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에서 이미 밝혔지만, 이 영화 리뷰의 목적은 ‘영업’이다. 대충 봐도 망작이 분명한 작품에 투자할 돈과 시간은 없다- 는 이성적인 판단 아래 좋은 영화들만 접해왔을 관객들에게 놓치기 아까운 망작들을 소개하고 그 영화를 보며 느꼈던 감정들을 전파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따라서 나는 몇 편의 리뷰를 통해 그 영화들이 어떤 점에서 실패했는지에 대해 열심히 떠들어대면서도 그것은 동시에 그 영화의 놀라운 장점이기도 하다며 영업(혹은 약팔이)에 공을 들였다.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소개한 몇 편의 걸출한 명망작들은 영화의 단점이 곧 장점이었고 그 단점들을 직접 확인하는 과정에서 건강하지 못한 쾌감이 피어나는 작품들이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쾌감을 Guilty pleasure1)죄책감을 느끼거나 하면 안된다는것을 알지만 자신에게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것 또는 그러한 행위라 부른다. 다이어트 중에 먹는 초콜릿처럼, 초등학교 문구점 앞에서 사먹던 불량식품들처럼- 은밀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명망작. 나는 명망작들이 안겨주는 길티 플레저를 즐겨왔고 다른 이들에게도 이 길티 플레저를 전파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오늘 소개할 작품에 대해서는 이전과 매우 다른 태도를 취해야만 하겠다.

 

<레전드 오브 타잔>

오늘 소개할 이 작품은 이제까지 소개한 명망작들 중 가장 최근에 개봉한 작품이며 vod 가격이 가장 비싼데다가 (만육천원) 너무나 문제가 많아 관객들에게 Guilty Pleasure가 아닌 Guilty만을 안겨준다. 영화에 존재하는 3240개의 단점들중 몇가지는 그저 비웃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안겨주는 심각한 단점들을 걷어낸 후 남은 장점이(그 장점의 이름은 바로 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이다) 너무나 매혹적이라 관객들의 정신을 파괴한다. 영화를 보고 온 이들은 전형적인 정신 분열 증세를 보였고 분열된 자아로 인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들은 “21세기에 이딴 영화라니 제 1세계 백인 남성들이란 정말 무슨 일이든 저질러 버리는군!” 라며 분노하면서도 “그치만 타잔은 지나치게 섹시하다! 아름다운 몸이다! 이 영화는 가치있는 영화이다. 이런 영화는 아이맥스로 봐야한다” 와 같이 눈물을 흘리며 극찬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딴 영화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단 사실에 경악하면서도 정글을 뒤흔드는 타잔의 메이팅콜2)교미를 위한 울음소리에 전율감을 느끼며 그대로 정글을 향해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영화는 해롭다. 나는 이제까지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작품이지만 그래도 어여쁜 면이 있답니다. 오래보아야 예쁜 아이죠. 여러분도 함 잡숴보세요 맛이 나쁘지 않아요” 라며 여러 망작들을 권해왔지만 이번만은 그 반대의 말을 해야만 한다. “여러분은 이 영화는…. 웬만하면…. 보지 않는게….좋겠어”

CFojV7nVIAAoI50

웬만하면 마음을 접으세요.

 

정말이다. 이 영화는 마약이다. 나는 마약의 중독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것이 아니다. 그 해로움에 대해서만 말하고 싶다. 마약이 아무리 일상에서 접할 수 없는 쾌락과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한들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을 것이다. 나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온 순간부터 극심한 자아분열 현상을 겪었는데 나의 이성은 ‘제발 정신 차려 이런 영화는 존재해서는 안됐어’ 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나의 손은 어느새 영화 예매 앱을 끊임없이 들락날락 거리며 다음 상영 시간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지금 당장 타잔의 헐벗은 몸을 보고 싶었고 그 아름다운 몸을 다시 한번 볼 수만 있다면 기꺼이 돈을 낼 의향이 차고 넘쳤다. 전형적인 마약 중독자의 증상이다. 그들은 마약이 옳지 않다는것을 알고 있고 약에 찌든 삶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몸에 그 치명적인 약물을 밀어 넣으려 애쓴다.

