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평생 천직, 나의 평생 천직에 대한 고찰

엄밀히 말해서 자발적인 퇴사는 아니고 회사가 망한 것이긴 했지만 나에게는 남편이 퇴사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이대로 적는다. 사실 망하지 않았더라면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쉽사리 퇴사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남편의 성격을 알기에 회사가 자발적으로(?) 망해주어 남편에게 퇴사의 기회를 준 게 고마울 정도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회사에서 너무나 극심한 야근에 의한 과로로 건강을 잃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을 것이라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회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나름 괜찮은 축에 속하는 직장이었다. 출근은 8시 반까지 였지만 퇴근이 5시 반이었고 ‘야근 수당은 없으니 야근은 절대 하지 마 어여 가~~’ 뭐 그런 분위기였다. 남편은 가끔 일본에 출장도 갔었고 함께 일하는 상사도 좋은 분이셨다. 월급이 만족스러울 정도로 높지는 않았지만 남편은 이 회사가 안 망한다면 평생 다니고 싶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저성장 시대에 회사가 고용을 유지하고 월급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주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명견만리 김난도 교수 편을 보고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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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ick Tinbergen. From Unsplash

사실 남편이 퇴사하기 조금 전까지는 그 일을 평생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고, 회사가 계속 안 망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저 남편이 40대, 50대, 60대가 되어서도 그다지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고만고만한 일을 한다는 게 한 사람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하는 우려를 조금 가지고 있었다. 60대를 지나 은퇴하신 아버지께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시냐고 여쭤봤을 때, 지금까지 노력을 해와서 이젠 남은 생을 즐기면서 쉬고 싶다고 하신 것을 듣고 조금 슬펐다. 부모님 세대는 그런 생활방식이 어느 정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서는 60대는 노인 축에 끼기도 힘들 뿐더러, 스스로 새로운 도전과 경제활동을 활발히 이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퇴직이 다가온 후에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앞으로의 평생 천직을 고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물론 그 평생 천직이 한 가지로 국한될 필요는 없다. 앞으로는 서너 가지 직업은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될 터이니 다양한 분야에 발 담을 기회를 지금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퇴직 후 남편은 커피에 대해 공부를 하더니 지금은 커피 강사 일을 하고 있다. 물론 그 분야에 대한 열정도 있어서 항상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하지만 커피 일 외에 다른 일도 준비하려고 함께 고민 중이기도 하다)

그런 기회를 잡은 것도 퇴사를 했기 때문이었지, 만약 퇴사하지 않았더라면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다가 주말에는 쉬고 또 저녁에는 소소한 취미들로 조금씩 스트레스를 풀며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면 일어설 힘조차 없거나 바로 앞의 동전 만을 줍느라 더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갑자기 사람이 당황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먼 곳을 바라보기 쉽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럴 때 하게 되는 선택들은 대개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보다 시간 대비 효율이 낮은 일들을 선택해버릴 확률이 높다. 이런 선택을 남편이 가장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하게 내버려둘 순 없었다. 남편도 자신의 일을 즐기고, 가족들과도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자유롭게 살 수 있었으면 했다. (썩 달갑지 않은 사회의 강요지만) 가장이니까 희생하고, 그러다 보니 고립되고 스트레스 받고, 퇴직 후에 가정에서도 설자리조차 잃어 쓸쓸한 모습으로 불만만 말하는 중년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내가 희생적인 부인이 아니라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하루 종일 집안일만 하고 쉴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게 두려워, 맞벌이를 평생 해야겠다고 맘먹었다. 맞벌이라면 집안일에 대한 책임도 둘이 나누게 되니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의 어머니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릴 때부터 전업주부 생활을 하셨는데, 가사일 외에도 사회에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하셨지만 그게 쉽지 않아 답답해하시기도 하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마음아프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게 답답해하기만 하고 손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맞벌이는 나에게 ‘경제활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입사 1년 차부터 하게 만들었다.

나는 입사 1년 차부터 한 분야에서는 최소 5년 또는 10년은 몸담아야지 같은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분야든지 마이스터가 되고 싶었다. 겉핥기 식으로 경험하고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미덥지 못한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바닥부터 제대로 한 분야를 파고 싶었다. 이 정도로 첫 해부터 너무 과한 포부를 가지고 있던 내가 금방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즐거워야 할 직장 생활이 즐겁지 않게 된 이후부터 그 원인이 뭘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고민의 주원인은 사람이었다.

왜 다들 불만이 많고 그 스트레스를 주위 동료에게 풀지? 함께 으쌰 으쌰 힘내야 할 동료끼리 서로 상처 주고 스트레스 주고 일을 더욱 비효율적으로 만들고 감정싸움을 해야만 하지? 내가 너무 이상적인가? 원래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것은 이런 건가? 직장생활이란 이것을 견디는 것을 말하는 건가? 왜 즐겁게 일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직장인을 난 본 적이 없을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 답답함을 회사 밖에서 해소하기 위해 무작정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글 쓰기를 배우는 수업도 다녀보고, 디자인 툴을 배우려고도 해봤고, 쥐꼬리만 한 월급이지만 그 돈으로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고민하며 자산관리 칼럼들을 죄다 훑으며 혼자 공부도 해봤다. 그러다가 내가 돈이 많다면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도달했다.

photo by Evan Dennis. From Unsplash

photo by Evan Dennis. From Unsplash

이 질문은 나에게 지금도 매우 소중한 질문이다. 퇴직에 대한 걱정은 매월 들어오던 월급이 끊긴다는 공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얼마의 돈이 필요한지를 사람들에게 물어봤을 때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 구체적으로 얼마가 필요한지 깊이 고민해본 사람은 적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이 질문은 돈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치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그 목록들을 최대한 자세하게 적어가고(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 여행, 옷, 내 공간 꾸미기 등) 그 목록을 위해 매달 금액을 모으면서 그 목적 외에는 절대 다른 용도로는 쓰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위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만의 목표가 더욱 명확해진다. 그렇게 함으로써 돈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인생을 사는데 돈이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남편 얘기로 다시 돌아와서 결과적으로 나는 50대, 60대가 되어 퇴직 후 새로운 경제활동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지금 미리 그런 기회를 갖게 된 남편의 행보를 응원한다. 물론 곧 아이도 태어나는 터라 본인은 심적으로는 더욱 불안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소위 말해 정규직이면 안심하고 비정규직이면 좌절하고 이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은 있어도 항상 부족하고 없으면 불안한 것이긴 하다. 하지만 불안해봤자 과소비욕구만 높아지고(우리는 종종 통장에 넉넉한 돈이 있을 때보다 얼마 없을 때 더욱 뭔가를 먹고 싶거나 사고 싶은 것들이 더욱 아쉬워지곤 하는 경험들을 한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시간 자체가 우리에게는 아깝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것에 소중한 시간을 쏟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나와 남편이 하고 싶은 건 뭔지 함께 고민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남편의 퇴사가 반갑다.

※본 글는 성냥갑의 브런치 글 <나는 남편의 퇴사가 반갑다>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교정 및 편집 / 저년이

글 / 성냥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