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같은 내 미래 – 진출이냐 시즈모드냐 그것이 문제로다.

처음 미스핏츠에 참여하면서 참 고민이 없었다. 많기는커녕 진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무심코 ‘어떻게든 잘 되겠거니’ 라는 생각으로 미스핏츠에 참여했다. 그게 이번 6월. 방학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받은 제안이 이렇게 미스핏츠로 성장한 걸 보면 신기할 뿐이다.

복학 후에, 한 가지 변한 점은 개강이 그리 설레지만은 않는단 점이다. 분명 1~2학년 땐 ‘어떻게 놀지’라는 생각때문인지 개강이 기다려졌고, 공강 때는 바로 과방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번 개강은 그리 기다려지지 않는다. 2달 전에 아무 고민 없이 미스핏츠를 시작했던 감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지금은 그저 복학과 미래에 대한 걱정반 우려반(….)이다.

사진 = 네이버 영화

그런 내게 영감을 준 건 2가지 – 자세히 표현하자면 1명과 영화 1개-였다. 하나는 영화 <미스트>였고, 한 명은 내 대학 동기였다. 그간 ‘종교영화’, ‘인간의 광기’로만 리뷰되던 미스트가 내게 달리 다가왔던 그 발걸음은 분명 내 현재 신세 때문이었을 거고, 이 기회를 빌어 그 신세에 대해 이 글의 독자들과 많이 공유해보고 싶다. 아, 친구 얘기는 덤이다.

종교반, 막장반, 현실 많이 주세요

‘막장반전영화’, ‘개막장영화’로 극혐의 평가도 ‘스티븐 킹이 칭찬할 정도로 최고의 영화’, ‘진짜 반전영화’로 극호의 평가도 존재하는 영화 <미스트>. 일단 영화의 소재는 제목과 같이 ‘안개’다. 어느 순간 안개가 점령한 마을에 미지의 괴물들이 쳐들어온다. 그리고 그 괴물에게서 탈출하고자 하는 생존자들의 몸부림이 영화의 주 이야기 구조다. 솔직히 개강 전의 두려움 – 이제 3학년 2학기인데 어떡하지 – 이 없었으면 정말로 그냥 ‘영화판 3대 민폐가 나온 종교영화’로만 묘사됐을거다.

내가 엄살 부리는 거겠지만-그렇게 믿고 싶다-, 24살 대학생이 3학년 2학기를 맞이하는 기분은 되게 애매하다. 교환학생을 신청하기엔 늦었을 거 같고, 그렇다고 뭐 취업을 하기엔 스펙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시험을 준비하자니 그건 더더욱 늦은 거 같다.

처음 드는 생각은 ‘군대를 – 현역은 아니었지만 – 1학기라도 빨리 갈걸’이었고 둘째로 드는 생각은 ‘이공계 갈걸’ 이었고 세번째 드는 생각은 ‘영미권에서 태어나서 한국으로 학교올 걸’이었다.

사람이라는 게 옹졸해서 언제나 위험이나 걱정을 직면하면 ‘미래를 설계해서 어떻게 해야지’란 것보단 ‘아 진짜 옛날에 왜 그랬을까’생각이 더 자주 든다. 그래, 지금 내 상태도 미스트의 주인공과 같다. 괴물은 내가 하는 갖가지 도전에 수반되는 실패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그 실패가 두려워서 주인공처럼 마트 안에만, 현실에만 죽치고 있다. 미스트의 메시지가 삶의 불확실성인만큼, 그 불확실성의 절정인 20대의 나에겐 그 메시지가 절실하게 와닿는다.

구체적인 묘사로 들어가면, 영화는 더욱 현실과 같아진다. – 현실이 영화 같을 수도 – . 안개가 사람들의 선택을 가로막는 한계, 장애물이라면 안개 속에 가족을 위해 뛰쳐나간 아주머니가 아마 현실이라는 돌에 부딪치는 날계란이겠다. 다른 사람들이 아줌마를 말린 것처럼, 현실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하지 말라는 일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집단지성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선험적 증거는 항상 믿을 만한 것이라 생각하기에 더더욱 옳다고 느껴진다.분명히 내가 본 날계란들은 실패했고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안개에 둘러싸인 약간 아래 중산층에 속해있는 24살 대학생으로서 – 솔직히 돈 많으면 예측하든 못하든 상관없지 않은가 – 돌에 부딪치는 것보다는 그냥 맥반석 계란이 되는 게 삶의 이득이다. 여기서 주어는 나 말고 독자들로 대치해도 큰 문제가 없을 거 같다.

