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어느 날, 가장 화제가 되었던 영화 한 편을 보러 홀로 영화관을 찾았던 적이 있다. 대대적인 홍보로 한껏 기대감을 안고 갔던 당시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게 당혹스러움을 안겨 주었다. 영화가 끝나고 얼떨떨해 있던 나를 더욱 더 당혹스럽게 하는 일이 벌어졌으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익숙한 음악이 흘러 나오자 객석에서 하나둘씩 박수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인터넷 여론도 다를 것이 없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장르적 불모지에서 이루어낸 이 영화의 성취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린 나는 이 관중들 속에서 내 의견만 왕따라는 자괴감에 휩싸였고, 생각 끝에 결국 나도 ‘그래, 스토리는 조금 아쉽지만 볼거리가 풍부한 한여름 블록버스터로서는 좋았어.’ 하고 정신승리를 하였던 기억이 난다.

영구 없~다

영구 없~다

이쯤 되면 다들 알다시피, 엔딩 크레딧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왔던 심 감독의 바로 그 영화 이야기다. 당시 이 영화는 단지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할리우드에 도전하는 한국의 자존심’ 그 자체가 되어 있었고, 비판자들은 ‘오락 영화에 유독 높은 기준을 들이대는 속 좁은 사람’ 내지는 한 술 더 떠 ‘사대주의자’나 ‘매국노’로 몰려 심판당했다.

으악 애국자들이다 도망가자!!!!!

으악 애국자들이다 도망가자

디워 사태는 일회성 현상에 불과했을까

그 대상이나 정도가 조금씩 다를 뿐, 이런 사례는 <디워>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다. 한국 영화가 흥행하는 가장 성공적인 전략이 있으니 바로 애국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런 면에서 한국 사람들은 영화의 주제와 영화 그 자체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순신 영화가 곧 이순신이 되고, 독립군 영화가 곧 독립군 그 자체가 된다. 애국심을 자극하는 영화가 나오고 애국심 마케팅을 하면,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애국자라면 이 영화는 꼭 봐야 하는’ 것이 되어 버리고, 이 영화에 혹평하는 사람은 매국노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의 자존심으로 동치되었던 <디워>가 그랬고, 대책없이 일본에게 정신승리하던 <한반도>가 그랬고, 쿨 러닝의 열화카피였던 <국가대표>가 그랬고, <신기전>이 그랬고 <명량>이 그랬고  <연평해전>이 그랬고 <암살>이 그랬고 지금은 <귀향>이 그렇다1)혹시나 오해하실 독자분들을 위해, 이상의 영화들이 다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아니다. 마케팅과 여론 동향에 관한 이야기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도 그 흐름의 일부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귀향>도 그 흐름의 일부이다.

몇몇 사람들은 완성도를 떠나, 애국심을 갖게 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지 않은가 하고 말한다. 일리는 있는 말이지만, ‘애국심을 갖게 하고 관심을 환기할 수 있는 영화’가 왜 안타깝게도 이런 완성도로 나왔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 또한 할 수 있다. 영화가 더 널리 퍼지고, 나아가 우리와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 세계인의 관심을 끌려면 애국심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러한 풍토가 계속되면, 수준 이하의 작품을 애국심으로 치장하여 반짝 흥행을 노리려는 가벼운 전략이 판칠 것을 우려한다.

결코, 모든 사람들이 영화를 볼 때 애국심을 배제하고 영화의 작품성, 완성도만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슬픈 영화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애국 영화가 애국심이란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에 만족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연출력이, 작품성이, 연기력이, 또는 오락성이 더 중요한 관객들도 많다. 이 사람들은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이순신을 하찮게 여기는 게 아니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영화가 재미가 없었을 뿐이고, 이 소재를 가지고 고작 이 정도의 영화밖에 못 만들었음이 아쉬울 뿐이다. 나와 다른 관점으로 영화를 본다고 공격하고 매도한다…? 파시즘이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그 맹목성이 무섭다.

편집 및 교정 / 아날로그

글 /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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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혹시나 오해하실 독자분들을 위해, 이상의 영화들이 다 같은 수준이라는 말이 아니다. 마케팅과 여론 동향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