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은 팬픽션(fan-fiction)의 줄임말로 팬들이 팬덤이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팬덤이 상으로 삼고 있는 매스 미디어 콘텐츠로부터 따온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다시금 표현하는 픽션이다.1)Jenkins, Henry, Textual Poachers : Television Fans & Participatory Culture: Studies in culture and communication , Routledge, 1992, p.23.

‘픽션’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팬픽은 완결된 서사체 형태, 즉 소설로 구현된 2차 창작물을 가리킨다. 팬이 중 미디어 콘텐츠에 반응하거나 적극적으로 이를 해석하는 수용 차원의 행위를 넘어, 직접 원작(canon)에 한 파생 콘텐츠들을 창작하는 행위를 2차 창작이라고 하고, 이때 발생하는 결과물을 2차 창작물이라고 한다.2)2차 창작물은 일본 하위문화 연구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 일본에서는 주로 오타쿠계 문화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주로 성적인 의미에서 재해석하여 제작되고 매매하는 동인지, 동인 게임, 동인 피규어 등을 총칭한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東浩紀, 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2010, p.55

초기 팬 문화 연구는 미국 팝 음악의 10대 팬들 위주로 일어났다. 이때 연구들은 적극적인 수용자로서 팬이 지니는 가치와 가능성에 주목한다. 팬들이 팝 음악 산업이 의도하는 데로 광적인 열광을 하는 분별력 없고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팝 음악 산업의 의도에 맞서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위를 실천해나가며 더 나아가 자신들의 행위에 한 의미를 성찰한다고 보았다.3)Hall, Stuart and Whannel, Paddy, The Popular Arts , Hutchinson, 1964. Hall, Stuart and Jefferson, Tony(eds), Resistance Through Rituals, Hutchinson, 1976.

지난 1996년 데뷔한 H.O.T.는 이전과는 다른 ‘아이돌 팬덤’을 만들었고 ‘오빠’라고 불리는 가수 아래 그 당시 10대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온라인에 힘입어 그 이전 세대에서는 향유하지 못한 팬 문화를 주도한다. 그때 발전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형 ‘팬픽’이다. 국외에서 시작한 팬픽 문화는 팬픽션이라고도 불리며 두 단어가 동의어로 쓰이나 한국에서는 팬픽과 팬픽션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팬픽션은 미국 드라마 ‘스타트랙’을 시작으로 서양에서 시작된 팬 문화이지만, 우리나라의 팬픽은 드라마 이전에 아이돌 팬덤에서 발생했다.4)인기남성댄스그룹의 팬픽현상에 대한 연구 : ‘g.o.d’와 ‘신화’를 중심으로 = Study on fanfic of boy singer-groups : a case study of ‘g.o.d’ and ‘ShinHwa’ 안선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3] 결국 국내에서의 팬픽은 아이돌이라는 ‘실제적인’ 인물을 변형하여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르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흔히 현재 정착된 아이돌 팬픽의 시조는 H.O.T.의 팬덤 club H.O.T.의 팬픽으로 보고 있다.5)현재와 같은 한국형 아이돌의 시초를 H.O.T.로 보는 시각에서 이후 젝스키스(1997년 데뷔), 신화(1998년 데뷔) 등의 후속 가수와 팬덤의 증가로 팬픽은 어느새 팬덤이 생기면 당연히 따라오는 부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글은 그중 1세대 아이돌 신화 팬픽의 서사와 창작기법을 다각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한 글이다. 저번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신화가 중심이 된 까닭은 내가 17년 째 신화만 파는 신화바라기, 주황공주(…) 신화창조이기 때문이다. (즉, 다른 아이돌 팬픽은 이 글에 거의 안 나온다)

1. 인형조종술 사용

아이돌 팬픽의 경우 팬덤 내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향유하는 문화형식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서브 컬쳐의 한 갈래이다. 즉 팬픽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팬덤이지만 팬덤 내에 속하여 있다고 해도 팬픽을 즐기지 않을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즐기는 문화다보니 이야기의 구성이나 서사의 형식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다. 이를 볼 수 있는 것이 팬픽 내의 ‘커플링’ 놀이인데 이는 특정 멤버들을 엮어 커플화 시키는 행위다. 어떤 ‘커플’을 지지하느냐가 팬픽을 선택하는 것에 중요한 주제가 된다. ‘커플’만 보고 팬픽을 선택하는 경우도 잦고, 더 나아가 자기가 원하지 않은 ‘커플’에 대해서는 보이콧을 하거나 그를 지지하는 사람과 대립을 하기도도 한다. 팬픽 내에서의 ‘커플’은 팬픽을 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중심축이다.

