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새로운 대중 문화가 태동했다. 1996년 데뷔한 H.O.T.는 이전과는 다른 ‘아이돌 팬덤’을 만들었고 ‘오빠’라고 불리는 가수 아래 그당시 10대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온라인에 힘입어 그 이전 세대에서는 향유하지 못한 팬문화를 주도한다. 그때 발전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팬픽이다. 국외에서 시작한 팬픽 문화는 팬픽션이라고도 불리며 두 단어가 동의어로 쓰이나 한국에서는 팬픽과 팬픽션은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팬픽션은 미국 드라마 ‘스타트렉’을 시작으로 서양에서 시작된 팬 문화이지만, 우리나라의 팬픽은 드라마 이전에 아이돌 팬덤에서 생겨났다. 결국 국내에서의 팬픽은 아이돌이라는 실재(實在) 인물을 변형하여 주인공으로 내세운 장르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흔히 현재 정착된 아이돌 팬픽의 시조는 H.O.T.의 팬덤 club H.O.T.의 팬픽으로 보고 있다. 이후 젝스키스(1997년 데뷔), 신화(1998년 데뷔) 등의 후속 가수와 팬덤의 증가로 팬픽은 어느새 팬덤이 생기면 당연히 따라오는 부록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전의 연구를 보면 팬픽은 이성애적 서사에서 시작하여 동성애적 서사로 환원한다. 지금 시대의 팬픽은 동성 결합형 팬픽이 절대적이며 이성은 동성과의 결합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다1)편집자주: 이 부분이 팬픽 문화의 여성혐오적 요소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동성 결합형이 대세인 팬픽 자체는 현대 여성들의 사이버 문화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의 사이버 상의 교류와 여성 판타지성을 충족하기 위해서라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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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팬픽은 동성애적, 혹은 여성문화라는 프레임 안에서만 이야기 되어왔다. 그렇다면 아이돌 팬픽은 어떻게 생성되고 어떤 형식으로 세밀화 되었는가. 하나하나 다 이야기하기엔 끝도 없을 것 같아, 1세대 아이돌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신화 팬픽을 중심으로 그 계보를 찾아보았다. 왜 신화 팬픽을 중심으로 하느냐면, 내가 신화의 오랜 팬이기 때문에.

1세대(데뷔~2000년대 초)

신화 팬픽은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등에서 자생적으로 시작된 ‘팬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때의 신화 팬픽은 미비하였다. 당시 3대 포털에서 가장 인기있었던 팬 동호회는 H.O.T. 팬덤으로서 이때 팬픽계를 휩쓴 ‘5대 팬픽’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다. 당시 H.O.T. 5대 팬픽으로는 [샤콘느, 파애, 360도, 관계, M.I.X] 처음으로 준타(희준X강타) 톤혁(토니X장우혁) 등 팬들이 맺어 준 동성 커플 네임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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톤혁은 SNL에서 본인들에 의해 역패러디(?) 되기도. (사진을 누르면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준타 같은 경우에는 리더인 문희준이 공 역할을 맞고 메인보컬인 강타가 수 역할이었으나 톤혁의 경우 토니가 수 역할을 자주 맡았음에도 장우혁보다 이름이 먼저 들어갔다. 동성커플 이름의 과도기다. 이후 god와 신화를 거쳐 공X수 커플이름이 정착하였다. 당시 신화 팬픽은 초기 단계로서 이성 팬픽이 등장하거나 신화 멤버들이 우정으로 뭉친 우정 팬픽 같이 1차적인 컨텐츠가 생산 되는 등 기본적인 동성 팬픽이 나타났다. 그렇지만 아직까진 미비한, 공식커플이 생성되기 시작한 시기다.

2세대(2000년대 초~중반)

신화 팬픽은 통신 서비스를 벗어나 당시 태동하던 다음 카페로 넘어간다. 2000년대 이후 젝스키스의 해체와 H.O.T.의 부재로 신화의 시기가 태동한다. 2004년 SM에서 벗어나 굿이엠지로 가면서 <Brand New>의 히트로 2004년 가요 대상을 받으며 팬들이 급증하게 되고, 음지 문화였던 팬픽 문화도 급격하게 성장한다. 이때까지는 음지라기 보다 카페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팬들이 많았다. 당시 유명 팬픽 카페로는 ‘떳다신화’ ‘신화팬픽’등의 사이트가 있었고 동성 팬픽 태동기였다. 이후 십수 년간 사골처럼 우려지는 <공식커플>이 이때 완성된다. 공식커플은 릭진(에릭X전진) 완디(동완X앤디) 민셩(민우X혜성). 그러나 충동(전진X동완) 릭셩(에릭X혜성), 진셩(전진X혜성)등 공커(공식커플)가 아닌 마이너리티 커플도 태동했다.

