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드래곤의 조건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자들

에헤이 이 아저씨가 제일 나빠

에헤이 이 아저씨가 제일 나빠

인간은 악하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가 악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의도치않게 악을 행한다. 인류사에서 우리는 인간이 악하다는 증거를 여러 번 봐왔는데 그 악은 이성이 작용하지 않는 극한상황에서 나타난다. 이는 주로 이성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선동으로 나타난다. 괴벨스의 말마따나 “선동은 단 한마디로 이루어지고 그걸 반박하기 위해선 수십 장의 서류문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걸 다 찾았을 때 이미 사람들은 선동당해”있는 상황이다. 선동이 만든 비극에서는 가해자마저 모두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비극으로 가장 가까운 예로는 ‘위안부’가 존재하며, 가장 먼 예로는 마녀사냥이 존재한다. 그들은 명령과 시대의 패러다임에 복종했을 뿐이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자들로 남아있다. 그들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었으며 우리와 마찬가지로 죽기 두려워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도 언제나 악인으로 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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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드래곤은 짱 쎄고 짱 크다 투명드래곤이 안보인다면 당신은 차카게 살지 않아따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악이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보았으며, 전체주의 사회가 악을 발현시키도록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판타지 소설인 투명드래곤1)저자 뒤치닥은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의 평범성을 지적하는 걸작이라 볼 수 있다. 드래곤과 달리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투명 드래곤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는 악의 평범성을 상징한다. 투명드래곤은 졸라 짱쎄서 누구도 상대할 수 없으며, 신이나 마족까지 이겨버린다. 그들은 신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어느 군단도 그들을 파악하기 이전에 그들을 상대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그의 저서인 <전체주의의 기원>의 서두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전체주의적 믿음은 이제까지 모든 것이 파괴될 수 있으며, 인간의 본질까지 파괴될 수 있다는 것만을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통해 총체적 지배는 근본악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 악은 인간들이 벌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다는 데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제 그것은 처벌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근본악이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간의 모든 반응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으며, 어떤 분노도 이를 복수할 수 없고 어떤 사람도 이를 견뎌낼 수 없으며, 어떤 우애도 이를 용서할 수 없으며, 어떤 법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투명드래곤은 정확히 그녀의 말을 투사하는 서사를 보이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보이지만, 소설 주인공들은 투명드래곤이 어떤 짓을 하던 그를 볼 수 없다. 화자는 끝없이 투명드래곤이 강한 이유를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로 서술하며, 신조차도 그를 볼 수 없기에 그를 이길 수 없다고 써놓는다. 이러한 서술은 끝없이 “볼 수 없음”을 폭로함으로 그 특성을 강조하려는 전략이다. 투명 드래곤의 서사는 누군가가 그것을 볼 수 없는 특성 때문에 투명드래곤이 계속 승리하는 식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투명하기에 어디에도 존재하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2)정확히는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 어쩌면 투명드래곤은 우리가 볼 수 없는 우리의 무의식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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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저씨가 그 유명한 아돌프 아이히만이다. 다들 알다시피 사형당했다.

1961년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의 공판 현장에 따라가 그 상황을 기록하며 평범한 가장이었던 아이히만을 강조한다. 동시에 그녀는 평범한 한 가장이 어떻게 악의 화신으로 재탄생했는지를 서술하며 그는 “사고력의 결여”라 결론지었다. 즉,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하지 않은 죄만으로도 악인으로 변할 수 있다. 투명드래곤이 ‘새’상에서 가장 강한 이유는 우리가 그것의 존재를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음에서 나타났으며 투명드래곤으로 나타나는 악이라는 본성이 ‘저 너머의 세계’에나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투명드래곤은 ‘미국’을 날려버렸지만 누구도 투명드래곤의 존재를 짐작하지 못한다. 그는 디텍터(오버로드)로만 감지할 수 있지만 누구도 디텍터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결국 이길 수 없다.

 

뒤치닥이 묘사한 투명드래곤이 비현실적인 이유는 그러한 악이 초래한 현실들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600만이라는 유태인을 누가 이유 없이 죽였으며, 수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희생자가 되어야만 했는지 우리는 이성의 범위에서 납득할 수 없다. 동물도 안 저지를법한 반인륜의 죄를 저지른 자들은 절대 자신이 악인지 모르기에 한나 아렌트는 이를 경고했다. 그녀는 슈퍼 초초초초초초초초액션 진짜 졸라짱쎈 최강급 비밀파워하이퍼 필살기로 존재했던 나치즘을 비판하며 사상을 펼쳐나간다. 그러나 1945년까지 누구도 멸망할 줄 몰랐던 히틀러 정권은 무너졌으며, 그 원인은 전체주의 그 자체에서 온다.

망...하긴 망했네 결국

망…하긴 망했네 결국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를 인간이 필요 없는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는 목표 아래, 인간을 무가치하게 몰아넣는 태도라 본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본질은 규합만을 위해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완전히 박탈하고, 인간보다 사상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여 인간을 사상의 실현에서 완전히 배제시킨다. 즉 우리를 꼭두각시로 만듦으로써 그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전체주의적 믿음은 “인간은 스스로 만든 것만을 이해할 수 있다”라는 태도로 타자를 배제한다. 투명드래곤의 몰락은 여기에서 온다. 인간을 비인간으로 치부함으로 스스로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어떤 유토피아가 실현 가능한지 실험하기 위해 우리는 전쟁하고 체제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전체주의가 모든 세계를 포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나타났다. 투명드래곤 또한 스스로 자폭함으로 상대방을 없애는 궁극기를 택하는데, 이는 전체주의의 파멸을 예고하는 알레고리다. 더 나아가 우주 군주의 제자인 뒤크에게 몰락당하는 것을 결말으로 둔다. 이는 전체주의가 세계 전체를 지배할 수 없음을 암시하며 “우주 군주”는 시민의 상징이다. 뒤크의 등장 이유는 투명드래곤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경계한 작가의 후기에서 드러난다. 그는 우리에게 시민 계급의 판단이 전체주의를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줌으로 작품을 마무리 짓는다.

이런 생각도 말이다

이런 생각도 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킁로아아아ᄋᆞ랑 투명드래곤이 울부짖었다는 말이 유행하는 이유는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우리는 전체주의가 사라졌지만 “전체주의의 잔재”, 혹은 “전체주의적 마인드”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투명드래곤은 나치즘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항상 투명드래곤이라는 이름을 경계하며 우리에게 그것이 숨어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글/ 개소리 플레이어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저자 뒤치닥
2. 정확히는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