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딘가 낭만적이고 고즈넉한 느낌의 도시 풍경이 펼쳐진다. 유럽은 그런 이미지에 걸맞게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고,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미술관은 소장품의 가치와 규모, 건물의 외관 등으로 항상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끄는 곳이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에게도 교과서에서 나왔던 작품을 찾는 재미가 있는, 혹여 그것마저 영 내키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도시의 랜드마크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찾는 곳이 유럽의 미술관이다.

하지만 유럽의 미술관이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잠깐 생각을 돌려 ‘복지 국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독일… 이 나라들은 단순히 유럽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복지국가로 유명한 나라들이다. 실제로 복지국가라는 단어 앞에는 대개 ‘유럽의’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레 따라 붙기도 한다. 유럽이 전반적으로 선진국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여기에 기인한다. 꼭 ‘요람에서 무덤까지’ 내 인생을 책임져주는 북유럽 국가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럽 국가들이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복지 정책에 대한 고민을 일찍부터, 심오하게 해온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복지 정책의 집약체를, 나는 미술관에서 찾았다.

평일에 미술관을 누린다는 것

‘나른한 평일 오후, 브런치 먹고 미술관 데이트’ 누군가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가정해보자.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굴까. 한국에서는 아마 이 글쓴이를 여성이라고 제일 먼저 상정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평일 오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여유 있는 척하는 사람이며, 또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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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유엄브(애는 유치원 보내고 엄마는 브런치)’라는 괴랄한 신조어에 딱 들어맞는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평일에 브런치를 즐기고 여유 있게 미술관 전시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평일 오후에 시간이 난다고 하더라도 미술관을 가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상을 살고 있거나, 애초부터 미술은 고상한 것이라고 마음을 닫아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유럽의 미술관은 단순한 문화 공간 이상으로 시민공원의 역할까지 해낸다. 꼭 전시를 보지 않더라도 미술관 부지에서 돗자리를 펼치고 낮잠을 즐기거나, 거의 모든 미술관들이 가지고 있는 카페 겸 레스토랑에서 친구와 커피를 한 잔 하기에도 좋다.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아서 주기적으로 이곳을 찾는 현지인들도 정말 많다. 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평일에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 미술관은 흔히 연애 단계에 있는 남녀들이 찾기 좋은, 좀 더 구체적으로는 남자가 여자를 ‘맞춰주는’ 데이트 코스처럼 여겨지지만 이 곳 사람들에게 미술관은 영화관만큼이나, 혹은 영화관 보다 더 대중적인 여가 공간이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같은 정책 없이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수시로 미술관을 찾고 싶어 하고, 실제로 찾아갈 만하다는 거다.

실직자, 취준생 대신 ‘unemployed’

입장권을 구입하려 안으로 들어서면 할인 요금에 ‘unemployed’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영어 사전에 검색하면 실직자라는 번역이 나오는데, 다시 실직자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직업을 잃은 사람’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하지만 이 ‘unemployed’라는 범주에 꼭 직업을 가지고 있다가 잃은 사람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서 학생 할인은 받을 수 없지만 아직 직업이 없어서 소위 ‘취준생’인 상태의 시민들도 이 요금으로 미술관을 저렴하게 둘러볼 수 있다. 유럽의 국가들이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최소한의 인간 다운 삶’이란 단순히 집이 있고,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 의식주만 해결되는 삶이 아니라, 미술관에 가서 여가도 즐기고 교양도 쌓을 수 있는 삶인 것이다.

한국어에서 실직자나 취준생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꽤나 우울하다. 마치 인생에서 실패한 사람, 혹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감히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갈 만큼 한가하게 살면 아마 한국에서는 영영 직장을 못 찾을 것 같다. 문화 예술 분야에 이들을 위한 복지 정책이 전무한 것도 이러한 사회 인식 때문일 것이다. 특히나 취준생들에게는 이런 잣대가 훨씬 엄격하다.

아직 고생도 한 번 안 해본 것들이 노오오오오력을 안 해! 하라는 노력은 안하고 어디서 예술감상이야

아직 고생도 한 번 안 해본 것들이 노오오오오력을 안 해! 하라는 노력은 안하고 어디서 예술감상이야.

그만해

그만해

대표적인 고용 복지 정책인 실업급여만 하더라도 고용보험에 등록된 사람들, 그러니까 취업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지급된다. 취업이 힘들어지면서 직장인도 아닌, 학생도 아닌 기간은 점점 길어지는데 그 기간 동안 ‘나’는 사회구성원으로 전혀 인정 받지를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어떤 범주로 규정할 수 없는 사회구성원은, 그러니까 어떤 과정에 서 있는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소외당해왔다. 하지만 유럽은 ‘unemployed’ 그러니까 고용 상태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별도로 증명서류 혹은 신분증을 발급한다. ‘이 사람은 직업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이 한 문장은 미술관 밖에서도, 예를 들면 대중교통 같은 일상의 부분에서도 역할을 한다. 워낙 보편화 된 제도다 보니 아무도 이 신분증을 꺼내 드는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찾고 있을 뿐이다. 무능하거나, 게으르거나, 미술관을 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바르셀로나에 있는 현대미술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 제목 설명 아래 점자가 있었다. 처음엔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다음 작품을 보러 발걸음을 옮기려다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에 점자라니?’ 난 한번도 미술관에서 점자 안내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미술관에는 시각장애인이 올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시각장애인이 미술관을 찾는 일은 잘 없기 때문에, 실상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저 점자를 보기 전까지 미술관과 시각장애인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다. 얼마나 멋진 미술관인가. 시각장애인도 찾는, 찾게 하는 미술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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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설명과 함께 실제 그림의 질감을 느껴볼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별도의 그림이 놓여있다.

“이 사람에게는 A가 필요하지 B는 필요하지 않을 거야”라고 정책적 효율성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떤 최소한의 삶의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하고 더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유럽의 복지란 이런 것이다. 이 국가가 국민들에게 최소한으로 제공하고 싶은 삶에 미술관에서의 여가 생활도 포함돼 있다면 그 사람이 미술관을 찾을 이유가 없을 것처럼 여겨지는 시각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기꺼이 보장하는 것이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이 느끼는 미술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미술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건 우리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가 남들보다 나쁜 시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미술관에 갈 자격까지 박탈 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빨갱이 소릴 들어도 난 평등하고 싶다

스페인에는 ‘Ministerio de Sanidad, Servicios Sociales e Igualdad’라는, 직역하자면 ‘건강, 사회복지, 그리고 평등을 위한 정부’가 있다.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 평등이라는 이름만 하나 더 붙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부 기관의 이름에 어떤 단어가 들어가고 빠지는 것은 그 기관이 추구하는 방향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우리나라 보건복지부라고 해서 평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등을 본격적으로 추구한다고 할 수도 없다.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여성가족부, 고용노동부 등 많은 정부 기관들이 사회적 격차와 갈등,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많은 복지 정책을 수립한다. 그 과정에서 얼떨결에 평등이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 적극적으로 어떤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정부 부처가 없다는 것은 퍽 아쉬운 일이다.

내일이면 총선이다. 백번 양보해 나에게 무언가를 해줄 정치인은 못 고를지언정, 적어도 나한테 뭐라고 꼰대짓이나 하는 사람은 고르지 말자. 국회의원이니까 국민을 위해서 일 좀 하라고 했더니 빨갱이라고 매수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박탈당하는 것은 단순히 평일 오후 미술관에 가서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는 여유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3년 동안 잃어왔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내일 할 수 있는 건 2년 동안이나마 그걸 멈출 수 있게, 브레이크를 밟는 일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엑셀을 밟겠지만 말이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