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트위터에서 이윤성 작가의 시리즈에 대한 열렬한 호평이 담긴 트윗들이 타임라인에 자주 올라왔다. 당시 그의 그림들을 보며 생각은,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데?”였다. 그림 미소녀들은 다리가 풍선껌처럼 달콤한 색으로 터져나가면서도 발랄하고 호기심 어린 소녀의 표정을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쾌락에 들뜬 듯한 표정이다. 언뜻 일본 작가 아이다 마코토와 같이 반사회적 모티브로써 차용된 서브컬쳐에서 출발한 보이는 그림은 관람자로 하여금 어떠한 문제의식도 안겨주지 않는다. 여느 애니메이션 여자 캐릭터들과 같이 매끈한 윤곽을 가진 그들의 신체는 비현실적인 탄력을 자랑하며 여전히, 모에(萌え)하다1)“어느 특정한 대상에 대한 열광, 혹은 화자가 열광하는 대상의 매력을 가리키는 말. 실제 회화에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폭넓은 말로 정확한 정의는 어렵다. 서브컬처 계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오덕이 아닌 일반인들은 간단히 ‘매력’, ‘매력적’, ‘매력요소’ 정도로 알고 있어도 대체로 해석에 문제가 없다.” 나무위키 ‘모에’항목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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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이윤성, ‘토르소 09(torso 09)’. 162 x 130cm, oil on canvas. 2013 (우) Danae Blue, 261x194cm, oil on canvas. 2015

최근 몇년간 제작/방영된 일본 애니메이션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미소녀’를 기본으로 애니메이션이(원래도 많았지만) 압도적으로 많다. 1990년대까지 만들어진 미소녀 애니메이션의 공통된 윤리의식은 아이다 마코토의 그림과 같이 ‘이것은 확실히 어딘가 잘못됐다’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미소녀는 별다른 이유 없이 잔혹하게 강간/살해당하는 것은 물론 윤리적으로 뒤틀린 인물로 묘사되기 시작하여 누가 잔혹하게 살해 당하는가/하는가의 주체가 되어왔다. (예: <미래일기>의 가사이 유노, <스쿨데이즈>의 카츠라 코토노하 등) 이것이 마치 애니메이션 여권 신장의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순히 살인의 주체가 남성인 것이 식상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의 여자 주인공이 나온다 하여도 그는 생물학적인 성이 여성일뿐,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관계의 위치에서 언제나 정복자의 위치를 점하는 남성성의 욕망을 그대로 재현한다. (예: <무르시엘라고>의 코모리 쿠로코 등) 이 경우, 레즈비언에 대한 젠더 의식 없이 오로지 시스 헤테로 남성 덕후(이하 남성 덕후)의 입장에서 사유한다는 점에서(레즈비언 섹스는 남성(팔루스)의 개입으로 간단히 무산되고 팔루스 중심적인 섹스로 바뀔거라는 일반 남성의 욕망과 다를 없이), 자신의 욕망이 남성/여성의 차별 없이 소비되는 욕망이라는 자기합리화를 달성한다. 요컨데, 너를 욕망하는 나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미소녀인 너도 나와 다를 없는 인간 말종이기 때문에 그런 너를 소비하는 것에 나는 어떠한 윤리적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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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미래일기>의 히로인 가사이 유노, 대표적인 얀데레 캐릭터 (우) 무르시엘라고 7권 표지

그러한 의미에서 이윤성의 시리즈는 현재 미소녀를 소비하는 방식을 합리화한 공모자 욕망 또한 드러내고 있는 아닌지 혐의를 추궁하게 된다. 미소녀의 신체는 훼손됐음에도 여전히 모에하여 소비하기에 충분하다. 심지어 그들의 신체는 훼손되고 있음에도 불과하고 외려 성적 충만함이 극에 달아있는 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욕망으로 성적 충만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소비하는 자의 욕망에 불쾌함이나 고통 없이 완벽하게 대상화된 신체로써만 충만함을 느낄 있다. 이러한 가정에 다다르자, 이윤성의 그림은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서브컬처를 차용해 작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불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혐의가 과연 정당할까? 작가 자신은 미소녀 신체훼손 과정을 통해 어떤 것을 의도했던걸까? 작가는 자신의 작품의 동기와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의 초기 전시 ‘NU-TYPE(뉴타입)’은 새로운 인류, 새로운 유형이란 의미로 일본 만화에서 빌려온 제목이었다. 우선 소재적인 접근을 보자. 누드화는 서양 미술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주제다. 각 시대마다 다른 표현 방식과 모습으로 누드화가 그려졌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의 누드화는 당대 남성들의 욕망에 의해 가공된 신화적 신체를 표현한다. 현대 서브컬처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이미지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윤성은 이에 대해 “그런 욕망이 어떤 도구들을 만났을 다듬어지고 표현되는 과정과 결과물에 관심 있다”고 설명한다. (…)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장면에서 토르소 연작의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여 주인공(쿠사나기)가 마지막 전투에서 전차의 해치를 뜯는 장면인데, 그림과 마찬가지로 쿠사나기의 사지가 파열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신체적 고통과 절멸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이어나가는 모습으로도 인상에 남는다. 그에 대해 작가는 “파괴되는 신체의 이미지를 다른 각도로 보는 시선”에 주목했다고 말한다. 작가는 미대에서 그리스 시대의 토르소 조각상을 배웠다. (…) “토르소 연작의 표현들 또한, 애니메이션의 폭력적인 표현들에서 조형적인 미를 찾아보는 시선을 갖도록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 (CNB 저널, [화랑가] 서브컬처 만난 현대미술 신인류, 이윤성의 ‘Nu’ 중에서 발췌)

