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개의 자소서를 쓴 남자, 14년 하반기
5편: Dress Code / 日本も大丈夫。/ 미필적 겐세이

 

Dress Code

어느덧 HMAT 날짜가 다가왔다. 생애 처음으로 보는 기업 인적성 시험이었다. 기아자동차와 현대건설은 서류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현대카드는 붙어서 HMAT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때는 현대자동차는 발표가 나기 전이었다. 현대자동차는 상시 채용이라는 제도를 도입해서 이공계 직군은 정기 채용으로, 문과 직군은 상시 채용으로 지원하게 했다. (말이 상시지 실제로는 정기 공채랑 비슷하게 진행되긴 했다.) 정기 채용은 서류 발표가 진작 나서 같은 날 HMAT을 보게 돼 있었지만, 상시 채용 서류 발표는 아직 나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에 HMAT을 보고 난 뒤 상시 채용 서류에 합격하게 되면, 이미 본 HMAT 점수를 현대자동차에서 가져가 돌려서 합격자를 선발하는 걸로 돼 있었다. 만약 다른 계열사 서류에 합격한 게 없어 HMAT을 못 본 상태에서 상시 서류에 합격한다면 별도로 정해지는 날짜에 시험을 따로 보게 하고 말이다.

어쨌든 난 첫 인적성 시험을 앞두고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난 최대한 편안한 옷차림을 갖췄다. 위아래 모두 츄리닝을 집어 입고 위에는 얇은 점퍼 하나를 걸쳤다. 그리고 신발은 누가 뭐래도 슬리퍼였다. 괜히 운동화니 뭐니 신었다가 시험 도중에 발에 땀이라도 차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복장이 가장 좋을지 머리로 깊이 생각하고 입은 것도 아니다. 행정고시와 입법고시 1차(PSAT) 시험을 수도 없이 봤기 때문에 그 때 입었던 고시생 패션을 그대로 재현했다. 나도 사람이라 예쁘고 멋있게 입고 싶은 욕망이야 당연히 있지만, 이걸 누르고 오로지 최고의 시험 결과를 위해 옷을 입었다는 데 스스로 대견해하며 야심차게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때 주말이라 출근하지 않으신 아버지가 나오시더니 겐세이1)견제의 일본말를 거셨다.

“야, 옷이 그게 뭐냐?”

난 구질구질하게 내 옷차림에 대한 정당화를 시작했다. 시험이란 게 옷을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최대한 편하게 입어야 하는 거다, 예전에 고시할 적에도 항상 이렇게 입고 갔다, 인터넷 다 찾아봤는데 시험장 옷차림은 아무 상관이 없다더라…….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시험이라도 그렇게 입고 가면 회사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냐?”

“나 같아도 안 좋게 보겠다.”

아버지는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가 20대 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해 그때부터 줄곧 ‘사장님’ 내지는 ‘대표님’이셨다. 아버지 사업 수완은 주변 모든 사람들이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난 항상 아버지의 뛰어난 현실 감각이 담긴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기업 경험도 없으셨고, 작은 회사라도 이전 세대 ‘사장님’이었기 때문에 이 일에 관해서는 아버지가 분명히 틀리셨다고 생각했다. 잠깐 동안의 실랑이 끝에 난 시간이 촉박하다는 핑계를 대며 원래 옷차림 그대로 집에서 뛰쳐나왔다.

시험 시간도 일렀고 대중교통 동선도 애매했기 때문에 그날은 어머니가 차로 데려다주기로 하셨다. 난 부리나케 아파트 주차장으로 나와 어머니가 미리 빼놓으신 차로 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시험장으로 출발하면서 아버지가 말도 안 되는 걸로 태클을 거셨다고 푸념을 한참 늘어놓았다. 그런데 조용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놓으셨다.

“틀린 말씀이 아니네.”

아, 생각지도 못한 2차 훈계가 시작됐다. 시험 보러 갈 때 옷차림은 전혀 없다는 걸 이미 다 확인했다고 반론을 제기했지만 역시나 소용없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살짝 다른 이유로 옷차림의 중요성을 주장하셨다.

“옷 입는 건 네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거야. 설사 편하게 입고 가도 된다고 하더라도 네가 그 회사에 대한 간절함이 있으면 옷 입는 것부터 겸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입어야 되는 거야. 아주 차려입을 필요는 없지만 츄리닝에 슬리퍼는 심했지.”

부질없다...두 번째부터는 의미가 없어...

