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것이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3월 10일, ‘당대포’ 정청래가 컷오프 당했다. 예상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지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때 주승용 의원에 이어 2등으로(여론조사 항목은 1등) 최고위원이 되는 기염을 토한 뒤 정청래의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당대포’(당대‘표’가 아니라 당대‘포’)라는 별명에 걸맞게 대통령과 여당을 거침없이 비판하며 당의 ‘최전방 공격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최근에는 테러방지법 통과를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릴레이에서 11시간 39분이라는 기록 경신(곧 이종걸 원내대표가 다시 경신했지만)을 이루며 그의 주가는 정점에 올랐다. 심지어 지역구인 마포(을) 관리도 잘 해왔기 때문에 그가 낙선할 거라 예상하는 이는 적었다. 그런데 그가 당에 뒤통수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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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더불어민주당은 왜 정청래를 버렸을까?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의 말에 따르면 정청래 컷오프의 직접적인 이유는 역시 ‘막말’이다. 정청래는 그동안 당의 ‘최전방 공격수’를 자처하면서 거침없는 발언으로 언론의 집중을 받았다. 자연스레 팬과 안티가 동시에 늘어났다. 그러다가 문제가 된 시점은 2015년 5월 8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의원과의 충돌이었다. 친노 계파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주승용 의원에게 이른바 ‘공갈 발언’을 내뱉은 거다. 주승용 의원은 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 최고위원 직을 사퇴했고, 정청래는 결국 당직 자격정지 징계를 받게 됐다.

하지만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정청래를 쳐낸 게 정말 막말 때문이었을까? 공관위의 입장대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컷오프였다면 왜 정청래 컷오프에 그리 많은 유권자들이 들고 일어났을까? 당 지도부가 여론을 잘못 읽어 이런 사태가 일어날 걸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김종인 대표는 그럴 바보가 아니다. 정청래의 팬 층이 두텁다는 것도 잘 알고, 그가 마포구 을에서 출마하면 당선될 것도 잘 알았을 거다. ‘막말’은 정청래 컷오프의 진짜 이유가 아니다.

썰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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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언론사들의 보도 기사를 살펴보면 박영선과 이철희가 정청래를 찍어냈다는 소리도 있고, 당이 ‘조중동’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소리도 있다. 웃기지도 않는 얘기다. 김종인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조중동 따위에 놀아날 사람도 아니고, 얼핏 박영선 의원이 당의 실세 행세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에 놀아날 사람도 아니다. 난 지난 편에서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이번 총선을 둘러싼 모든 움직임이 문재인과 김종인의 거대 플랜에 의한 거라 주장했다. 정청래 컷오프도 마찬가지로 문재인과 김종인의 대선을 위한 합작품의 일부라고 본다.

그럼 도대체 정청래가 뭐길래? 정청래가 어떤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를 쳐내는 게 중요했던 걸까? 난 여기에 크게 3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1) 국민의당 부수기

필리버스터가 끝난 직후 김종인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야권 통합론’을 꺼내들었고, 국민의당은 바로 흔들렸다. 국민의당은 안철수・천정배・김한길 3명의 대표가 이끄는 정당이나 마찬가지인데, 이 3명의 목표가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분명히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고, 천정배는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독자적 세력 구축, 김한길은 생존에 관심이 있는 듯하다. 김종인이 야권 통합 얘기를 꺼내자마자 자신의 지역구인 광진(갑)에서조차 여론이 좋지 않던 김한길은 통합을 해야 한다고 했고, 천정배는 조금 수위를 낮춰 수도권 연대 얘기를 했다. 오직 안철수만 완강히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정청래 컷오프도 국민의당 흔들기와 맞닿아 있는 걸로 보인다. 정청래 컷오프로 더불어민주당은 여론의 관심을 독점하면서 국민의당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 되도록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국민의당의 이른바 ‘5적’ 가운데 한 명인 정청래를 컷오프 함으로써 야권 통합이나 연대에 대한 명분을 다시 열어둔 셈이다. 정청래 컷오프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을 여론의 관심 밖으로 밀어냄과 동시에 통합 및 연대에 대한 갈등 여지를 다시 만든 거다. 그리고 얼마 뒤 친노 세력의 좌장 격인 이해찬 의원까지도 공천에서 배제함으로써 국민의당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2) 친노 청산 명분

문재인 대표 시절부터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에게 끊임없이 요구돼온 것은 친노 패권주의 청산이다. 하지만 문재인-김종인 듀오가 정말 다음 대선을 내다보고 판을 짜고 있는 거라면 친노, 특히 그 중에서도 친문 세력을 청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만 당이 변화하고 있다는 이미지는 밖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몇 명 희생양이 필요했다. 핵심 친문 인사는 아니면서도 대중에 대한 상징성이 큰 인물을 공천에서 배제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당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당과의 명분 싸움에서 승리해야 했다.

