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끝났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달려온 트럼프와 클린턴1)기성 언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자를 그의 남편이자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또 힐러리라는 이름이 가지는 정치적 대표성을 이유로 그의 성인 클린턴 대신 힐러리로 호명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자를 다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성인 ‘클린턴’으로 칭한다.은 지난 8일자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한 한 명은 제45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불리게 되었고, 더 많은 표를 받은 다른 한 명은 대선을 근사하게 완주한 페미니스트 정치인으로 불리게 됐다.

클린턴의 패배를 좋게 포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선거제도에 민주적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트럼프는 여전히 합법적 절차에 의해 뽑힌 사람이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과 언론들이 이미 내놓은 분석처럼 이번 미국 대선은 미국인들에게, 또 나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결과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에게 단순히 후보 개인 간의 싸움은 아니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지켜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일종의 민주적 투쟁에 가까웠다.

물론 나는 이 글을 읽고 있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미국 대선에 투표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미국의 대선에 열을 내고 글을 쓸 필요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많은 클린턴 지지자들이 이번 미국 대선에서 좌절감 또는 허탈함을 느낀 이유는 이번 대선이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차별을 외치며 헌법적 가치를 흔드는 어떠한 이기심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혹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던 이타심의 한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미 미국 사회 내에서는 '성소수자, 인종차별적 혐오발언'등을 겪은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LA Daily News)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미 미국 사회 내에서는 ‘성소수자, 인종차별적 혐오발언’등을 겪은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LA Daily News)

끝내 눈물을 보이지 않은 이에게 보내는 찬사

클린턴의 대선 레이스에서 많은 이들이, 특히 내 또래의 젊은 여성들이 크게 감명 받았던 이유는 끝까지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의 당당한 언행 때문이다. 상대 후보에게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여자’라든지 ‘바지 정장을 입는(매력 없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성희롱을 들었을 때도, 또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드세고 똑똑한 척하는 아줌마’라는 비하를 들었을 때도, 그는 자신의 옷차림이나 행동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그를 설명하는 데에 항상 빠지지 않는 ‘여성 정치인’이라는 수식어에서 방점이 찍혀야 하는 것은 ‘정치인’이지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그걸 잘 알고 있었고,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자신을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지 않기를 바랐다.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 특히 자신의 업무적 성공과 여성스러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젊은 여성들이 그의 행보에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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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실은 클린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클린턴이 당선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낙담했다. 물론 그가 정치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미국 대선에서 똑똑한 여성에게는 완벽이 요구되지만 교양 없는 남성에게는 더 자극적이고 무례한 언행이 기대된다는 것을 보았다. 정치 경쟁이 항상 공정하고 합리적일 수는 없지만 클린턴만큼 유능한, 상징적인 여성 정치인의 패배를 지켜보는 일은 유난히 아프게 와 닿는다. 그리고 클린턴 본인이 결과 승복 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이 상처는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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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에게 전하는 클린턴의 메시지는 여성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움에 직접적으로 어필한다. (사진 출처/CBS)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연설에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리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그가 한 번도 보이지 않은 눈물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굳건한 모습으로, 자신이 깨지 못한 유리천장을 누군가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미래에 깰 수 있을 것이라고. 당신의 능력을 믿고 기회를 잡으라고 덤덤하고 묵직한 응원을 전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지금의 대통령이 결정되던 2012년 대통령 선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건 비단 나뿐만 아니라 현 시국을 마주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의 염원일 것이다. 그러나 연이은 보도에 ‘이래서 여자가 나랏일하면 망한다’라거나 ‘뭣도 모르는 아줌마한테 당했다’라는 식의 원색적 비난이 공공연하게 유통되는 사회에서, 나를 포함한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는 이 터무니없는 바람이 유난히 간절하다.

나는 탄핵이든 하야든, 민주주의를 흔든 권력자로부터 민주적인 방법으로 그 권력을 빼앗아 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 반드시 이뤄져야 할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를 하는 나의 심정이 퍽 심란한 것은 그가 가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허울 좋은 수식 때문이다. 물론 본인은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를 뽑아준 과거의 유권자들 역시 그가 여성이라서 뽑아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그 자리에 앉게 됐으며, 이는 그의 업적과 과오 모두가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의 ‘여성’이라는 정체성 탓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임기 내내 그가 나의 상상보다는 조금 더 유능하기를, 어쩌면 그의 지지자나 그 자신보다 더 간절하게 바라왔음을 고백한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여성이라고 할 때마다 눈을 반짝이던 나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늘 배신감을 안겨줘야 했던 개인적인 사정은 차치하더라도, 현 세대가 존경할 만한 여성 롤모델이 세계적으로 부재한 현대 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존재감은 얼마나 큰가. 2012년 대선 당시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받아들였는가. 당당하게 자신의 업적을 일군 여성 대통령이 아닌 무당에게 나라를 맡긴 독재자의 딸로 기억될 지금의 대통령을 보며 우리는 클린턴을 가진 미국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최초’와 ‘여성 대통령’의 문턱을 넘어서

현대 정치에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이제 겨우 조금 낮아진, 하지만 여전히 높은 하나의 문턱이다. 클린턴은 가까스로 그 문턱 위에 올라선 사람이지만 끝내 발을 앞으로 내딛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년의 기득권 남성(혹은 명예남성)이 아닌 사람도, 그러니까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외치는 여성도 그 문턱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보았고, 다음 선거 때에는 그 문턱이 보다 더 낮아질 수 있도록 함께할 것이다.photo245337822418021878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클린턴도 넘지 못했던 문턱을 너무나도 쉽게 넘었던 사람이다. 그 탓에 우리 중 누군가는 애초에 한국 정치엔 그러한 문턱이 없다고 믿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도 대통령이 되는 시대에 여성이 받는 차별이 어딨냐’고 주장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여성 대통령은 없을 것’이라 말하는 사회다. 누군가는 그 문턱에 문을 단 것은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라 책하고 싶겠지만 그 말은 명백히 틀렸다. 아무리 무당이 실권을 행사하고 온갖 비리가 쏟아져나오는 지금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민주주의가 행해지는 국가에서 그 문을 열고 닫는 것, 또 그 문턱을 높이고 낮추는 것은 유권자인 우리이다.

이미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경험한 우리가 앞으로 오랜 시간 여성 대통령이라는 문을 닫고 살 것이라 해도 누군가는 그 문을 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굳게 닫힌 철문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클린턴이 말했던 것처럼 언젠가, 하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에 그 문을 여는 열쇠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는 당신의 능력을 믿었으면 좋겠다.

기다린다. 리사 심슨.

기다린다. 리사 심슨.


 

이미지 출처

Vanity Fair, <The Simpsons Predicted We’ll Get President Lisa Someday—but Only After President Trump>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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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성 언론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자를 그의 남편이자 전 대통령인 빌 클린턴과의 혼동을 막기 위해, 또 힐러리라는 이름이 가지는 정치적 대표성을 이유로 그의 성인 클린턴 대신 힐러리로 호명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후보자를 다른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그의 성인 ‘클린턴’으로 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