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의 자소서를 쓴 남자
10편: 이름 모를 후배의 넥타이

 

‘고시 공부 좀 하다가 이런 저런 어려움들이 생겨서 잘 안 되고,
군대 늦게 다녀오고 어쩌고 하다 보니까 입사 준비가 좀 늦어졌네.
뭐, 그래도 그래봤자 몇 년 차이 나지도 않고, 결국 지금부터 어떻게 하냐가 중요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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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 때문이든 뭐 때문이든 입사 준비가 좀 늦어진 나 같은 사람들은 다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틴다. 그래, 실제로도 저게 맞는 생각이다. 그 몇 년 차이가 인생에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도 몇 십 년 남은 인생을 살면서 어떻게 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는 시간 차이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인 생각은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내 자신의 처지를 조금 멀리서 바라볼 때나 가능하다. 평소에는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막상 시험장이나 면접장에 들어가 그 ‘현장’에 몸을 담그면 내 존재는 ‘고시 실패하고 온 늦깎이 면접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애 첫 면접이었던 삼성전자 면접을 말아먹었던 터라 멘탈 상태가 좋지는 않았지만 빨리 추슬러야 했다. CJ E&M 1차 면접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런 저런 자기 최면을 걸며 삼성은 잊고 CJ에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글쎄, CJ E&M이라는 회사가 다른 일반 취준생들에게 어느 정도 무게감을 갖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CJ그룹 전체가 대기업을 노리는 대학생들에게 좀 천대받는 경향은 있다. 높은 인지도와 네임 밸류와는 딴판으로 돈을 참 짜게 주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제일짜당’일까? 1)CJ의 대표 계열사인 ‘제일제당’을 꼬아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E&M은 신문방송학 전공생들에게는 꽤 큰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당장 돈은 잘 못 벌어도 많은 경험을 쌓고 다른 여러 문을 열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에서였다.

씨바...

취준생들 사이에서 도는 기업 별명은 ‘쿨성’(쿨한 삼성?) 빼고는 좋은 게 없다……‘제일짜당’…‘일랜드’…‘헬지’…‘현die’…‘심한은행’…‘화나은행’…‘꼴데’…등…

CJ E&M 1차 면접은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메이필드 호텔에서 진행됐다. 호텔에 갖춰져 있는 세미나실이나 기타 부대시설에서 진행될 줄 알았지만 이곳 면접 진행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신선했다. 몇 개 층을 아예 통째로 빌려 각 객실들을 면접실로 이용했다. 각 면접 대상자들은 아늑하게 꾸며진 객실 안으로 들어가 면접관과 가까운 거리에 앉아 면접을 봤다. CJ그룹과 메이필드 호텔이 무슨 관계여서 이곳에서 면접을 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화 관련 산업 비중이 큰 그룹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아늑한 객실 안에서 진행되는 면접이 편안한 느낌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좀 졸리게 만드는 거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면접 대기장도 객실 하나에 마련됐다. (내가 이용했던 곳 말고 더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면접 중간에 뜨는 시간 동안 대기 객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멍 때리고 있다 보면 면접 하나를 마친 사람들과 다음 면접에 불려나가는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어려 보였고 반절 정도는 학부를 갓 졸업한 사람들 같았다. 5명으로 구성된 우리 조에만 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30대 형님이 한 분 계셨지만 내게 그리 큰 위로가 되진 않았다. 난 분명 늙다리였다. 몇 살 차이 안 난다고 해도 갓 졸업한 20대 중반 아이들과 20대 후반에 속한 나 사이 심리적 거리는 꽤 컸다. 아직 날개들이 덜 꺾였을 것 같은 어린 친구들을 멍하니 구경하며 내 머릿속에는 ‘너네는 나처럼 삽질하지 말고 잘돼라’라는 생각과 ‘그래도 내가 먼저 가자’라는 생각이 번갈아가며 스쳤다.

dongong

그러다 갑자기 내 눈이 한 남자 지원자에게로 쏠렸다. 아는 얼굴이었다. 내가 1년 반 동안 여기저기 면접을 다니면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마주친 적인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친구도 내가 ‘아는’ 애는 아니었다. 그냥 많이 본 얼굴일 뿐이었다. 과 후배였다. 조금 늦은 나이까지 학교를 다니느라 어린 후배들과 섞여 전공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 여러 강의실에서 본 얼굴이었다. 한 번도 말을 섞어본 적은 없었던지라 아는 척하며 인사를 건넬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면접장에서 나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던 모든 지원자들이 내 경쟁자라 할지라도 괜히 이 친구만큼은 잘 됐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연주의라기보단 그냥 반가움에서 나오는 막연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반가움도 잠시였다. 내 머리는 곧 다른 고뇌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내 성능 낮은 뇌의 메모리 용량을 빼앗아 차지해버린 건 그 후배의 복장이었다. 남자 넥타이는 허리까지 내려와 벨트 버클을 덮을락 말락 하는 정도가 이상적인 길이라고들 하는데, 그의 넥타이 끝은 배꼽(예상 위치)보다 위에서 멈춰 있었다. 타이 무늬와 색도 다소 난잡한 색의 스트라이프였다. 정장 바지는 구두까지 채 닿지 못해 발목을 살짝 보이고 있었고, 벨트는 검정색인 와중에 구두는 다른 부분 그 무엇과도 어울리지 않은 어정쩡한 갈색이었다. 심지어 신발 끈도 살짝 느슨해져 있는 상태였다.