사실 정청래는 친노나 친문 세력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초에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되고나서부터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이 지내는 모습이 언론에 계속 노출되면서 그가 친노/친문 세력이라는 ‘착시 효과’가 생겼다. 특히 작년에 주승용 의원과의 마찰로 그가 ‘문재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됐고, 주승용이 최고위원 직에서 사퇴한 뒤에는 문재인과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친문인 듯 친문 아닌 친문 같은’ 정청래를 쳐냄으로써 더불어민주당이 친노 세력 청산에 주력하고 있다는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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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문재인-김종인 체제 강화

정청래가 지역구에서 얼마나 공고한 입지를 지녔든, 얼마나 많은 팬을 거느렸든 문재인-김종인 입장에서는 눈엣가시다. 항상 거침없는 발언을 해보였던 정청래는 문재인과 김종인의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 플랜에 지속적으로 태클을 걸 가능성이 크다고 보였을 거다. 특히 문재인이 뒤에 숨어 있는 동안 김종인이나 또 다른 제3의 인물이 당을 이끌어가며 체제를 다질 때 정청래를 길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물론 정청래의 존재가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걸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응?

응?

결국 문재인과 김종인 입장에서는 정청래가 ‘계륵(鷄肋)’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계륵이란 건 ‘먹자니 살이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걸 의미하는 건데, 계륵은 결국 버리게 돼 있다. 그리고 김종인은 결국 정청래를 버렸다. 솔직히 난 정청래 컷오프 발표 직후 문재인이 정청래와 연락해 ‘이번 한 번은 쉬고 있어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재심 청구는 조금 의외이긴 했다. 하지만 어쨌든 정청래의 재심 청구는 기각됐다. 애초에 국민적 반발을 예상치 못했을 김종인이 아니다. 당사 앞에 사람들이 좀 몰려든다고 컷오프를 철회했을 거면 애초에 자르지도 않았을 거다.

4) 우클릭

아무리 진보당이라도 한국 정치에서는 여당이 되려면 우클릭을 해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은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소선거구제에 의해 양당체제가 자리 잡고 있는 정치체제 하에서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두 당의 프레임은 근접한다. 그리고 대통령을 내기 위해서는 그 행태가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시기가 시기이기도 했지만) IMF 위기 극복을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미 FTA를 성사시키는 등 ‘보수당스러운’ 행보를 보였다. 한국 정치에서는 자연스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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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는 더불어민주당의 보수화에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 가운데 여전히 운동권 정신이 살아 있는 몇 안 되는 이들 가운데 하나다. 특히 그는 미국과의 관계가 문제다. 80년대에 반미시위운동 경험이 있는 그는 2013년 10월에 미국 국무부로부터 비자를 받지 못해 ‘미주국감’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지난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에서는 최고위원 선거에 나서면서 ‘야성회복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정권교체’는 문재인과 김종인은 물론이고 더불어민주당 모두가 간절히 원하는 바일 테지만 ‘야성회복’은 아닐 수 있다. 지금 문재인과 김종인이 원하는 건 ‘여성(與性)’이다.

손혜원 전략공천, ‘알파고’급 묘수

손혜원과 정청래는 매우 가까웠다. 그들의 인연이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근 더불어콘서트를 함께 다니고 사석에서 자주 어울리며 급격히 가까워진 듯하다. 나중에는 정청래가 총선 관련 홍보물들(현수막 등)의 컨셉과 디자인을 손혜원 손을 거치게 할 정도로 둘은 가까웠다. 그런 손혜원을 정청래를 떠나보낸 마포구(을) 지역구에 전략공천으로 보냈다. 손혜원의 마포(을) 출마 기사를 보고 난 또 다시 김종인(또는 문재인)이 천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손혜원 전략공천이 묘수인가? 손혜원의 마포 전략공천은 네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다.

1) 정청래 팬님들, 워워~

손혜원 전략공천은 우선 분노한 정청래 팬들을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다. 정청래 컷오프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인터넷에서는 정청래 지지자들의 반발로 난리가 났고,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청사 앞에 매일 저녁 사람들이 모여 ‘국민 필리버스터’를 열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정청래 살리기’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 철회 여론으로까지 이어졌다. 김종인 입장에서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는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되도록 빨리 잠재워야 했다. 그리고 손혜원 전략공천은 그 역할을 꽤 할 수 있었다. 특히 정청래가 손혜원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선언을 하면서 ‘손혜원=정청래’라는 말도 안 되는 공식까지도 어느 정도 관철시켰다.

