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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잘 먹는 소녀들」이 논란이 되었고,결국 폐지됐다. 폐지될 프로그램이 폐지된 것이니 속이 시원했다고 할까, 직관적으로 불편한 프로그램이긴 했다. 어린 여성1)보다 정확하게는, 어린 이미지의 여성이 남성들에 둘러싸여 이런저런 방식으로 음식을 먹는 괴상한 설정은 1회가 전파를 타자 곧바로 가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그것을 소비하는 방식이 관음증적이라는 비판도 잇따라 제기되었다. 여기서 ‘관음증적’이라는 표현이 주목할 만하다. 관음증은 성도착의 하나로 ‘관찰’을 통해 환상에 사로 잡히는 질환이다. 관음은 상대를 비인격화(대상화)한다는 점에서 포르노적인 것이다. 즉,「잘 먹는 소녀들」이 관음증적이라는 비판은, 어린 여성이 음식을 먹는 모습이 포르노와 동일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푸드 포르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나는 이것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잘 먹는 소녀들」이 관음증적인 것은 전시의 대상이 ‘음식을 먹는 어린 여성’이기 때문은 아니다. 관음의 본질은 인간을 비인격화해 성적 욕망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에 있다. 그 대상이 어린 여성이라는 점에서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면은 있으나, 소비하는 방식으로서의 관음 자체는 인간을 전시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 자체에서 온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부터 방영되어 수백 명의 ‘가상 부부’를 만들어낸 「우리 결혼했어요」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금껏 「우리 결혼했어요」에 대한 비판은 선정성이나 식상함에 대한 것으로 제한되어 왔다. 가짜 에로스를 관음의 대상으로 삼으며 성역할을 고착화하는 악질 프로그램은 ‘먹는 것’을 관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악질적이다.

인간소외(人間疏外)

자본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듯, 자본주의와 자본중심적 문화는 인식이라는 두꺼운 책에서 점차 비밀을 말소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낭만주의의 비밀스런 미적 경험을 벗겨내고, 유물론적으로 치환해 길거리에 전시해 버렸다. 숭고하거나 비장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던 거대한 자연의 감각은 극복 가능한 것이 되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는 예전에는 지향점으로나 기능했던 낙원이란 개념을 현실에서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는 매우 긍정적이고 비밀이 없는 사회를 이룩했다. 그리고 벗겨 진 사람들은 지향할 것을 잃어버렸다.

또한 목표의 결여와 함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양적 성장, 즉 세계의 물질적 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치환했다. 산은 광물자원으로서(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로,인간은 노동력으로서의 가치로 평가되었다. 즉 인간은 자본논리에 의해 소비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인격이 없는 인간은 ‘캐릭터’에 불과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고발했듯, 거대 조직이 보편화되면서 인간은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인간보다 능숙하게 일을 해낼 수 있는 기계는 점차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2)조금 벗어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의 문제는, 인간성의 결여라는 중대한 문제 외에도, 인간이 언젠가 ‘구식 기계’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있다. 진화론적으로 신체적 능력은 아주 천천히 변화하는 반면 기계의 발전은 매우 급속히 이루어진다.

2

그렇다면 이 ‘인간의 수단화’라는 꼭지를 유지한 채 시선을 조금 돌려보자. 우리 생활에서 인간이 가장 노골적으로 수단화 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 현실을 미화한다. 고유한 인격은 입맛에 따라 재단되고 방송사에서는 높은 수익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이 ‘가장 이상적인’은 ‘최소비용·최대효과’라는 자본주의의 원칙에 의한 것으로, 인간은 개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대량 생산된 나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보다 능숙하게 인간을 소비재로 전락시키는 시장이 또 있을까? 예능인들의 ‘웃음 강박’이 단순한 소명의식으로만은 보이지 않는 이유다.

