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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페이스북 한국예술종합학교 대나무숲 페이지 갈무리.

얼마 전,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이러한 글이 올라왔다. 많은 학생들이 위 사항에 대해 반발을 했고, 물의를 일으킨 해당 강사는 다음 학기부터 수년 동안 해온 프로이트 심리학 수업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짤린’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강사가 시대착오적, 성 차별적 발언을 했고, 이후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합당한 ‘징계’가 내려진 것이다. 징계 자체는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음성적으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해당 강사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했다. 나는 그때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 보다는,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 있겠구나’ 라는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대략 이러했다.

“저 강사가 단순히 강사가 아니라 교수였다면 절대 이런 비난을 받고 구차하게 학교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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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저 강사가 잘 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오해 마시라

학교에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몇몇 교수들의 행태를 들을 수 있었다. 사적인 일을 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서 성차별적이고 마초적인 언행을 하는 교수는 물론이고, 여자가 따라주는 술을 고집하는 교수도 있었다. 또한 수업시간에 직접적으로 여학생들의 얼굴을 평가하는 교수도 있었다. 연기과처럼 얼굴이 드러나는 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평가 기준에 교수의 취향에 맞는 학생의 ‘얼굴’이 들어간다는 말도 들었다.

위에서 말한 그 교수들은 지금도 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치고 있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는 한 계속 수업을 가르칠 것이다. 이번처럼 학생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지 않는, 아니 ‘못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 때문일 것이다.

내가 그래도 이걸로 계속 먹고 살아야 하니까 뭐 좀 x같아도 어쩔 수 없지.

예대에 다니면서, 또 주변에 퇴폐적인 교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이런 합리화를 자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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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힘들다… (출처: MBC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라인 탄다’ 라는 말이 있다.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거나, 관련 논문을 쓸 때 도움을 얻으려면 예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교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예술은 객관적으로 등급을 나누기가 힘들다. 어느 사람에게는 특별해 보이는 예술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별 볼일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교수들 안에서도 ‘좋은 예술’ ‘나쁜 예술’ 의 기준이 모두 다르며 모호하다. 예술이라는 것이 이렇다 보니 결국 예술을 평가할 때는 그들의 주관성이 배제될 수 없다. ‘라인’을 탄다는 것은 그 주관성을 어느 정도 조절하는 사전 작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정답이 없는 예술의 범위에서 우열을 가리는 것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권력’에서 비롯된다.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교수들은 어떠한 경로에서건 ‘권력’을 잡은 이들이다. 한마디로 예술의 ‘기득권’인 셈이다. 이러한 굴레 속에서 예술 하는 이들은 예술을 앞에 두고 더 큰 권력을 잡기 위해 정치적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한편, 학생들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인정’을 받거나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말 그대로 tv에 나와야 할 정도로 희박하다. 학생들은 로또와 희박한 확률에 기대를 걸 수 없다. 결국, 권력이 없는 학생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 그 권력에 편승할 수밖에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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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눈물만 나는지…

‘학생’ 이라는 권력의 자원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권력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권력이 커지면 권력을 잡은 그들이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늘어난다. 특히 자신의 자원으로서 편승한 힘없는 학생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것이 불합리하거나 비도덕적인 것이라도 말이다. 기득권의 권력은 힘없는 많은 이들을 눈감게 만들 것이니까. 작년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강남대 디자인과 교수의 인분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그가 대학원생이었고, 가해자가 교수였기 때문에 피해자는 그의 폭력에 항거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피해자는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걸고 교수를 고발했다. 모든 걸 걸고 교수를 고발한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들은 교수의 만행들은 권력관계에서 나타난 불합리성의 일종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권력의 자원이 된 학생들은 눈을 감는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권력이라는 화형장에 몸을 올릴 잔 다르크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계속.

 

글 : 미술집

편집/교정 :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