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후보와 토론 후 두려움이 엄습했다

[참가기] 미스핏츠 청년포럼 ‘헬조선: 에이지 오브 좌파기득권’

 

2월 22일, 꽤나 따뜻한 저녁이었다. 한파가 지나가고 날씨가 풀렸지만 언제 다시 추워질지 모른다. 날씨가 풀렸다는 기상청의 예보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외침도, 도무지 마음 놓고 믿기 힘든 고단한 겨울이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청년 매체 <미스핏츠>에서 주관하는 토론회 ‘헬조선: 에이지 오브 좌파기득권’에 참석하기 위해 성수동의 한 카페로 향했다.

SNS에서나 간간이 보이는 소규모 언론이 여는 행사에 누가 오겠느냐는 나의 의구심이 무색하게 회의실 입구부터 북적거렸다. 책상도, 의자도 없는 회의실에는 많은 청년들이 자유롭게 앉아있었다. 스크린을 둥글게 둘러싼 층층의 스탠드와 청년들의 기대감이 곧 경기가 벌어질 콜로세움을 연상시켰다.

새누리당 후보의 발제, 딴짓 안 하는 청년들

적들로 가득찬 콜로세움에 앉은 김장수 박사

적들로 가득찬 콜로세움에 앉은 김장수 박사

스탠드의 맨 앞 줄, 청년들 사이에 이번 토론회의 발제자인 김장수 제3정치연구소 소장(49, 새누리당 남양주을 예비후보)있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위화감 없이 앉아있는 모습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새누리당 정치인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사실 이런 소규모 청년매체에서 진행하는 포럼에 경기도권의 정치인이, 이득도 없이 나온다는 것을 듣고 다른 모습을 예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가 강단 앞으로 나가자 토론회가 시작되었다.

장난기 넘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토론회의 주제는 ‘좌파기득권’이었다. 처음 듣는 생소한 말이지만 요상한 단어의 조합에서 위험한 냄새가 났다. 김장수 박사는 자신의 블로그와 저서에서 좌파기득권에 대한 이론을 소개했다고 한다. 자신의 책을 사면 사인을 해준다는 말에 참석자들이 웃었지만 이내 조용해진 것을 보니 실제로 받고 싶은 것 같지는 않았다.

발표에 전혀 어려운 내용은 없었다. 김장수 박사의 논지는 하위 90%를 위해 상위 10%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상위 10%는 공무원, 대기업 노조원들로, 그는 이들을 좌파기득권이라 칭했다.

그는 이익의 대부분을 좌파기득권들이 가져가며 대기업들이 힘이 세고 비싼 그들을 채용하는 대신 하청업체를 늘리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제구조에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고용유연성을 늘려 돈만 많이 받고 효율이 낮은 공무원, 정규직 노조원들을 해고할 수 있게 만들면 경제구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 연금 개혁, 고용유연화, 청년고용창출 등등.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토론회 시작 전에 주는 샌드위치를 먹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김장수 박사의 발표가 30분이나 이어졌지만 누구도 딴 짓을 하거나 잡담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청년들은 다음 발표가 더욱 기다려진다는 듯이 강단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곧바로 반대편 패널인 성균관대학교 노동문제연구회 회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정치인답게 유려한 김장수 박사의 발표에 비해 거친 느낌이었지만 그들의 말에는 강한 힘과 이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의 고민이 실려 있었다.

성균관대학교 노동연구회의 발표가 이어졌다.

성균관대학교 노동문제연구회의 발표가 이어졌다.

이들은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응하는 한국 정부의 방식은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해가되는 개악이라고 주장했다. 김장수 박사의 자료와 의견을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현재의 정책은 노조를 해체시킬 수 있으며 비정규직이나 88만원 세대에게는 노조가 더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김장수 박사의 주장은 기업의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며 현재 근시안적인 정부의 정책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쉽게도 김장수 박사의 말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울타리 없이 사바나에 버려진 어린 톰슨가젤의 마음을 우리 세대는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질의응답 시작되자 쏟아진 질문

면도칼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참가자

면도칼같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참가자

진행이 늦어져 시간이 부족했지만 청년들의 열정은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진행자가 참가자들의 질문을 받자 그 동안 근질거려서 어떻게 참았을까 싶을 만큼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평소에도 청년문제에 관심이 많았던지 질문자들은 명석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쏟아냈다.

대부분 정부의 노동유연화 정책에 대한 반감들이었다. 자신의 주장이 북유럽 복지선진국들의 경제위기 해결책이었다는 김장수 박사의 주장에 청중은 우리나라의 취약한 사회안전망과 고용문화 등의 문제점을 꼬집으며 반박했다.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여서인지 김장수 박사는 질문에 맞대응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했다.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제목을 패러디한 토론회인 만큼 정치인과 청년들이 피튀기는 설전을 기대했지만 아쉬운 모습이었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못했다. 질문 기회를 놓친 이들의 눈에는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항상 정치적, 경제적 약자로서 사회의 중심에서 떨어진 청년들은 이 기회를 굉장히 고대해왔을 것이다. <미스핏츠> 포럼은 2차 계획도 있다고 하지만 이 사회가 발전해 이렇게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모두들 회의실을 나왔다. 주최 측에서 마련한 뒤풀이가 준비되어있었다. 맥주잔을 받아들고 서로 소개를 하며 어색함을 뽐내던 것도 잠시 다들 자신이 다 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냈다.

오늘 토론회에 대한 내용부터 정부의 다른 정책들과 사회에 대한 고민까지 다양한 생각을 가진 그들의 관심과 열정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마치 정열적이던 80년대 대학가의 선술집에 찾아온 듯했다. 진짜 토론은 술집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정치인들은 절대 보지도 느끼지도 못할 달의 뒷면 같은 청년들의 모습이다.

친구와 잡담을 나누며 집에 가다 김장수 박사의 주장에서 느낀 위험한 냄새의 정체를 깨달았다. 김장수 박사의 주장은 통계를 바탕으로 한 튼튼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런 근거를 정치 세력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고쳐 사용한다면 위험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노조와 취약한 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커다란 위기와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마 이것이 막연한 두려움의 정체였으리라. 김장수 박사는 현재 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 중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따뜻했던 날씨는 온데간데없고 짙은 눈이 몰아쳤다.

편집 및 교정/이점

글/ 김샤카

사진/양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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