당시 신생으로 떠오른 팬픽계의 신성이 바로 동방신기. 동방신기는 유수(유천X준수) 윤재(윤호X재중)등 유명한 커플링을 만들어내며 이후 팬픽계의 거목으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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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나, 8반 이쁜이가

2기에서 3기로 넘어가기 전에 극심한 과도기(2000년대 중반)가 있었다. 이 시기는 팬카페에서 홈페이지로 넘어가는 시기. 멤버 개인의 팬페이지와 커플 팬페이지가 생겨난다. 이 시기에 공식커플이 분화된다. 이 시기 흥했던 커플은 팬픽계에서 큰 영향력을 과시했던 작가 소파셩과 그가 속해있던 페이지 ‘난장필교’가 셩수(신혜성 수)를 거부하고 셩공(신혜성 공)을 밀면서 생겨난 셩디(혜성X앤디), 교우(혜성X민우 : 민셩이 리버스<공,수가 바뀐>가 된 커플, 교우 역시 교우대피소라는 큰 사이트를 등에 업었다)와 역시 큰 커플 팬페이지 엑스가 있었던 민셩2)현재까지 성업 중이다등 신혜성 중심으로 커플이 개편되었다3)릭셩, 진셩, 릭진셩, 릭민셩, 민진셩 등 3각 커플도 포함. 이후 릭완(에릭X동완) 우동(민우X동완)도 소소한 인기를 끌었다.

3기(2000년대 중반~현재)

신화의 활동기 이후 오랜 공백기와 함께 카페는 해체되고 개인 홈페이지로 바뀌었으며 주로 팬페이지 형태로 팬픽 사이트가 운영되면서 팬픽의 형태는 좀 더 음지화되었다. 이 때부터의 팬픽은 검색 및 인터넷 서치가 익숙하지 않으면 제대로 즐길 수 없게 된다. 음지(팬들 언어로는 ‘물 밑’)로 가라앉은 팬 커뮤니티는 ‘동맹’의 형태로 견고해지지만 새로운 팬들의 유입은 적어진다. 공백기가 한창이던 2000년대 후반~2010년 초반 당시 상황에서는 팬 커뮤니티가 육감(현재 사라짐), 신화창조(다음 공식카페), 엑스(민셩), 연인(김동완 개인 팬페이지) 등 대형 커뮤니티를 제외하면 소수의 개인 홈페이지와 팬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 신화 갤러리 정도 밖에 없었다.

2012년 신화의 공백기가 깨지면서 새로운 팬들 유입은 급속도로 빨라지고는 있지만 팬카페가 아닌 홈페이지 형태의 커뮤니티, 개인 홈페이지 계정으로 하는 팬질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 이 시기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커플에게만 지지를 보내는 성향이 이전보다 강해졌다. 공식커플이 완전히 해체되는 시기. 역시가 신혜성 위주로 커플이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이때 부상한 커플이 릭셩. 이때부터 ‘네임드’ 작가들의 파워가 거세졌다.

한국형 아이돌 팬픽이 꾸준히 생산되고 소비된다는 점에서 팬픽을 연구할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차 창작물이라는 팬픽의 태생적 한계로 그 자체의 문학성을 주목하는 시도가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팬픽 자체의 의의를 탐구하려는 시도보다 그 가외의 현상이나 팬덤 위주의 연구가 많았다. 2차 창작물로서의 아이돌 팬픽은  문학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팬덤 안에서 소비된다는 이유만으로 그 문학성은 쉽게 외면받았다. 오빠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는게 그렇게 잘못인가! 나는 당당하다. 나는 대한민국의 당당한 빠수니다.

글 / 블리

편집, 교정 / 아날로그

   [ + ]

1. 편집자주: 이 부분이 팬픽 문화의 여성혐오적 요소로 지적되기도 합니다
2. 현재까지 성업 중이다
3. 릭셩, 진셩, 릭진셩, 릭민셩, 민진셩 등 3각 커플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