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 끝에 그의 책사가 된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라는 달콤한 말로 유비를 유혹한다. 당시 조조는 중국 본토의 넓은 중심부를 차지해 막강한 세를 과시하고 있었고, 손권은 양자강이 벽 역할을 해주는 천혜의 요새인 강동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유비는? 신야라는 조그마한 성 하나를 겨우 차지하고 조조에게 쫓기며 거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다만 유비 휘하에는 관우와 장비, 조운을 비롯한 인재가 많았고(<삼국지연의> 기준) 황족이라는 명분상 이점이 있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는 유비가 당시 유장이 다스리고 있던 서남쪽의 익주 땅을 차지해 조조, 손권과 함께 천하를 셋으로 나눈 뒤 천하통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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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20대 국회의원선거의 핫이슈는 누가 뭐래도 ‘국민의당’(안철수 신당)이다. 국민의당의 창당발기취지문을 살펴보면 요지는 대강 이렇다.

오늘 우리 국민의당은 시대변화에 뒤쳐진 낡고 무능한 양당체제, 국민통합보다 오히려 분열에 앞장서는 무책임한 양당체제의 종언을 선언합니다.

의제에 따라 진보와 보수의 양 날개를 펴면서 합리적 개혁을 정치의 중심에 세울 것입니다.

국민의당이 갈 길은 분명합니다. 부패를 척결하고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를 넘어선 ‘합리적 개혁’입니다.

요약하면 이렇다. ‘지금 양당제(2개 당 체제)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제3당을 만든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중도주의 정당이다.’ 결국 새누리당(보수)과 더불어민주당(진보)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판에 제3의 중도 정당을 키워 ‘천하삼분지계’를 이루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그 옛날 유비의 촉나라는 2대(유비-유선)를 넘기지 못하고 패망했지만 어쨌든 천하삼분지계를 이루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면 안철수도 과연 이번 총선을 통해 천하삼분지계의 뜻을 이룰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올시다’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이다.)

 

중도주의는 개뿔!

양당제 종결을 선언했다. 중도주의를 표방했다. 보수와 진보 사이 제3당을 말했다. 한국정치에서 가능한 얘길까? 지금 현재 국회에서 각 정당의 의석 수는 새누리당 157석, 더불어민주당 109석, 국민의당 17석, 정의당 5석, 무소속 5석이다. 국민의당 17석이 대부분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거란 점을 감안하면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두 개의 당이 차지하고 있던 의석 수는 더욱 크다. 결국 현재 우리 정당체제는 ‘2+@’다. 사실 이건 지금 당장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 항상 유지돼온 형태다. 과거에도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민주노동당(민노당) 등이 제3당으로 떠오른 적이 있었지만 의석 비율은 크지 않았다. 한국 정당체제는 기본적으로 양당제다.

양당체제에서 두 개의 정당이 이념적으로 점점 근접해 가운데 지점에 모여 있게 된다는 이론은 정치학에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이를 ‘호텔링의 정리’(Hotelling’s Law)라고 한다.

 

hotelling

일자로 늘어진 해변에서 아이스크림 판매상이 둘 있다고 해보자. 이 둘은 양쪽 끝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손님들을 정확히 절반씩 나눠 갖고 있다. 이때 정 가운데 위치한 손님들은 왼쪽으로 가든 오른쪽으로 가든 거리가 같다. 그런데 왼쪽에 위치한 상인이 조금만 오른쪽(가운데)으로 움직이면 차지할 수 있는 손님 수는 늘어난다. 왜? 이제 정 가운데 있는 손님들 입장에서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른쪽 상인도 바보가 아닌 이상 덩달아 가운데로 움직이려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다 보면 두 상인은 결국 해수욕장 정 가운데 붙어서 손님을 절반씩 차지하게 된다. 정치이념(좌-우)도 결국 1차원 스펙트럼 상에 놓이는 것이기 때문에 당이 2개 존재하는 양당제 하에서는 두 정당의 이념적 거리가 점점 가까워져 가운데로 쏠리게 된다는 게 호텔링의 정리의 핵심이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도 이 이론의 내용처럼 이념적 거리가 매우 가깝다. 물론 자세히 보면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비해 조금 더 진보적인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이 이념적 차이는 우리 정치에 이념 이전에 지역주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영남,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영남 출신이 호남 출신보다 인구가 많다. 그리고 노년층은 박정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두 당이 이념적으로 같다면 제1당에 표를 몰아주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새누리당과 살짝 거리를 둬 호남 출신과 젊은 진보 세력 표를 확실히 얻기 위해 살짝 왼쪽에 위치해 있는 거다. 하지만 어쨌든 두 당 사이 거리가 넓지 않은 건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보수)과 더불어민주당(진보) 사이에 ‘중도’라는 새로운 씨앗을 뿌린다? 햇빛을 받지 못해 나무가 되지 못할 거다.

