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사용 설명서★

본 상품 ‘광장’은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 효과는 집회·시위에 참가한 여러 시민 분들을 통해 증명됐습니다. 본 상품은 다양한 시민이 참여하는 만큼 여러 사용법이 공존할 수 있습니다.

시민마다 어떻게 광장을 이용해야 할지 고민이 들 수 있습니다. ‘과연 많은 사람이 광장에 모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대통령 탄핵과는 또 다른 여러 정치적 사안을 주장해도 되는 걸까.’ 이미 본인만의 사용법을 찾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혼란스럽고 답을 내리지 못한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과거 지금과 꼭 비슷한 상황에서 광장을 사용했던 시민들을 참고하면 본인만의 사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1960년 4월 19일. 바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이끌었던 4.19 혁명입니다.

광장이 우리를 움직이는 법

“좌파 종북 세력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오후 8시 1분간 불을 끈 것도 조직적으로 리드한 것” – 2016년 11월 29일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

“때로는 선의가 잘못 이용돼 어려운 상황을 만들기도 하지요. 이번 시위 사태는 대중적 불만의 폭발이 아니라 장면 부통령과 천주교 노기남 주교의 공작입니다. 노 주교는 장 씨가 성공하면 이를 틈타 천주교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겁니다. (중략) 미국 신문들도 잘못됐어요. 계속 선동하고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어요.”

– 1960년 4월 21일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대사 매카나기의 대화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불가능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보이기도 한다. 배후세력이 집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은 반박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약 100만 명의 시민이 매주 광장에 모이는 지금,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은 광장에 모였을까?’라는 질문은 광장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집회, 시위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려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 사회적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집회에는 그 규모와 상관없이 참여하는 시민이 있는 반면 집회에 많은 사람이 참여해 성공 가능성이 높을 때 참여하는 시민도 있기 마련이다. 마치 눈덩이처럼 집회의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시민이 집회에 참여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해야 그 눈덩이를 굴릴 수 있을까? 경제학자 마이클 S.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보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집회에 가려면 당신이 집회에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갈 것을 네가 알고, 서로가 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 때, ‘공유지식’이 형성된다. 이런 아리송하고 복잡한 과정은 뉴스, 여론조사, 광고 심지어 간단한 눈빛 교환만으로도 이뤄진다.1)마이클 S.최 ,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후마니타스.

4.19는 말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는 특정 정당이나 세력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광장에서 끓어오른 공유지식이 이뤄낸 것이라고. 3.15 부정선거 이후 ‘대통령의 하야’라는 주장이 처음 등장한 때는 4월 11일 2차 마산시민항쟁에서다. 그러나 대통령 하야가 시위의 주된 메시지는 아니었다. 4월 19일 경찰이 시위대에게 총을 발포했다.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그 참혹한 현장을 함께 공유했다. 대통령 퇴진이라는 메시지가 공유지식이 된 것이다.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4.19 이후에도 대통령 퇴진이라는 방향을 확정하지 못했다. 장면 부통령은 4월 23일이 돼서야 공식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정치권도 광장의 공유지식에 따라 움직인 것이다.

고 써진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

<이승만 대통령 하야하라>고 써진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시민들

1960년 4월의 광장의 힘은 2016년 12월 광화문 광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공유지식을 통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다시 놀라울 정도로 강한 공유지식을 형성한다. 박근혜 게이트를 규탄하는 첫 번째 집회 때만 해도 ‘탄핵’, ‘퇴진’, ‘하야’ 등은 함께 사용됐다. 정치권에서도 3단어를 접근하는 시각이 달랐다. 우리들은 한 주 한 주가 지날 때 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혼 없는 대국민담화,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비리와 의혹들을 함께 봐왔다. 우리들은 광장에 모임으로써 우리 모두가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탄핵’이라는 공유지식이 형성된 것이다. 탄핵 앞에서 갈팡질팡했던 국회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는 정치적이다

“위정자여! 우리들을 정치에 간섭 말게 하라”

– 동국학교 학생자치원회, 『동국건아의 민주기록』

4.19는 말한다. 시민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광장에 모였지만, 발언기회는 평등하지 못했다. 정당성을 입증 받으려는 학생들의 강박적인 행동들이 공유지식을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미란 교수는 4.19 혁명 당시 학생들의 발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으로 ‘순수’와 ‘평화’를 꼽는다.2) 김미란, 「‘순수’한 청년들의 ‘평화’ 시위와 오염된 정치 공간의 정화」, 상허학, 31, 173-209. 학생들이 강박적일 정도로 순수한 평화 시위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학생의 정치 참여는 의뭉스러운 것으로 치부됐고, 정치적 행위는 반공논리로 쉽게 억압당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맥락 안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법적·사회적 정당성을 얻고자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지식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당시 대학생들이 외친 “어떤 기성단체 의 사주를 받은 것도 아닌 순수한 의거”, “우리들의 데모가 합법이냐 불법이냐 대법원장은 즉시 확답하라” 등과 같은 구호 역시 집회의 합법성을 획득하기 위한 발화로 해석될 수 있다.