‘커플’이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인연으로 묶여있는 한 쌍의 관계라고도 해석할 수도 있지만 팬픽 내의 커플은 동성연애 파트너로서의 의미가 강하다. 신화 팬덤 내에서의 커플은 공식커플(이하 “공커”) 릭진(에릭X전진) 완디(동완X앤디) 민셩(민우X혜성)로 불리면서 인기를 끌었고 공식 커플을 지지하는 팬 페이지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팬픽 또한 공식커플을 지지하는 팬들을 ‘메이저’, 이 외의 커플을 지지하는 팬을 ‘마이너’라고 부르며 팬픽을 제작하였다. 팬픽 용어 중에 있는 ‘메이저 팬픽’이란 것은 유명한 팬픽을 일컫기도 하지만 메이저 커플 팬픽의 준말이기도 하다.

작가 디오니셩의 <10년 째 연애 중>이라는 팬픽은 1998년에 데뷔한 신화의 멤버 혜성과 에릭이 데뷔 10년간 팬들 몰래 연애를 했다는 가상설정을 기본으로 했다. ‘리얼물’이라고 불리는 이런 유형의 팬픽은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가미하는 경우가 잦다. 위에서 묘사한 것은 2001년 신화 4집 <Hey, Come on> 활동 당시 에릭이 라디오에서 공개연애를 고백한 사건이다. 현실사건을 반영한 팬픽이지만 이후의 ‘진짜’ 혜성이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팬픽 안’에서 에릭을 좋아하고 있는 혜성은 에릭의 공개연애 인정 이후 그의 목소리에도 크나큰 동요를 보인다. 팬픽 밖의, 신화의 멤버들은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팬들은 알 수 없지만 팬픽 안의 신화 멤버들은 팬들이 원하는 대로 주조할 수 있다.

그러나 팬픽 내에서 아무리 실제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은 현실세계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가상의 사건이다. 위의 소설처럼 ‘에릭의 고백’은 실제지만 그 이후의 신혜성의 동요는 작가의 상상력이다. 실제사건은 서사를 이끌어가는 하나의 빌미일 뿐 결국 팬픽 내의 모든 것은 작가가 창조한 가상의 세계다. 팬픽은 일반 소설과 다르게 작가와 화자가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작가는 작품 바깥에서 등장인물을 지배하는 절대자다.

소설가 김동인은 작가와 작품 속 세계의 관계는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과 조종당하는 인형의 관계라고 여겼다. 즉 작가가 창조한 작품 세계를 완전히 지배함이 문제지, 창조한 인생의 진짜 혹은 가짜임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6)김봉군 외, “김동인론”,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1997) p. 532.

그는 소설의 공간은 현실의 공간과 완전히 다르며, 오로지 작가의 상상만으로 구성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이 지닌 사회적 효용성이 아니다. 그는 작가의 창조력, 상상력이 작품을 통해 발휘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어렵고 곤란한 조건 속의 인물들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새 삶을 찾기보다는 그 조건들에게 굴복한다. 인물들에게는 생명력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작가에 의해서 움직일 뿐이다. 고로 이와 같은 창작 기법은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동인은 현실 반영과 예술성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도 소설 속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믿었고 소설 속의 인물이 현실과 달리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인형 조종술’에서 찾았다.7)강병융, 김동인 소설 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2001) p. 38-39

