는 휴학 중 만난 사람들 덕분에 퀴어계2)편집자 주: 아웃팅을 고려했을 때, 퀴어임을 밝히는 계정가 되어 있었고, 그들이 리트윗을 해 주었다. 또한 내가 스팸 멘션이라도 보낼 기세로 한참 팔로우하였던 계정들이 맞팔을 시작해 주었다. 2016년 7월 중순의 일이다. 뭐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전북대 학생뿐만 아니라, 전북권 거주 성소수자도 받는다고 했는데 누군가는 오겠지. 전라북도에 퀴어가 그렇게 없진 않겠지? 트윗에 적은 것처럼, 열린문은, 나는,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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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열흘간 찔러 보는 문의 메일 하나 오지 않았다. 초조했다. 이렇게 망하는 걸까? 사실 모임이 망하는 것은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저 정도로 전라북도에 퀴어가 없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아니면 내가 별로인가? 내 트윗이 이상한가? 반동성애 모임의 스파이처럼 보이나? 성소수자 지인들을 붙잡고 계속 물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그들 또한 뾰족한 답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트위터 이외의 공간에서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했으니, 홍보할 다른 방법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쯤, 몇 명에게서 문의가 왔다. 노트북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답장을 작성했다. 회원이 몇 명쯤 되냐는 질문에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던 것 같다. 아직 저밖에 없습니다……. 다행히도 그분은 괜찮다고 하셨다. 사람 하나 없는, 정확히는 하나밖에 없는 괴뢰단체 같은 동아리의 무엇을 믿으신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괜찮다고 하셨다. 나는 아직 서울에 있었기에, 내가 전북으로 돌아간 후, 학교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드디어!!!!!

드디어!!!!!

열린문이라는 이름을 만들고, 첫 (예비)회원을 만나기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 생긴 것은 구글 계정, 트위터 계정, 그리고 카카오톡이 아닌 다른 메신저 앱 계정이었다. 그동안 연락을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10명을 기대했는데 5명이 연락을 줘서 거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퀴어계로 쓰는 트위터를 통해 홍보를 했다고 해도, 수도권 사람들이 가득한 타임라인에서 지방대 동아리를 홍보하기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첫 (예비)회원조차 트위터를 직접 보고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유일한 홍보 수단인 트위터조차 올릴 말이 떨어져, 업로드가 없던 것이 한참이었다.

업로드할 게 없으니 홍보할 수가 없고, 홍보하지 않으니 사람이 오지 않았다. 어딘가와 연결될 필요성을 느꼈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3)이하 QUV였다. 그러나 두 명뿐이라고 말하는 과정도 너무 부끄러웠고, 회의는 어디서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메일을 보내고, 카카오톡을 통해 대화를 나눴지만, 아직은 QUV에 가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역시 사람이 필요했다. 그렇게 조금 찔러보기만 하는 사이, 메일이 왔다. 메일이 오고, 디엠4)DM, Direct Message의 준말이 왔다. 갑자기 서너 명이 몰렸고,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제야 성소수자인 다른 친구에게도 제대로 연락할 생각이 들었다. 팀플로 만난 학우 한 명도 동아리로 납치했다. 6~8 명. 조금 민망하지만, 그래도 회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첫 회의는 조마조마했다. 공간을 빌리는 과정에서 너무 시선이 신경 쓰인다고 나가시면 어떡하지? 막상 만나니 한 공간에 서로 엑스인 사람들이 있어서 감정이 상하면? 누가 언피씨5)편집자 주: 피씨란,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의 줄임말. 언피씨란 피씨의 반대어이다한 말을 하면서 회의가 망하면 어쩌지? 지나고 보니 부질없는 고민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첫 모임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이 상당히 무서웠다. 또한, 혹시 모를 아웃팅도. 우리는 다른 곳과 아예 분리된, 룸카페나 세미나실 같은 공간에서 닉네임과 본명을 공개하고, 정체성을 이야기했다. 전북에서는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아니, 서울 이외의 공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경험이 처음인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지방에서 벽장 밖을 상상한다는 것

전북 지역에서만 그러하든, 혹은 계속 그렇게 지냈든, 벽장(에 가까운 방식)으로 살아온 기간이 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벽장은 열린문이라는 뜻으로 열린문이라는 이름을 지었지만, 그 열린문에 들어온 사람들 중 대다수는 나처럼 벽장이었고, 나처럼 유리벽장6)커뮤니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외모 등이 스테레오 타입에 속하는 퀴어이기 때문에 “티가 난다”는 말을 듣는 퀴어인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늘면서, 간혹 서울에서 종로, 이태원, 홍대 등에 자주 가는 퀴어들도 나타났고, 지역에서 나름의 커뮤니티에 속해 있는 퀴어들도 가입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학교에서, 전주에서, 전북에서 오픈리로 지내는 사람은 찾기 어려웠다.

사실, 지방이 더 보수적이고, 퀴어에게 위험하다는 건, 강조하는 것조차 우스울 만큼 당연한 현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향이라서 아는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는 사람이 적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특유의 보수적인 분위기와 시선이 신경 쓰이는 일도 잦다. 그만큼 가시화도 덜 되어 있기 때문에, 본인 입으로 직접 말하거나, 심각한 아웃팅을 당하기 전까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너무 자연스럽게, 벽장 밖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도 많아진다. 열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이 아니라 벽이 되어 버리고, 그 벽장 안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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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못된 게 아닌 걸 알면서도

물론 벽장 안에 남아 있는 모두가, 그 바깥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상황 때문에 나오지 못하는 케이스, 나왔다가 인간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돌아간 케이스 등, 여러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의 수조차 알지 못할 만큼, 지방에는 퀴어들의 커뮤니티가 너무 적고, 스스로가 퀴어임을 인지하기도 어려울 만큼,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중심주의에 찌든 이야기가 많이 오고 간다. 굳이 왜 이렇게 척박한 곳에서 동아리를 만들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지만, 일단 시작하였으니 힘 닿는 데까지는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문을 열고 나오든 말든, 문이 열릴 수 있다는 걸, 문 밖에 우리가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해당 글의 전북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열린문’은 전북대학교 소속뿐만 아니라 전북권에 거주하는 성소수자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퀴어는 열린문!
@OpenDoor_jb

편집 및 교정/ 이점
글/ 봉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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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자 주: 트위터에서 주로 사용하는 계정을 일컫는 말
2. 편집자 주: 아웃팅을 고려했을 때, 퀴어임을 밝히는 계정
3. 이하 QUV
4. DM, Direct Message의 준말
5. 편집자 주: 피씨란, 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의 줄임말. 언피씨란 피씨의 반대어이다
6. 커뮤니티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외모 등이 스테레오 타입에 속하는 퀴어이기 때문에 “티가 난다”는 말을 듣는 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