정치제도에는 크게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있고, 선거제도에는 크게 단순다수제와 비례대표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다소 혼합돼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통령제, 단순다수제를 기반으로 한다. 이 두 조합은 다당제보다는 양당제와 훨씬 가깝다. 단순다수제에서는 각 선거구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만 당선이 되기 때문에 엄청난 사표(死票)가 발생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념과 가장 가까운 정당을 찍기보다는 조금 멀더라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에 표를 던진다.1)이것을 사표방지심리라고 한다. 그리고 여러 정당 간 연합으로 총리(또는 수상)가 정해지는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대통령제에서는 선거 한 방으로 행정부 수반이 탄생한다. 따라서 군소정당이 성장할 여지가 매우 적고 결국 덩치가 큰 두 당만 살아남는다. 이런 한국정치에서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제3당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 안철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주먹)

(주먹)

많이 놀림받고 있지만 안철수는 바보가 아니다. 많이 똑똑하다. 설사 정치 쪽으로는 아직 조금 바보라고 하더라도 주변에 김한길이나 천정배 같은 정치 베테랑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지금 한국정치에서 중도주의 제3당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거다. 그러면 이들의 목적은 뭘까? 사실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 뜸들이며 얘기하기도 민망하다. 안철수의 목표는 ‘대권’이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에 있을 때도 문재인 전 대표와 시덥잖은 명분 싸움을 하다가 탈당했지만 결국 그 본질은 대권 싸움이었다. 문재인은 대선에서의 잠재적 야권 경쟁자를 밀쳐낸 거고, 안철수도 문재인과의 싸움을 피해 본선에 출마하기 위해 나온 거다.

내년이 대선이다. 1년 반이 조금 넘게 남았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목표는 이번 총선 때 20석 이상을 차지한 뒤 이 기간 동안에만 어떻게든 버티는 것일 거다. 그리고 안철수 혼자 힘으로 당선되든, 더불어민주당과의 연합을 통해 당선되든, 그도 아니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하며 연합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이득을 취하든 하는 게 목표일 거다. 국민의당의 목표는 그 1~2년의 기간 동안에만 어떻게든 더불어민주당을 괴롭히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다. 물론 안철수 개인은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최종 목표로 꿈꾸고 있겠지만 다른 국민의당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몸값 상승을 위해 당이 필요하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면 가장 좋고, 설사 못 되더라도 그 전까지 더불어민주당을 충분히 괴롭힐 수 있다면 나중에 협상을 통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천하삼분지계’는 허울이다.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애초에 국민의당이 진정으로 3당체제의 현실성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닐 거다. 야권은 언젠가는 다시 통합될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지금 안철수가 내뱉는 말들만 보면 더불어민주당과의 연합은 영원히 없을 거 같지만 정치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안철수 개인은 야권 통합에 대한 반대 의사가 분명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식구들 생각은 분명 다를 거다.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 입장에서 식구들을 굶기면서까지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야권은 언젠가 또 다시 통합된다. 천정배의 ‘국민회의’(가칭)가 한창 몸값을 올리기 위한 액션을 취하다가 안철수가 합쳤듯 국민의당도 자신들의 값어치를 최대한 끌어올린 뒤 더불어민주당과 손을 잡을 거다.

