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탈조선’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등록금이 비싸다 보니 학기 중에도 알바는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학업에 지장이 생겨서 장학금은 둘째 치고 추가학기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학자금은 추가학기만큼 또 쌓여가고 상환을 하려면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제 좀 학자금을 갚아가나 싶을 때쯤 여기저기서 결혼하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또 한 번 통장잔고는 마이너스로 돌아설 테다. 정부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라면서 무상보육, 누리과정 등의 공약을 남발하는데 정작 이뤄진 건 없다. 내 아이를 나처럼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 스스로도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어서 우리는 어느 순간 탈조선을 꿈꾸게 된다.

아시발쿰

아X발꿈

누구도 장래희망을 묻지 않는 사회

어렸을 때는 ‘넌 꿈이 뭐니?’,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이런 질문들에 곧잘 대답했던 것 같다. 매번 그 답이 바뀌었을지언정 이 질문이 어렵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 어렸을 적 꿈꿨던 미래에는 훨씬 가까워졌는데 정작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다. 졸업을 하면 뭘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이런 고민 이전에 언제 졸업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들에게 ‘꿈’이라는 단어는 너무 낭만적인 말이 돼버렸다. 한가롭게 꿈이나 꾸면서, 계획이나 세우면서 살 수가 없다. ‘너 졸업하면 뭐하고 살 거야?’ 라는 질문에 ‘취업’이라는 선택지 외의 것은 떠올리기가 힘들다.

취업이 낳냐? 탈조선이 낳냐? 

취업이 낫냐 탈조선이 낫냐

나 역시 대학교 4학년, 취업이라는 선택지를 뒤로 하고 교환학생 1년을 택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인생 편하게 산다며 꾸중 아닌 꾸중을 하기도 했고, 질투 섞인 부러움을 털어 놓는 친구들도 있었다. 여하간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모든 ‘순서’를 집어 던지고 떠나온 유럽은 생각보다 훨씬 근사했다. 아무도 나에게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여기에 있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말하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의 삶을 살면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한국의 취업시장, 또 여성구직자로서 내가 겪게 될 유리천장에 대해 얘기하면 다들 ‘너만큼 유능한 애가 왜 그런 선택지를 생각해야 해? 그냥 유럽에 와서 취업해’라는 말을 해주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근로자가 된다는 것

굳이 통계 자료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이미 유럽의 노동환경에 대해서는 다들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적어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게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흔히 언급되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임에도 불구하고 수백 개의 자기소개서를 써야만 겨우 취업할 자리가 생기는 지금의 한국사회를 떠올려보면 유럽에서의 취업은 매력적인 선택지임에 틀림없다. 물론 언어 장벽이 존재하고, 타지 생활이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지만 지금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그 많은 ‘퀘스트’들을 떠올려 보면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예전의 취업시장은 어땠을지 잘 모르지만, 지금의 한국 청년들처럼 ‘좋은’ 직장에 욕심이 없는 세대가 어딨나 싶다. 고임금을 바라는 것도, 좋은 복지를 기대하지도, 막연히 대기업만을 바라지도 않는다. 정규직에 4대 보험을 적용해주는 직장만 찾으려고 해도 토익은 950점, 4점대의 학점, 교환학생, 인턴, 대외활동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입사를 하면 한동안은 복사나 커피 타기 같은 잔심부름을 도맡게 되고 도대체 이 일자리에 왜 ‘대학 졸업장’이 필요할까 의심이 든다. 그런 점에서 유럽의 직장은 다르다. 아니,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럽의 직장은 야근 없는 주 5일 근무에, 여름휴가를 길게 보장해주고, 임금 수준도 높은 편이며, 출산 휴가 등을 비롯한 유급 휴가에 관대하고 제도적으로 복지 및 편리를 많이 봐주는, 이른바 ‘꿈의 직장’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에 와버렸다

처음 스페인에 왔을 때는 매일매일 너무나도 좋은 날씨에 눈이 멀었는지 딱히 이렇다 할 불만이 없었다. 경제위기 이후에는 그 누구도 스페인을 비롯한 남부 유럽 국가를 선진국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한 때 스페인의 GDP가 우리나라보다 높았던 시절도 있다.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스페인 생활이었지만 막상 와보니 현실은 처참했다. 계약서를 쓰지 않아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허다하고, 대개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시급 3유로, 4천 원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 노동시간 역시 유럽에서 가장 길어, 심하면 12시간을 넘겨 일하기도 한다.