2) 마포을을 사수하라

마포구을은 정청래의 밭이지 더불어민주당의 밭은 아니다. 정청래는 17대와 19대 두 번 국회의원을 했고, 두 번 모두 마포구을이었다. 그러면 가운데 18대 총선에서는 누가 이겼나? 그 유명한 강용석 변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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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바로 1대 전에 새누리당 후보에게 내준 적이 있는 지역구인 거다. 정청래 컷오프 소식이 전해지자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정청래가 아니면 마포을은 진다’라는 소리까지 했다. 정청래 컷오프로 인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돌아선 세력까지 고려하면 그 누구를 이 지역구에 내보내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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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친구 피카피카

하지만 손혜원이면 가능하다. ‘손혜원이 정청래다’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프레임이 실제로 먹힐 수도 있다. 일반인들의 인식에는 손혜인이 정말 정청래 편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포을 지역구의 정청래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정치인 정청래를 살리려면 손혜원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정치인에게 4년 공백은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 지금이야 지지자들이 이리 난리를 치지만 4년 지나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청래를 잊을지 알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정청래 편’인 손혜원을 당선시키지 않으면 정청래는 4년 뒤 정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가질 거다.

3) 아직 남은 단물

백의종군

정청래의 백의종군

정청래는 2선 의원 치고 영향력이 크다. 게다가 이번 컷오프 사태로 오히려 일시적으로나마 더 큰 인물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아직 정청래로부터 빨아먹을 단물이 남아 있는 거다. 컷오프 당했지만 당을 위해 뛰겠다는 정청래는 결국 부산 중도・영도의 김비오 후보 선대위원장을 맡게 됐다. 버려진 당대포를 험지인 부산으로 보내 마지막 포격을 해보게 한 거다. 정청래 스스로 당을 위해 일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손혜원을 마포에 내보냄으로써 ‘삐진’ 그를 더 달래준 거다. 물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어차피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밑져야 본전이다. 게다가 정청래가 부산에 내려가는 건 중도・영도뿐 아니라 부산과 경상 지역 전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만약 영남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한 석이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이 수는 성공인 거다.

4) 1석 추가

물론 손혜원이 정말 마포구을 지역구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는 지나봐야 안다. 하지만 어쨌든 가장 가능성 있는 인물을 보냈다. 게다가 손혜원 홍보위원장은 원래 비례대표 1번으로 내정돼 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손혜원이 지역으로 출마하면서 비례대표 안정권 내 1석을 다른 이에게 줄 수 있게 된 거다. 손혜원이 마포에서 당선되면 1석이 추가되는 셈이고,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전체 의석수에는 변화가 없게 되는 셈이다.

정청래는 컴백할 수 있을까

이 시점에서 가장 궁금해지는 건 이거다. (만약 ‘썰’이 참이라면) 문재인과 김종인은 정청래를 ‘잠시’ 버린 걸까 ‘아주’ 버린 걸까? 4년 뒤 2020년 선거에서 정청래는 다시 국회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이전 4년 동안 국회의원 배지 없이도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며 활동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문재인이나 김종인조차도 아직 모를 수도 있다. 그래도 대충 비슷한 예상이라도 해보자.

결국 정청래의 컴백 여부는 정청래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적 지지가 얼마나 유지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거 같다. 너무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달리 말하면 지금은 문-김이 정청래를 다시 쓸 생각도, 다시 안 쓸 생각도 없을 거다. 우선 대선 근처에 갈 때까지는 정청래를 다시 불러들이지는 않을 거 같다. 만약 다시 부른다면 대선이 가까워졌을 때 막판 지지율 상승을 노리기 위해 그를 호출할 수도 있을 거라 본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문재인 입장에서도 정청래가 편한 존재는 아니다.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입지가 확실해지지 않는 이상 정청래를 불러들이긴 쉽지 않을 거다.

만약 정말 문재인이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정청래 복귀는 더더욱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든 대통령이 되면 이념 스펙트럼의 정 가운데 서거나 좌우를 왔다 갔다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문재인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된다면 ‘우클릭’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청래가 국회의원으로든 다른 직으로든 정치권에 복귀한다면 그런 행보에 제지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괜히 스스로 ‘김무성’이나 ‘유승민’을 키울 이유가 없다. 결국 정청래의 정치 복귀는 장차 문재인의 입지가 불안정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편집 및 교정/ 이점

글/ 개똥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