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장학금 소득분위가 이해가 가지 않아 산정 내역을 신청했다.

집 있으면 받지 말라는 소리구나. 집이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 21년 전에 사서 한 번도 팔지 않은, 정말 ‘사는 것’ 이 아닌 ‘사는 곳’이었는데 그게 소득이구나. 내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렸던 시절, 부모님이 수 천만 원의 빚을 지고 겨우 장만한 7천만 원짜리 연립주택이 현 시세보다 훨씬 높은 액수로 재산 내역에 들어가 있는 것도, 열심히 알바 뛰어서 모은 생활비가 전부 재산으로 들어간 것도 기가 찬다. 버는 족족 다 밥값 교통비로 써서 남은 것도 없는데, 무슨 기준으로 그게 내 재산이라는 건지. 작년에 살던 방 빼고 보증금 받았을 때 찍었던 잔고도 내 소득으로 떡하니 올라와 있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네


우리 집엔 나보다 어린 동생 둘이 더 있고, 내년이면 그 중 하나가 대학생이 된다. 우리 집은 그 둘의 학비를 다 감당하긴 어렵다. 하지만 다자녀 장학금은 셋째부터만 가능하다고 한다. 셋째가 대학에 갈 때는 이미 아버지가 정년퇴직하시고도 몇 년이 흐른 뒤다. 하지만 내가 셋째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학재단에서는 버젓이 살아 있는 두 동생을 가족 구성원으로 고려하지도 않았다. 2011년 한국노동연구원 통계로는, 자녀 한 명을 18세까지 양육하는 데 들어가는 금전-시간적 비용의 합산은 (외벌이의 경우) 4억 5천만 원, 금전적 비용은 2억 3천만 원 ~ 2억 6천만 원1)각각 외벌이, 맞벌이의 경우에 육박한다고 한다. 시간적 비용을 제외하고라도, 자식이 셋인 가정인 경우 외동 가정보다 5억 원 정도를 양육에 더 소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학교를 가게 되면 자식 한 명당 양육비 7~8천만 원 추가2)2013년 기준, 재수라도 하게 되면 한 명당 최소 천만 원씩은 추가로 더 나가게 된다. 월급이 오백만 원이 넘고 부채가 없는 이른바 ‘중산층’ 가정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물론 우리 집보다 형편이 어려운 집이 훨씬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돈 걱정 없이 넉넉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다. 애초에 비싼 등록금이 문제인 건지, 집을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가 문제인 건지, 장학금 시스템이 문제인 건지. ‘돈 없으면 공부해서 성적 장학금 받을 생각을 해야지’라던 모 교수님의 발언이 생각난다.

그렇다. 내가 나쁜 놈이다. 나도 ‘노오력이 부족한 요즘 애들’ 중 하나라 그런가 보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건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하신 아버지, 직장도 포기하고 가정에 헌신하신 어머니의 노오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noryuk

‘너도 휴학 좀 해 바로 졸업하게?’ 묻는 사람들에게 그냥 나는 웃어 보인다. ‘딱히 휴학하고 싶지가 않아서요. 하고싶은 일이 생기면 휴학하려구요.’ 하지만 휴학은 애초에 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다. 내년이면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는 올해 안에 졸업을 해야만 한다. 어디 취직할 거니? 묻는 질문에 장난처럼 웃으며 ‘문송한 날 데려가주는 곳으로 가야지’라고 대답하지만 사실 이건 진심이다. 그냥 적당히 취직해서 얼른 집에서 독립해야 한다. 그래야 동생들이 적어도 나만큼의 기회는 얻는다.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내 글은 불쾌할 수도 있다. ‘그래도 너는 부모님 소유의 집이라도 있으니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집을 빼면 부채밖에 남지 않는 현실, 정부에서 대학생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행복주택에 3천만원에 육박하는 보증금을 절대 마련할 수 없어 마지막 신청 버튼을 누르지 못하는 현실. 돈을 벌어 저축은 커녕, 학업과 동시에 과외를 하면서도 다른 알바를 한 개 이상 뛰어야만 겨우 교통비에 밥값을 벌 수 있는 현실 앞에서 ‘나는 여유롭고 행복하다’는 최면은 먹히지 않는다.

왜 눈물만 나는지

왜 눈물만 나는지

현재 학생들의 금전적, 심적 여유로움을 0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그 평균치는 마이너스 쪽에 치우쳐 있다. 정부에서 ‘반값 등록금이 실현되었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광고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보단 상대적 박탈감과 밀려오는 자괴감에 분노하는 학생이 더 많다.

부모님이 ‘월급쟁이’가 아니어서 실제 소득보다 신고된 액수가 적어 형편이 많이 여유로운데도 장학금을 받는 사람, 부모님의 소득이 해외에서 이루어져 국내 신고된 소득액이 없어 장학금을 받는 사람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조부모님 등 수입이 없는 가족을 모시고 살거나 형제자매가 많은 가정의 형편도 소득 산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산정된 소득 및 재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면 대부분 등급이 올라가니 일단 이의 신청부터 하라는 이야기가 정설처럼 나돌고 있는 지금, 국가장학금 제도는 분명 문제가 많다.truth

하지만 장학재단은 절대 산정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다.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겠지만, 장학금 제도의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은 장학금 제도, 나아가 국가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물론 장학금 제도 이전에 반값으로 내렸다고 홍보만 하고 실질적으로 변함 없는 비싼 등록금이, ‘일단 사람은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분위기에 더해 쓸데없이 높은 대학 진학률이 더 근본적인 문제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는 이 복잡한 상황에서 그래도 넌 나보다 형편이 조금 낫네, 배부른 소리 하네 등의 논쟁은 을과 을의 싸움, 노예들의 족쇄 무게 자랑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서글프다.

noye
내가 꿈꾸는 미래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 믿었다. 서른 살 쯤 결혼해서, 발 뻗고 누울 조그만 집 한 채에 사랑하는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 것. 시간이 지날 수록 이 평범한 꿈이 사실 평범하지 않음을 깨닫고 절망하게 된다.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할 수 없는 현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모두 헤어져야 하는데도 청년들이 해외 취업에 자꾸만 눈을 돌리는 이유가 거기 있을 것이다.  정말 모든 청년이 중동으로 나가 대한민국이 텅텅 비게 되는 그 날이 올까 두렵다.

글/아날로그

편집/요정, 저년이

   [ + ]

1. 각각 외벌이, 맞벌이의 경우
2. 201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