어머니 마저…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히려 어찌 보면 츄리닝과 슬리퍼가 내 겸허한 마음가짐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다른 건 다 제쳐놓고 오로지 시험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데만 집중한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태도가 안 됐다는 소리를 듣고 앉아 있자니 답답하고 열불 터져 미칠 노릇이었다. 기업 인적성 시험 보러가는 복장에 관해서까지 간섭을 받는 게 너무 짜증이 나서 결국 난 시험장 가는 내내 어머니와 대판 싸웠다. 진짜 샤우팅까지 하며 싸웠던 거 같다. 잠을 제대로 못 잤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차에서 자면서 가려고 했던 내 꿈은 완전히 날아갔다. 심지어 이제 잠 좀 자야겠으니 나중에 얘기하자는 내 말에 ‘할 말은 해야겠다’라며 계속 싸움을 이어나간 모친이셨다. 진짜……아무리 부모라도 속에서 쌍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날 아침 난 차에서 잠시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내 생애 첫 인적성 시험은 그렇게 망했다.

복장은 다들 편하게 입고 왔더라.

日本も大丈夫。

우리 학교 근처 동네에는 내 아지트나 다름없는 카페가 있다. 지금이야 학교를 안 다니니 거의 갈 일이 없지만, 아직 학교를 다니고 있던 2014년 하반기까지만 해도 강의가 없을 때면 항상 이곳에 있었다. 이곳 사장님과는 내가 ‘형님’이라고 부를 만큼 친하다. 워낙 오래 다닌 것도 있지만, 이분은 나와 집이 비슷해서 학교를 통학할 때는 시간이 맞으면 출퇴근도 형님 차로 함께 하곤 했다. 아무리 친한 단골손님이라도 카페 바 안쪽 주방에 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난 뭐, 카페에 들어갔다 하면 애초에 안쪽에 들어가서 인사를 나눴다. (가끔 설거지도 하고) 어쨌든, 이런 곳이 있다. 편의상 ‘콩밭’이라 부르겠다.

사장님이랑도 워낙 친하고 내 아지트다 보니까 콩밭에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들은 거의 다 알았다. 특히 이곳은 학교 주변 동네에 위치한지라 우리 학교 후배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친해졌던 친구가 하나 있다. 우리 학교 니뽄어학과 출신으로, 니뽄에 니뽄인 남자친구가 있었고, 가끔 남친과 니뽄말로 통화를 할 때면 농담도 주고받으며 깔깔대며 웃을 정도로 니뽄말이 유창했고, 니뽄에서 지내다 온 적도 있고, 니뽄 회사에 취업이 돼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니뽄으로 넘어가 직장생활을 하기로 계획된 매우 니뽄니뽄한 한국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낮에는 학교 수업을 듣고 저녁에 알바를 했는데, 수업이 없을 때면 나처럼 콩밭에 와서 앉아 있었고, 사는 곳도 나랑 형님과 비슷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둘 다 시간이 비어서 콩밭 흡연석이 함께 앉아 있었다.그래, 그땐 흡연석이 있었지……

개똥: 씨발, 요새 취업이 이렇게 힘들지 몰랐다.

니뽄: 그지? 나도 다 해봐서 알아요.

이 말이 도무지 와 닿질 않았다. 이 친구도 일본 회사에 취직하기 전에 여느 한국 취준생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대기업에 지원을 해봤단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받아준 곳은 바다 건너에 있는 딴나라 회사였단다. 하지만 어쨌든 취업을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한국사람이면서 일본어를 너무 잘해서 일본계 회사도 아니고 아예 일본에 있는 일본 회사에 가게 됐다니 그리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내가 일본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던 건 전혀 아니지만 그냥 나보다 잘 된 거 같은 사람을 보면 어느 케이스든 우러러보게 됐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지만 취준생이 되니 샘이 많아졌다.

개똥: 야, 근데 일본 회사에 가게 된 거에 대해서 마음 불편하고 그런 건 없냐?

니뽄: 불편? 어떤 면에서요?

개똥: 그냥 ‘일본’이니까 말이야. 요새는 막 유니클로 불매운동도 하고 그러잖아.

니뽄: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떻게든 먹고 살고 봐야죠.

