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얼거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 다시 읽는 f(x)(아이돌 그룹)론

 

인간은 분류하는 생명체다. 서양철학이 만들어놓은 사고관은 우리에게 이분법의 논리를 주입해왔다. 신과 악마, 선과 악 같은 기원부터, 남성과 여성 등 일상의 영역까지 퍼져있는 문제는 우리에게 제 3자의 출현 가능성을 막는다. 미셸 푸코는 이 이분법을 비웃기 위해 <말과 사물>에서 보르헤스가 써놓은 중국의 백과사전을 재인용한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 보존된 동물, 사육동물, 젖을 먹는 돼지, 인어, 전설상의 동물, 주인 없는 개 등등. 우리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분류 기준이다. 우리가 동물을 계-문-과-목-강-속-종의 분류로 분류하든, 척추동물이나 무척추생물로 분류하든 저들의 자유로운 분류보다 낯설고 아름다울 수 없다.

이성이라는 카테고리에 모든 것을 뒀기에 결국 분류라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분류 그 자체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이성이라는 이름에서만 이루어지는 분류는 사물들의 다른 면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수전 손택은 이를 A를 A로 보지 못하는 질병으로의 은유라 표현했다.

입입입입...이분법은 그만

입입입입…이분법은 그만

대상을 바꿔보자. 우리는 ‘여성’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상대방을 상대방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한국 가요계에서 ‘여성적’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는 가수들은 대부분 풋내기 소녀나 가련한 발라드를 부르는 자들로 소비되어왔다. 혹은 섹시함을 강조하지만 그 섹시함이 남성의 눈에 비친 섹스 심볼인 경우도 간혹 존재했다. ‘남자는 항구, 여자는 배’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가요사는 마침내 ‘나는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신도림역 앞에서 스트립쇼를’이라는 선언으로 끝났다. 그들은 이제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한 가지 사랑만을 해야하나요.’라는 말로 가부장제를 거부하며 f(x)의 존재로 재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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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는 x값에 따라 값이 변하는 수식이다. x가 어떤 언어인가에 따라 그들이 정해진다는 뜻이다. 이는 다의성의 상징이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들을 끝내 정의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x 값에 따라 그들은 무한정 변하기에 어떤 주석을 붙이지 않고는 그들의 본질을 짐작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SM에서 프로듀싱한 f(x)는 눈여겨볼만한 그룹이다. 그들은 라차타라든가, NU ABO 등 초창기에는 소녀를 자청했으나, 일렉트릭 쇼크 이후 커다란 변화기를 겪었다. 그들은 기존 가요사에서 자신들의 가요사를 확립하는 과정으로 재탄생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자우림이나 오지은의 가사와는 또 다른 세계다. 그녀들이 자신 그대로 존재하려는 여성을 보여주려 했다면, f(x)는 더 급진적인 방식으로 남성 위주의 사회를 파괴하려한다. 그 방법은 남성이 사용하는 언어습관에 반발하여 자신들의 공동체를 확립하려는 방식이다.

남성 위주의 사회를 ‘남성 언어’가 파악할 수 없는 범위에서 파괴함으로 그들은 ‘분류’와 정보를 넘어선 ‘이해’로만 구성된 공동체를 구성하려한다. 그들의 패션에서 우리는 기존 아이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들은 남성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서 탈피한다. 그녀들의 패션은 f(x)스럽다라는 표현으로 밖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한 정체성을 발산한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무어라 정의할 수 없음을 강조하며 남성의 언어에 속해있음을 절망하며 의미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위악은 남성 위주의 분류를 거부함으로 스스로를 해체하는 경지에 도달한다.

Nu ABO의 가사는 ‘엉뚱한’ 여자의 이야기다.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을 예쁘다하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그러한 ‘예뻐야 여자다’라는 프레임은 남성과 여성의 룰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이며 A라는 대상이 B로 왜곡되도록 만든다. Nu ABO의 화자는 이러한 남자들의 룰을 미스테리라 표현한다. 그들은 기존 질서가 의문투성이라 질문하며 세계를 ‘독창적 별명짓기’로 명명한다. ‘예쁘다’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림으로 ‘꿍디꿍디’라든가 Nu ABO라는 이름을 짓는데, 이는 혈액형으로 서로를 분류하는 관습의 파괴다. 즉, 새로운 ABO형인 인간, 기존의 인간상에서 벗어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을 명명한다. 그들은 기존의 사랑들이 판타지에 고착되어있다고 보며 이를 ‘기본 기본 사랑공식’, ‘이별공식’이라 칭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것은 언어로 한정지을 수 없는 사랑이며, 그것들은 ‘토포스(topos)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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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의 지적처럼 사랑은 우리가 공간이나 이름으로 한정지을 수 없는 atopos의 사랑으로 나아가야하지만, 우리는 판타지에서만 사랑하기에 여기서 좌절당한다. 결국 Nu ABO가 원하는 것은 언어로 한정지을 수 없는 사랑의 형태다. Nu ABO는 신인류의 이름이자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것을 자처함으로 자신만의 사랑을 이룩하려한다. 그는 그 사랑을 몽환(trance)의 경지로 묘사한다. 나만의 감정을 모두 주고 배로 받는다는 표현은 사랑의 비가치성을 표현하고 있다. Nu ABO 소녀의 사랑은 남성과 여성을 넘어선 개인과 개인의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전초를 보여준다. 그 커플은 세 번 싸워보기라는 서로의 규율을 만들어냄으로 자신이 명명한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모리스 블랑쇼는 ‘연인들의 공동체’가 기존 언어를 파괴함으로 세계에 저항하는 자들이라 칭했다. 블랑쇼의 공동체는 서로에게 이성이나 상식이 아닌 ‘이해’로 존재하는 자들이다. 사람들이 이해, 연대, 사랑으로 타자를 인식할 때 우리는 인간이 아닌 Nu ABO로 환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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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는 Nu ABO를 넘어선다. 피노키오는 남성 사회의 전복을 꿈꾸며, 남성 사회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피노키오는 동화에서 유래한 소재로, 거짓말하면 코가 늘어나는 인형을 의미한다. 피노키오의 코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이는 남성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은 ‘성관계’는 없다는 말을 하며 우리의 남성성이 ‘여성을 향한 판타지’에만 발기한다고 주장해왔다. 피노키오는 거짓말로만 발기할 수 있는 남성 신경증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들은 꿈꿔왔던 존재에 불과하다.