가장 신경이 쓰인 건 넥타이었다. 대기업 면접 자리에서 남자의 넥타이는 그 매듭이 와이셔츠 맨 위 단추를 가리고 목젖 위로 딱 달라붙어서 거의 목을 조르다시피 해야 한다. 사회 초년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풋풋한 젊은이들인지라 넥타이 매는 게 익숙지 않아서 매듭이 조금 안 예쁘게 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넥타이를 덜 조이는 건 다른 문제다. 넥타이를 얼마나 예쁘게 매냐는 ‘실력’의 문제지만 넥타이를 얼마나 졸라 매냐는 면접관들에게 ‘자세’의 문제로 비칠 수 있다. (최소한 그렇게 들었다.) 괜히 저거 하나 때문에 저 친구가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미간 주름을 휘감았다.

말을 걸고 싶었다. 강의실에서 본 적이 있다고 아는 체 하거나 내가 선배라고 티를 내고 싶었던 게 아니다. 그저 넥타이 조금만 더 조여 매라고, 신발 끈 풀릴 거 같으니까 다시 묶으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아니면 내가 대신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새 꽤 친해진 듯한 자신의 팀원 한 명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는 그 친구에게 선뜻 말을 건네기는 쉽지 않았다. 내가 그 친구에게 내가 선배라며 복장 지적을 하는 모습이 그 친구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내가 내린 답은 이랬다.

‘어린 사람들 노는 자리에 뭐하다 늦었는지 끼어들어서
조용히 앉아 있지 않고 꼰대 짓 하려는 놈’

복장이란 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히려 내 눈에 거슬리는 게 다른 사람 눈에는 좋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조금 느슨한 넥타이와 가장 포멀(formal)한 정장 차림에서 조금 벗어난 그 패션이 그 친구를 어리고 활기 넘쳐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정장과 넥타이, 벨트와 신발 간 컬러 미스매치로 어수룩해 보이는 것도 뭔가 그 친구를 교활하지 않고 솔직담백한 사람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설사 면접관들 눈에도 안 좋게 보일 의상이었더라도 그가 스스로의 매력으로 충분히 덮고도 남을 거였을지도 모른다.

난 고개를 내려 내 옷차림을 살펴봤다. 원래는 보통 다크 네이비를 입지만 그래도 콘텐츠 관련 회사 면접이랍시고 그보다는 조금 더 밝은 남색 정장을 입었다. 넥타이는 그보다 살짝 더 밝은 톤의 블루 계열 단색이었다. 깔끔하고 세련된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벨트와 구두는 브라운 계열 색으로 맞출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대기업 면접인지라 보다 더 차분한 느낌을 가져가기 위해 무난하게 블랙으로 통일했다. 넥타이는 깔끔한 원저노트였고, 구두 끈도 질끈 묶여 발등에 바짝 밀착돼 있었다. 흠잡을 데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내 완벽한 차림이 면접관들 앞에 각 잡고 앉았을 때 그 후배 녀석보다 못한 걸 수도 있었다. 생기 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재미없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기억에 남지 않을 수도 있다. 안 그래도 나이가 있는데 더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느 게 더 나은 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 후배의 복장이 잘 된 거든 잘못된 거든 그걸 고쳐주고 싶어도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거다. 그렇다고 남의 일이라고 그냥 외면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잊어버리지도 못했다. 머릿속에서는 내가 있던 그 면접장이라는 장소의 의미와 내가 먹은 나이 사이 관계에 대해 또다시 쓸데없는 잡념이 엉켜가고 있었다.

혼자였다. 그 누구와도 어울릴 용기가 없었다. 행정고시에 쏟아 부었다가 결국 헛고생이 된 3년의 시간, 방황하는 동안 따라가기 힘들어진 스펙 인플레로부터 내 스펙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나이가 좀 있고 사회생활이 늦더라도 난 뭔가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위는 오히려 날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면접장에 가득 차 있던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나 스스로를 떼어 놓았다. 이런 생각과 노력을 한다는 거 자체가 내가 거기에 얽매어 있는 거였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신 있는 척…온갖 척을 다 해봐도 척은 척이었다. 난 여전히 약했다.

그 날 난 결국 그 친구에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우연히 알게 됐는데, 합격했단다, 그 친구는.

글/ 개똥그릇

편집 및 교정/ 이점

<이전화, 99개의 자소서를 쓴 남자, 14년 하반기(9)

 

   [ + ]

1. CJ의 대표 계열사인 ‘제일제당’을 꼬아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