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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토끼냐, 산토끼냐?’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소리다. ‘집토끼’는 정치 상황에 상관없이 한 당에만 표를 던지는, 흔히 ‘텃밭’이라고 불리는 곳에 속한 집단을 말한다. 반면 ‘산토끼’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옮겨 다니는, 이념이나 지지 당이 고정돼 있지 않은 집단이다. 정당의 입장에서 한 선거에서 자신의 집토끼는 모두 지키는 동시에 산토끼를 끌어들이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리 쉬울 순 없는 법……. 집토끼와 산토끼를 한 번에 모두 잡는 건 현실 정치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왜? 집토끼와 산토끼를 공략할 수 있는 프레임 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새누리당을 예로 들어보자. 새누리당에게는 이른바 ‘TK’를 중심으로 한 고정 지지 세력이 있다. 이 ’집토끼‘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 입장에서 이들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프레임을 내걸어야 한다. 예를 들면 반공, 국방, 기업 규제 완화, 감세 등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흔히 ‘부동층(浮動層)’이라고 불리는 ‘산토끼’들은 상대적으로 중도적, 또는 진보적 성향을 띤다. 따라서 이들을 잡기 위해서는 복지, 민생, 정치개혁 등의 진보적 슬로건이 필요하다. 이들은 한 선거 프레임 안에서 공존할 수 없기에 한 정당인 집토끼와 산토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제3의 ‘토끼’ 전략

그런데 선거판에는 ‘집토끼’ 전략과 ‘산토끼’ 전략, 둘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이들 외에 제 3의 전략이 존재하는데, 사실 한국 정치에서는 매우 중요한 전략이다. 바로 ‘상대 집토끼 가두기’ 전략이다. 선거 승리 전략으로 내 집토끼를 지키는 것, 산토끼를 포섭하는 것도 있지만 상대방 집토끼를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하는 전략도 있는 거다. 특히 이는 보수당인 새누리당에게 효과가 큰 전략이다. 사실 새누리당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건 진보적 성향을 가진 젊은 세대가 투표장에 많이 나오는 거다. 이들을 투표장에 나오지 않게 집에 가둬버리면 새누리당의 승리는 한결 수월해진다. 반면 야당(더불어민주당 등) 입장에서는 새누리당 지지 세력을 집에 묶어두려 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나이 든 세대에는 거의 의무적으로 투표장에 나가 ‘1번’을 찍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일버어어ㅓㅓ어ㅓ어어ㅓ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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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새누리당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대 집토끼 가두기’ 전략을 쓰는 건 아니다. 당시 정치판 상황을 봤을 때 가만히 있어도 진보적 젊은 세대가 투표장에 잘 나오지 않을 거 같으면 굳이 이 전략을 쓸 필요가 없다. 즉, 젊은 층 투표율이 낮을 거 같으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자신의 텃밭을 더욱 탄탄히 다져두는 게 나은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투표장에 튀어나올 거 같은 분위기면 이들을 저지하거나,포섭해 최대한 많이 새누리당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면 과연 이번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젊은 세대 투표율이 어찌 될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젊은 세대가 꽤나 많이 투표장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투표를 잘 하지 않는 진보적 젊은 세대는 한마디로 ‘빡쳤을 때’ 투표장에 나온다. 뭐에 빡치면 나오나? 정치권, 특히 국회가 아무리 개판이고 시끄러워도 이들은 투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뉴스에서 국회의원들과 정당인들이 난장판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정치에 대한 회의감을 더 크게 느끼고는 정치에서 관심을 뗀다. 하지만 행정부, 즉 대통령이 화나게 할 때는 다르다. 국회의원들의 삽질은 ‘정치가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대통령의 삽질은 그 화가 대통령 개인에게 쏠린다. 따라서 대통령이 실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 때는 이를 응징하기 위해 투표장에 나오게 된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야당에게 힘을 실어줘 대통령을 저지하려고 하는 거다.