내 모습이 딱 그러했다. 심지어 “영화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점이 있었잖아. 그걸 높게 쳐주어야 해” 와 같은 소리를 지껄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니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대충 넘겨줄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스카스가드의 굉장한 몸매는 모든 문제를 흐릿하게 만들고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창문을 열고 메이팅콜을 외치도록 만든다. 여러모로 파괴적인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가 대체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나 괴로움에 몸부림 치게 하는 것인가. 이미 그렇게나 엉망진창인 영화들을 재미나게 보고 와서는!

이런다고 구제가 될 것 같아?

내가 타잔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1999년 디즈니에서 나온 타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였다. 원작 소설의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와 제국주의를 지워낸 후 예쁘게 리본을 달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이 작품은 제작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인해 원작의 해로움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2016년, 정글을 누비는 타잔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가져오기로 결심한 각본가들은 디즈니의 노력이 의미 있긴 해도 좀 유치한 면이 없잖아 있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그들은 좀 더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문제들을 영화에 담기로 마음 먹는다. 바로 노예제도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릴라(영화에선 망가니라는 허구의 동물로 표현된다)에 의해 길러진 타잔(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은 정글을 떠나 부모님의 고향인 영국에서 아내인 제인(마고 로비)과 함께 그레이스토크 경 존 클리이튼 삼세로써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편 미국의 정치가인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사뮤엘 잭슨)는 콩고에서 벨기에에 의해 자원 착취와 노예제가 진행중이라 의심하고 있고, 그 증거를 확보할 수 있도록 그레이스토크 경  존 클레이튼 삼세에게 도움을 청한다.  콩모에서는 벨기에 왕이 파견한 레온 롬(크리스토퍼 발츠)에 의해 콩고를 지배해 자원을 착취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을 계획이 진행중이다. 롬은 자신의 계획을 방해하는 타잔을 막기 위해 제인을 납치할 뿐만 아니라 타잔의 숙적인 음봉가를 보내 타잔을 죽이려 한다. 타잔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정글을 위해, 콩고의 주민들을 위해 레온 롬과 맞서 싸운다. 콩고의 다른 부족민들과 다양한 동물들과 힘을 합쳐낸 끝에 결국 타잔과 그의 친구들은 레온 롬의 사악한 음모를 저지하는데 성공하고 콩고는 다시한번 평화를 되찾는다.

요약하자면 제1세계의 백인 남성은 정글에서조차 주인공 자리를 꿰어차며 노예들을 해방시키는 구원자가 된다-는 스토리이다. 이 먹음직스러운 메인 메뉴엔 제국주의, 식민주의, 성차별주의, 백인우월주의라는 토핑까지 올라가 있다.

photo245337822418021745

 

물론 영화는 자신이 지닌 태생적 한계를 아주 잘 알고 있는듯 하다. 영화는 최대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려고 애쓰며 “인종차별은 나빠요 노예제도는 끔찍한 짓이에요 그 시절 제국들은 아주 끔찍한 짓들을 저질렀어요” 와 같은 당연한 구호들을 외친다. 또한 문제가 되는 요소들을 어떻게든 무마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쓴다.

예를 들어 비록 타잔이 전세계의 식민지화를 이끈 대영제국의 ‘그레이스토크경 존 클레이튼3세’ 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지만 정글에서 자라난 그는 문명화된 세계보다는 콩고의 자연과 밀림, 그곳의 부족민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그에게 있어 고향은 런던이 아닌 정글이고 그의 가족은 커다란 대저택의 영국인들이 아닌 콩고 부족민들과 고릴라들 이다. 이것은 그의 아내인 마고 로비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들이 콩고인들의 문제에 개입하는것은 어떤 우월감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 그들의 가족들을 돕기 위한 일이라는것을 강조한다.

또한 모든 인물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유창한 영어를 사용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던 이유에 대해서도 열심히 해명을 늘어놓는다. 타잔의 숙적인 음봉가는 복잡한 국제 정세를 이미 다 파악하고있는 영민한 족장이기에 당연히 영어도 유창히 구사할 수 있단 설정이고, 또 다른 부족의 족장은 제인의 부모님에게 영어를 배웠단 설정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타잔이 콩고 부족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자로 등장하지만 타잔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즉 사뮤엘 잭슨의 캐릭터 덕분이었으며, 벨기에가 저지른 노예 문제를 폭로하고 그들을 구해낸 공은 대외적으로 타잔이 아닌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는다. 사뮤엘 잭슨은 영화 속에서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인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로 등장해 모든 공을 독차지함으로서 제작자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줄뿐만 아니라, 백인 영웅의 흑인 노예 해방 스토리라는 기본 플롯이 어떻게든 덜 빻아보일수 있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토템같은 존재로 활약하기도 한다. 그는  미묘한 문제가 등장할때마다 타란티노 세계의 캐릭터에 빙의하여 백인 씹새끼들을 향해 기관총을 날린다.