‘인형 조종술’은 작품 내의 모든 환경이 가상이며 작가를 그 가상 세계의 전능한 신이 되어 인물들을 조종할 수 있는 기법 중의 하나다. 팬픽은 실제 세계와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하더라도 절대 현실 내에 현존하는 사건과 인물로 대체될 수 없다. 실제사건도 작가의 판타지가 추가되며 팬픽을 보는 팬덤에서 원하는 로맨스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서만 활용된다. 팬픽에서의 ‘인형 조종술’은 오로지 작가의 의향과 의지대로만 움직이는 기법이 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2. 금기에 대한 자유로운 묘사

‘인형 조종술’과 같이 작가가 현실과 비현실성을 임의대로 조정할 수 있다 보니 팬픽 내에서 통용되는 금기에 대한 묘사는 일반적인 주류 문학8)2차 가공물을 제외한 1차 창작물로 발행된 문학들을 모두 ‘주류 문학’이라고 칭한다.보다 더 느슨하다. 또한 팬픽이라는 장르 자체가 팬들이 ‘물 밑’이라고 부르는 음지화된 곳에서 소수의 집단이 서로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만드는 컨텐츠이기 때문에 그들이 보기에 ‘매우 비도덕적인’9)광기로 인한 집단 자살, 멤버가 이유 없이 테러 가해자가 되는 팬픽 등 뚜렷한 이유 없이 폭력적인 내용은 ‘매우 비도덕적’인 내용으로 취급 받는다. 내용만 아니면 통용되는 자살, 폭력, 동성강간 등 공식적으로는 발언하기 어려운 사회적 금기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롭다.10)그렇다고 팬덤 내에서 통용되는 금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4년 故김선일 납치 피랍사건 당시 이 내용으로 팬픽을 올렸던 동방신기 팬덤의 팬은 외부뿐만 아니라 팬덤 내부에서도 지탄을 받아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개제한 전력이 있다. 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피해자가 분명히 있는 사건을 모티프로 하는 것은 팬덤 내에서도 금기다.

초창기의 이성 팬픽을 제외한다면 현재의 팬픽은 멤버들간의 동성 연애물을 추축으로 하는 동성 팬픽이 주류로 자리 잡았다. 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통용되지 못하는 동성연애를 골자로 팬픽을 제작하는 것 또한 팬픽 내에서 금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가 되었다. 이미 사회적으로 불편한 이야기를 주요 내용으로 채택하였으니 조금 더 손쉽게 다른 금기에 대해서도 묘사가 가능한 것이다.11)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성연애물과 실제의 동성연애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설픈 판타지만 가득한 경우도 왕왕 있다. 동성연애물과 동성연애는 절대로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동성연애가 자연스럽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여성적 판타지가 다수 포함되긴 하였지만) 동성연애를 기조로 한 소설을 꾸준히 쓰고 읽는다는 것은 어느 의미로, 팬픽의 태생부터 또 다른 금기에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게 하였다.

팬픽 내에서 자살, 강간, 살인, 유흥업소 등의 주제는 이미 너무나도 자주 사용되어 왔었고 현재까지도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경향은 초기의 팬픽을 쓰던 주 작가층이 10대와 20대에 한정되어 좀 더 자극적인 소재를 사용한 탓도 있겠지만 소수의 팬덤이 모여 또한 소수의 모임 속에서 팬픽을 소비하던 형태 때문에 나타난다. 취향이 맞는 소수의 모임에서라면 다수를 상대하는 주류문학보다 검열이 느슨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강력한 제재 없이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다.

에너로이드의 <시저스 인 뉴욕>의 주인공 시저스(전진)는 마피아 보스이며 살육과 뒷세계 전쟁에 익숙한 자다. 일명 밀크, 혹은 밀크 스네이크(신혜성)라고 불리는 이는 시저스의 아버지의 정부지만 시저스와 관계를 가지게 되고 후에는 그의 ‘아킬레스건’이라고까지 불리게 된다. 이 팬픽에서는 시저스와 관계를 가진 모든 신화 멤버들이 마피아로 등장하며, 신화 멤버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초 활동하던 몇몇 아이돌 멤버까지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이 팬픽 내에서의 마피아는 범죄조직임에도 적절한 당위성과 인간미를 가지고 있고 수장인 시저스는 로맨티스트로 묘사된다. 그가 지휘하는 살인 등은 적당히 미화되고, 독자들은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채 일종의 장르 로맨스 소설로 팬픽을 소화한다.

