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부트의 세번째 작품인 ‘스타트렉 비욘드’는 시작부터 고난이었다.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의 시작인 비기닝과 다크니스를 감독한 J.J. 에이브람스가 스타워즈 감독을 맡게 되면서 붕 떠버린 프로젝트에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감독인 저스틴 린이 투입되었고 그는 아무것도 – 각본조차 –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18개월만에 비욘드를 완성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린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가 분노의 질주를 제작할 때는 각 편 사이사이마다 최소한 2년 이상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 50주년에 개봉하는 기념비적인 영화가 될 스타트렉 비욘드를 제작하기 위해 린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1년 반 뿐이었다. 영화제작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지만, 시간이 엄청나게 촉박했던 것만은 잘 알겠다. 자금이 넉넉한 인디영화를 찍는 기분이었다는 그의 대답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촬영 현장 한켠에서 쪽대본을 쓰듯 각본을 채워나가는 사이먼 페그와 더그 정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하지만 이 필사적인 상황이 크루들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스타트렉 캐스트들의 인터뷰에서 자주 등장하는 ‘좋았던 점’은 배우들의 의견이 각본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었다는 것이었다. 사이먼 페그가 메인 캐스트 중 하나이자 각본가이기도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각본의 진행과 배우의 피드백이 매우 유기적으로 얽혀 시너지를 낳았다.

영화 제작은 생각보다 잘 굴러갔다.

영화 제작은 생각보다 잘 굴러갔다.

사이먼 페그는 트렉팬덤은 물론이거니와 SF영화에 관심있는 사람들사이에서는 유명한 스타트렉 덕후이다. 페그가 각본을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이번 편은 트렉 팬을 위한 대잔치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1)물론 각본만이 영화를 하드캐리하는 것은 아니다. 각본이 훌륭함에도 말아먹은 영화 및 티비쇼를 몇 보았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제목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스틴 린 감독이 스타플릿 인시그니아2)스타트렉에 등장하는 가상조직인 ‘스타플릿’을 상징하는 휘장를 뼈에 새긴 트레키(trekkie)라는 사실은 개봉 후 인터뷰를 뒤져보고 나서야 알았다. 대만계 미국인인 린은 8살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그의 부모는 작은 생선튀김가게를 하며 생계를 꾸렸는데 밤 9시에 가게의 문을 닫았고 10시가 되어서야 가족이 모두 저녁상에 둘러앉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11시가 되면 형과 함께 재방영되는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를 시청했다. 8살의 소년은 10년 동안 스타트렉을 반복해 보면서 크루들을 마치 자신의 가족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스타 트렉이, 그리고 스타 트렉 시리즈의 메가폰을 잡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지… 비욘드의 감독직을 의뢰받았을 때 애정이 깊은 만큼 압박감도 어마어마했기에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기도 했다는데, 고민만 하고 고사하지 않아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유 있는 클리셰, 그리고 희망