f(x) 노래 가사는 피노키오와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는 그녀들이 비판하려는 대상들이 ‘남성’들임을 암시한다. 신경증자들은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보이며, ‘누가 봐도 완벽한(혹은 평범한)’ 존재로 보인다. 화자는 스스로를 ‘의사’가 아니라 규정하며 피노키오로 상징할 수 있는 남성성을 해체하려한다. 그들은 훔쳐박은 에메랄드 눈빛은 물론이며, 몸을 샅샅이 벗겨내려는 해체로 나타난다.

자크 데리다가 서양철학사의 로고스중심주의를 해체하며, 이성을 신화화하는 서구 사회를 비꼬았듯이 f(x)의 해체는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을 해체하려한다. 그들은 이것을 ‘위태위태하게 시작되는 쇼!’라 묘사한다. 남성의 언어는 실제로 명확한 모습을 띄지만 그 안에는 ‘궁금증투성이’일 뿐이다. f(x)는 남성의 언어를 궁금증투성이로 놓음으로 이전에 남성들이 여성들의 언어가 자궁처럼 신비하다는 인식을 그대로 반사한다.

얼어죽을 신비...!

얼어죽을 신비…!

그들은 콜럼버스처럼 남성의 언어를 하나씩 개척함으로 그들을 정복하려한다. 이는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나온 남녀 사회가 뒤바뀜으로 남성성의 허구를 비판하는 방법론과 같다. 콜럼버스는 개척자지만 동시에 식민지를 건설한 파괴자였고 ‘콜럼버스’처럼 상대방을 알기 원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욕구에서 나온다. 스스로 의사 선생이 아님을 자처하는 것은 여성대상화로 가득한 세상이 나아질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자는 동시에 자신 또한 남성의 언어에 물들어있음을 자책하는데 이는 ‘너밖에 모르는 내가 됐어.’‘어릴 적 아버지랑 샀던 인형처럼’ 설렌다는 표현에서 나온다. 이는 우리가 남성이 여성에게 부여한 언어에서 안주해야함을 절망하는 인식이다. f(x)는 남성이 구성한 세계를 내 맘에 들도록 다시 조립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그녀들은 이 해체로 서로를 이해로 바라보는 공동체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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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의 Red Light는 공동체를 정치의 층위로 옮겨놓는다. Red Light의 가사가 세월호 사건을 향해있다는 것1)이성수 SM 프로듀싱 본부장이 직접 밝혔다.을 우리는 알 수 있지만, 이 체계적 은유를 넘어서 그들은 현대 사회 그 자체가 위기임을 폭로하고 있다. 관료제로 이루어진 위계 사회에 붉은 불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정글의 룰’은 야생에서 나온 논리지만 인류는 야생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야만을 반복한다. 아도르노의 표현대로라면 인류는 ‘계몽’했다고 믿지만 그 계몽에서 다시 야만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상황이지만 인간들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 이성복의 진단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현대는 전쟁이 아닌 전쟁이며 폭주하는 사회다.

그들은 세월호, 여혐 등등 근래의 사건에서 현대 사회의 위기를 관찰하고 현대 사회 전체가 침몰할 것이라는 경고를 내린다. 그 경고가 바로 Red Light다. 그러나 그 폭주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변화의 목격자로 자리잡을 수 있다. 정치의 실천은 아도르노를 위주로 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주요 명제였다. 그들은 정치를 참여하는 것이 현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봤다. 그 정치의 기반이 바로 블랑쇼의 공동체이다. 즉, 변화는 ‘최선이란 변명’이 아닌, 이해로 진심으로 기존 시스템이 일으킨 문제점을 마주하고 그 캐터필러가 Madness인 것을 진단하는 곳에서 온다.

그러나 정치로 발생한 희생자들은 기적처럼 돌아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공동체의 개념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한다는 정치 층위로 옮겨간다. 그러한 f(x)는 무어라 진단할 수 없는 존재의 출현으로 기존 사회를 뒤흔들려는 자들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을 무어라 부르든지 그들은 유령처럼 가요계에 떠돌테니까.

교정 및 편집 / 이점, 저년이

글 / 개소리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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