내가 생활하고 있는 곳은 스페인에서도 남부지방, 스페인 여행의 꽃으로 꼽히는 ‘안달루시아’ 지역에 속하는 곳이다. 1년 내내 날씨가 좋고 지중해를 끼고 있어 우리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럽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광업에 의존하다 보니 경제 위기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 결과 현재 이 지역의 청년실업률(만 25세 이하)은 60%에 달한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우리나라 청년실업률(만 15세-만 29세)이 지난 1월 기준 역대 최고치인 9.5%를 경신했지만 체감하는 실업률이 훨씬 높다는 걸 감안하면 60%라는 통계는 일자리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있는 일자리 역시 근무환경이 열악하니 그 누가 이곳에서 일하고 싶겠는가.

살아있어

살고싶어요 하고싶은 일 하면서

결국 스페인 출신의 고학력 소지자들은 독일이나 북유럽 등 유럽에서도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들로 빠져나갔다. 결과는 상상하는 그대로다.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인재들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보니, 이 지역은, 스페인은 발전이 없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와 더불어 유럽 연합의 무능한 국가 ‘PIGS’로 꼽히며 막대한 국채를 지고 있다. 스페인 친구들은 다들 하나 같이 졸업을 하면 이 곳, 스페인을 떠날 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스페인에서 소위 명문대를 졸업해 취업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친구들조차도 어느 누구 하나 이곳에 남고 싶어 하지 않는다. 미래가 없어 보이는 이곳에 자신의 젊음을 허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자신의 고향에, 조국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직장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탈조선이라는 가장 ‘한국적인’ 선택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사회의 많은 청년들은 ‘나라탓’에 능하다. 우리나라 청년들이 취업에 좌절하며 본인의 능력을 탓하고, 스펙을 하나 더 쌓아 올릴 동안 이들은, 특히 스페인 청년들은 정말로, 정말 많이, 시위를 한다. 지난 10월 학제 개편에 반대하기 위해 열렸던 시위 이후 정부의 변화가 없자 3월에 또 한번 시위를 열기로 했다.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몇 번 알려졌지만 주거 문제를 해결하라며 빈 집에 들어가 무작정 점거하며 시위를 한 적도 있고, 노숙이나 천막 농성 같은 방법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촛불 시위나 거리 행진을 떠올려 보면 훨씬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그 분에게는 공격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방법들이다. 1)이번 광화문에서 열린 유령 시위가 세계 두 번째였는데, 첫 번째는 스페인으로 그만큼 시위 문화가 발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정부에 대한 강한 항의와 요구 대신 ‘탈조선’을 택했다.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불신, 지금의 사회 시스템이 결코 한 순간에 바뀌지 않을 거라는 무력감, 내가 발 벗고 나서 싸워도 결국 나는 사회에서 낙오자일 것이라는 불안. 이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든 사회를 바꿔야겠다는 적극적이고 피곤한 선택지 대신 도피라는 ‘이기적이고 수동적인’ 선택지를 택하게 한다.

비둘기

하…하고싶다…탈조선…!

언젠가 그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청년들 어디 갔냐, 그러면 다 중동에 가 있다”고. 과연 이게 마냥 좋은 창조경제의 사례일 뿐일까. 젊은 인재가, 청년이 두 발로 설 수 없는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우리는 스페인을 비롯한 남부 유럽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됐는지, 한 때는 관광 대국으로 경제 규모 역시 뒤지지 않았던 이 나라들이 왜 실패했는지 알아야 한다.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줄 젊은 인재가 더 이상 없는 사회에서 희망을 찾는 건 너무 낭만적인 일이다. 내 인생마저 함몰당하기 전에 빨리 벗어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선택지일 뿐. 빚더미에 앉게 될 국민들과, 그로 인해 파산한 은행, 다시 그 은행을 살리기 위해 긴축 재정을 강행하는 정부. 삶의 질은 점점 낮아지는데, 어떻게 해야 나아질지 그 방법을 찾는 시작점조차 너무 아득하게 먼 이 안타까운 스페인의 현실에서 우리는 분명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바뀌겠지, 이번 선거가 지나면, 이번 정권이 끝나면, 스스로에게 희망 고문을 해가며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건 이제와 너무 안일한 일이다. 언제까지 창조경제의 신화를 믿고 있을 텐가. 온 우주가 나서서 지금 당신에게, 우리에게 필요한 건 탈조선이라고 말하는데.

 

편집 및 교정/요정

글/한명

   [ + ]

1. 이번 광화문에서 열린 유령 시위가 세계 두 번째였는데, 첫 번째는 스페인으로 그만큼 시위 문화가 발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