스타트렉의 크루들을 또 다른 가족으로 둔 린 감독이 비욘드에서 그려내고 싶었던 것은 ‘Family beyond blood, 혈연을 넘어선 가족’인 멤버들의 재현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5년 미션, 아무리 거대하다 한들 도망갈 곳 없는 함선 안에서 2년 반 동안 24/7으로 함께 보낸 크루들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스스로 원해서 가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하니까. 하지만 엔터프라이즈에 탑승한 모든 크루들은 우선 하나의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모였으므로 서로에게 더  관대해지고 믿음을 공유하게 되지 않았을까. 음, 스타트렉 비기닝(1편)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건 2년 반을 함께한 비욘드 내에서의 크루들의 이야기니까 그렇다고 하자. 자신의 선택으로 함께 삶을 걸어나가는 우리 모두,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강하게 본딩하는 크루들의 이야기. 그렇게 서로를 가족으로 여기고 단결한 크루들이 그들에게 닥친 역경에 좌절하고, 하지만 다시금 연대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더욱 더 강하게 이어지는 이야기.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정말이지 클리셰 범벅이다. 비욘드의 스토리를 이것저것 거둬내고 줄여줄여 생각해보면 내가 72년동안 살면서 300번 정도 본 것 같은 흔해빠진 줄거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클리셰가 뭐가 나빠? 클리셰가 클리셰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야. 그렇게 오만 번을 다시 만들어도, 만들어지는 퀄리티에 따라 사람들에게 깊게 와닿을 수 있는 내용이기에 클리셰인 것이다. 그리고 린 감독은 18개월이라는 촉박한 시간내에 그 클리셰를 훌륭하게 가다듬었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서는 극복을 ‘해체와 재정립’이라는 개념으로 그려낸 린은 스타트렉의 50주년을 맞이해 트렉의 세계관을 부수고 아무것도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 새로 희망과 신뢰를 쌓아가는 크루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외부의 압력에 의한 해체가 역으로 서로의 연결을 더욱 공고히 하고 그 연결-단합을 무기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는 이야기, 좌절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희망을 향해서 곧게 나아가는 이야기 – 나는 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무엇보다 오리지널 시리즈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나는 고통받는 스팍이 정줄을 놓은 채 짐에게 읊은 대사를 옮겨두고 싶다: We will do what we’ve always done Jim, we will find hope in the impossible.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해왔던 것을 할 겁니다, 짐. 우리는 불가능 속에서 희망을 찾을 거에요.)

20세기에 상상하던 23세기, 태양계 너머 발을 내딛어본 적이 없는 우주를 향한 낙관적인 기대, 인류에게 품는 희망의 총체가 스타트렉의 엑기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비욘드가 전작인 비기닝이나 다크니스에 비해 오리지널 시리즈에 더욱 가까이 닿아있다고 믿으며 시리즈 고유의 매력을 계승한 점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린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2

계승 하고 있다구요.

계승하고 있다구요. 오리지널의 가치.

저스틴 린이 심혈을 기울인 해체와 재정립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본다. 해체하는 방식은 두 가지 – 엔터프라이즈 호의 파괴크롤의 등장이다. 함선 엔터프라이즈의 파괴는 사이먼 페그의 격한 반대에 부딪혔고3)그가 영화 내에서 함선의 관리를 총책임하는 기관실장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관실장 ‘몽고메리 스콧’은 유구한 엔터프라이즈 ‘성애자’다. 트레키인 린 본인에게도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크루들에게 집과 같은 존재였던 함선의 파괴를 통해 그것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준 덕분에 안일해진 크루들에게(영화 초반에 커크는 캡틴일지에서 ‘우주 탐사가 단편적으로 느껴진다’며 매너리즘을 이야기했다.) 다른 환경을 만들어주고, 컴포트 존이 사라졌을 때의 좌절, 그리고 집을 잃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찾아 연대하는 지를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캐릭터들의 진화를 위해 매우 가치 있는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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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사람도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지만 납득한다.

엔터프라이즈의 파괴가 셸터의 해체로 인해 가족으로서의 크루들간의 단합을 위한 소재로 사용되었다면 메인 빌런 크롤의 존재는 조금 더 거대한 것, 우주 전체의 인류애와 단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런 류의 영화에는 반드시 빌런이 필요하다. 빌런과 주인공과의 갈등은 영화를 풀어나가는데, 그리고 주인공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욘드에서는 크롤과의 대립을 통해 커크가 성장을 했다기보다는 이미 성장이 완성된 커크와 그 거울상으로 존재하는 크롤이 대립함으로써 인류가 믿는 희망과 연대의 힘을 보여줄 수 있었다.4)23세기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지구인으로 한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지구인 및 모든 외계종족을 포함한 우주연방의 구성원들을 humanity 라는 단어로 묶어 설명하고 있으니 편의상 인류로 표기한다. 미지가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인 우주의 개척지를 향한 모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의 발걸음에 정면으로 대적하는 크롤은 발전하지 않고 한 자리에 멈춰선 것으로도 모자라 거꾸로 걸어가는 존재로 그려졌다. ‘전쟁을 통해 이상적인 세계를 건립하고자 하던 시대의 진정성’을 주장하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류의 가치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에게도 바라는 이상향이 있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동기가 있었다. 관객에게 동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할지언정 납득할 수 밖에 없는 동기. 그러나 크롤이 에디슨으로 살았던 22세기를 지나, 인류는 크롤이 놓아버린 100년만큼 더 발전했다. 그가 파괴와 정화를 통해 이루어내고자 했던 이상향은 23세기에서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물론 21세기에도 안되고 20세기에도 안된다. 그러나 20세기 이런 이데올로기를 밀고 나간 사람을 우리는 알고 있지.) 여기서 커크는 크롤에게 외친다.