같은 작가의 「스카페이스」 또한 야쿠자 이야기를 전면으로 내세운다. 이는 범죄 조직에 대한 팬픽계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예이며 더불어 주류문학에서 사용하지 않던 주제를 팬픽계에서는 보다 더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증거도 된다.

2000년대 초까지 주류문학의 주인공은 범죄 조직의 일원, 혹은 실패한 청춘이기 보다는 삶에 대해 고민하는 지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금기보다 자유롭게 이야기되긴 하였지만 허무를 느끼고 탈 일상을 꿈꾸는 주체는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등 한국문학사에 기점이 되는 대부분의 주인공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인물이었다. 1990년대 이후 일본문학 시장이 개방되면서 일본문학 특유의 허무주의가 유행되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12)당시 한국 라이센스 발매 제목은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류의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등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10년 이전의 한국 소설은 ‘일반적이지 않은’ 동성애자, 장애인, 하류층의 여자 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주류의 문학이 팬픽보다 더욱 보수적이었다는 방증이다.13)물론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 등 하류층을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1990년대 한국문학은 보수적인 색채가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한국문학의 변화가 생기는 기점은 2010년 이후로, 한국 소설계에서 내세우는 주인공 또한 변화를 맞이했다. 2010년 민음사에서 주최하는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김혜나의 「제리」의 주인공은 수도권 야간 전문대생인 여자와 호스트바의 호스트인 남자다. 스스로도 ‘꿈이 없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둘의 만남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연인사이였던 둘은 헤어진 채 소설이 끝난다. 호스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제리 또한 그 세계에서 유망한 인재가 아니고, 그 스스로도 자신을 낮게 평가한다.

어떤 한 관계를 묘사할 때의 비유법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소설가들보다 거칠 수는 있겠지만 묘사의 사실성은 팬픽이 더 높을 수 있다. 주류문학에서 새로운 시도로 평가되고 이전 시기보다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소설들도 사실은 그들이 비주류라고 칭하는 팬픽에서 수 없이 반복했던 클리세에 지나지 않는다.

3. 현실 인물에 대한 팬덤 내 캐릭터성 부여

팬픽은 현실 인물을 바탕으로 주인공을 내세워 생성되는 장르다. 일반 소설과 달리 등장인물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만들어진다. 사실 모티프를 넘어 실존하는 인물을 팬들의 취향으로 재창조하는 것에 가깝다. 즉 팬픽의 주인공은 실제 인물이지만 팬들의 취향으로 재조립한 것에 가깝다. 현실 인물의 이름을 쓰고 그들의 성격이 묻어나는 주인공이지만 그 인물은 멤버 그 자체가 아니라 어느 정도 허구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 팬픽의 특성이다.

따라서 팬픽의 인물들은 팬덤 특성상 일정한 수준의 비슷한 캐릭터성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팬덤 안에서 소비되는 멤버의 특성을 팬픽 속에서 녹이는 경우가 다반수이므로 팬픽의 주요 스토리 라인은 다를 지라도 팬픽 안의 인물 묘사는 비슷하게 흘러갈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신혜성’을 수로 보는 팬픽에서는 신혜성이 희고 유약하며 연약한 인물로 묘사된다. ‘에릭(문정혁)’을 공으로 보는 팬픽에서는 에릭이 까맣고 강하며 절대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이러한 캐릭터성 특성은 여러 팬픽에서 중첩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같은 인물이라도 공/수의 캐릭터를 맡느냐에 따라서 소극적으로 변할 수는 있겠으나 결국 공의 역할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수의 역할에서도 비슷하게 묘사된다.


 

“역시 여자는 아사인의 여자가 제격이지요. 작고 갸날픈 몸이지만, 도도한 맛이 있잖아요.”