포르노그래피

사실 ‘인간소외’와 ‘포르노그래피’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 비약하자면 포르노그래피는 곧 인간소외다. 두 현상 모두 자본주의가 인간을 수단화하면서 생긴 것이다. 포르노그래피는 관찰자의 성적 흥분을 일으킬 것을 제 1의 목적으로 하는 컨텐츠를 지칭한다. 목적의 단일화는 생산성 제고를 위한 자본주의의 원칙인 분업을 암시한다.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인간은 철저히 인간적 다양성이 외면되는 성적 욕구의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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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사진작가 로타(Rotta)의 사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왔다. 이것도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인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꽤 옛날에 허지웅은 표현의 자유에 대해 재미있는 말을 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자유’를 보장한다는 뜻이지 ‘표현’을 보장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다면 표현할 자유와 외설이라는 비판이 상호배반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또, 누군가 로타의 사진이 예술적이라 한다면 예술이라 칭하지 못 할 이유도 없다. 예술의 이름을 얻기 위해 포르노그래피와 상업성을 소독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의 사진 속, 도발적이면서도 기실 보는 이에게 아무런 위해도 가할 수 없는 인물들은 참 비극적이다. 쉬이 무너뜨릴 수 있는 도발의 조각들만 소비하는 남근주의가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활개 치는 꼴이라니. 글에도 영화에도 그림에도, ‘정복 가능한 여성’ 이미지가 유행인 것 같다. 남녀 할 것 없이 그런 코드를 소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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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철 교수의 《에로스의 종말》 4장 〈포르노〉는 다음 개념적 문장으로 시작된다.

“포르노는 전시의 대상이 된 벌거벗은 삶과 관련된다.”

그리고 이 문장에 뒤이어 4장의 핵심적 논지인 “포르노는 성애 자체를 파괴한다.”라는 문장이 나타난다. 한병철은 포르노가 ‘살아 있는 성애 속에서 죽은 섹스를 예감하게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우리 결혼했어요」의 포르노그래피적 성향, 즉 이 가상결혼 프로그램이 필연적으로 지닌 또 다른 ‘저열성’ 하나를 발견한다.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남의 연애―하는 척―를 훔쳐보는 사람에게나, 그 전시성 속에나, 성애는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가 박물관이 되면서, 실존이었던 것들이 가상 성애의 공간, 즉 ‘세계여행을 할 목적지’ 따위로 변모하듯, 「우리 결혼했어요」의 관음성 또한 성애 자체를 하나의 전시물로 치환한다. 이미 그 ‘성애’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세계의 것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보는 이의 상상 속에서 성애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성애의 비밀은 사라지고, 오롯하게 노골성만 남는다. 이제 「우리 결혼했어요」의 시청자는 포르노를 보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태도로 TV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되고, 그에게 사랑이란 일종의 불결한 목적성을 지닌 것으로 내면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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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냐… 괜찮아…

 

말하자면, 「우리 결혼했어요」는 포르노가 아닌 척 하는 포르노다. 포르노의 본질은 남녀가 옷을 벗고 섹스를 한다는 것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섹스를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함으로써 그것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점에 있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포르노의 ‘전시성’에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은 정말 다방면으로 멍청한 프로그램이다.

가부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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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결혼했어요」는 가부장적인 프로그램이다. 그것은 프로그램 기획 의도 자체에서 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작가, 프로듀서, 패널 등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하는 이들의 가부장적 의식에서 온다. 자막은 성 역할을 고착화하고 박미선 류의 패널들은 입을 통해 편견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다들 하하호호 행복해하는 걸 보면, 프로의 저열함이 이보다 더 깔끔히 증명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박미선:
“겉은 상남자인데 자기 여자에게 다정한 남자(가 좋다)”
“육성재, 애기 같아 보였는데 요즘 남성성이 올라온 것 같다. 갑자기 조이가 여자로 보이냐”
“여자들은 강아지 취급 받으면 좋지 않냐”
“(정준영은)여자 다루는 법을 안다. 약간 고집있는 남자다. 결국은 자기 뜻대로 한다. 모르는 척 하면서 다 자기 뜻대로 하는 요물”

정형돈:
“원래 걸레질은 여자가 하는 거야!”
“어머니 때에도 다 혼자 했대.”

마치면서

 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이윤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포르노화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인간은 계속 소외되고, 편견은 단단하게 남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해결책을 말하라면 나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잘 먹는 소녀들」이 시청자들의 비판으로 2회 만에 종방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런 악질적 프로그램을 억제하는 것은 조금이나마 가능한 것 같다. 인간성의 회복 같은 거창한 걸 위해 못 쓰는 글을 써본 것은 아니다. 그저 불편했다. 꾸며진 것을 보면서, 소중히 여겼던 가치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한낱 수단이 되어버리는 그 느낌이 불편했다. 혐오의 시대라고들 한다. 미디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회를 극단화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했으면 좋겠다.

칼립소의 권태로운 낙원을 거부한 오디세우스를 위하여.

글/ 미치코 아빠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보다 정확하게는, 어린 이미지의 여성
2. 조금 벗어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인간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의 문제는, 인간성의 결여라는 중대한 문제 외에도, 인간이 언젠가 ‘구식 기계’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있다. 진화론적으로 신체적 능력은 아주 천천히 변화하는 반면 기계의 발전은 매우 급속히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