“I’d rather die saving lives than live with taking them. That’s the world I was born into. (나는 생명을 뺏어가며 살아남느니 그것들을 구하면서 죽겠어. 그게 내가 살아온 세상이야.)”

이 대사가 진 로든버리5)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작자가 트렉 오리지널에서 전하고 싶어하던, 그리고 비욘드에서 커크가 크롤에게 전달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우주를 사랑한 모든 이들을 위해

비욘드는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은 영화다.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며 감동하고 우주를 꿈꾸고 미래를 움직이겠다고 다짐한 어린이들이 자라 그 감사함을 되돌려주는 형식의 답사.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사용했던 디테일과 캐릭터를 오마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비중이 공리주의에 입각해 완벽한 비율로 분배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모 SNS매체에서 이미 유명하다) 20세기, 냉전 시대의 미국에서 로든버리가 오리지널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미래를 향한 인류의 낙관과 희망을 이어받았다.

여기서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비욘드가 개봉하기 전까지 나는 스타트렉에 큰 관심이 없었다. 2009년 제작된 에이브람스 감독의 오리지널 시리즈 리부트, 스타트렉 비기닝과 2013년에 개봉한 2편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번쩍번쩍거리는 화면 속에서6)렌즈플레어의 과도한 사용 때문이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배우들의 소리지르고 울고 서로 때리고 쓸데없이 벗거나 죽고 싸우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짜증나지만 볼만은 하네.’ 하는 단순한 감상으로 남아있었다.

이 죽일 놈의 렌즈 플레어

이 죽일 놈의 렌즈 플레어

이 당시 스타트렉 오리지널 TV 시리즈는 나에게 에이브람스가 리부트를 결정한 저예산의 매니악한 빈티지 티비쇼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욘드를 보고 린과 페그, 영, 그리고 모든 배우들이 보여준 희망뽕에 빠져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기사를 찾아읽고 검색을 하고 오리지널 시리즈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실 작년에 보기 시작했지만 한편을 차마 다 끝내지 못하고 졸아버리기 일쑤라 포기했었다.) 그랬더니 비욘드에서 보여준 것들이 모두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이었더라. 이 영화가 아니었으면 그닥 궁금해하지도 않고 잘생긴 배우들이 나와 미원을 퍼먹여주는 것에 적당히 만족해하며 그렇게 흘려보냈을 이야기들. 비욘드 덕분에 나는 스타트렉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인류가 우주를 향해 품는 거대한 연심’을 배웠다. 우주, 그 마지막 개척지, 그리고 그 개척지를 향해 인류가 연합하고 전진하는 모습이 주는 희망과 로맨틱한 낙관주의를 내 가슴에도 품었다.

스타트렉 5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로써, 스타트렉 비욘드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주었는가.

 

편집 및 교정/요정

글/까치

   [ + ]

1. 물론 각본만이 영화를 하드캐리하는 것은 아니다. 각본이 훌륭함에도 말아먹은 영화 및 티비쇼를 몇 보았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제목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2.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가상조직인 ‘스타플릿’을 상징하는 휘장
3. 그가 영화 내에서 함선의 관리를 총책임하는 기관실장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관실장 ‘몽고메리 스콧’은 유구한 엔터프라이즈 ‘성애자’다.
4. 23세기에 존재하는 생명들을 지구인으로 한정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지구인 및 모든 외계종족을 포함한 우주연방의 구성원들을 humanity 라는 단어로 묶어 설명하고 있으니 편의상 인류로 표기한다.
5.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제작자
6. 렌즈플레어의 과도한 사용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