막 장기판에 말하나를 옮기며, 웃는 청년의 말에 앞에 앉은 노인이 큰 소리로 웃었다.

“네가 아직 어리고 혈기가 왕성해서 그런 여자에게 끌리는거겠지만, 나정도 나이가 먹으면 그런 여자는 버거워진다. 차라리 베르인족의 여자들이 고분한게 훨씬 안기 편해.”

강한 기질을 가진 아사인족의 여자들보다는 곧고 순종적인 베르인족의 여자들을 생각하며 음흉한 미소를 짓는 늙은 노인의 말에 이번엔 젊은 청년이 크게 웃었다. (…)

황가의 피를 이어받은 외가 덕에 외할머니와 두 사촌 누나와 함께 부족할 것 없이 살아온 민우는 일년전쯤 이곳에 요양차 온 황제의 눈에 띄어 유쾌한 말솜씨와 시원한 외모로 단번에 그의 신임을 얻었고, 지금은 이 섬안에서 유일하게 황제와 대등하게 대화를 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14)파란나비 「악(惡)」


나도 내 딴에는 하느라고 하는…..열심히 사는

대한의 건아(健兒)이다..

뭐…

학교 가끔 피치못할 사정으로 일주일에 사일정도 안가고..

나는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날 가만두지 않아 가끔..

약간의 폭행과 소년범죄를 조금…아주 조금 저지르긴

하지만…

그럭저럭 아주 착실한 대한의 고. 삐. 리. 라는 거다….(…)

 

쾅!!

하고 교실 뒷문이 모든이들의 이목을 주목시키며

거칠게 열리고…

” 숙희씨!!! “

………………..

라는 외마디 외침과 함게 등장한 그..

………………..

“………-_-;;………..이민우군……….학교에는 웬일이죠? “

“아니…..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웬일이라뇨?

학생이 학교 오는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15)베르사유 「청춘을 불사르다」


위의 인용문 2편은 민셩(민우X혜성) 팬픽 중 공의 역할을 맡았을 때의 묘사이다. 민우(공)은 다른 팬픽에서 등장했지만 자유롭게 살며, 남성성이 강한 역할로 묘사된다. 비슷한 캐릭터가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또한 민우(공)는 주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개성을 관철시키는 역할이 캐릭터성으로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악의 민우가 ‘황제’앞에서도 거침없이 제 의견을 관철시키는 모습이나 ‘청춘을 불사르다’의 학생 민우 또한 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는 모습에서 거침없는 민우의 캐릭터성을 느낄 수 있다.

팬픽은 즉 팬들이 원하는 멤버들의 캐릭터에 따라서 멤버에 대한 묘사가 달라질 수 있는 컨텐츠이며 이는 팬픽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다.

팬픽은 아이돌 팬덤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는 문화 컨텐츠 중 하나이지만 모든 팬들이 팬픽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같은 팬덤 안에서도 그것을 향유하는 자와 향유하지 않는 자로 나뉘어 있다. 즉 대중적인 아이돌 산업 중에서 마이너적인 서브 컬쳐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음지문화로 평가받던 팬픽은 1990년대 초반 등장 이후로 꾸준하게 창작되고 있음에도 그 문학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한국형 아이돌 팬픽이 꾸준히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점에서 팬픽을 연구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그러나 선행연구는 팬픽의 동성애적 서사연구16)한국 아이돌 팬픽의 서사 연구, 안수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2014]나 그것을 향유하는 10대 청소년의 팬픽 문화 연구17)청소년의 팬픽문화와 동성애에 대한 태도 연구 : 여자 중학생들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eenagers’ fanfic culture and attitudes toward homosexuality : Focusing on middleschool girls 박수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2004], 혹은 현상연구에 치중되어 있는 모습을 보였다18)인기남성댄스그룹의 팬픽현상에 대한 연구 : ‘g.o.d’와 ‘신화’를 중심으로 = Study on fanfic of boy singer-groups : a case study of ‘g.o.d’ and ‘ShinHwa’ 안선주, 연세대학교 대학원,[2003]. 2차 창작물이라는 팬픽의 태생적 한계로 그 자체의 문학성을 주목하는 시도가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팬픽 자체의 의의를 탐구하려는 시도보다 그 가외의 현상이나 팬덤 연구를 위주로 연구되었다. 많은 소녀들의 꿈과 밤을 책임졌던 팬픽은 가외의 현상이나 일탈 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안다.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이 사실 누군가의 현실이라는 것을. 팬픽은 소녀들을 키웠다. 소녀들의 감성들을 매만졌다. 그리고 이제는 다 자란 소녀들의 추억까지 책임진다. 이것이 문학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문학이란 말인가?

