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인식은 알바와 함께였다.

사실 뻥이다. 일단 성인식 같은 걸 한 적이 없다. 남사스럽게 뭘 그런걸. 하지만 성인이라 인정받는 고갯길 언저리엔 항상 알바를 하고 있었다. 남들도, 스스로도 별로 학생이라 여기지 않는 수능 끝난 고3시절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물론 스무 살이 되던 1월 1일도, 떡국을 먹던 설날에도, 그 다음해 1월 1일도, 남들이 장미를 주고받던 만 스무 살 성년의 날도, 그 다음 만 스무 살 생일까지도 나는 알바를 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어요? 궁금한 사람도 있겠지만 별 수 있나, 하라니까 했지.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설날이라고 일당을 두 배로 쳐서 주더라.

물론 10대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지는 지금도 딱히 변한 것은 없다. 이 문장 역시 알바를 다녀와서 잠이나 자려 했지만 마감이 떠올라 억지로 노트북을 켜고 적고 있다. 돈이 나갈 곳은 너무 많은데 생활비를 벌지도 않는다면 버틸 수가 없다.

혹여나 자취를 한다면 비용은 순식간에 두 배 이상이 늘어난다. 방세에 관리비, 공과금은 물론 통신비도 은근 큰 압박이다. 연인이 있다면 지출은 또 한 번 껑충 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자취를 하고 있으며, 연애도 하고 있다. 정말 뭐라도 하지 않는다면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그럼…

나만의 얘기는 아니다.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알바생이 있다. 집 앞의 편의점에도, 점심을 먹으러 간 맥도날드에도, 중국집 오토바이에도 알바생이 있다. 편강탕 광고보다, 카페베네보다 알바생이 훨씬 많음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긴 편강탕 광고를 붙이러 다니는 사람도, 카페베네에서 포인트카드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모두 알바생일 것이다. 그 와중에 알바천국은 무려 30만개의 일자리를 갖고 있단다.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전체가 알바천국이 된 것만 같다. 김밥천국은 분발할 필요가 있다.

알바생의 지위에도 몇 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 2010년에는 세대별 노동조합을 표방하는 청년유니온이 등장하여 알바 중 생기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저임금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08년만 해도 3,770에 불과하던 최저임금은 14년 기준으로 5,210원까지 상승했다. 알바생의 대다수에게 최저임금이 실질임금으로 다가오는 만큼 적잖이 고무적인 일이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게 당연시 되는 게 몇 년 전의 분위기였다면 요즘은 대다수의 알바생이 최저임금만도 못한 시급을 받을 경우 노동청으로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은근히 쑥쑥 오르고 있다.

알바생이 사회의 슈퍼슈퍼을로써 수모를 당하는 것은 여전하다. 커피값만도 못한 시급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거시적인 담론을 다루지 않으려 한다. 나부터가 시급에는 늘 별 불만-1년 9개월간 국가에서 준 돈을 제외한다면-을 갖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악덕 고용주에게 걸려 월급을 떼먹히거나 한 적도 없다. 혹여나 그런 법정드라마 혹은 도시활극을 원했던 사람에게는 알바시장이 세간에 나도는 것만큼 스펙타클하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쓰고 싶은 것은 그보다 좀 더 보잘 것 없는, 그냥 한 명의 알바생이 무엇을 했더라는 얘기다. 지금도 알바 준비를 하며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너희에게 보내는, 우리의 얘기이기도 하다.

스무살 이후로 거의 항상 무엇이든 하고 있었기에 나름 다양한 종류의 알바를 해 봤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연남동 알바왕 혹은 봉천동 알바몬 등으로 자처하시는 분들은 음, 애교로 봐주세요, 뿌잉뿌잉.

여기저기 직종을 가리지 않고 이력서를 투척하다보니 나의 지원을 내팽개친 곳도 꽤 있다. 꾸준히 신의 직장으로 각광받는 학교 근로장학생과 알바계의 떠오르는 큰 손 삼성 드림클래스. 왜 떨어졌는지 궁금했으나 거울을 보니 수긍하게 된 백화점과 호텔. 이력서에 사실 영어 잘 못해요 적었던 게스트하우스까지. 모두 나 같은 놈의 지원은 받아주지 않았다.

돈은 받았지만 알바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곳 역시 알바 목록에서 제외했다. 피자집 전단지를 돌리고 온 친구와 나에게 주인아저씨는 이천원 정도의 돈과 피자를 한판 주셨다. 일용할 pc방 비를 벌고 싶던 중딩 두 명은 눈물을 흘리며 피자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초등학생 때 동창회에서 사물놀이를 하고 만원을 받았던 경험-어찌 보면 내 인생 최초의 알바일수도 있겠지만-도 역시 제외했다. 돈을 주는지도 모르고 그냥 했었으니까. 1년 9개월동안 숙식을 제공받으며 국가의 녹을 받아먹은 일이 있긴 했지만 이것도 알바라고 하기엔 아무래도 좀 거시기한 면이 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알바라니!

나의 알바 경험은 PC방과 과외/학원 등 교육계, 흔히들 노가다로 부르는 일용직과 대학교 입학처, 사무보조로 총 다섯 분야다. 돈을 벌어 햔다는 목적은 동일했지만 각각의 분위기는 미묘하게 달랐던 만큼 그 경험을 글로 풀어내 보고자 한다.

위 순서는 앞으로 연재될 소재의 순서이기도 하며, 내가 일을 겪은 순서이기도 하다. 읽고 문제의식이 샘솟거나 혹은 알바가 하고 싶어지거나 그냥 별 생각 없거나 하는 것은 나의 손을 떠난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