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진 작업을 하던 중, 우연히 지원서를 넣었던 베니스의 한 예술가 레지던시에 합격하였다. 예술가들이 모여서 같이 도란도란 작업을 하며 정보를 나누는 꿈만 같은 숙소!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 이탈리아 베니스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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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소 지도. 구글맵.

그렇게 베니스에서 사진작업을 하면서 머문 지 3주가 되어갈 즈음, 기차로 30분 거리의 도시 ‘트레비소Treviso’에서 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밌는 사진이 나올 거 같은 예감이 들어, 카메라를 챙겨 출발했다.

트레비소 센트럴 역에 내리자, 예상 외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베니스와 트레비소는 큰 도시는 아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곳엔 대략 천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난 행렬의 중간만 봐서 숫자를 잘못 세었을 수도 있다.

역시 이탈리아라는 느낌이 들었다. 앰프를 6개 정도 쌓아놓고 음악을 크게 트는 트럭이 적어도 4대는 있었다. 아직 행사가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며(이탈리아에선 길거리 흡연이 어느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다) 노래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3시 반에 시작하기로 한 행사가 4시 반에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대열을 맞춰 행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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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앰프에선 레이디가가의 “Born this way”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정말 말그대로 미친 듯이 춤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알아서 대열을 맞추고, 시민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은 비워두고 도로로 행진하고 있었다. 행진 경로의 도로는 사전에 시 차원에서 봉쇄한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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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 왼쪽으론 퍼레이드, 오른쪽엔 시민들이다. photo by simon

그 와중에서 놀란 것은, 시민들의 시선이었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자, 시민들은 박수를 치고 같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신이 난 시민들이 퍼레이드에 뛰어들어 참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모든 시민들이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그곳엔 그들을 경멸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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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아, 한 단체는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동성애 혐오단체가 행렬 옆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몇 천명일지 모르는 퍼레이드 행렬 옆에서 단 6명이 초라하게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대부분의 행렬은 무시하며 지나갔지만, 몇몇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보수단체에게 팜플렛을 나눠주거나, 웃으며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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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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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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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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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놀란 것은 생각보다 종교를 희화화하거나 약간은 모욕적인 언사를 담은 팜플렛이나 판넬이 많았다는 것이다. 퀴어를 지지한다고 발언한 프란치스코 교황1)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31745171&code=970100의 사진의 배경에 무지개색을 채워넣고 표현한다든지, 무지개색 면류관을 쓰고 흰 누더기옷을 입고 행진한다든지, 천사의 옷을 입고 춤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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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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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멋진 사람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내 얼굴에도 무지개색 물감을 묻혀주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 얼굴에도 묻히고, 구경하던 아이의 얼굴에도 지나갔던 무지개색 물감이 내 얼굴에 묻자 약간 상기되었다. 타지에 왔다는 두려움과 설레임이 마음을 스치고, 그 긴 행렬에 아시아인이 나 밖에 없다는 점도 충분히 눈에 띄는데, 얼굴에 무지개를 그리고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아시아인은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의문이 생겼지만, 카메라 앞에서 웃어주는 그들을 보며 쓸데 없는 걱정이었다며 생각했다. 하지만 아시아인이 나 밖에 없다는 점은 약간 의아했다. 분명히 베니스와 트레비소에 사는 중국인이나 한국인이 정말 많은데, 다들 바쁘게 사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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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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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행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같이 행진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나를 향해 인사해 주었다. 내 얼굴에 묻은 무지개색 물감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받을 수 있었다. 퀴어퍼레이드에 간다고 하면 동성애에 관한 질문을 늘어놓으며 묘한 시선을 보내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정말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는 하나의 축제였고, 하나의 뜻을 품고 있는 행진이었고, 시민들이 축복해주는 행사였다. 한 이방인으로써 감탄했고, 한 이성애자로서 즐거웠고, 한 사진작가로서 좋은 기회였다. 이렇게나 멋있는 행진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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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simon

 

글/ 싸이먼

편집 및 교정/ 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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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31745171&code=97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