내가 봤을 때는 제20대 총선을 앞에 둔 지금 우리 정치가 이 상황에 처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박근혜 정권이 잘하고 있는 거든 아니든 많은 국민들이 화가 나 있는 게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나 메르스 사태 등으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성완종 게이트, 역사교과서 국정화, 복면 시위 금지, 위안부 문제 합의, 국회의장에 대한 직권상정 요구 등 크게 논란이 될 만한 이슈들을 한껏 뿌려놓은 상태다. 젊은 세대는 꽤 빡쳐 있다. 새누리당도 이런 사회 분위기를 모를 리 없다. 따라서 이들은 젊은 세대를 잠재울 프레임을 짜고 있는 듯하다. 백보드 홍보 슬로건으로 ‘민생’, ‘개혁’ 등의 문구를 내걸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새누리당의 선택은 ‘근접전’

그런데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새누리당이 ‘민생’, ‘개혁’ 등의 슬로건을 내거는 게 진보 세력을 묶어두는 거와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사실 정말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는 새누리당과 야당이 동시에 진보적 슬로건을 내걸면 상식적으로 야당 쪽에 표를 던져야 한다. 아무리 진보적 슬로건을 내걸어도 새누리당은 기본적으로 보수당이기 때문에 진보적 정책들을 야당에 비해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새누리당이 이런 프레임 작업을 하는 건 진보적 세력을 ‘포섭’하려는 게 아니라 ‘투표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다. 진보적 프레임을 내걸어 야당의 이념 쪽으로 한 발짝 다가서면서 야당과의 차별성을 줄이는 거다. 그러면 유권자 입장에서는 ‘결국 다 똑같네’라고 생각하며 투표 의지를 잃어버릴 수 있는 거다. 결국 새누리당이 노리는 건 야당과의 거리를 좁힘으로써 젊은 세대의 투표 의지를 꺾어 이들을 집에 묶어두는 거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의 프레임 작업은 어디로 흐를까?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두 가지 요인 때문에 행동반경이 매우 제한돼 있다. 첫 번째는 다소 진보적 슬로건을 내거는 새누리당이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여당보다 보수적인 슬로건을 내걸 순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새누리당과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든지 아니면 그보다 더 진보적은 슬로건을 내걸어야 한다. 같은 슬로건을 택하면 차별성이 줄어들어 젊은 세대의 투표 의지가 꺾이고, 더 진보적 슬로건을 내걸면 중도층을 새누리당에 뺏기고 만다. 두 번째는 현재 경제 상황이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복지’를 비롯한 다양한 프레임 들 가운데 선택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불황일 때는 경제 관련 프레임을 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이 짤 수 있는 프레임은 뻔하다. 그리고 그 프레임은 새누리당의 프레임과 상당 부분 겹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즉,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경기 회복, 일자리 창출, 민생 안정 등의 공약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가 균형점이다. 어느 쪽 당이든 이들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그만큼 표를 잃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젊은 세대 투표율이 높아져 불리해질 수 있다.) 결국 이번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여당과 야당이 같은 주제에 대해 같은 주장만 하고 앉아 있게 되기 쉬운 거다. 하지만 어쨌든 두 당은 권력을 놓고 다투는 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서로 같은 공약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을 턱이 없다. 이렇게 프레임과 공약이 거의 겹칠 상황에서 결국 이번 총선은 ‘네거티브’ 전쟁으로 흐르게 될 거다. 경제, 일자리, 민생 등의 슬로건은 똑같이 내거는 동시에 서로에 대한 디스전이 가미될 거란 말이다.

‘정권 심판론’ vs. ‘국회 책임론’

일단 상대적으로 더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기 수월한 쪽은 야당이다. 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 창조경제 등의 슬로건을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결과는 2%대 경제성장률, 9%대 청년실업률, 20~30%대 체감 청년실업률, 그리고 어마어마한 가계부채다. 물론 이런 절망적인 경제 상황이 대통령 개인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고, 가계부채에 관해서도 이게 꼭 비관적인 시그널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분명히 대통령이 공약 달성에 실패한 꼴이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이전 대통령은 MB였다. 새누리당(전 한나라당)이 10년 연속 집권하는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 반감까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황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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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누리당도 역시 가벼이 볼 상대는 아니다. 안철수 의원이 탈당해 신당(국민의당)을 만들면서 야권의 상황에 복잡해지기도 했지만, 박근혜 대통령도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알고 보면 섬뜩하도록 날카로운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명 ‘원샷법’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지 않자 대통령은 ‘국회 책임론’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오잉?

뚝딱뚝딱… 오잉?