사진 = IMDB

영화에선 이런 안개에도 불구하고 뛰쳐나간 아줌마가 있었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가득할 때 그 친구가 다가왔다. 그렇게 그 친구는 꽃이 되었고 우린 행복했….으면 좋았겠지만 그 친구는 대학로에서 창작뮤지컬을 세울 거라 했다. 그 친구 분명히 나랑 조건이 크게 다를 거 없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번, 같은 동네 심지어 둘 다 못생겼다.

물론 이전까지 영화, 음악, 글 등의 창작 능력에 재능을 보였던 친구였고 꾸준히 뮤지컬을 만들거라 했지만 진짜로 할 줄은 몰랐다-아마 이 글이 발행됐을 땐 뮤지컬 성황리에 마쳤기를 바란다-. 그래, 그 친구가 미스트의 생존왕 아주머니다.

이 분 최소 박수받으실 분

제 박수! 박수 받으세요!

한 치 사람 마음 속도 모르듯이, 열 치 인생길은 누가 알겠는가. 항상 다수가 옳다거나, 힘들다고 판단할 때도, 항상 합리적이라고 판단했을 때도, 만장일치가 됐을 때도 무조건 좋은 결과가 일어나진 않는다. 결과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질 아무도 모르니깐. 그런 점에서 영화 미스트는 진짜 잔인할 정도로 끔찍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바보 같아 보였던, 세수하는 세균맨 같았던 그 아주머니가 생존하고 안개에 보수적이었던 – 마트에서 생존을 도모하다가 결국 탈출하는 – 주인공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영화는 인생의 불확실성을 얘기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나.

그 친구는 공연을 했고, 혼자서 수필을 써냈고 이번엔 뮤지컬을 낸다. 물론, 수익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사실 제작자 자체가 수익을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미래의 안개에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는 유형의 주인공이라면 분명 그 친구는 남이 뭐라 하든 자신의 선택대로 안개를 뛰쳐나간 유형의 사람이다. 아, 여기서 난 어느 가치고 좋고, 나쁘다라는 판단을 하진 않을 거다.

내 스스로 내 삶의 판단을 비하하고 싶지 않고, 다른 가치를 무작정 좋다고 치켜세우고 싶지도 않다. 어느 하나가 도덕이나 악을 독점하는 건 옳지 않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하나 분명한 건, 안개가 있든 없든 자신의 길을 뚫고 나간 그 친구의 패기는 박수를 독점해야 한다.

 

못 먹어도 고

이제 그럴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이젠 공부도!돈!무한!자본!주의!

예술작품은 작품의 메시지만큼 수용자의 상황이 중요하다. 누군가는 미스트를 미국의 이라크 전쟁으로 비유했다. 나에겐 미스트가 ‘삶의 불확실성’으로만 다시 다가왔다. 그리고 내 현실은 불확실하다기보다 위험하다.

성공한 어른들은 아파야 청춘이라지만, 현실은 아픈 걸 넘어서 죽기 일보직전이다. 대기업 신입사원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오히려 스펙을 요구하는 무스펙 시험과 다양한 채용시험이 생기고 오히려 더 큰 유리장벽인 수시가 정시보다 많아졌다. 우리 부모 세대의 성공신화인 고승덕이 성공했던 고시들은 점점 더 비용이 많이들어가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10대 때 보였던 길들은 어느덧 안개에 파묻혔고, 기존의 길을 대체할 새로운 길은 감감무소식이다. 물론 길은 직접 찾아야 하고, 내가 가는 게 길이란 이야기도 맞지만 안개 속 마트 생존자에게 그런 얘기는 망상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여자 동기들은 취준을 하고, 친구들은 슬슬 공무원 시험이나 대학원을 준비하는 이 시점에서 ‘도전하는 청춘’ 따위의 수식어는 강철 팬티일 뿐이다.

강철팬ㅌ…. 죄송합니다.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참 고민 많이했다. ‘그래도 난 열심히 살 거야’식의 해피 엔딩은 내 성격과 맞지 않고, ‘그래 인생 시궁창이야 우린 망했어 노동자계급이여 혁명이다!’도 맞지 않다. 아무 생각 없이 미스핏츠에 참가했던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 친구의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게 된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다시 고난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김어준의 ‘쫄지마 시바’는 아니어도 ‘시바 어떻게든 되겠지, 닥치고 공격!’까지의 마인드 정도는 가져야 삶이 편해질 거 같다. 어차피 내가 발악을 한다 해도 이 체제는 바뀌지 않고, 바뀐다 해도 그게 유토피아란 보장은 없으니까. 내 2학기도, 그 친구의 뮤지컬도 흥하길 바라면서 글을 리뷰(라고 쓰고 신세한탄)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