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에서는 부득이하게 성별을 구분하기 위해 3인칭으로 [그]와 [그녀]를 사용합니다.

 

나는 운동을 했다.

photo by Francesco Gallarotti. From Unsplash

photo by Francesco Gallarotti. From Unsplash

1)위 사진과 필자는 관련이 없습니다. 격투기를 5년 정도 해온 것 같다. 준프로급도 못 되는 아마추어지만, 4년 정도 한 덕분에 아마추어 경기에도 나갔고, 내 체급의 여자애들 치고는 조금 더 기운 찬 정도의 사람이 되었다. 잔병치레는 떨칠 수 없었지만 일단 육체 외적으로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운동을 쉬었고, 대학교에 들어와서 다시 시작했으니 실제적으로 운동을 한 시간은 약 3년 정도 된다.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도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났지만, 대학 체육동아리에 들어오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났던 것 같다. 우리 동아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유일한 여자 부원인(구린 표현을 쓰자면 매니저 역할의 여자조차 없는 동아리였으니까) 나를 위해 그들이 선택한 것은 매니저 역할을 맡기는 것이 아닌, 그냥 다같이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점에서 우리 동아리가 좋았다. 운동을 하러 들어간 동아리에서 뒤에서 도울 필요가 없었고, 다 같이 알아서 챙기고 다 같이 운동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상대를 엎어치고 넘기고 차는 그 활동 속에서, 내가 상대를 넘긴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세 번? 그것도 나와 체중 차이가 얼마 안 나는 상대들이었다. 그렇다. 나는 애초에 체급에서 밀리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근력이나 체급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운동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편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있다는 것은 상당히 비참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

얼마 전,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죽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미 자주 있어왔던 일이라 그렇게 놀랍지도 않지만. 놀라운 점은 그가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일면식 없는 여자를 죽인 일이다. 게다가 ‘여자’를 죽이려고 1시간 가량을 화장실에서 숨어 기다렸으며, 그 과정에 남자 여섯 명이 화장실에 갈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 그는 확실히 ‘여자’를 죽이려고 했다. 왜? 여자들이 무시했으니까. 자, 보통 이런 이유에서 사람을 죽이게 된다면 누구를 죽이게 될까? 그렇다, 바로 적어도 자신을 무시한 여자들을 죽이게 된다.(살인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는 걸 밝힌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알지도 못했고, 그를 무시했는지 어쨌는지도 모를 여성을 죽였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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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9일. 한탄수 촬영.

간단하다. 여자라서. 자신들을 무시한 작자들과 같은 성별이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용모가 단정치 못하고 서빙 능력도 좋지 않아 주방으로 일이 바뀌었다고 말했다는 것을 보아 그는 아마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과 손님들에게 적잖은 질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는 여성에게 질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같은 성별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죽인 이유는 단 하나다. 만만해서다.

앞서 말했듯이, 여자는 쉬이 남자를 신체적으로 이기기 힘들다. 정확히는 남자와 여자를 따지기 전에 체급 문제가 있는데, 남자의 체급과 여자의 체급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2)이하 체급은 유도기준이다. 160cm에 55kg의 여자는 라이트급, 170cm에 70kg의 남성 역시 라이트급이나 같은 이름의 두 체급은 이미 20kg 이상의 차이가 나고, 여성은 남성으로 따졌을 때 엑스트라 라이트급, 남성은 여성 체급으로 따졌을 때 미들급이다. 경기 안에서조차 같은 체급끼리 겨루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여성과 남성 체급마저도 기준이 다르다. 체급이 없는 경기에서도 이 정도 차이가 나게 되면 사람들은 체급이 낮은 쪽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즉 이 살인범은 자신보다 그녀가 더 약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밤늦게 누군가가 칼을 들고 자신의 앞에 자신을 죽이기 위해 선다면 매우 용감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칼 앞이, 칼을 든 사람이 두려울 것이다. 두려움은 매우 평등하다. 하지만 이 사건의 요지는 단 하나다. 두려움을 느낄 기회가 남자와 여자에게 모두 평등한 것인가?3)물론 두려움을 느낄 기회가 많아서는 안된다.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 극단적으로, 이번 살인 사건과 같은, 두려움을 느낄만한 상황을 남성과 여성 둘 중 누가 더 자주 받는가? 우리는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 사회의 여성 외 약자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 여자에만 초점을 잡게 되면 다른 약자들이 배제될 수 있다고. 뭐, 일부 동의한다. 누구라도 위험에 처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할 점은 더 있다. 이십대의, 젊은 여성이 죽었다. 일반적으로 신체가 가장 건강할 때이다. 하지만 젊은 여성마저 이렇게 위험에 ‘여자’라는 이유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다른 약자들은 ‘여자’라는 이유로 얼마나 더 위험에 빠질 수 있는가? ‘여자’ 노인, ‘여자’ 어린이, ‘여자’ 장애인, ‘여자’ 성소수자 등은 다른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약자들에 비해 얼마나 위험에 더 노출되는가? 약자 중 여자에만 초점을 잡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남성 성별을 가진 약자는 편하게 산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위험에 더 많이 처할 수 있는 사회는 무언가 문제가 있다.

 

당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연해서는 안된다.

 운동을 하며 나는 많이 울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울었다. 남들보다 더 가까이 있는 신체적 한계가 너무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단지 나의 한계를 넘어섰을 뿐이었지 차이를 좁힐 수 없었다. 나는 왜 여자일까, 왜 덩치를 더 키울 수 없는 걸까. 내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면 ‘여자인데 뭐 그렇게 열심히 해’라는 이야기가 돌아오고, 욕심을 낮추자니 내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그래. 한계는 있다. 차이도 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이번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동래 폭행사건, 현대백화점 천호점 차량강도 사건4)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34470 두 사건에 대한 기사. 같이 날마다 일어나는 여성혐오 범죄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슨 슈퍼 히어로도 아니고,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항상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당장 오늘 밤에 집 앞 편의점에 가다가, 누군가 나를 해치려고 했을 때 나는 그 사람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이길 수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 일이 당연해지는 것이 싫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이 곳이 싫다.

편집 및 교정/ 이점

글/ 이점

 

   [ + ]

1. 위 사진과 필자는 관련이 없습니다.
2. 이하 체급은 유도기준이다.
3. 물론 두려움을 느낄 기회가 많아서는 안된다. 안전한 사회를 원한다.
4.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334470 두 사건에 대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