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한국 사회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유능한 청년들이 오로지 취업준비만을 위해 몇 년의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하고, 여전히 남녀의 임금 격차는 좁혀지지 않으며, 사람들은 이 한국 땅에서 아이를 낳고 싶어 하지 않는 걸까. 또 2년 전 일어난 참사에 대해서는 아직도 무엇 하나 깔끔하게 밝혀진 것이 없고, 정부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안겨줘야 했을까. 21세기에 봉건 사회처럼 표류하는 이 국가는 누가 만들었는가.

‘젊은 것’들을 탓하는 사회

16년만의 여소야대, 지난 20대 총선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가장 눈에 띄었던 문구다.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16년 동안 항상 여당이 다수당이었던, 국회 문을 열면 항상 그 대통령의 편이 더 많은 의회를 가져왔던 거다.1)편집자주: 현재 대학 12학번인 세대는 칼졸업을 하면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 졸업때까지 여당 다수 국회를 본 셈이다. 이미 많이 논의된 문제지만, 나는 이 변화가 단순히 20대의 투표율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4번의 총선동안 20대 유권자는 항상 있어왔고, 앞으로도 생겨난다. 어떻게 20대 투표율 조금 올랐다고 16년 동안 못했던, 혹은 안 했던 정권심판을 단번에 이뤄낼 수 있겠는가.

한국 사회에서 20대는 성인이 되고, 투표권을 행사하는 나이가 되어도 여전히 사춘기 애들처럼 취급 당한다. 어른 말 안 듣는, 제멋대로인, 하는 거 없이 불평만 많은, 이런 말은 교복 입는 동안만 참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20대가 되자 오히려 그 힐책과 비난의 수위는 점점 더 광범위해지고 심해졌다. 하물며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했던 20대가, 이제 기껏 두 번 정도나 투표권을 행사해 본 20대가 이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소리까지 나오지 않는가. 이 헬조선을 가장 오랜 시간 견뎌내야 하고 싸워나가야 하는 세대가 20대라는 ‘사실’과 그래서 그것에 책임을 져야하는 것 역시 20대라는 ‘꼰대짓’은 영 말이 맞지가 않는다. 감히 말하건대, 총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쏙 들어갔던 ‘20대 개새끼론’의 진짜 주어는 오히려 미온하게 정부를 믿었던, 혹은 믿고 싶어 했던, 그러니까 16년 전부터 한결 같이 여당을 찍어온 기성 세대의 그분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성세대의 미필적 고의

“내가 너 이럴 줄 알았어” 한국 사회가 사회 구성원들을 바라보는 태도는 대개 이런 식이다. 옆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을지, 한참을 지켜보면서 칭찬 한번 없다가 뭐가 좀 안 된다고 도움을 구하면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는 비아냥이 먼저 튀어 나온다. 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러지 않게 방향을 잡아주고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사회 안전망’이라고 부르는 국가와 사회의 영역이다. 하지만 이 한국이라는 사회는 낯짝도 두꺼워서 넘어져 울고 있는 개인에게 남들은 다리가 부러져도 열심히 산다고 오히려 다그친다. 지금까지 조언 한 마디 없었으면서 그러게 진작에 내 말을 들으라 하지 않았냐고, 또 앞으로도 뭐하나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면서 지금부터라도 내 말을 들으라고 호통 친다. 그리고 이 꼰대짓이 제일 만만하게 먹히는 건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20대였다.