시민에게 자꾸만 요구되는 '순수함'이란 뭘까? (사진제공/포커스뉴스)

시민에게 자꾸만 요구되는 ‘순수함’이란 뭘까? (사진제공/포커스뉴스)

부정선거만큼 정치적인 문제가 어디 있을까. 시위대의 정당성은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한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마땅히 보장되어야 할 집회가 법에 의한 허가로 변질되고, 자신이 정치적으로 무관한 사람이라고 강조해야만 발언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모습은 못내 처량하기까지 하다.

“학생제군들의 정의로운 대열에는 일부 불량배가 섞여 약탈 방화 파괴 등의 난행을 일삼고 있으니 이것은 제군들이 힘껏 쟁취한 명예를 더럽히는 결과가 되어 실로 안타깝기 한정이 없다.”

–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계엄사령관의 성명서

4.19의 광장에서는 이승만 대통령 하야와 함께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들이 있었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여성, 농촌을 버리고 상경했지만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농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제대군인. 비록 구체적이진 못했지만 그들이 저마다 겪고 있었던 문제는 ‘못살겠다 갈아엎자’는 구호로 엉성하게나마 묶여있었다.

정부와 언론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 직후 “질서를 바로잡자”, “민권투쟁은 끝났다”며 학생들이 시위를 멈추고 학교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4.19 당시 대통령 하야를 위해 시국선언을 발표한 수많은 학생들은 ‘정치적으로 무관’한 학생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대통령 하야만으로 민주주의가 단박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형식적인 민주적 절차만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광장에는 ‘못살겠다’는 시민들이 남아있었고, 그들이 말하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가령 이승만 대통령 하야 후 부산에서는 5월 2일부터 ‘국회 즉각 해산’을 위한 시위가 이뤄졌다. 부정선거를 저지른 잔존세력들이 여전히 국회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돼야 할 문제이기도 했다. 4.19 혁명과 매우 밀접함에도 “지나치게 정치적”이며 “무법을 조성하”는 것이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광장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함께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들이 있다. “네가 제대로 말도 할 수 없는 집회가 무슨 평화 집회냐?”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힌 한 시민은 마이크를 잡고 본인의 고모께서 써주셨다는 편지를 읽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광장에서 자신이 얼마나 불편한 시선을 느껴왔는지 이야기했다. 지금 시민들은 각자가 처한 ‘헬조선’과 이에 대한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기 위해 모였다. 시민 개개인의 목소리가 배제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대한민국 세계 성평등지수(WEF)는 박근혜 대통령 재임기간 2013년 136개국 중 111위에서 2015년 145개국 중 115위로 꾸준히 하락했다. 청년실업률은 최고치를 갱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1만원의 쌀값을 약속했지만, 정부는 12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쌀을 사들였다. 바다 속에는 연내 인양을 약속했던 배가 아직도 있다. 이 모든 사안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탄핵 이후에도 끝없이 논의함으로써 공유지식이 됐을 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탄핵 이후의 광장을 상상할 때

“신청인이 개최하고자하는 집회 및 행진은 특정 이익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어른, 노인을 불문하고 다수의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바(중략) 이 사건 집회를 조건 없이 허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이 사건 집회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 기존의 집회들과 동일연장선상에 있는바, 위 일련의 집회들은 지금까지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이 사건 집회 역시 주최 측의 평화집회 약속 및 충분한 질서유지인 확보, 집회 참가인들의 가족 단위를 포함하는 다양한 참가 형태 및 집회 참가인들이 그동안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 등에 비추어 볼 때 평화적으로 진행될 것이라 능히 예상할 수 있다.”

– 서울행정법원 2016아12308 집행정지 결정

나는 이번 법원의 판결문에서 정치적 순수함을 외쳤던 4.19 학생들의 외침에서 느꼈던 기묘한 감정을 느낀다. 처음으로 청와대 인근까지 집회·행진이 가능하다고 인정한 판결은 매우 고무적이다. 법원의 판결문은 집회 참가자들의 이력, 과거 집회 양상을 고려하여 향후 집회를 유추한다. 집회의 자유는 허가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법원이 집회의 성격을 사전에 평가할 수 있다는 뉘앙스까지 준다. 과거에나 지금에나, 그 규모가 크든 작든, 광장은 누군가의 주도로 작동하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공유지식이 시민들을 광장으로 모을 뿐이다.

시간은 득달 같이 찾아온다. 광장은 고작 한 달만에 ‘이런다고 바뀔까’라는 회의론이 무색해질 만큼 많은 것을 바꿔 놨다. 지금부터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의 광장을 고민해야할 이유다. 광장에 있는 모든 시민이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광장에 남아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분명 몇몇 언론은 광장에 남아있는 시민들을 곱게 보지 않을 것이고, 집회의 자유는 지금보다 제한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광장에 남아 있을 시민들을 ‘특정 이익집단’이라거나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꼬리표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4.19가 말하는 광장 사용법이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회초리

   [ + ]

1. 마이클 S.최 ,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 후마니타스.
2. 김미란, 「‘순수’한 청년들의 ‘평화’ 시위와 오염된 정치 공간의 정화」, 상허학, 31, 173-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