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라 랜드』는 좋은 영화입니다. 『라라 랜드』를 왜 제가 좋은 영화라 생각하는지 답하기 위하여, 그 끝에 제기되어야 할 물음은 무엇이 영화로 하여금 영화이게 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영화란 하나의 장르이며, 그것은 영상(과 음향의 결합)이라는 형식적 층위 외에 내용적 층위에서도 소설, 연극 등의 다른 서사 장르와 변별되는 고유한 서사 문법을 지닌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는 근대인의 분열상이 두드러지지 않고, 연극과 달리 세계와 자아의 갈등은 상대적으로 평면적이고도 직선적으로 진행되며 서사를 이끌어 나갑니다. 어쩌면 영화는 근대의 소설과 연극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신화적 서사로의 회귀일지도 모릅니다.

영화만의 변별성을 완성하고 또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것은 할리우드 황금기 이래 등장한 서부극과 뮤지컬이라 생각합니다. 정의의 총잡이는 결투에서 승리해 마을을 구하고, 연인들은 사랑에 빠져 노래를 부릅니다. 세계는 전복되고 분열되기보다는 본래 그러했어야 마땅할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카사 블랑카』의 샘은 노래하죠. “세월이 지나고도 세계는 언제나 연인들을 반길 것”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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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문학이 모더니즘의 도래 이래 타락을 거쳤듯이1)물론 이 표현을 문제 삼을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할리우드의 황금기도 이미 그 내부에 균열이 포함되어 있었고 또한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 이른바 예술성이 더해가는 동안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자신만의 변별성을 상실했고, 고전적인 서사문법의 영화들은 점차 제작되지 않게 되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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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6년, 혜성처럼 『라라 랜드』가 등장합니다. 셉과 미아는 대화합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노스탤지어적이야.”

“그게 중요한 거야!”

이것이야말로 『라라 랜드』가 영화사 내에서 지니는 역사적 의미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신입니다. 오늘날의 영화에서 보기 힘든 롱테이크, 탭댄스, 세트 촬영 장면 등은 분명 노스탤지어적입니다. 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고, 변하고, 헤어지고, 재회한다는 군더더기 없는 서사 또한 수없이 많은 로맨스-뮤지컬 영화가 변주해온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고요. 이것은 고전에 대한 복권이자, 정체성이 흐려진 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라라 랜드』가 결코 시대착오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라라 랜드』세계와의 갈등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맺어진다는 나이브한2)그리고 그렇기에 아름다운 서사를 있는 그대로 복사하지 않습니다. 5년만에 재회한 셉과 미아는 상상 속에서의 키스를 발화점으로 고전 영화의 오마주로 점철된 세트장 시퀸스 속으로 이동합니다. 결말의 세트장 시퀸스는 더 이상 현실에서, 오늘날의 시공간/예술에서 불가능한 서사를 관객에게 억지로 설복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아마 30-50년대의 할리우드 영화였다면 셉과 미아는 운명적으로 재결합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그러한 서사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손을 굳게 잡고 할리우드 황금기의 세트장 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비록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일지언정, 『라라 랜드』는 한때 가능했고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불가능해진,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셉과 미아의 로맨스에 대한, 할리우드 황금기의 서사에 대한 찬가를 은막 위에 바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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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라라 랜드』지나가버렸으나 지나가버렸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가입니다. 셰익스피어적인 총체성의 희극이 불가능한 시대에, 체호프적인 몰락의 희극은 아름다움을 가집니다. 아마 『라라 랜드』보다 더 예술적인 영화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나 『대열차강도』가 제작된지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 『라라 랜드』보다 더 영화적인 영화는 당분간 보기 힘들 것입니다.

글/ 안똔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물론 이 표현을 문제 삼을 분들은 많을 것입니다
2. 그리고 그렇기에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