그런다고 영화가 더 나아지는건 아니지만

그런다고 영화가 더 나아지는건 아니지만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역부족이라 느꼈는지 제작진은 실제 세계에도 무언가 유의미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듯 하다. 영화는 실제 콩고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타잔의 영웅담에 슬쩍 끼워 넣음으로써 이제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와 레온 롬(두사람 모두 실존인물이다)이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까발리는 역할을 자처한다.(위에서 소개한 사뮤엘 잭슨의 캐릭터인 조지 워싱턴 윌리엄스도 실존인물로 영화에서처럼 벨기에의 악행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물론 벨기에가 콩고를 식민지로 만들고 부족민들을 노예로 만들어 자원을 착취하려 했던 그때 영국 역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를 짓밟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마치 “저만 나쁜놈은 아니에요. 얘도 같이 나쁜짓을 했답니다ㅠㅠ” 라며 일러바치는 듯한 모양새가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지만 아주 의미가 없던 것은 아니라 할 수 있겠다.

섹시즘을 위해 존재했던 제인이라는 캐릭터는 원작에 비해 훨씬 주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다. 비록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원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모습 역시 영화 이곳저곳에 흔적기관처럼 남아있다. 타잔이 셔츠를 벗어 던진 후 헐벗은 몸을 뽐내는등 양껏 성적 대상화 되는 동안 제인은 옷 한 번을 벗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예쁜 근육을 뽐내며 자신을 좀 귀여워 해 달라며 각종 동물의 메이팅콜을 외치는 타잔의 애교를 아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를 품에 안는다. 또한 비록 롬(크리스토퍼 발츠)에게 포로로 붙잡혀 타잔이 자신을 구하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신세이지만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나름의 기지를 발휘해 롬 일당에게 한방 먹이는 모습도 보여준다.

현실적으로도 잘못투성이인 영화

이런 식으로 영화는 타잔의 디엔에이에 새겨져있는 인종차별주의제국주의적 자세를 어떻게든 상쇄시켜보려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들은 당연하게도 장렬하게 실패한다.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이 이야기는 결국 “콩고의 부족민들을 구원해낼 사람은 백인인 타잔이다” 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현재 콩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면 영화의 마지막처럼 “그렇게 콩고는 백인 히어로 타잔에 의해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는 결말은 이 영화의 수많은 단점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 그려진 것처럼 콩고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광물 자원들이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자원에는 ‘콜탄’이 있다. 이 콜탄은 전자기기를 만들때 필수적인 재료인 탈탄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원료로 전세계 콜탄 매장량의 80%가 콩고에 존재하고 있어 대부분의 나라가 콩고에서 이 원료를 수입해와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콩고는 이 자원을 둘러싸고 두개의 나라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고 있다.  매장지를 둘러싼 전투가 매일 벌어지고 있으며 탈탄을 채굴하기 위해 강제로 사람을 납치해 노예처럼 부리는 일이 현재까지 자행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이 탈탄의 채굴지는 고릴라의 서식지이기도 해서 탈탄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 심화될수록 고릴라는 살 곳을 잃어가고 있고 그 개체수 역시 심각하게 줄어들고 있다. 즉,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갈등들은 단순히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만 벌어졌던 과거의 일이 아니며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는 픽션이 아닌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현실이다.  

이딴 영화를 만들어 내면서 콩고라는 실재하는 나라를 끌고 온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최대한의 선의를 담아 그 의도를 해석해본다면 아마 아마도 콩고의 이런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는지도……….?

어찌됐든 이건 아니다.

어찌됐든 이건 아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몹시 잘못되었고 부적절했으며 지나치게 안일했다. 만약 정말 콩고의 현실을 알리고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면 이딴 영화를 만들 돈으로 난민들을 돕는 재단을 설립하는것이 백배는 더 유익했을 것이다. (우리들의 배트맨 벤 에플렉은 콩고의 내전 피해자들과 난민들을 위한 기구를 설립해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영화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 측이 이 재단에 기부라도 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 세상에. 나는 이 단어를 입에 담는것만으로도 죄책감에 몸부림치고 있다. 주여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ㅠㅠ 나는 이 영화를 진심으로 재미있게 보고 말았다. 비록 문제를 빠져나가기 위해 만들어 놓은 변명거리들이 너무 눈에 빤히 보여 그 점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꼴볼견이라 생각했지만, 진심으로 이딴 영화를 만든 제 1세계의 백인들을 욕했지만, 나 역시 인디언들에게는 가해자였노라 고백하던 사뮤엘 잭슨을 보며 극장에서 뛰처 나가고 싶었지만…..……스키스가드의 가슴 근육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훌륭했다. 정말이다.

