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내 성폭력 고발 글로 트위터가 시끄럽다. 터져 나오고 있는 그 고발들에 대한 김승일 시인과 송승언 시인의 반응은 조금 독특하다. 그들의 글을 보고 여러 생각을 하다 정리의 일환으로 글을 써 본다.

 

먼저 송승언 시인의 반응. (그의 글이 조금 모호하기는 하지만 정리하자면) 송승언은 이어지는 고발사태를 ‘중세적 마녀사냥 ‘에 비유하며 그것은 ‘단죄의 카타르시스’만 만족시킬 뿐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열기에 거리를 둔다. 또한 그 와중에 퍼져 나가는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정보들을 경계해야 한다 말한다.%ec%86%a1%ec%8a%b9%ec%96%b81

아마도 그는, 절대악이라 상정되는 표적을 열렬히 비난하는 행위를 통해 대중들이 윤리를 소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다음으로 김승일 시인의 반응. 그도 송승언의 이런 견해에 동의한다. 거기서 나아가 그는 사건 “이후의 삶” 이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중요함을 역설하며 가해자를 “걱정” 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 파문이 된 만화가의 자살이 걱정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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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들의 반응이, 일부분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짚고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잘못되었다 생각한다.

 

일부 생각해볼 만한 지점을 그래도 먼저 언급하자. 타인의 비윤리를 단죄하는 희열로 윤리적 실천을 대리하는 행위, 자신의 비윤리성에 대한 성찰을 멈추어버리는 행위는 윤리적으로 치열하지 못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경계해 마땅하다. 또한 가해자에 대한 강렬한 단죄가 사태의 완결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김승일의 우려 또한 (백번 양보해서) 수긍할 지점이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기반으로, 지금 나오고 있는 일련의 고발들을 ‘마녀사냥’ 혹은 윤리적 ‘소비’라 여기거나, 가해자를 ‘걱정’ 한다는 발언은 매우 문제가 있다.

이번 고발은, 지난 몇 년간 페미니즘이 이뤄낸 성과들과 트위터라는 플랫폼이 맞물려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그간 누구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지만) 말하지 못했던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희희낙락하던 가해자를 처벌할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누군가들이 아주 힘들게 얻어낸 성과다.

그러므로 그것을 마녀사냥이라 여기는 것은 사실 가능하지도 않으며 옳지도 않다. 타인/대중의 행동 원인을 비합리적 욕망으로 진단하며 부정하는 태도는 전형적인 독단주의적 태도이다. (단죄의 카타르시스를 소비한다는 등의) 타인의 욕망은 알 수도 없으며 그 상상된 욕망을 근거로, 간신히 마련된 가해자 처벌의 플랫폼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고발’ 이라는 대목은, 피해자에게 입증을 요구하는 익숙한 폭력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위험한 발언이다. 2차 가해일 수 있다.

 

또한 “이후의 삶”을 말하며 가해자를 “걱정”한다는 김승일의 말은 매우 문제가 있다. 일단, 피해자의 삶이 아닌 가해자의 이후 삶을 먼저 말하는 데서 오는 반발심은 넘어가자. 아마도 김승일의 의도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처벌이 우선이다

 

(가해자에게 있어서든 피해자에게 있어서든) 폭력 이후의 삶. 중요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피해자의 삶은 말 할 것도 없고, 가해자의 삶 또한 제대로 된 처벌 이후에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법적 처벌과 속죄는 가해자 자신의 ‘이후의 삶’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지금 터져 나오는 일련의 고발 글은 강한 단죄로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고발들은 진정한 ‘이후의 삶’을 위한 초석으로서의 처벌을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방도이다.  ‘이후의 삶’을 위해서라도 더욱 더 많은 고발이 나오고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후의 삶’을 위해서 고발들을 경계하다니? 모순이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송승언과 김승일의 발언이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더 많은 원로문인들이 고발당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행해왔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p.s. 인간의 인간됨을 질문하는 것이 문학이고, 그런 점에서 윤리의 경계를 허물고 세우는 것이 문학이 할 일 중의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윤리적 진공상태를 현실에서 살려고 하면 어떡하나? 오이디푸스 왕의 패륜이 인간의 근원적 지점을 겨냥한다고 해서, 현실에서의 근친상간이 위대한 문학적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박범신의 밝혀진 언행을 보고 그가 그렇게 행동한 원인을 추측하다가 든 생각.

(편집자주: 아래 트윗은 관련 논란에 대한 박범신의 ‘사과문’. 현재는 삭제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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