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장 한복판에 고릴라가 지나가는데 관객들이 눈치를 못 챌 수가 있을까? 하버드 대학 연구팀이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농구장에서 흰색 유니폼을 입은 팀과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팀에게 같은 색의 사람들에게 농구공을 패스하게끔 한다. 관중에겐 흰색 팀원들이 얼마나 많이 농구공을 패스하는지 세도록 한다. 그리고 고릴라가 경기장 한 가운데를 지나가게끔 한다. 놀랍게도 관중들은 흰색 팀의 농구공에만 집중한 나머지 걸어가는 고릴라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처럼 하나에만 과도하게 집중해 다른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을 ‘무주의맹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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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건도 마찬가지다. 19세, 꽃다운 청년이라는 온갖 수식어와 규칙 위반이라는 단어가 ‘메피아1)메트로와 마피아의 합성어’를 가리고 있다. 무주의맹시다. 고릴라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아니, 웃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안전수칙위반, 스크린도어 설치를 실시한 정권, 지지부진한 지자체의 대처 등등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 경제를 중시한다.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었다면 오히려 이런 사고는 없다. 일하지 않는 사무직에게 월 400을 넘게 주고, 수리직에겐 월 200을 주는 회사. 1명이 10개 넘는 역을 맡게 한 회사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 도태된다. 극단적인 노동유연화와 은성 PSD의 메트로 철밥통은 양립할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는 무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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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라는 나이, 첫째 아들, 갓 고등학교 졸업을 한 그의 사회적 지위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다. 감상적인 사건이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그의 나이와 졸업연도, 가계 상황은 이 사건과 아무련 연관이 없다. 다만, 비극은 항상 없는 사람에게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가진 자는 비극도 피해간다. 비극은 그래서 비극적이다. 비극은 없는 사람들만, 불쌍한 사람들만, 이제 사회에 들어온 사람들을 골라 찌른다. 극복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극복할 수 없을만큼 문제를 준다.

2인 1조라는 규칙을 지키지 못한 사실은 사건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김군은 규칙을 지킬 권리도 없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문을 고치는 일이며, 규칙은 규칙이 아니라 당연히 어겨야 하는 과정이다.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워가며 10개가 넘는 지하철의 스크린도어를 고쳐야 했던 그에게 규칙은 그저 허물이다. 그가 당연히 밟고 넘어서야 할 무언가다. 규칙이 규칙이 되지 않는 상황은 사건의 원인이 아니다. 이 사건의 원인은 구조적 갑질에 있다. 사문화된 규칙은 그 원인에 의한 현상일 뿐이다.

 문제는, 퇴직자 낙하산을 위주로 구성된 ‘마피아’들이다. 이 경우는 ‘메피아’다. 은성 PSD와 메트로는 하나의 비밀계약을 한다. 바로, 메트로 퇴직자 38명을 고용승계하고, 이들에게 메트로에서 받던 월급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계약이다. 문제는 이 퇴직자들이 은성 PSD의 주 업무인 수리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기술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현장에 나가는 바와 상관없이 ‘묻지마’ 보장이었다. 이 원인은 메트로 노사계약이었다. 노조와 회사는 2011년 회사가 퇴직자의 재취업을 알선하고, 취업을 보장한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에 따라 은성 PSD가 설립됐고, 묻지마 고용승계가 이뤄졌다.

메트로 퇴직자들이 좋은 기술을 가지고, 현장에서 일을 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 들이 대부분 관리직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스크린도어 수리 인력 125명 중 실제로 일을 하는 사람은 메트로 퇴직자를 제외한 87명이었다. 서류상으론 125명이라 2인 1조가 가능했으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김군은 혼자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잠깐, 짚고 넘어가자. 구의역에 대한 논의가 농구라면, 은성 PSD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고릴라다. 하지만, 은성 PSD가 전부는 아니다. 서울메트로와 외주를 체결한 회사 중 은성 PSD와 같이 메피아가 장악한 회사가 5개다. 밝혀지지 않은 곳을 고려하면 더 많을 것이다. 메트로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운호 게이트의 주범인 홍만표 변호사도 결국은 자신의 전적을 이용한 마피아다. 세월호 때 나온 해피아도 이 일환이다. 금융위 출신들의 모피아, 기획재정부 출신들의 기피아, 국토교통부 출신들의 국피아, 국세청 출신들의 세피아까지. 그렇다. 대한민국은 <땡O피아 공화국>이다. 매해 나오는 ‘X피아’ 사건과 구의역 사고는 한몸이다. 한통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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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들이 퇴직 이후를 위해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의 등골을 밟고 있는 구조다. 이 불평등한 구조가 세월호 참사를 낳았고, 정운호 게이트를 만들었고, 김군을 죽였다. 자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만의 문제도 아니다. 이 불온한 구조에서 기득권 모두가 문제다. 고연봉 노동자들이 퇴직 이후의 삶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하청을 양산한다. 하청에 취직한 청춘들을 희생해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

슬픈 점은 정규직에 몸을 담고 있는 50대도,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20대도 어느 누구도 이 비참한 톱니바퀴를 원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정적으로 메트로 퇴직자를 이해할 수 있다. 회사를 나가면 치킨집을 차리고 결국은 망해 빈곤 상태에 빠지는 구조가 한국의 현실이다.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지 않고선 생존이 불가능한 구조다.

생각해보니, 고릴라가 아니다. 메피아는 곱등이다.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곱등이를 조종하는 연가시다. 곱등이가 불평등한 구조에서 타인을 착취하게끔 만드는, 이 구조를 만드는 연가시를 찾아야 한다.

 누가 이 구조를 만들었을까. 노노갈등을 유발하고, 갈등의 이익을 사유화하고 갈등의 비용을 사회화하는 지배계층이 연가시다. 무조건적인 경쟁을 찬양하고, 자신들은 갈등을 방패막 삼아 뒤로 빠지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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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건엔 한국의 온갖 모순이 집약됐다. 퇴직자들이 신입사원을 희생시키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희생시키고, 자본은 노동자를 희생시키는 온갖 모순들이 집약됐다. 이 모순을 주도한 지배세력은 또다시 모순 뒤로 숨었다. 메트로와 은성 PSD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월호, 저축은행 사태, 정운호 게이트 등등 근 몇 년간 한국의 굵직한 사건의 모순과 다르지 않다. 김군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희생됐다. 다음 희생양은 너와 나, 우리가 될 수 있다. 이 구조에서 안전한 사람은, 이 구조를 조장하는 기득권밖에 없다.

글/ 지켜본다
편집 및 교정/ 이점
사진 / 마리

갈 테면 가라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영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거야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 둘 곳 없어라 텅 빈 마음은
차라리 젊지나 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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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트로와 마피아의 합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