아 어쩌란 말이냐 이 멋진 근육을

21세기적 문명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잘 교육받은 이 배우는 영화 초반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 성차별적인 발언들 사이에 덩그라니 남겨져있을 땐 시종일관 영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무미건조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대사를 씹어 삼키고 있었지만, 정글에 들어가 셔츠를 벗어 던지며 약 1년 동안 피땀흘려 만든 근육을 드러내는 순간 자신감을 되찾고 화면 너머 관객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정말 가치가 있는 장면이다. 또한 한때는 형제였던 고릴라 아쿳과의 싸움은 어떠한가. 타잔은 셔츠를 벗어 던진 헐벗은 몸으로 헬스장에서 단련한 아름다운 근육을 뽐내며 아쿳에게 거침없이 덤벼들지만 한낱 인간이 고릴라를 이길수는 없는 법. 타잔은 야쿳에게 처참하게 당하고 만다. 땀방울이 뱆힌 타잔의 하얀 나신은 거대한 고릴라의 몸 아래 깔려 달콤한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레온 롬과 타잔의 대면씬들 역시 믿을 수 없을만큼 굉장하다. 처음 타잔이 레온 롬의 수하들에게 붙잡혔을때 타잔은 상상을 초월하는 음란한 자세로 묶여 각종 능욕을 당하는데, 그 음란한 자세는 야동에서나 봤던 ‘귀갑묶이’이다. 나는 저 노골적인 포박 자세를 헐리우드 영화에서 커다란 화면으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말을 하는것이 정말 부끄럽지만 이 또한….가치 있는 장면이었다. 한 마지막에 레온 롬과 싸움을 벌이는 장면 역시 믿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데, 피지컬은 타잔이 훨씬 우월하지만 레온은 가볍게 타잔을 제압하고, 두 남자의 치열한 전투는 순식간에 섹슈얼한 SM 플레이로 바뀌어 버린다. 타잔은 레온 롬 아래 깔려 목이 졸린 채로 헐떡이고 레온은 그런 타잔을 내려다보며 희열에 찬 눈으로 훑어 내린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부끄러운 사람이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나의 썩은 뇌가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로 가득 찬 이 영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고장이 나버려 모든 것을 포르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는 그것을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눈에 장착된 자동 필터링이 아주 열심히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아니었다. 이 영화는 아주 노골적인 타잔의 정글 SM 포르노이다. 혹시나 나같이 영화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관객들을 위해 영화는 마지막까지 비밀스럽게 숨겨왔던 타잔의 필살기를 공개함으로써 이 영화의 목적을 확실히 보여준다. 타잔의 필살기란 바로 각종 동물의 메이팅콜로, 그전까진 그저 제인에게 애교를 부리는 용도로만 사용되었던 그 메이팅콜은 사실 타잔의 비장의  무기이다. 롬에게 브레스컨트롤을 당하던 타잔이 헐떡이며 악어들의 메이팅콜을 외치는 순간, 근처에 있던 모든 악어들이 신나게 달려와 자신들과 타잔의 즐거운 파티를 방해하는 레온 롬을 해치워버린다. …최약체인 인간이 정글에서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 공개되는 순간이다.

난 동물들이 타잔을 돕는다면 그것은 타잔과 동물들이 함께 나누었던 교감 때문이거나, 종간에 피어난 우정 때문일거라 생각했다. 아주 순진한 생각었다. 나는 여전히 디즈니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른의 관점에서 정글의 동물 친구들을 불러낼 수 있는 시크릿 코드는 다름 아닌 타잔의 “섹스하자!”는 우렁찬 외침이었다.

