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게임 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페미니즘의 강력하고 견고한 경계 설정은 그 자체로 파괴력을 지닌다. 노동 운동, 민주화 운동 등, 지금까지 좌파 운동의 주류였던 ‘불평등 해소’ 혹은 ‘사회정의 구현’을 지향하는 운동에서 여성운동은 상당 부분 무시됐고, 우선순위가 매우 낮은 주제로 간주되었다. 이를테면, 요즘 많이 인용되는 유시민 전 의원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2002년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을 당시, 당내 성폭력 사건 논란에 대해 유시민은 이렇게 말했다.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

“저는 개혁당 여성회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개혁당의 여성회의인지, 개혁당 안에서 여성의 권익을 찾는 여성회의인지, 다시 말해 당이 먼저인지 여성이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1)2003. 02.28. 개혁당 여성위원회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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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첫 번째 문단에서와 같이, 주류 좌파운동에서 ‘페미니즘’ 이슈는 노동, 선거 등 주요 이슈들과 충돌하며 배제돼왔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인식에서 온 여성운동에 대한 배제는 너무나도 많은 곳에서 일어나왔다. 왜 여성운동은 다른 운동과 비교되고, ‘중요도가 낮은’ 이슈기 때문에 ‘나중에 해결하자!’ 정도로 취급될까? 무튼, 결과적으로 극소수의 집단을 제외하고는, ‘여성주의’에 대한 학습과 고민이 보편화된 곳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심지어는 내가 몸담고 있는 정의당에서도 심심찮게 이런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2)정의당이 중식이 밴드와 공식 테마송 협약식을 맺었으나, 중식이 밴드의 노래가 여성비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로 논쟁이 시작되었다. 중식이 밴드가 실제로 여혐 밴드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논쟁의 과정에서 정의당 당게(당원게시판)에 강도 높은 여혐 포스트가 다수 올라와서 문제가 되었던 상황. (성매매 경험을 자랑스럽게 써놓은 글도 있었다고..

2.

게임 이론 이야기로 돌아와서.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이야기는 다들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공범 A와 B가 있는 상황에서, 죄수 A는 무조건 ‘자백’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왜냐면 죄수 B가 침묵하거나, 자백하는 어떤 경우에서도 ‘자백’하는 것이 본인에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대칭적으로, 자백하는 것이 무조건 이득인 것은 죄수 B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죄수 A, B 모두 ‘자백’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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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 1.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만약 ‘자백’과 ‘침묵’을 선택하는 과정이 무한 번 반복된다면 어떨까? 굉장히 재미있는 결과가 나타난다. 이 경우, 만약 죄수 A가 이런 전략을 선택한다면 죄수 두 명 다 ‘침묵’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나는 일단 침묵할 거야. 그런데 니가 나를 한번이라도 배신(자백)한다면, 나는 앞으로 너를 계속해서 배신할거야.”3)유명한 Grim Trigger Strateg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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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되면 일종의 ‘연대’ 혹은 ‘협상’이 이뤄질 수 있고, 결과적으로 죄수 A, B는 모두 이득을 보는 상황이 발생한다. 한 번의 배신이 굉장히 큰 타격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여러 운동 조직 간의 협상, 배신. 그리고 이로 인한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게임이론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사회에서의 운동, 여러 단체 사이의 연대와 배신은 단순히 한 단계의 게임으로 설명할 수 없다. 위의 문단에서 설명했듯 ‘무한히’ 반복되는 선택 속에서 각 주체의 선택으로 바라봐야 한다.

3.

나는 현재의 견고하고 선명한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파편화된 경험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사회적 파괴력은 발생한다. 그동안 페미니즘 운동의 대중적 기반이 이렇게까지 확산된 적이 없다. 여성들이 그동안 겪어왔던 폭력의 경험이 SNS와 같은 IT(Information Technology)에 의해 확산되고 공유되며 응집하면서 폭발적으로 규모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물론 본인이 ‘남성’이고 대다수의 주변 친구들이 ‘남성’일 경우 그다지 공감 못할 수 있지만, 실제로 많은 여성들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이슈에 공감하고 있다.

내가 현재의 견고하고 선명한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 효과적인 방법이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페미니즘 운동의 규모는 사회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커졌고, ‘여성운동 담론’을 지지하는 사람, 조직에게는 전폭적인 후원을4)실제로 페이스북의 ‘메갈리아4’ 페이지가 페이스북과의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목표액을 925만원으로 잡고 모금을 시작하였다. 6/20일 현재 해당 금액의 1400%인 129,623,726원이 모였다. (페미니즘은 돈이 됩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6/15/story_n_10469676.html, https://tumblbug.com/mersgall4, ‘반 여성주의적’ 사람이나 조직에게는 강력한 처벌(punishment)를 가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의 공격이 들어온다.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하는 (가끔 반 여성주의적 행동을 취하는) 사람들도 포용해야 페미니즘 운동이 성공할 수 있지 않겠냐고.

잠재적 아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잠재적 아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절대 아니다. 현재 페미니즘 운동의 파괴력은 ‘불관용’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진보 운동에서 ‘여성주의’는 철저하게 무시당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작태다. ‘여성’을 배제한 진보 운동은 있을 수 없다. 앞으로 진보 운동에서 ‘여성’을 한번이라도 더 배제한다면 ‘우리 페미니스트’들은 절대로 연대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진보 운동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글/ 윳넉

편집 및 교정/ 이점

   [ + ]

1. 2003. 02.28. 개혁당 여성위원회 게시판
2. 정의당이 중식이 밴드와 공식 테마송 협약식을 맺었으나, 중식이 밴드의 노래가 여성비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제기로 논쟁이 시작되었다. 중식이 밴드가 실제로 여혐 밴드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논쟁의 과정에서 정의당 당게(당원게시판)에 강도 높은 여혐 포스트가 다수 올라와서 문제가 되었던 상황. (성매매 경험을 자랑스럽게 써놓은 글도 있었다고..
3. 유명한 Grim Trigger Strategy이다.
4. 실제로 페이스북의 ‘메갈리아4’ 페이지가 페이스북과의 소송을 준비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목표액을 925만원으로 잡고 모금을 시작하였다. 6/20일 현재 해당 금액의 1400%인 129,623,726원이 모였다. (페미니즘은 돈이 됩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6/06/15/story_n_10469676.html, https://tumblbug.com/mersgall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