말하자면, 그는 “여성의 누드화가 당대 남성들의 욕망에 의해 소비되는 방식”을 다른 플랫폼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했다. 보다 정확히는 그의 표현처럼 애니메이션 모에화된 여성의 누드가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조형적인 미’를 갖춘 형태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의 전시에 뒤따른 호의적인 비평들과 달리 과연 그의 누드화는 ‘신인류’인가에 대해서는 의뭉스러운 구석이 남는다. 예를 들어, ‘Torso’ 라는 이름으로 그려지던 신체들은 이후 ‘다나에’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그리스 신화 다나에가 기존에 그려지던 방식과 과연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 아크리시우스는 자신에게 내려진 위협적인 신탁-자신의 외손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라는- 피하기 위해 그의 다네에를 탑에 감금한다. 우연히 다나에를 발견한 제우스는 황금빛 비로 변하여 창살 사이로 들어가 그에게 닿았고, 이로 인해 다나에는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을 하게된다. 기존의 회화 다나에가 수동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과 이윤성의 다나에가 별반 다르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속에 갇혀 있던 다나에가 제우스를 만나 페르세우스를 잉태하게 되는 설정 자체가 디나에의 수동적 여성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렘브란트의 다나에에서 클림트로, 그리고 이윤성으로 이어지는 모든 다나에는 선택할 없는 상황 속에서 제우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혹은 능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의 차이에 불과하게 여겨진다. 다나에의 주체성이 서사 밖에서 창작자에 의해 새롭게 상상되고 해석되지 않는 한, 신인류 다나에의 탄생은 영원히 유보할 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 이윤성의 토르소와 다나에는 과연 조형적으로 아름다운가를 묻는다면 또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현실을 사는 여성의 입장에서 애니메이션 미소녀들과 같은 과장된 육체에서 선뜻 조형적인 미를 느끼고 그(들의) 숭고함에 감탄하기는 어렵다. 다만 선정성이 덜하다거나 그림 남성의 시선을 그나마 배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신체가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거리낌 없이 아름다운가 하는 점에서 여전히 의문이 남으며, 조형적인 미를 구축하고자 여성의 신체가 시대의 맥락에서 혹은 서브컬처의 맥락에서 순수하게 찬양될 있는 것인가에 대해 그의 전략이 다소 무른 전략이 아닌가 하는 냉소적인 감상을 떨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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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 마코토, Jumble of 100 flowers(일부), oil on canvas, 200 x 1750 cm. 2012

앞서 말했듯이 남성 덕후는 더이상 순수한 마음으로 미소녀를 좋아하지 않는다(오해가 있을까 덧붙이자면, 그들이 순수했던 시절이란, 1990년대 IMF 시대에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으로 복귀하던 시절의 순수함과 비슷하다). 그들이 속한 서브컬처와 현실 맥락 속에서 미소녀는 이미 천사가 아니다(원래 인간이 아니었던 순간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남성 덕후들 뿐만이 아니라 성비 불균형과 여성의 사회적 진출로 인하여 2030세대 남성들과도 해당 맥락을 공유한다). 남성 덕후들의 오랜 숭배자 하나가 말처럼, 더 이상 현실에서 소비할 없는 현대 여성 주체를 증오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기반으로 생산된 것이 얀데레 등과 같은 뒤틀린 미소녀다. 남성 덕후는 뒤틀린 미소녀를 욕망함과 동시에 미친년 혹은 썅년이라 비난하며 어떤 우월한 위치를 다시 점한 듯한 깊은 착각에 빠진다. 이윤성의 그림뿐만 아니라 아이다 마코토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앞으로도 여성의 신체를 표현방식으로 채택하려 한다면, ‘지금 현재 여성이 소비되는 방식’의 차이에 몸을 바싹 붙이고 이를 숙고해야만 보다 유효한 작품이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 맥락 여성의 누드화가 옛날 당대 남성들의 욕망에 의해 가공된 신체라는 근본 맥락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신인류’로서의 여성을 언급하는 일은 오래도록 유보해야 것이다.

 

 

이미지 기사 출처 (첨부순)

http://weekly.cnbnews.com/news/article.html?no=118746

https://neolook.com/archives/20140516a

http://doosangallery.com/newyork/press_release.asp?idx=262&amp;subGbn=3

http://hifructose.com/tag/anime/

글 / 스피카

교정 및 편집 / 아날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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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느 특정한 대상에 대한 열광, 혹은 화자가 열광하는 대상의 매력을 가리키는 말. 실제 회화에서는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는 폭넓은 말로 정확한 정의는 어렵다. 서브컬처 계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오덕이 아닌 일반인들은 간단히 ‘매력’, ‘매력적’, ‘매력요소’ 정도로 알고 있어도 대체로 해석에 문제가 없다.” 나무위키 ‘모에’항목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