 

교정 및 편집 / 아날로그
글 / 블리

   [ + ]

1. Jenkins, Henry, Textual Poachers : Television Fans & Participatory Culture: Studies in culture and communication , Routledge, 1992, p.23.
2. 2차 창작물은 일본 하위문화 연구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 일본에서는 주로 오타쿠계 문화에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주로 성적인 의미에서 재해석하여 제작되고 매매하는 동인지, 동인 게임, 동인 피규어 등을 총칭한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東浩紀, 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2010, p.55
3. Hall, Stuart and Whannel, Paddy, The Popular Arts , Hutchinson, 1964. Hall, Stuart and Jefferson, Tony(eds), Resistance Through Rituals, Hutchinson, 1976.
4. 인기남성댄스그룹의 팬픽현상에 대한 연구 : ‘g.o.d’와 ‘신화’를 중심으로 = Study on fanfic of boy singer-groups : a case study of ‘g.o.d’ and ‘ShinHwa’ 안선주, 연세대학교 대학원, [2003]
5. 현재와 같은 한국형 아이돌의 시초를 H.O.T.로 보는 시각에서
6. 김봉군 외, “김동인론”, 한국현대작가론 (민지사, 1997) p. 532
7. 강병융, 김동인 소설 연구 (명지대학교 대학원, 2001) p. 38-39
8. 2차 가공물을 제외한 1차 창작물로 발행된 문학들을 모두 ‘주류 문학’이라고 칭한다.
9. 광기로 인한 집단 자살, 멤버가 이유 없이 테러 가해자가 되는 팬픽 등 뚜렷한 이유 없이 폭력적인 내용은 ‘매우 비도덕적’인 내용으로 취급 받는다.
10. 그렇다고 팬덤 내에서 통용되는 금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4년 故김선일 납치 피랍사건 당시 이 내용으로 팬픽을 올렸던 동방신기 팬덤의 팬은 외부뿐만 아니라 팬덤 내부에서도 지탄을 받아 글을 삭제하고 사과문을 개제한 전력이 있다. 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피해자가 분명히 있는 사건을 모티프로 하는 것은 팬덤 내에서도 금기다.
11.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성연애물과 실제의 동성연애가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어설픈 판타지만 가득한 경우도 왕왕 있다. 동성연애물과 동성연애는 절대로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사회적으로 동성연애가 자연스럽게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여성적 판타지가 다수 포함되긴 하였지만) 동성연애를 기조로 한 소설을 꾸준히 쓰고 읽는다는 것은 어느 의미로, 팬픽의 태생부터 또 다른 금기에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게 하였다.
12. 당시 한국 라이센스 발매 제목은 「상실의 시대」
13. 물론 황석영의 「삼포로 가는 길」 등 하류층을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1990년대 한국문학은 보수적인 색채가 아예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14. 파란나비 「악(惡)」
15. 베르사유 「청춘을 불사르다」
16. 한국 아이돌 팬픽의 서사 연구, 안수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2014]
17. 청소년의 팬픽문화와 동성애에 대한 태도 연구 : 여자 중학생들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eenagers’ fanfic culture and attitudes toward homosexuality : Focusing on middleschool girls 박수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2004]
18. 인기남성댄스그룹의 팬픽현상에 대한 연구 : ‘g.o.d’와 ‘신화’를 중심으로 = Study on fanfic of boy singer-groups : a case study of ‘g.o.d’ and ‘ShinHwa’ 안선주, 연세대학교 대학원,[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