 

덧: 중도주의 제3당 성공의 조건

얘기가 나온 김에 정치학을 접해보지 않은 이들을 위해 살짝 원론적인 얘기를 해본다. 그러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우리나라에서 중도주의 제3당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될 경우 그럴 가능성이 높을지는 얘기해볼 수 있겠다. 굉장히 이상적인 이야기이지만 중도주의 정당이든 제3당이든 어쨌든 지금의 양당체제가 와해돼야 가능한 얘기다. 그러면 어떻게 되면 우리 정당체제가 다당제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아질까? (다당제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하는 건 아니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① 단순다수제・소선구제 → 비례대표제

지금 현재 300개의 의석 가운데 250석 정도가 지역구, 50석 정도가 비례대표다. 명목상으로 우리 선거제도는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섞인 ‘혼합형’이지만 솔직히 까놓고 얘기하면 비례대표 50석 정도는 그냥 ‘구색 맞추기’다. 여당과 제1야당을 제외한 다른 정당이 비례대표선거에서 아무리 선전해봤자 5석도 얻기 힘든 게 현실이다. 2004년에 있었던 제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돌풍을 일으켰을 때도 비례대표로 8석을 얻었을 뿐이다. 그리고 12년이 지난 지금, 민노당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현 제19대 국회에서도 얼마 전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생기기 전 제3당이었던 정의당은 지역구 1석(심상정)에 비례대표 4석으로 고작 5석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비례대표가 대폭 확대되거나 완전 비례대표제로 가지 않는 이상 한국정치에서 제3당이 성공하기는 힘들다. 왜? 위에서 말했듯이 단순다수제 하에서는 엄청난 사표(死票)가 발생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자신의 표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보다 현실성 있는 선택을 한다. 진보적 성향의 유권자들은 야권 정당들 가운데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제1야당에게 표를 던진다. 따라서 제2야당이나 그보다도 규모가 작은 당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반면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사표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권자는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 걱정 거의 없이 자신의 이념과 가장 가까운 정당에 소신껏 투표할 수 있게 된다.

② 대통령제 → (이원집정부제) → 의원내각제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다. 대통령제에서는 입법부(국회) 구성과 상관 없이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선제로 따로 뽑는다. 이런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한 순수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바뀐다고 해도 완전한 다당제가 되기는 어렵다. 한 번 선출된 대통령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임기가 고정돼 있는데, 국회에 여러 정당이 존재하면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 정책 추진에 어려움이 생긴다. 그러면 결국 국민들은 총선에서 소수의 힘 있는 정당에게 표를 몰아줄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여러 정당 간 연합으로 총리(수상)를 만들게 되기 때문에 과반수 정당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의 국정 운영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대통령제-단순다수제’를 기반으로 하는 한국이 바로 ‘의원내각제-비례대표제’로 넘어가는 건 어렵다. 따라서 그 대안으로 나왔던 게 바로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론이다.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과 총리(수상)를 동시에 두는 제도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총리는 입법부가 선출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 총리는 내정을 맡는다. 몇 년 전 이런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론이 활발히 논의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쏙 들어가 있다.

③ 지역주의 → 이념주의

바로 위까지는 정치학적으로 매우 원론적인 얘기였고, 이에 더해 한국정치의 현실 문제도 있다. 바로 아직 이념보다는 지역 간 갈등이 크다는 거다. ‘보수 대 진보’보다 ‘호남 대 영남’ 균열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한국정치에서 다당제의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실질적으로 제1당이 ‘영남당’, 제2당이 ‘호남당’의 색이 짙은 상황에서 어느 한 쪽 세력이 여러 당으로 갈릴 경우 바로 상대 세력에게 밀리게 된다. 따라서 이런 지역주의가 더 완화돼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다당제가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러면 자연히 중도주의 정당도 생기기 어렵다.

편집 및 교정/ 이점

글/ 개똥그릇

 

   [ + ]

1. 이것을 사표방지심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