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에는 압구정에 가야 한다.

아직 주말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술 한 잔이 아니고서는 잠이 들 수 없을 것 같을 때, 하필 비가 추적추적 울적하게 가라앉은 일요일의 밤거리를 적실 때면 압구정에 가야 하는 것이다. 그저 스윽 지나쳐서는 그곳에 무엇이 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어둡고도 차분한 골목의 건물에 들어서서 계단을 올라가 안에 무엇이 있을지도 상상하기 어려운 육중한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 핑가스존이 있을 것이며, 나는 한 잔의 위스키소다를 마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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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소다를 마신다는 것은 하나의 종합적인 의식이다. 소다수의 쌉쌀한 청량감은 위스키의 묵직함을 교묘히 해체하고 새로운 질감을 완성시키지만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위스키의 맛에 다른 무언가를 덧씌워 그것을 지워내지 않는다.

위스키소다는 음료수를 마시듯 별 생각 없이 홀짝여도 그만이고, 입안에서 궁굴리며 오래도록 맛을 음미해도 그만이다. 명쾌하면서도 미묘하고, 별 것 아니면서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순이 미각을 통해 종합되는 순간은 위스키소다의 색깔처럼 관능적이다.

하지만 오직 위스키소다만이 핑가스존을 찾을 이유였다면 꼭 핑가스존을 찾아 위스키소다를 마실 이유도 없을 것이다. 먼저 이곳에서 일하는 이가 필자의 친구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핑가스존을 좋아하는 이유는, 먼저 친구가 일하는 곳인 덕에 내가 구태여 말을 보탤 것도 없이 그녀가 바 너머로 위스키소다 한 잔을 건네주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곳에 노래가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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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넓지 않은 핑가스존에 들어서면 벽에 무수히 많은 LP판이 꽂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데이빗 보위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즈음이었을 것이다. 신청을 받았던 것인지, 핑가스존에서 고른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데이빗 보위의 <Starman>이 흘러나왔다.

There’s Starman, waiting in the sky.

하늘에서 기다리는 스타맨이 있어.

He said, let the children use it, let the children lose it, let the children boogie.

그는 말했지, 아이들이 쓰게 해줘, 아이들이 잃게 해줘, 아이들이 춤추게 해줘.

나는 친구와 함께 데이빗 보위를 따라불렀고, 흑백으로 촬영된 누드 사진들이 가득 걸려 있는 흡연실에서 흑백 영화가 상영되는 은막처럼 뿌옇도록 담배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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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노래를 청해 듣기도 했다. 보통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노래 중에서도 항상 신청하던 노래들만을 반복해서 신청했다. <Amor de loca juventud>는 한창 관계가 지속되던 중에서도 핑가스존에서 들었고, 그녀와 헤어진 후에도 핑가스존에서 들었다.

Mueren ya las ilusiones del ayer que sacié con lujurioso amor. Y mueren también con sus promesas crueles la inspiración que un día te brindé.

내 욕심 많은 사랑으로 채웠던 지난 날의 착각은 이미 죽었네. 언제였던가 그대에게 바쳤던 영감도 잔인한 약속과 함께 죽어버렸네.

Con candor el alma entera yo le di pensando nuestro idilio consagrar. sin pensar que ella lo que buscaba en mí era el amor de loca juventud.

순진하게도 내 영혼의 전부를 그녀에게 주어버렸지, 우리의 관계가 굳건해질 거라 생각하면서. 그런 생각은 못했네, 그녀가 내게서 찾은 것은 미친 젊음의 사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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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시고 노래를 듣고 있자니, 어쨌든 끝난 내 사랑은 젊었고, 나 또한 젊거나 혹은 어렸으며, 핑가스존에서 마시는 위스키는 좋았다.

원고를 마치며, 나는 앞으로 다가올 주말들의 일기예보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주말에 비가 오면 좋겠다. 이왕이면 핑가스존에 사람이 적은 일요일 밤에 비가 내리면 좋겠다. 그리고 그 비가 보랏빛이면 좋겠다. 보라색 비가 내리는 일요일 밤에, 나는 또 핑가스존을 찾아 위스키소다를 마시며 프린스를 들을 것이다.

글 / 안똔

교정 및 편집 / 아날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