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l

좌) 키키스미스 – ‘tail’ (1992) / 우) 부쉐 – ‘Madame de Pompadour’ (1756)

여기 두 여성이 있다. 한 여성은 엉덩이에 무엇인가를 묻힌 채 그것을 쏟아내고 있는 듯하고, 다른 여성은 우아한 자태로 책을 보며 앉아있는 듯하다.

여기서 당신은 무엇이 더 아름다운가?

내가 너무 쉬운 질문을 하는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쪽 그림의 여성을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반(反) 미학’은 왼쪽에 있는 여성이 오른쪽의 여성보다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현한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정의내릴 수 있는가. 그 전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왜 오른쪽의 여성을 더 아름답다고 여기는가?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이러한 미의 기준은 가부장적 남성의 가치관에서 비롯되었다고 이야기한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1729 ~ 1797)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연약하고, 불완전함에서 온다고 보았으며, 연약함과 불완점함은 여성들의 본성에서 온다고 생각하였다.

버크에게 여성의 미덕이란 기존 사회 질서를 승인하며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었다. 미는 주어진 규칙을 따르는 것이므로 여성들 역시 기존 사회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여성의 미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버크가 생각한 여성의 이미지는 입어야 하는 드레스마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집 안에 앉아서 남성들이 원하는 교양만 쌓는 오른쪽 그림의 여성일 것이다.

이는 주체(라고 말하는)인 남성이 생각하는 (다른 말로 가부장이 제시하는) ‘아름다움’ 이라는 프레임 안에 타자인 여성을 가두는 하나의 예시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프레임 안에서 미약하게 종속되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주체 밖의 ‘타자’이기를 거부하는 여성은 그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이라는 프레임에 반기를 든다. 여성들은 더욱 강한 모습으로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가부장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숭고해진다.’

la liberte

외젠 들라크루아 – la Liberte guidant le peuple (1830)

이러한 숭고함은 여성들에게 가부장제의 위험을 상기시킨다. 여성적 숭고에서 여성 이미지는 가부장제의 추악함을 드러내며, 또한 가부장제의 미적 범주들로는 포착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힘을 드러낸다.

가부장제 미학이 여성들에게 요구한 여성들의 모습과는 달리 이제 ‘힘’을 표출한 여성은 과도한 동물성, 파편화, 기계화, 오물, 기이함으로 나타나거나 공포, 분노, 불안정, 불균형, 더러움, 추악함과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여성 이미지들은 가부장제를 위반, 탈주, 해방하며 반 미학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반 미학에서는 자연이나 인간, 예술작품 등의 미적 대상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있는데, 이 중 부정적 감정들에 초점을 맞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추’의 개념이다. 페미니즘 반 미학은 추에 해당하는 부정적인 미적 감정을 추구한다.

‘장미의 이름’의 저자인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2016)는 이렇게 말했다.

‘부정적, 긍정적 미적 감정은 시대와 장소, 문화에 따라 상대적일 수 있다.’

또한, 그는 미/추의 기준이 단지 자율적인 미적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기준에 기인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글을 마치며,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름다움’은 사실 누군가에 의해, 어느 사회 체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형성과정은 억압적이기도 하며, 폭력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기형적으로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의 ‘아름다움’ 만을 보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늘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아름답고 아름답지 않다는 경계 안에서 모멸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며 눈물 흘리곤 한다. 사실 만들어진 ‘아름다움’이라는 경계는 본질 없이 늘 기형적으로 변화하는데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눈물 흘리기를 거부한다면 그 경계를 지워보자. 그렇다면 더 많은 것들이, 아니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까. 우리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이유가 없다. 이것이 반 미학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다.

글 / 블리

편집 /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