일반인들은 대국민 담화 자리에서 ‘대통령이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냐’며 호소하는 대통령을 비웃지만 사실 이는 고도의 프레임 작업이다. 야당이 현 경제 상황과 관련해 여당을 공격할 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 책임을 다시 야당에 넘기는 프레임을 짜고 있는 거다.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안 그래도 야권 분열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매우 부담스런 일격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개성공단을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정말 시원하게 날렸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논란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내린 결정일 거다. 북한과의 긴장 분위기를 만들어 보수층 표밭을 다지는 건 보수당의 고전적인 선거 전략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과격하긴 했다. 왜 굳이? 그만큼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야당과 차별화할 프레임이 없다는 방증이다. 그만큼 현재 다른 영역에서는 여야의 프레임이 겹쳐 있다는 거다. 아니 근데, 여야 프레임이 겹쳐 있으면 보수당인 여당에 유리하단 거 아니었나? 그러면 왜 굳이 차별화를 시도하지? 여야 예상 프레임이 겹쳐 있는 상황에서 여당이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진보 세력, 특히 젊은 층이 투표장에 많이 나올 걸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렇게 프레임이 겹치는 상황에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판세를 뒤집어 여당인 새누리당을 압도하긴 어려울 거다. 아마 큰 이변이 없으면 새누리당이 제1당 지위를 유지하게 될 텐데, 궁금한 건 구체적인 의석 수 차이다. 이건 결국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얼마나 나올지에 달려 있을 거다. 그리고 하나 추가하자면, 더불어민주당이 과연 자신의 집토끼를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거다. 호남 지역, 특히 광주 민심이 상당 부분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쏠려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아마 막상 선거 때가 되면 제1야당인 자신들에게 돌아올 거라 예상하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그건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국민의당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호남은 결국 다시 ‘정통야당’에게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한국정치에서 제3당이 설 자리가 애초에 있는 건지 의문이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투표는 하자

난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도, 국민의당 지지자도 아니다. 지역구 의원은 심상정 한 명뿐인 정의당 지지자도 아니고,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할 만큼 왼쪽에 쏠려 있는 노동당 지지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 지지자인 것도 아니다. 그래, 정치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난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 다만 그때그때 각 당들이 하는 짓거리를 봐가며 표를 던지는 부동층, 즉 ‘산토끼’다. 난 독자들에게 특정 정당의 ‘집토끼’가 되라는 것도 아니고, 나처럼 ‘산(mountain)토끼’가 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가 ‘산(alive)토끼’는 됐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죽은 토끼’만은 되지 말자. 정치가 아무리 개판이라고 해도 투표장이 나가는 버릇을 가져보자.

살았니 죽었니

살았니 죽었니

젊은 세대가 투표장에 많이 나가면 진보적 정당에게 유리하다고들 하지만 내가 야권을 지지해서 투표장에 나가라고 독려하는 건 절대로 아니다. 다만 애초에 젊은 층이 투표장에 나가고 안 나가고에 따라 선거 판세가 달라지는 현 상황 자체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라는 생각을 할 뿐이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는 사회 균열이 정당을 통해 정치에 반영되는 구조인데, 애초에 사람들이 투표를 잘 하지 않아 국민들의 원하는 바가 정당에 전달이 안 되니 정치도 민의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거다. 난 우리 젊은 세대가 투표장에 나감으로써 우리 한 명 한 명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아 있음을 보였으면 좋겠다.

물론 우리네 젊은 세대가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를 잘 하지 않게 된 건 우리의 잘못보다는 정치권의 잘못이 더 클 수도 있다. 따라서 정말 정치가 싫어서 투표를 안 하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고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서 내가 투표장에 나가라고 말하는 건 ‘요구’가 아닌 ‘부탁’이다. 정말로 찍고 싶은 후보나 정당이 없으면 무효표라도 던지고 오자. 기권표만 던지지 말자1)무효표는 투표율에 들어가지만, 기권표는 투표율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 선거 하나하나에서 던지는 우리 젊은이들의 기권표가 나중에는 우리 민주정치 전반에 던지는 기권표가 될 수도 있다. 기권하지 말자. 하다못해 투표용지에 ‘똑바로 해, 개새끼들아’라고 욕이라도 써놓고 오자. 그 문구 자체가 정치인들에게 전해질 리는 없겠지만, 그 표 한 장은 우리 사회에 전해진다.

편집 및 교정/ 이점

글/ 개똥그릇

   [ + ]

1. 무효표는 투표율에 들어가지만, 기권표는 투표율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