그런데 지금 20대가, 청년실업으로 가장 고통받는 우리가, 한번이라도 ‘말을 안 들은 적’이 있었는지 돌이켜보자. 시키라는 대로 입시도 준비하고, 대학도 진학해서, 온갖 대외활동이란 대외활동은 다 해가며 이력서를 써내도 결국 돌아오는 건, 다음에 뵙자는, 정중하지만 결국에 달라질 것 없는 탈락 문구다. 어릴 때부터 늘 누군가보다 앞서가야 했고, 더 열심이어야 했던 경쟁 사회에서 나는 제 아무리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보다 조금 더 나았던 경쟁 상대 한 명만으로 또 다시 졸업을 한 학기 미루고, 수십 장의 자기소개서를 써야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의 기성세대에게 묻고 싶은 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왜 나는 당신들처럼 살 수 없느냐는 것이다.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니까 당신들의 가까운 미래에, 혹은 당신들의 자녀들 세대에, 취업시장이 붕괴되고 당신들은 임금 피크제라는 허울 좋은 해고 정책에 놀아나야 한다는 걸 미리 알았으면, 왜 나한테 그래봤자 안 된다고, 포기하면 마음 편하다고, 하루라도 빨리 이 땅을 뜨라고 말해주지 않았냐 말이다. 당신이 여당지지자든 야당지지자든, 당신네 사고방식은 여전히 꼰대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탓할 것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여길 떠야 이 한국을 책임지지 않을 수 있다고도,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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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기까지다. 나를 포함한 청년 세대는 이미 사회가 ‘노오오오력’을 운운하며 구조적인 문제를 개인의 무능으로 치환하는 것에 넌더리가 난 사람들이다. 또 자신의 부모들을, 이 사회의 기성세대들을 설득하는 것에도 이미 지친 사람들이다. 그래서 막상 그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생겨도 침묵을 선택하는 데에 더 익숙해져 있다. 당신들 중 그 어느 누구보다 가장 오랜 시간 이 사회를 견뎌내야 하는 나에게 왜 이런 사회를 물려주느냐고, 결국 당신들의 꼰대짓이, 알고 있었다면서 아무 것도 바꾸지 않으려 했던 그 태도가, 여전히 젊은 세대만의 잘못이라고 믿는 나태함이, 그것 모두가 지금의 한국 사회에 대한 미필적 고의였노라고 말할 여력이 우리에게는 이미 소진되고 없다.

결국 이마저도 깨어보면 ‘꿈’

나는 이따금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목소리를 내고 살 것’이라고, 그 전처럼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 마음을 다잡아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싶게, 또 다시 모범생의 탈을 쓰고 싶어질 거라는 걸 안다.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만 유능하게, 그래서 어디에 앞장설 필요는 없지만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기를, 이 사회에는 정말 문제가 많지만 나보다 한가한 누군가가 나 대신 싸워주기를 비밀스레 바라게 될 것이다.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나는 그래도 그게 문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살았노라고, 불특정의 누군가에게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면서 살게 될 것이다.

 

아시발꿈끝

그래서 나는 나도 꼰대로 늙게 될까 조금 두렵다. 나의 자식들에게 나 때는 취업하기가 더 힘들었노라고, 먹고 살기도 힘든 시대였다고, 우리 때는 그 고생 다 해가면서 훨씬 비싼 등록금도 다 벌었다고 말이다. 꼰대가 어떤 노화에 따른 필연적인 사회화 현상이라면, 불평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하는 꼰대가 되자. 그리고 이왕이면 꼰대가 되지 말자. 지금 우리가 뭐라도 바꾸지 못하면 결국 이 글조차, 또 우리 세대가 했던 모든 노력 역시, 그저 꼰대짓을 더 그럴싸하게 포장시키는 일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세대’가 투표권을 가지면 분명 무언가 바뀔 거라고 모두가 말한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기대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 16년간 여당이 늘 힘이 셌던 국회처럼, 또 안녕하지 못했던 채로 그저 지나갔던 2년처럼 말이다. 20대 총선은 시작에 불과하다. 벌써 대통령의 권력 누수가 시작됐고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대선도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집단의식이라는 이름으로, 기성세대라는 이름으로 이 사회를 망가뜨리는 미필적 고의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국가의 무능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할 수 있는지 기억하는 것, 무언가 잘못돼 간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 이것이 우리 세대를, 또 세월호 세대를 정의할 수 있길 바란다.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아홉 번의 ‘구운몽’ 연재가 모두 끝났습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연재를 마치며

소설 ‘구운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정신이 아득하고 가슴이 뛰었다. 한참 만에 갑자기 깨달았는데 자기는 연화도량의 성진 소화상이었다.” 저는 조금 있으면 유럽의 스페인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상을 맞이하는 소화상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 밖에서 보낸 꿈같은 시간동안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다시 생각해보게 됐으며, 기뻤던 순간만큼 슬프고 좌절했던 순간도 많았습니다. 이따금씩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문제점은 많은데 대개 너무 그 역사가 오래된 것들이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또 손을 댄다고 해도 정말 바꿀 수는 있는 것인지 늘 막막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무기력만 느끼고 싶지는 않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너무 뜬구름처럼 느껴지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연대’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글이, 그 연대에 조금이나마 쓸모를 가지기를 바라봅니다.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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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자주: 현재 대학 12학번인 세대는 칼졸업을 하면 초등학교 입학부터 대학 졸업때까지 여당 다수 국회를 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