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하필 이 말이 씨가 될 줄이야. ‘헬조선’이라 자조하던 시민들은 그런 모호한 단어 대신 더 구체적인 단어를 듣게 됐다. ‘최순실’ 그리고 ‘박근혜’. 뉴스는 매일 새로운 용례도 소개했다. 원하는 대학에 자식을 입학시킬 수 있고, 원하는 만큼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다. 원한다면 대통령 대신 연설문도 고치고, 국정운영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

헬조선이란 이름의 ‘한국병’

물론 대통령께서는 오래 전부터 헬조선이란 말을 못마땅해 하셨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 제71주년 광복절 경축사

대통령은 몰랐겠지만 헬조선이라는 단어는 갑자기 뚝딱 생겨난 신조어가 아니다. 헬조선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전통이 매우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견은 갈릴지 모르나 분명 1993년대에 본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

“저는 신한국 창조의 꿈을 가슴 깊이 품고 있습니다. 신한국은 보다 자유롭고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입니다. 더불어 풍요롭게 사는 공동체입니다. 문화의 삶, 인간의 품위가 존중되는 나라입니다. 갈라진 민족이 하나되어 평화롭게 사는 통일조국입니다. (중략)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한국병을 앓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인의 부러움을 샀던 우리의 근면성과 창의성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도된 가치관으로 우리 사회는 흔들리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국민은 자신감을 잃고 있습니다.” –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첫 문민정부 대통령이 됐다. 오랜 정치적 밤이 지나고, 온 국민들이 염원했던 문민정부가 들어섰다. 모두가 대통령의 입만 바라봤을 테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이름을 딴 ‘한국병’을 앓고 있다며 ‘새로운 한국’을 창조하겠다니?

당시에도 실력을 행사하며 서로 뒷배를 봐주던 군부정권의 잔존 세력,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정경유착, 권위주의적 정부의 악습 등. 이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이 앓고 있던 병이었다. 김영삼 정부는 이 모든 것을 개혁해야만 했다. 그것이 문민정부를 만든 국민의 염원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한국병이 사라진 신한국.’ 국민들에게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화’의 비전을 짧지만 명쾌하게 제시한 것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는 한국병을 치유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병에 감염됐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국정개입 논란, 한보 비자금 사건 등이 터졌기 때문이다. 결국 임기 말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낮은 6% 지지율을 기록했다.

진짜 몸통은 ‘헬조선’이다

그동안 한국병은 이름을 바꾸어 헬조선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우리 곁에 있다. 사인이 대통령의 옷, 말뿐만 아니라 외국 정상과 만날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까지 코치해줬다. 대통령의 최측근은 앞장서서 국정농단에 일조하며 제 집 곳간을 채웠다. 기업과 대학은 그 곳간을 채워주며 대신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침묵했다.

쏟아지는 의혹들 앞에서 우리들이 느끼고 있는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다.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는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으나 실체적인 진실을 밝혀낸 사건은 얼마 없다. 그마저도 시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법적·사회적 처벌을 받은 사건은 손에 꼽는다. 우리들은 봐왔다. 비리의 ‘몸통’들은 기름장어처럼 빠져나가고 모든 것을 덮어쓰는 것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온 ‘꼬리’들이다. 권력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자질은 한없이 낮아졌고, 그 빈 자리는 시민들의 정치적 혐오가 자리를 채웠다. 실제로 시민들의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지수는 138개국 중 96번째로 매우 낮다. ‘어차피 정치는 더럽고 안 바뀌어.’ 우리들은 너무 한국에 익숙해져버렸다.

시국이 아수라장인데!

시국이 아수라장인데!!

박근혜 게이트 역시 우리가 지겹도록 봐오던 패턴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고위 공직자, 정치인 자녀의 부정입학과 군 관련 특혜, 국책 사업을 좌지우지한 측근비리, 정치검찰, 심지어 대통령 측근의 국정개입 논란조차 반복됐다. 박근혜 게이트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샤머니즘뿐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제때 해결했다면 샤머니즘 빼고 다 예방할 수 있었다.

대통령은 ‘선의’로 한 일이라며,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며 사건을 축소한다. 몇몇 언론은 포커스를 최순실에 잡으며 ‘당신 때문에 대통령이 위기에 빠졌다’고 말한다. 지금 시민들의 ‘박근혜가 몸통이다’라는 외침은 이번만큼은 ‘몸통’이 빠져나가서는 안 된다는 마지막 절규에 가깝다.

그러나 박근혜조차 몸통일 수 없다.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특별히 악독하고 교활한 것도 아니며, 박근혜 대통령이 유달리 멍청하기 때문도 아니다. 최고 권력자의 부정조차 막기 위해 고안된 것이 민주주의다. 진짜 몸통은 이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미리 경보를 울리지 못했던 대한민국의 시스템이다. 경제 시스템의 붕괴, 교육 시스템의 붕괴, 사법 시스템의 붕괴.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없다면, 대통령 몇 십명을 갈아치워도 그 수만큼 새로운 ‘○○○ 게이트’만이 반복될 뿐이다.

새아침이 시작되면 오늘은 무슨 비리가 기다릴까 정말 기대돼

새아침이 시작되면 오늘은 무슨 비리가 기다릴까 정말 기대돼

나는 듣고 있지 않았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을 주의 깊게 들어본 적이 없다. 항상 언론에 의해 주요 부분만 발췌된 것을 곁눈질로 봤을 뿐 온전한 대통령 연설 전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최순실이 고쳤다는 드레스덴 연설문 역시 JTBC 뉴스 때문에 처음 보게 됐다. 평소에 글을 쓸 때는 그렇게 ‘민주주의는 토론을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해야 한다’며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떠들어댔는데, 정작 나는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대통령들의 연설문을 찾아봤다.

대개 대통령 연설문들은 비슷비슷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이 지금 겪고 있는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슷비슷한 문제 아래 해결책은 대통령마다 달랐다. 대통령마다 각기 다른 해결책들은 여전히 지금 헬조선에서도 고려해볼 수 있는 대안들일테다.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합리적인 토론을 통해 그 대안들을 견주어 보고, 곱씹는 것만으로도 붕괴된 시스템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 있다.

앞으로 오늘 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에 대한 대통령의 연설을 소개해보려 한다. 물론 나는 일개 대학생이라 그리 유익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어느 대학생의 자기위안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편집자주: <대통령 연썰> 시리즈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회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