 

큰 깨달음

호오~ 역시 그게 포인트였군요

아마도 여러분은 이 설명만 읽으면 그런 황당한 설정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예쁜 근육을 꿈틀거리며 섹시한 음성으로 섹스하자고 외치는 순간, 정글의 동물들이 왜 그렇게나 흉폭하게 날뛰는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나 역시 그순간 만큼은 타잔을 향해 달려가는 흉폭한 코뿔소였기에. 아. 정말로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드넓은 아프리카의 초원을 배경으로 사자들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애무를 주고 받는 타잔의 모습이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코끼리에게 안겨 교감을 나누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은 또 어땠는가! (이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마고 로비는 아주 흐뭇한 얼굴로 타잔을 바라보며 관객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 장면들을 아이맥스로 한번 더 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내가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제작진도 포기한게 틀림없어

감독은 아무리 노력해도 답이 안나오는 원작을 어떻게든 바꿔보려 애쓰다가 어느 순간 그런 노력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깨달아버린듯 하다. 열심히 이런 저런 설정들을 끼얹고, 실제 사건도 끼워 넣는 등 민감한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루어보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채로 영화의 결말을 아주 엉망진창으로 대충 버무려 버린다. 음봉가와 타잔의 갈등은 허무하게 봉합되고 콩고가 직면한 심각한 위협은 타잔의 필살기에 의해 단박에 사라져버리고 콩고의 원주민들은 이 백인 히어로에게 환호성을 보낸다. “예이! 백인들이 짓밟은 우리의 콩고를 구원한 백인 만세!”  

그는 영화 내내 열심히 다채로운 변명을 준비하지만 아무리 애를 쓴다 한들 그 변명이 절대 먹힐 리 없다는 것을 깨닫자 영화의 내용을 말 그대로 내팽개쳐버린 후 관객들의 시선을 돌리기로 마음 먹는다. 그는 장엄한 정글, 밀림을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하고 공들여 만든 CG 동물들을 배치한 후 화면 한가운데에 조각같은 몸매의 스카스가드를 세워놓는다. 그러고서는 온갖 영화적 기술과 자신이 지닌 모든 재능을 발휘하여 타잔의 모든 순간을 포르노로 만들어버린다. 그것도 최고로 공들인 버전으로!

근데 너무나 이해가 되는 근육이다.

우리는 감독이 필사적으로 만들어낸 장엄한 정글 포르노를 통해 감독의 괴로운 심정을 추측할 수 있다. 안 빻은척 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면들을 찍을 때의 태도와 타잔의 아름다운 근육을 뽐내며 온갖 능욕씬을 찍을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화면 너머 관객들에게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콩고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에 대해 다룰 때면 허리를 곧게 피고 뻣뻣한 자세로 식은땀을 흘리며 하하 저도 이게 참 문제라는걸 알고 있답니다- 저 역시 몹시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요- 선생님 이런 변명은 어떠세요? 제가 이런 변명을 준비해 보았습니다. 어떤가요? 한번 살펴보시고 맘에 안 드시면 말씀해 주세요- 라는 태도를 끊임없이 어필하지만 타잔을 찍을 때는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이거야! 이거라고! 나는 이걸 찍겠어! 더 벗겨! 더 야하게! 더 섹시하게! 우린 이걸 위해 영화를 만드는거야!” 라 외친다. 감독 역시 다른 내용은 그냥 다 쳐내고 오로지 타잔의 정글 포르노만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 관객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냥 다른 모든 장면들은 없애고 타잔이 헐벗은 상태로 정글을 누비며 각종 동물들과 뒹굴고, 때론 능욕 당하는 장면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이나 생각했던 것이다.

photo245337822418021747

나는 이 영화가 끔찍하게 싫었지만 스카스가드의 타잔은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좋았다. 나는 이런 영화가 다시는 만들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에 헛된 돈을 투자하도록 부추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타잔의 정글 포르노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섹시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지껄이고 있다. 마치 제발 이 영화를 봐달라는 듯.

그러나 나는 최대한의 이성을 끌어내어 여러분께 말한다. 여러분, 이런 영화는 더 이상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차라리 갓집트 같은 영화가 낫지 이런 영화는 훨씬 더 해롭다. (그렇다고 해서 갓집트 같은 영화가 더 만들어져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그 영화를 즐겁게 보았지만 누군가 그딴 영화를 다시 만들려 든다면 있는 힘을 다해 반대할것이다)

19세기가 지니고 있던 제국주의적 , 인종 차별적, 성 차별적 문제들은 현재까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우리는 그 차별을 극복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이다. 그 시대에 벌어졌던 일들을 이런 식으로 소비해버리기엔 아직 우린 갈 길이 멀다.

