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은 어떻게 유희가 되는가.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멍청함 덕분이다. 바둑을 시작할 때, 가능한 착점의 수는 361이다. 그 다음 가능한 수는 361*360이다.이렇게 계속해서 차근차근 따져본다면, 비록 이 우주에 있는 원자의 수보다도 많다고 하는 그 수가 인간이 느끼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겠지만, 바둑을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방식의 가짓수는 어디까지나 무한이 아닌 유한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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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승리의 확률이 가장 큰 수들은 점차 윤곽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때 바둑의 유희성을 망치는 요소는 상대방도 승리를 위해 가장 합리적인 수를 두게 될 것이라는 점으로부터 기인한다. 두 대국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승리의 확률이 가장 큰 수들을 반복하며 움직인다는 가정 하에서,나는 가능한 상대방의 다음 수들을, 상대방은 그의 착점으로부터 파생되는 가능한 나의 다음 수들을, 또 나는 상대방의 가능한 그 다음 수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가장 합리적인 착점들의 경로가 한 가지밖에 없는 지점까지밖에 계속되지 않을 것이고, 인간에게든 컴퓨터에게든 그 순간부터 바둑은 종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미한 지능의 우리를 위하여 문제를 단순화하자면, 결국 바둑 또한 4n+2의 수를 외치면 승리할 수밖에 없는 베스킨라빈스게임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릴 수밖에 없다.1)베스킨라빈스게임을 1:1로 할 때, 자신의 순서를 2, 6, 10… 등으로 끝마치면 무조건 31을 피할 수 있다. 나는 22를 외쳤다. 나는 결코 술을 마실 일이 없다. 그것이 얼마나 장구한 시간일지 상상조차 어렵지만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이론적으로 인간도 얼마든지 모든 가능한 경우들을 계산할 수 있으며, 필승의 전략 혹은 필패의 행보를 미리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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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파고의 한계는 그저 바둑에서 가능한 모든 상황의 수를 계산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린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인간 대국자가 겪는 한계와도 유사하지만, 결국에는 기술의 진전에 따라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바둑은 유희일 수 없다. 정해진 경로가 빤히 보이고 승패도 정해져 있는데, 계속해서 돌을 두어나가는 일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너무나 멍청한 덕분에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계산이 너무나 부족한 덕분에 바둑을 유희로서 둘 수 있다. 이세돌이 우리보다 티끌만큼 똑똑하긴 하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편으로, 결코 바둑의 재미를 느낄 수 없을 미래의 발전된 인공지능을 미리 위로해줘도 좋겠다.

<좋을 대로 하세요>에서 셰익스피어는 썼다. “나는 차라리 나를 즐겁게 해줄 바보를 데리고 다니겠다.” 비록 그 바보가 우리 자신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멍청함은 바둑 이외에도 얼마나 숱한 영역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가 인간으로서 필연적으로 겪는 바보스러움이 즐겁기 그지 없다.

편집 및 교정/요정

글/안똔

   [ + ]

1. 베스킨라빈스게임을 1:1로 할 때, 자신의 순서를 2, 6, 10… 등으로 끝마치면 무조건 31을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