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찾고 있어, 어딘가에 있을 너의 모습을
교차로에서도, 꿈 속에서도
이런 곳에 있을 리 없건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속 5센티미터>의 주제를 관통하는 OST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 의 가사이다. 예전에는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존재였지만, 우리의 길이 도중에 서로 갈라져버려, 이제는 다시는 볼 수 없음의 막막함. 나는 <너의 이름은>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여러 전작들, 특히 <초속 5센티미터>를 교묘하게 변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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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심상이 있다. <별의 목소리><초속 5센티미터>에서 저 우주를 수십 년이고 여행하는 우주선,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우주의 여행자 혜성.

“그것은 아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독한 여행일 것이다.
캄캄한 어둠 속을 그저 나아갈 뿐,
수소 원자 몇 개조차도 별로 만나는 일 없는 여행…”

그리고 바쁘게 흘러가는 대도시, 그 속을 해메는 주인공, 그 도시를 가로지르며 어디론가 향하는 전철이 있다. 이 사람들로 가득찬 빌딩 숲은 주인공에게는 우주와도 같다. 군중 속의 고독. 주인공은 우주를 나아가는 로켓처럼 광활한 공간 속을 고독하게 여행한다. 어쩌면 이 공간 어딘가에는 그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했던 어떤 존재가 있으리라. 허나 그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오래 전에 잊어버린데다, 이 거대한 우주에서 그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 찾기란 마치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듯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그 사실에 막막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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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에서 이라는 키워드 또한 이 고독의 여행의 연장선상에 있다. 때로는 진짜 생생하고 엄청난 이야기를 가진 꿈을 꿀 때가 있다. 너무 생생해서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고, 잊어선 안 될 것 같은 그런 꿈. 그러나 꿈이 다들 그렇듯 그 당시에는 아무리 생생해도 곧 순식간에 기억에서 사라져 버려 결국엔 뭔가 엄청난 꿈을 꾼 적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 알게 될 뿐, 그게 무슨 내용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게 되어 버리고 만다. 1)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전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이러한 꿈을 소재로 한 바 있다. 영화는 바쁜 삶을 살며 오래 전에 기억의 더미 속에 덮여버렸던 꿈들 중에, 나에게 정말 소중했던 무언가, 반드시 기억해내야 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던진다.

타키와 미츠하는 엄청난 일을 겪게 되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손바닥에 이름을 적어 가면서까지 안간힘을 쓰지만, 끝없이 새어 나가는 기억들을 어찌하지 못해 결국 애타게 부르던 서로의 이름조차 잊어버리고 세월 속에 묻어버린 채 바쁜 사회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살아가게 된다. 이제 이 고독의 여행이 펼쳐지는 공간은 물리적으로 거대한 도시뿐 아니라, 거대하게 쌓여 버린 기억의 더미이기도 하다. 문득 보게 되는 머리끈 하나, 듣게 되는 이름 하나에 멈칫멈칫하지만, 결국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해메는 방황.

영화를 두 번 이상 본다면 바로 알아차리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지들을 맨 처음에 제시해서 처음엔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후반부에 가서야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는 이런 기법은 사실 여러 영화들에서 드물지 않게 사용된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에서 이 구조가 갖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관객들은 초반에 잠깐 봤던 그 뜬금없는 이미지들을 마치 꿈에서 봤던 양 잊어버렸다가, 후반부에서야 그 이미지들과 재회하고 의미를 깨닫게 된다. 타키가 지하철에서 미츠하를 처음 본 날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 전혀 알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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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더 대놓고 강조해서 모두가 알고 있는 핵심 키워드가 있으니 아시다시피 바로 ‘이어짐’이다. 무스비, 끈, 전해져 내려옴. 영화에서는 미닫이문이 열리는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것도 문을 세로면에서 보아 문을 경계로 좌우가 나누어지는 독특한 구도로. 미츠하의 시골집 미닫이문이든, 타키가 타고 내리는 도쿄 지하철의 슬라이딩 도어든, 미닫이문의 열림은 곧 나뉘어진 두 공간의 이어짐을 뜻할 것이다. 두 사람은 모종의 초현실적인 현상으로 둘의 몸이 뒤바뀌면서 ‘이어진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말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에서 남녀의 헤어짐은, 그들 스스로의 의지라기보다는 마치 운명이 그들의 길을 갈라 놓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파조차 수 년이 걸려야 닿을 수 있는 거리로 갈라져버리는 <별의 목소리>. 다른 평행우주에 갇혀버리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시간에 파묻혀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초속 5센티미터>. 그리고 3년의 세월, 삶과 죽음의 벽으로 가로막히게 되는 <너의 이름은> 에서, 운명은 계속해서 둘 사이를 찢어 놓는다. 그러나 <너의 이름은>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그 찢어짐을 되잇고 다시 만나게 될 수 있는 개념인 ‘무스비’를 제시한다. 영화의 중반 이후 미츠하와 타키의 쉼 없는 뜀박질은 결국 계속해서 갈라지는 운명을 다시 이어 놓는,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갈라져버린 아픈 운명을 치유하고자 하는 무스비의 과정이다.

영화에 나오는 혜성의 이름은 ‘티아마트’이다. 티아마트는 수메르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 등에 나오는 신의 이름으로, 때때로 매우 사악한 신으로 묘사된다. 신화에서 마르두크는 티아마트를 죽인 후, 그 시체를 ‘둘로 찢어서’ 하늘과 대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혜성은 ‘둘로 쪼개져’ 운석이 됨으로서 두 남녀의 이어짐을 갈라 놓는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갈라져버린 그들을 만나게 해준 것은 미야미즈 가문에서 ‘이어져 내려온’ 특별한 꿈이고, 서로 다른 두 시간대에서 사라진 기억을 되살려주는 매개체는 3년 전에 미츠하가 전해 주었던 ‘끈’이며, 그렇게 낮과 밤을 잇는 황혼의 찰나 그들은 마침내 미야미즈 가문의 사당에서 이어지게 된다. 이렇게 영화는 갈라선 운명과 이를 다시 이으려는 끝없는 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초속 5센티미터>를 연상한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초속 5센티미터>에서 바로 옆을 스쳐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만나지 못한 남녀는, 이 ‘이어짐’이라는 요소를 통해 <너의 이름은>에서 끝내 만나게 되는 것이다.

 

글/ 고양이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전작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이러한 꿈을 소재로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