이 영화는 외부적인 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런 것들을 거둬내고 영화만 살펴보아도 문제가 심각하다. 너무나 많은 갈등을 담아내려다 보니 오히려 영화 내용의 중심이 되는 플롯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갈등의 해결방식이 지나치게 황당해 차라리 타잔의 필살기ㅡ메이팅 콜ㅡ이 더 그럴듯하게 보일 지경이다.

좋게 봐 주려 해도 좋게 봐 줄 수 없는 것들이 한 두개가 아닌데 심지어 이 영화의 가격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비싸기까지 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의 vod 가격이 지금 가격의 1/10 수준만 되었어도 이 가격에 스카스가드의 예쁜 근육을 볼 수 있다면 꽤 남는 장사가 아닌가- 따위의 말로 넌지시 권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육천원이라니, 지나치게 비싸다! 이 영화엔 과분한 가격이다! 만약 지갑에 마침 만육천원이 남아 있고 그 돈을 쓸 곳이 없어 땅에 버려야 한다면 지금 당장 영화 예매 앱을 켜고 <스타트렉 비욘드>를 예매하길 바란다.(편집자 주: 가능하다면 사운드가 좋은 엠O관으로 예매하자.) 이 영화는 세련되고 문명화된 미래를 그려내고자 했던 스타트렉의 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한 영화로 <레전드 오브 타잔>의 대척점에 있는 영화이다. 우리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꿀때이다. 19세기에 벌어졌던 미친 짓거리들에 대해 변명하기 위해 만든 영화에 돈을 투자해 줄 이유는 없다.

그러나…..세상에, 나는 또다시 엄청난 죄책감을 느낀다….. 그러나……그러나 만약 여러분에게 여윳돈 만 육천원이 생긴다면. 만약 그렇다면. 우선 스타트렉 비욘드를 조조로 두 번 보라. 그러고 나면 아마 돈이 조금 남아있을텐데, 그 돈을 잘 보관해 두었다가 타잔의 vod 가격이 지금 가격의 1/10이 되는 날 그 돈을 사용해주셨으면 한다. 왜냐하면 스카스가드의 근육은…그의 타잔은…정말로 정말 굉장했기 때문이다……..그의 귀갑묶이는….그와 레온 롬이 벌이던 SM 플레이는….. 영화는 너무 잘못되었지만 스카스가드가 눈물로 빚어낸 근육은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영원히 보존해야만 한다.   

 

<학습 활동>

1.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크리스토퍼 발츠가 맡은 레온 롬이다. 레온 롬은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성적인 욕구를 느끼는 스스로를 혐오스러워 하며서도 타잔이 뿜어내는 매력에 매료되어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인다. 크리스토퍼 발츠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잔혹하고 사악하고 디나이얼 게이인 이 캐릭터를 살아 숨쉬게 만든다. 레온 롬은 영화 내내 타잔과 멀찍이 떨어져 차갑고 딱딱한 자세로 서 있지만 지금에라도 당장 바닥에 쓰러뜨려 키스하고 싶단 열망이 가득 찬 눈으로 타잔을 바라본다. 원래는 타잔과 레온 롬 사이에 키스씬이 있었지만 관객 시사에서 당황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삭제했는데, 레온 롬이 타잔에게 키스하고 싶단 열망에 가득 차 있긴 하지만 그걸 실제로 영화에 넣다니….대체 어느 타이밍에 대체 어떤 이유로 넣은 것인지 전혀 짐작도 안되는 바이나 제발 DVD 부가 영상으로나마 풀어줬으면 하는 바이다.

2. 그래서 보라고요 보지 말라고요

-ㅠㅠㅠㅠ… 공짜로 풀리면 그때 봐주세요… 그리고 우리 함께 아무 짓이나 저지르는 헐리우드의 인간들을 욕합시다. 그리고 함께 타잔의 예쁜 근육과, 귀갑묶기와, 브레스컨트롤을 감상합시다……..

 

(편집자주: 비b님의 <나의 망작영화 답사기>는 본 편 이후로 잠시 쉽니다. 우리의 영혼에 스크래치를 남길 명망작들과의 짜릿한 만남을 위해 재충전을 하고 올게요.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세요!)

 

편집 및 교정/요정

글/비b

   [ + ]

1.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면 안된다는것을 알지만 자신에게 만족감을 가져다 주는것 또는 그러한 행위
2. 교미를 위한 울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