정답이었다. 아, 아니, 정답은 아니었다. 아니, 정답이었다. 아, 모르겠다. 하도 취업이 어려워진 시기에 취준에 뛰어들다보니 그동안 살며 가졌던 기준이라는 게 다 모호해졌다. 앞가림이 먼저일까, 아니면 신념이 먼저일까? 애초에 내게 신념이란 게 제대로 서 있긴 했나? 일본이 밉기는 하다. ‘위안부’ 문제 같은 것만 떠올리면 말 그대로 치가 떨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살면서 쓰는 물건 중에 일본 게 하나도 없을까? 메이드 인 차이나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내 주변에 일본 상품이 널려 있을 거다. 그러면 일본 회사 취업은? 만약 어떤 일본 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날 데려가겠다고 했을 때 난 그걸 단칼에 거절하게 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일본’에 대한 고민이 아니었다. 생각은 ‘신념’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 있었다. 만약 현실과 내 신념이 충돌할 때, 취준생에 불과한 난 현실을 냉정히 쳐내고 신념을 지킬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내 뜻과는 전혀 맞지 않는 급진적(또는 사이비) 종교 집단을 지원하는 회사에서 내게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 난 과연 뿌리칠까? 아니면 애초에 내게 그런 기준이 될 만한 신념이란 게 제대로 서 있기는 한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바가 그렇게 뚜렷했다면 애초에 수십 개의 자소서를 쓸 일도 없지 않았을까? 아니면 지원한 모든 회사들이 과연 내 ‘신념’이란 거에 부합하는 곳들이었을까?

日本も大丈夫。 일본도 괜찮다. 일본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괜찮다. (사실 ‘일본’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큰 건 아니었다.) 결국 내 머릿속엔 이런 결론이 섰다. 내가 그렇게 신념이란 게 강한 사람도 아닐 뿐더러 설사 신념이 있다 해도 일단 내 앞가림이 우선이었다. 내가 앞가림을 못하면 신념 따윈 사치였다. 일단 부모님 용돈부터 끊고 뭔가를 추구하든 해야지, 취준생 주제에 무슨 기준이고 무슨 신념인가? 우선 혼자 설 수 있는 힘을 가진 뒤에 내 삶이 있는 걸 테다. 그래, 뭐든 괜찮았다. 취준생 신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스스로 이런 결론을 내려놓고 난 새삼 한없이 나약해져 있는 내 자신을 확인했다.

미필적 겐세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시험은 누가 뭐래도 수능이다. 2013년 11월에 열린 수능에도 606,813명이 응시했고, 그 이후에도 60만에 가까운 학생들이 응시하고 있다. 다들 알겠지만 수능 날이면 전국이 난리가 난다. 학교 근처 공항에서는 항공기 이착륙이 안 되고, 아침이면 수험장으로 향하는 학생들로 교통이 마비된다. 늦잠을 잤는지 준비가 길어졌는지 늦은 학생들은 경찰 오토바이 뒤에 올라앉아 ‘배달’되는 풍경도 우리에겐 익숙하다. 어쨌든 수능 날이면 그날 아침 공기가 달라진다. 내가 수험생일 때는 물론이고 당사자가 아닐 때도 그 긴장감이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행정고시 1차 시험 날 시험장에 향할 때도 여러 해 전 수능을 보러 갈 때와 비슷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물론 행정고시 응시자 수는 평균 1-2만 명 정도로 그 규모가 수능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고시생, 특히 고시촌에서 지내는 고시생에게는 그 무게감이 오히려 수능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정해진 시험장으로 향하는 내내 같은 시험을 보러 가는 수많은 고시생들과 마주치게 된다. 출근하는 사람 거의 없는 주말 아침 지하철 안에서 고시생들은 서로 곁눈질하며 동질감과 경계심을 동시에 나눈다. 게다가 시험 장소도 수능처럼 일반 학교들에서 보니 다들 머릿속에 수능 날 느낌이 오버랩된다.

슬슬 가을이 깊어지기 시작할 무렵 본 삼성그룹 시험은 내 생에 세 번째 ‘대형’ 시험이었다. 대중매체에서는 SSAT를 ‘제 2의 수능’이라고 부르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응시자 수가 10만 명이 넘는다. 수능은 거의 모든 고3들이의무적으로 보는 시험인데 반해 삼성 지원은 선택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삼성 적성시험 응시생이 다른 기업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은 삼성이 서류 전형에서 지원자를 따로 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결국 SSAT는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취준생들이 보는 시험이라고 할 수 있고, 국내 최고 대기업이라는 요소까지 더해져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SSAT가 이른바 ‘본게임’으로 불렸다.

