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병 휴가 때 일이다. 종로에서 친했던 선임을 만나 가볍게 술을 한잔하고 종로 길바닥을 거닐고 있었다. 그 때,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잡으며 “나이트 한번 가시죠!!” 라는 말을 했다. 단순히 삐끼겠거니 하고 뿌리치려고 하는 순간, 나는 그 손을 차마 뿌리치지 못했다. 나를 잡은 삐끼는 다른 사람도 아닌 늘 학교에서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시던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예술에 관한 전반적인 학문을 공부하지만, 원래 전공은 영화과였다. 십대의 나는 영화를 사랑했고, 중학교 때부터 세워온 나의 인생플랜은 모두 영화로 맞추어져 있었다. 만약 당시의 내 계획대로 인생플랜을 성공적으로 클리어 했다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미스핏츠>가 아니라 <씨네21>에 다른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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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핏츠 의문의 1패… (사진 출처: KBS)

많은 꿈을 가지고, 19살의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 인생플랜을 완성하기 위한 첫 걸음이었다. 나는 나의 꿈을 위해 500만원을 대출했다. 당시 봉준호 감독이  <괴물>을 찍어서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내 플랜이 성공적으로 이루어 진다면 500만원 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조금만 배우면, 그리고 내가 상상하는 이야기라면, 아무리 망해도 <괴물> 수입의 절반 정도는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의 시나리오는 그리 호락호락 하게 해피엔딩을 선사하지는 않지.”

1학기 때의 나는 열심히 시나리오를 쓰고, 선배들의 촬영장을 다니며 공부했고, 2학기 때 처음 동기들과 함께 영화를 찍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교수님이 이 정도면 됐다고 칭찬을 해도 내가 생각했던 영화와는 괴리감이 있었다. ‘장비 탓인가.’ 하고 머리를 굴려 생각을 해 보아도, 단지 화질이 다르다고 느껴졌을 뿐. 편집돼 나오는 영상은 계속해서 나의 거만했던 마음을 가차 없이 짓밟았다.

한번 밟힌 나는 내 상황을 좀 더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 자신이 아닌 주변사람의 모습까지 종합적으로 바라보면서 나의 상황을 판단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잘 나갔다고 말하던 선배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가 이곳에 계속 남아서 졸업을 한다면 현실적으로 과연 어떤 미래가 나를 반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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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 일로 내가 먹을 밥을 챙길 수 있겠는가…..”

밥... 밥은 먹고 다녀야죠...

밥… 밥은 먹고 다녀야죠…

인생이 결코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니, 이미 답이 정해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상상해온 나의 계획이, 꿈이 부서져 버리는 것 같아, 먼저 해결해야 하는 군대로 도망쳤다. 나는 그 와중에 삐끼가 되어버린 선배를 만난 것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수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영화과’라는 공간이 아닌 다른 공간에 체류하고 있다. ‘문화’ 라는 키워드를 향유하면서 내가 밥을 먹을 수 있는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자기합리화로 만들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공간을 바꾸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 곳에서 졸업을 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내가 그 곳에서 졸업을 했으면 어떤 것이 나에게 빚으로 돌아올까 계산하곤 한다. 매 학기 100만원 가까이 드는 촬영비, 국가장학금을 받아도 학기당 300만원이 넘어가는 등록금, 그 외 생활비가 4년 동안 드는 셈이니, 실기를 하면 알바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특성을 반영하면 약 5천 만원의 빚이 졸업 후에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5천만 원의 빚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집에서 상영하는 나의 영화 몇 편, 열심히 하고 운이 따라줘서 받은 상 몇 개, 그 외 영화를 하며 만지는 편집 툴 몇 개 그리고 열심히, 밤새도록 영화를 하느라 얻은

‘노 스펙’ 이라는 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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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잼 노 스트레스 노 스펙…

나는 예술이라는 세계에서 한번 도망쳐 나왔다. 어제는 지금 나이에는 갚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던 두 학기의 학자금대출 이자를 내고 왔다. 그리고, 삐끼로 만났던 그 선배는 내가 문화 이론을 연구하며 지속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담그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

사실 다른 예술의 분야는 내가 직접적으로 겪은 분야가 아니라서 직접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다만 미술계나 기타 분야에 학적을 두거나 종사했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늘 들어왔었다.

문학을 하던 지인은 예술 본연의 질에 대해 정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으로는 시를 내줄 출판사가 없다며, 차라리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시집을 낸다는 분이 있었다. 차라리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면서 자신의 꿈을 이어 갈 수 있는 이분은 상황이 괜찮은 편이다.

미술을 하던 지인은 지금 공무원이나 다른 안정된 직장을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미술계에서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취업이 잘 된다는 디자인과였지만 결국 하는 이들이 많아 디자인 만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소수라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결혼을 염두하며 새로운 가정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오늘만 바라보아야 하는 이 업계에서는 더 이상 시간과 미래를 걸어둘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결국 이들이 다른 일을 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미래를 내다볼 겨를 없이 오늘 내일만 바라보며 예술계에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의 경험과 생각이 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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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작업과, 작업을 위한 소비, 그를 위한 노동…. 결국 예술을 ‘하는’ 이들은 이러한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고 그 고생들이 그들을 확실하게 먹여 살린다는 보장도 없다. 결국 많은 예술을 하는 이들은 자신의 ‘꿈’ 때문에 자신에게 후회한다.

우리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몇몇 빛나는 별밖에 보지 못한다. 사실 하늘에는 모래알같이 많은 별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내가 바라본 예술의 세계는 이와 같았다. 아니, 요즘에는 세상이 각박하고 흐려져 잘 보였던 별마저도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글/ 미술집

편집 및 교정/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