난 참 재수 없게도 수험장이 집에서 자가용으로 1시간이 넘는 거리에 잡혔다. 교통량 없는 일요일 아침임을 감안하면 참 먼 거리였다. SSAT 전날에는 HMAT 전날과 마찬가지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시험 전날에는 일찍 푹 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고, 그 압박감 때문에 도리어 잠에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차에 올라타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시험장 근처에 차를 댔다. 잠이 오지 않아 일부러 일찍 간 탓에 입실 시간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난 그 적막한 주차장 차 안에서 시트를 뒤로 젖히고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한층 밝아져 있었고, 주변에는 엄청난 인원의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부랴부랴 차에서 내려 따뜻한 편의점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많은 흡연자들이 그러겠지만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에 피우는 담배는 온 힘을 다해 깊게 빨아야 한다. 시험 중간에는 담배를 피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긴 공백을 최대한 메우기 위해서는 온몸 깊숙이 니코틴을 축적 해놓아야 한다. 거의 필터까지 태우다시피 담배를 다 태우고 난 뒤 난 슬슬 학교 안으로 들어가 확인한 교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창가 자리였지만 다행히 춥지는 않았다. 냉기만 없다면 난 항상 창가 자리를 선호한다. 교실 한가운데보다는 사이드 자리가 집중하는 데 유리하기도 한 데다가 창가 자리는 바로 옆에 창틀이 있어 물건을 올려놓기 편했다. 그리고 다행히 앞뒤로 또라이도 없는 듯했다. (다리를 심하게 떤다든가 하는 부류)

항상 지루한 꽤 긴 대기시간, 응답지 작성 요령 안내 시간 등이 지나고 마침내 시험이 시작됐다. 그리고 난 또 오랜 징크스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수능이든 행정고시 1차든 기업 인적성 시험이든 항상 ‘언어 영역’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런데 슬프게도 내겐 ‘언어 징크스’가 있다. 글쓰기와 영어를 좋아하는 내겐 참 불편한 역설이다. 언어 관련 능력은 다 평균보다 높다고 자부하지만 유독 속독하고만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언어 시험에서는 속도가 생명이다. 그래서 난 내 언어에 대한 애착 정도에 비하면 항상 언어 점수가 안 나오는 편이었고, 항상 1교시인 언어를 만족스럽지 못하고 보고 나면 뒤의 과목들까지 말려버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설상가상으로 밤새 편히 자지 못한 피로가 갑자기 몰려오기 시작했다.

2교시였나, 3교시였나? 갑자기 내 앞에 앉아 있던 여자가 펜을 놓고 책상에 엎어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주어진 시간을 다 써도 다 풀까말까 한 시험인데 시간이 남았던 걸까? 아니면 자기는 더 이상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충 찍어서 마킹한 뒤에 일찌감치 다음 교시를 위해 휴식을 취하기로 했던 걸까? 아, 말렸다. 이런 고민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한 걸로 20초 정도는 소모한 거 같다. 이런 ‘타임어택’성 시험은 절대로 문제를 푸는 도중에 잡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앞 여자 때문에 난 한 번 겐세이를 당했다. 물론 앞사람이 나를 비롯한 다른 수험생들을 방해하기 위해 일부러 엎어져 자기 시작한 건 아닐 거다. 하지만 그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부도덕한(!) 행동이었다. 엎어지는 장면에 눈길을 한 번 뺏기고, 그 뒤로도 20초라는 시간을 뺏겨버렸다. 그런데 몇 분 뒤 갑자기……

“뿌-웅!”

?!

?!

아… 이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가 전생에 얼마나 큰 업을 쌓았기에 신이 날 이리 매몰차게 내던져버리는가? 어떻게 한 여인네가 의도한 것도 없이 내게 두 번이나 장난질을 한단 말인가? 왜?! 왜?! 난 1초나 되려나 싶은 그 짧은 소리에 정신을 잃어버렸다. 그러게 왜 시험 도중에 엎어지니? 왜 엎어져서 복부 하단을 스스로 압박했니? 혹시 오늘 과식했니? 아니면 아침부터 짜장면이라도 먹고 온 거니? 아니면 설마 보리밥? 그러면 냄새까지 나는 거니? 이제 몇 초 있으면 네가 내 눈과 귀뿐만 아니라 코까지 건드는 거니? 아, 괴로웠다. 내가 그 짧은 작고도 큰 굉음에 몇 초의 시간이나 뺏겼던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했을까? 어차피 어느 정도 정신을 수습해 다시 뒤의 문제들을 푸는 동안에도 중간 중간에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으니……

그렇게 난 취준 최대 시험인 SSAT를 망쳤다. 내 앞의 여자는 더 망쳤다. 다음 교시에 그 자리는 비어 있었으니……

 

편집 및 교정/ 이점

글/ 개똥그릇

<이전화, 99개의 자소서를 쓴 남자, 14년 하반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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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제의 일본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